제 23과: 혼인잔치의 비유
1. 말씀읽기:마태 22,1-14
혼인 잔치의 비유 (루카 14,15-24)
1 예수님께서는 또 여러 가지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2 “하늘 나라는 자기 아들의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에게 비길 수 있다. 3 그는 종들을 보내어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이들을 불러오게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오려고 하지 않았다. 4 그래서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이렇게 일렀다. ‘초대받은 이들에게, ′내가 잔칫상을 이미 차렸소. 황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준비를 마쳤으니, 어서 혼인 잔치에 오시오.′ 하고 말하여라.’ 5 그러나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어떤 자는 밭으로 가고 어떤 자는 장사하러 갔다. 6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종들을 붙잡아 때리고 죽였다. 7 임금은 진노하였다. 그래서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자들을 없애고 그들의 고을을 불살라 버렸다. 8 그러고 나서 종들에게 말하였다.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는데 초대받은 자들은 마땅하지 않구나. 9 그러니 고을 어귀로 가서 아무나 만나는 대로 잔치에 불러 오너라.’ 10 그래서 그 종들은 거리에 나가 악한 사람 선한 사람 할 것 없이 만나는 대로 데려왔다. 잔칫방은 손님들로 가득 찼다.
11 임금이 손님들을 둘러보려고 들어왔다가, 혼인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 하나를 보고, 12 ‘친구여, 그대는 혼인 예복도 갖추지 않고 어떻게 여기 들어왔나?’ 하고 물으니,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13 그러자 임금이 하인들에게 말하였다. ‘이자의 손과 발을 묶어서 바깥 어둠 속으로 내던져 버려라.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14 사실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많지만 선택된 이들은 적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 말씀연구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혼인 잔치에 비유하여 설명하십니다. 그런데 이 비유의 의미는 그리 어렵지 않으나 내용은 무척 어렵습니다. 잘못 생각하면 하느님을 무자비하신 분으로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처음에 선택받은 이들은 자격을 스스로 상실했습니다. 더 나아가 하느님을 외면하였습니다. 이제 구원은 모든 이들을 향하여 활짝 열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예복(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입어야 합니다. 나는 지금 예복을 입고 있는지 오늘 말씀을 통하여 생각해 봅시다.
1 예수님께서는 또 여러 가지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참된 목자는 자기 양들을 사랑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양떼를 사랑하시기에 하느님 나라를 전하시면서 그들이 알아듣기 쉽게 이야기 해 줍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를 비유로 말씀하기 시작하십니다.
2 “하늘 나라는 자기 아들의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에게 비길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나라를 혼인 잔치에 비유하십니다. 이 혼인잔치는 자기 아들의 혼인을 기뻐하기 위한 잔치이고, 그 잔치는 임금이 주관을 하십니다. 이 임금은 바로 하느님 아버지이시고, 아들은 예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신부는 누구일까요? 바로 예수님을 믿고 따르고, 사랑을 고백하면서 한 생을 살아온 사람들 아니겠습니까? 그들이 바로 교회입니다. 그리고 하객들은 그 믿음에 초대된 사람들입니다.
3 그는 종들을 보내어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이들을 불러오게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오려고 하지 않았다.
임금은 종들을 보내어 손님들을 불러 옵니다. 그런데 이 명예로운 초대를 거부합니다. 이유조차 말하지 않습니다. 어떤 교육이나 봉사하는 자리에 오라고 하면 잘 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먹는 자리에는 꼭 참석합니다. 먹고, 노는 자리에는 빠짐없이 참석하는데 어찌된 일인지 이 혼인 잔치(교육, 봉사, 전례 등)에는 사람들이 오려 하지 않습니다. 아니 관심이 없습니다.
4 그래서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이렇게 일렀다. ‘초대받은 이들에게, ′내가 잔칫상을 이미 차렸소. 황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준비를 마쳤으니, 어서 혼인 잔치에 오시오.′ 하고 말하여라.’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그것은 임금이 모욕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종들을 보내어 준비가 다 되었으니 와 달라고 초대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임금에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요? 어떻게 임금이 초대했는데 신하들이 안 올 수 있을까요? 그 임금이 권위가 있는 임금이었다면 초대 하지 않아도 어떻게든 그 잔치에 가려고 했을 것입니다. 신하들의 태도를 보아 임금은 권위가 없는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신하들이 자기 일 다 하고 응해도 받아주는 사람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이 임금님은 누구실까요? 그렇게 많은 기회를 주고, 너그럽게 봐 주시는 분은 누구실까요? 세상의 임금 중에 그런 임금이 있을까요? 세상에는 그런 임금이 없습니다. 그 임금은 바로 하느님이십니다.
5 그러나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어떤 자는 밭으로 가고 어떤 자는 장사하러 갔다.
임금님의 아드님의 혼인 잔치. 사람들은 서로 줄을 서려고 혼인 잔치 장으로 향해야 하는데 사람들은 반응이 없습니다.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떤 자들은 밭으로 가고, 어떤 자는 장사하러 갔습니다.
초청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재력이 있고 지위가 있는 사람이 초대를 할 때와 재력도 없고 지위도 없는 사람이 초대를 할 때, 나의 반응은 어떻게 나타나겠습니까? 전자의 초청은 거절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리고 참석한다면 깔끔하게 차려입고 나갈 것입니다. 그런데 후자의 경우는 거절하기가 쉬울 것입니다. 이런 저런 작은 이유만 닿아도 충분히 거절하지 않을까요?
초청은 “한 사람이 나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너무도 사랑하시는 그 사람”이 “나”를 부르는 것입니다. 내가 그의 초대에 어떻게 응하느냐가 내가 하느님께 어떻게 응답하느냐로 드러날 수도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그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가끔은 기분 나쁜 때도 있습니다. 초대를 해 놓고 성의가 전혀 없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또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초대에 응했지만 마음이 전혀 없고, 형식적으로 그 자리에 있다가 분위기 깨고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에 대한 초대도 마찬가지인 듯 합니다. 초대하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너무도 사랑하셔서 당신 나라를 주시려는 그분. 그런데 초대에 응하는 나는 그 나라에는 아직 관심도 없습니다. 지금 주어진 상황들이 너무도 매력적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부르시는 그분. 관심이 없는 나. 마음 아파하시는 그분. 아무 생각이 없는 나. 이 비유를 들으면서 주일미사에 초대받았지만 아랑곳 하지 않고 일하러 가고, 장사하러 가고, 놀러가고, 성당 나오라고 하는 사람을 모욕하기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생각하게 됩니다. 사실 신앙이라는 것이 구속력이 없습니다. 평상시에는 안 나오다가 행사 때만 나오는 사람에게 “뭐 하러 나왔어! 어서 집에 가!”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와 준 것만도 고맙게 생각하고 그와 함께 하려 합니다. 또 자신이 무슨 일을 맡았다 하더라도 하기 싫으면 그만입니다. 안 나오면 그만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할 방법이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자비로우신 것처럼 우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야 하고, 하느님께서 모든 이들에게 기회를 주시는 것처럼, 우리 또한 그에게 기회를 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렇게 기회만 줄 수는 없습니다.
6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종들을 붙잡아 때리고 죽였다.
이제 더더욱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어떻게 임금의 초대를 거절할 수가 있으며 더 나아가 임금의 종들을 때려 주거나, 죽이기까지 한단 말입니까? 아무래도 임금에게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심부름하는 자에게 모욕을 준다는 것은 심부름을 시킨 사람, 즉 왕에게 모욕을 주는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그런데 구약성경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서서히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아차리게 됩니다. 이 혼인잔치의 비유는 바로 구약의 내용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스테파노는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51 목이 뻣뻣하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이여, 여러분은 줄곧 성령을 거역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여러분의 조상들과 똑같습니다. 52 예언자들 가운데 여러분의 조상들이 박해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들은 의로우신 분께서 오시리라고 예고한 이들을 죽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여러분은 그 의로우신 분을 배신하고 죽였습니다. 53 여러분은 천사들의 지시에 따라 율법을 받고도 그것을 지키지 않았습니다.”(사도7,51-53) 그리고 유다인들로부터 돌에 맞아 죽게 되었습니다.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 그래서 그 말씀을 통해서 자신의 모습을 바꾸는 사람도 있고, 그 말씀에 귀를 막고, 그 말씀이 들려오는 곳을 향하여 돌을 던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안 들린다 하더라도 하느님께서 주신 기회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결국 종말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7 임금은 진노하였다. 그래서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자들을 없애고 그들의 고을을 불살라 버렸다.
이제 임금은 진노하십니다. 그래서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자들을 없애고 그들의 고을을 불살라 버립니다. 때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무딘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던 유다인들에게 똑같은 재난이 닥칩니다. 바로 예루살렘이 70년에 완전히 잿더미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구약시대에는 예언자들을 통하여, 신약시대에는 당신 아들을 통하여 구원의 복음을 알렸으나, 백성들은 예언자들과 예수님마저 배척하고 죽였습니다. 처음에 초대받았던 사람들이 한 것처럼 했기에 그들은 구원받을 자격을 상실하게 된 것입니다.
또한 하느님의 거룩한 초대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에게 마련된 것은 바로 “벌”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거부하고, 더 나아가 하느님께 모욕을 드리는 이들이 가는 곳은 혼인 잔치의 축제가 아니라 “형벌”의 장소인 것입니다.
8 그러고 나서 종들에게 말하였다.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는데 초대받은 자들은 마땅하지 않구나.
이제 불충한 자들에게 진노를 퍼 부으신 왕은 종들에게 말합니다.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는데 초대받은 자들은 마땅하지 않구나.”혼인 잔치에 처음에 초대 받았던 사람들은 그 혼인 잔치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 임금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자신들만을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 스스로는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고, 자신들만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 생각 때문에 결국 자격을 잃어버리게 된 것입니다.
9 그러니 고을 어귀로 가서 아무나 만나는 대로 잔치에 불러 오너라.’
임금은 자신의 종들에게 “아무나 만나는 대로 잔치에 불러 오너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아무나”라는 것은 바로 “보편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먼저 유대인들을 선택하셔서 그들을 통해서 세상 모든 이들에게 구원을 주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런데 먼저 선택된 이들은 자만과 아집에 빠져 그 선택을 의미 없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이제 구원은 모든 이들에게로 확대되었습니다. “누구든지 믿기만 하면”(아무나) 구원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조건은 “믿음”입니다. 아무나 구원 받을 수 있지만 조건은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마치 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아무나 살 수 있지만 돈이 있는 사람만이 살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10 그래서 그 종들은 거리에 나가 악한 사람 선한 사람 할 것 없이 만나는 대로 데려왔다. 잔칫방은 손님들로 가득 찼다.
임금은 초대를 거절한 이들 대신에 모든 이들을 초대합니다. 아무나 만나는 대로 잔치에 청해 오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명령을 받은 종들은 만나는 대로 사람을 데려왔습니다. 착한 사람, 나쁜 사람, 부자나 가난한 사람. 그런 사람들로 잔치 집은 가득 찼습니다. 즉 이제 새로운 하느님의 구원사가 시작된 것입니다. 곧,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을 통하여 유다인이든, 이방인이든, 악한 사람이든, 선한 사람이든 모두 교회로 모아들이도록 명하십니다. 교회는 유다인과 이방인이 공존하는 혼성 공동체요 종말에 이르기까지 악인과 선인이 공생하는 혼합 공동체인 것입니다.
11 임금이 손님들을 둘러보려고 들어왔다가, 혼인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 하나를 보고,
임금이 손님들을 둘러보려고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혼인 예복을 입지 않는 사람을 보게 됩니다. 아무나 들어 올 수 있는 곳이지만 혼인잔치이기에 혼인 예복이 필요한 것입니다. 믿기만 하면 구원되지만 믿음이 있어야 만이 구원되는 것입니다.
12 ‘친구여, 그대는 혼인 예복도 갖추지 않고 어떻게 여기 들어왔나?’ 하고 물으니,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임금은 혼인 예복을 갖추지 않는 이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그대는 혼인 예복도 갖추지 않고 어떻게 여기 들어왔나?”누구나 들어올 수 있지만 최소한의 조건은 있습니다. 아무나 참례할 수 있지만 지킬 것은 지켜야 합니다.
이 말씀을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① 그대는 성찰도 하지 않고 어떻게 고해소에 들어왔나?
② 그대는 기도도 하지 않고 어떻게 봉사하겠다고 하는 것인가?
③ 그대는 은총지위에 있지도 않으면서 어떻게 성체를 모시겠다는 말이요?
④ 그대는 슬리퍼에 맨발, 체육복을 입고 어떻게 미사에 참례하겠다고 성당에 온 것이요?
누구나 성사 볼 수 있고, 누구나 봉사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성체를 모실 수 있고, 누구나 미사에 참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킬 것은 지켜야 합니다. 결코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13 그러자 임금이 하인들에게 말하였다. ‘이자의 손과 발을 묶어서 바깥 어둠 속으로 내던져 버려라.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비유만을 바라본다면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임금으로부터 초청을 받은 사람들 중에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당황스러운 것은 그를 임금이 손발을 묶어서 바깥 어두운 곳에 쫓아 버렸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이 비유에서 보면 나중에 초청을 받은 사람들은 닥치는 대로 거리에서 데려 온 사람들이었기에 그들의 옷은 대개 노동복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이 예복을 입지 않고 온 것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예복을 입고 왔다는 것이 더 이상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쫓겨난 사람은 한 마디 변명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지금부터 이 비유의 의미를 알아봅시다. 임금은 하느님이시고, 혼인 잔치는 즐거움과 행복의 메시아 왕국입니다. 예복은 손님이 지녀야 할 제 나름의 자격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예복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산상설교의 가르침을 행함(7,24-27), 아버지의 뜻을 행함(7,21), 의로움을 행함(3,15;5,20), 사랑의 이중계명을 행함(22,34-40), 자비를 행함(25,31-46)등 입니다. 혼인잔치에서 쫓겨난 사람들은 하느님의 말씀에 관심이 없고, 악행을 일삼아 왔던 악인들을 말합니다. 가슴을 치며 통곡할 곳은 지옥이며, 잔치의 소식을 전한 이들은 예언자들입니다. 그리고 듣지 않고 죽이기까지 한 처음의 초대받은 이들은 하느님의 말씀에 관심이 없는 유다인들을 말합니다.
참 그리스도인은 어떤 사람입니까? 하느님의 부르심에 기꺼이 응답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계명을 지키는 사람들 입니다. 즉 예복을 입은 사람들 입니다. 그리고 그 예복을 갖추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나는 그 모습을 갖추기 위해 오늘도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14 사실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많지만 선택된 이들은 적다.”
하려고 마음먹은 사람들은 많이 있지만 행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마음은 있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결국 마음도 없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내가 세례를 받았다고 해서 그것이 곧 구원의 보증이 될 수는 없습니다. 세례 받은 사람답게 살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믿는 다는 것, 믿음이라는 것은 어떤 방식으로 행동으로 드러나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세례 받은 사람답게 사는 것. 그것이 바로 참된 예복을 갖추는 삶이요, 부르심을 받은 사람의 삶의 자세입니다. 나는 부르심을 받고 뽑힌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함께 노력합시다.
3. 나눔 및 묵상
① 오늘 말씀 중에서 마음에 와 닿는 말씀은 무엇이며, 왜 와 닿았습니까?
② 내가 초대를 했을 때, 초대받은 사람들이 어떤 모양으로, 어떤 자세로 참석했으면 좋겠습니까?
③ 나는 주님의 초대에 어떻게 응답을 하고 있습니까? 어떻게 예복을 준비하고 있습니까?
4. 실천사항
①
②
③
④
5. 말씀으로 기도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