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7과: 성체성사를 제정하시는 예수님
1. 말씀읽기: 마태오 26,26-30
26 그들이 음식을 먹고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다. “받아 먹어라. 이는 내 몸이다.”
27 또 잔을 들어 감사를 드리신 다음 제자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다. “모두 이 잔을 마셔라. 28 이는 죄를 용서해 주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내 계약의 피다. 29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너희와 함께 새 포도주를 마실 그날까지, 이제부터 포도나무 열매로 빚은 것을 다시는 마시지 않겠다.”
30 그들은 찬미가를 부르고 나서 올리브 산으로 갔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 말씀연구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거행하시면서 당신의 몸과 피를 우리를 위해서 내어 주십니다. “받아 먹어라. 이것은 내 몸이다. 받아 마셔라. 이것은 내 피다.” 우리는 성체성사의 의미와 나는 성체를 어떻게 모셨으며, 모신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묵상해 봅시다.
26 그들이 음식을 먹고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다. “받아 먹어라. 이는 내 몸이다.”
예수님께서는 최후의 만찬 중에 제자들에게 당신의 몸과 피를 빵과 포도주의 형상으로 내어 주십니다. 그들이 음식을 먹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빵을 들어 축복하시고 제자들에게 떼어 주시며 “받아 먹어라. 이것은 내 몸이다” 그리고 잔을 들어 감사의 기도를 올리신 다음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것은 나의 피다. 많은 사람을 위하여 내가 흘리는 계약의 피다”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자신의 몸과 피를 다른 이들을 위해서 내어 준다는 것. 이것은 더 이상 표현할 수 없는 지극한 사랑의 표현이면서 동시에 이것은 죽음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성체성사는 나를 위해서, 나의 구원을 위해서 주님의 죽으심을 거행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한번은 미사 때 한 자매님이 독서를 봉독하시다가 끝내 울음을 터뜨린 일이 있었습니다. 그 독서의 내용은 1코린토 11장 23절 이하의 내용이었습니다. 그 내용은 예수님께서 성체성사를 재정하시면서 당신의 몸과 피를 내어주시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부분을 읽다가 그분이 그만 울음을 터뜨린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웅성거렸습니다. 그 사람은 암으로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이었는데 얼마 후에 그것이 오진으로 판명되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독서를 하다가 자신이 이제 다시 살 수 있다는 것에 기뻐서 울었는지, 아니면 그 말씀이 슬퍼서 울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눈물나는 말씀이구나!”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지금 자신의 몸과 피를 내어주시는데 제자들은 그것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몸과 피를 내어주실 때 제자 하나는 그분을 팔아넘길 궁리를 하였고, 나머지 제자들은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몰랐습니다. 알았다면 만찬 후에 올리브 산에서 예수님께서 잡히셨을 때 그렇게들 도망갔겠습니까?
최후의 만찬을 거행하고 있지만 알아듣지 못하는 제자들 앞에서 예수님의 마음은 어떠하셨을까? 이것을 생각해 본다면 이 말씀을 선포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것도 당연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체성사는 예수님의 죽으심을, 예수님의 모든 것을 내어 주심을 거행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나를 위해서 내어 주시는데, 너무도 나를 사랑하셔서 자신의 모든 것을 줘 버리고 자신은 죽음을 택하시는데 눈물을 흘리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 의미를 알아차리지 못했기에 나는 오늘도 무딘 마음으로 예수님을 내 안에 모시는 것입니다.
성체를 모시기 위해서는 영적인 준비와 육적인 준비를 해야 합니다. 영적인 준비는 은총지위에 있는 것으로서 회개와 감사를 통하여 내 마음을 준비시키는 것입니다. 성체를 영하기 전에 나는 내 삶을 반성해야 합니다(성찰). 또한 고백성사를 통한 예수 그리스도와의 화해를 이루어야 합니다(회개). 회개한 영혼은 죄를 뉘우치고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마음으로 성체를 감사히 받아 모십니다.
그리고 육적인 준비로는 성체를 모시기 한 시간 전부터는 공복재(空腹齋)를 지켜야 합니다. 미사에 참여하기 전에 음식을 먹어서는 안 됩니다. 다만 환자가 약을 먹는 경우나 목이 말라 물을 마시는 경우는 예외입니다.
나를 사랑하시어 영영세세 함께 계시기를 희망하시어 성체성사를 제정하시어 나에게 사랑의 성사를 영하게 하신 그리스도의 크신 사랑에 감사하며, 성체성사에서 받은 은총을 이웃과 함께 나눌 수 있도록 나의 삶을 변화시킵니다.
그렇다면 나는 성체를 어떠한 마음으로 영했으며 어떠한 마음으로 살아가야 하는가를 돌아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어떤 분은 성체를 모시면 가슴이 불타오르는 것을 느낀다고 합니다. 이 분은 성체를 모시기에 부당하지만 내 안에 오신 예수님께 너무도 감사하고 당신을 모신 감실로서 살아가겠다고 다짐을 한다고 합니다. 또 어떤 분은 성체를 모시면 꼭 체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합니다. 왜 그러냐고 물어봤더니 자신은 죄가 너무 큰데, 감히 예수님을 모실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내가 성체를 모시지 않는다 함은 나의 영원한 생명의 양식을 포기하는 것이기에 성체를 모신다고 합니다. 너무나도 많은 죄를 짓고 살기에 더러운 내 마음 안에 예수님을 모신다는 것이 너무도 죄송스럽고, 성체를 모시고 또 죄를 짓는다는 것이 너무도 가슴이 아파서 성체를 영할 때 마다 가슴이 답답함을 느낀다고 합니다.
사도 바오로는 “그러니 올바른 마음가짐 없이 그 빵을 먹거나 주님의 잔을 마시는 사람은 주님의 몸과 피를 모독하는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28 각 사람은 자신을 살피고 나서 그 빵을 먹고 그 잔을 마셔야 합니다. 29주님의 몸이 의미하는 바를 깨닫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사람은 그렇게 먹고 마심으로써 자기 자신을 단죄하는 것입니다.”(1코린토 11,27-29)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어떻게 성체와 성혈을 모셔야 하는지를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나는 자주 습관적으로 성체를 모시고 모신 후에도 내가 성체를 모셨음을 망각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혹시 내 안에 성체에 대한 믿음이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닐까요? 아니면 일상생활이 너무도 바빠서 정신이 없어서일까요? 아니면 너무도 자주 모시기에 무뎌져서일까요? 내 안의 가장 큰 문제는 성체 안에 예수님께서 계시다는 것을 온전히 믿지 못해서일 수 있습니다. 하얀 작은 빵 속에 예수님께서 계시다는 것을 나의 이성이 설명할 수 없기에 오히려 거부하는 것이고, 하얀 빵이 예수님의 몸으로, 성체로 변화되는 기적이 내 앞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내가 알아차리건 알아차리지 못하건 간에 성체 안에 예수님이 계신 것은 확실한데 말입니다.
27 또 잔을 들어 감사를 드리신 다음 제자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다. “모두 이 잔을 마셔라.
옛날 어느 수도원에서 미사 중에 성체기적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성체가 예수님으로 변모된 것입니다. 한 사람이 신부님께 달려와서 이 사실을 보고하면서 빨리 가서 그 기적을 보자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그 신부님은 “왜 거기에 가야 합니까?” 하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러자 그는 “신부님! 기적이 일어났잖아요!” 그러자 신부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형제님! 왜 성당에서 매 미사 때마다 일어나는 기적은 알아차리지 못하십니까? 오죽 갑갑하시면 예수님께서 직접 모습을 드러내시겠습니까? 저기 감실 안에 계시지 않습니까? 비록 우리의 눈으로는 그 기적을 볼 수 없다 하더라도 저는 성체 안에 예수님이 계시다는 믿음 하나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러니 우리 여기 성체 앞에서 조배를 드립시다.”
그런데 부모가 자녀에게 지극한 사랑을 베풀었는데 자녀가 그 사랑을 알아주지 않으면 얼마나 서운하겠습니까? 그러나 부모는 너무도 사랑해서 자녀에게 서운함을 이야기 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 부모의 마음은 어떠하겠습니까? 마찬가지로 내가 예수님으로부터 지극한 사랑을 받았는데 나는 예수님께 불평과 불만만을 터뜨린다면 예수님께서는 얼마나 서운하시겠습니까?
그리고 자녀가 부모의 사랑을 받았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부모의 사랑을 받고 자라난 자녀가 부모를 때리거나 부모를 무시하거나 어디에다 버리겠습니까?
부모를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찾아뵙지도 않고, 연락도 안 드리고, 어떻게 하면 부모가 가진 재산만을 빼앗으려고 할까? 고민만 한다면 과연 그것이 부모를 사랑하는 것인가? 아닐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성체 안에 예수님께서 계심을 믿고 그리고 그 성체를 감히 내가 모셨다함은 내가 예수님을 모시고 있는 감실이 되는 것인데, 내가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서도 예수님을 드러내지 못한다면 내가 예수님을 진정으로 믿고 따르고 있는지에 대해서 다시 한번 성찰해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28 이는 죄를 용서해 주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내 계약의 피다.
독일의 한 신부님이 로마를 순례하던 중에 “보르세나”에 있는 성녀 크리스티나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미사를 봉헌하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과연 밀떡 속에 예수님이 계시는 걸까? 계시지도 않는 예수님을 계신다고 생각하며 착각하는 것은 아닐까?”이렇게 의심을 하면서 미사를 봉헌하고 있었는데, 미사를 봉헌하는 중에 갑자기 밀떡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며 밀떡이 살덩어리로 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포도주 잔에 있던 포도주가 피가 되어 잔에 흘러넘치고 있었습니다. 이 신부님은 무척 놀랐습니다. 자기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을 믿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 사건을 기념하여 그 때의 교황님이신 「우르바노 4세」께서는 교회 축일로 지정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이렇게 고백해야 합니다.
빵과 포도주의 형상 안에 계신 예수님! 보고 맛보고 만져보아도 알 수 없지만 저는 굳게 믿습니다. 성체와 성혈이 당신의 몸과 피라는 것을 굳게 믿습니다.
성체성사는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 때 세우신 성사로서, 당신의 몸과 피를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의 양식으로 내어 주시는 성사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심으로써 사랑이신 그분과 일치하며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게 하며, 힘을 내서 더욱 열심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하는 사랑의 성사입니다.
하루는 안토니오 성인이 강론을 하는데, 성당 뒷좌석에 오랫동안 냉담하다가 모처럼 나와서 앉아 있는 귀족 한 사람을 보았습니다. 미사에 참례하고는 있지만 거만하게 앉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성당에 온 것이 아니라 자기 자랑 하러 온 것이겠지요. 물론 성체를 모시기 위해서 미사 전에 고백성사를 보지도 않았고, 성체를 모시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안토니오 성인께서는 그 귀족에게 이렇게 제안을 했습니다.
“형제님! 저랑 내기 하나 하시겠습니까?”
“무슨 내기를요?”
“당나귀 한 마리를 3일 동안 굶긴 다음에, 당나귀가 좋아하는 당근을 오른쪽에, 그리고 축성된 성체를 왼쪽에 놓고 당나귀가 ‘어느 쪽을 먼저 선택하는가?’ 입니다. 물론 저는 성체 쪽을 먼저 향할 것이라는데 걸겠습니다.”
“하하하! 그럼 제가 이긴 내기군요. 저는 당연히 당근 쪽에 걸겠습니다.”
그 냉담자 귀족은 신부님께 이런 제안을 했습니다.
“신부님이 당나귀를 3일 동안 성체 있는 곳으로 가도록 교육시킬지 모르니, 제가 데리고 있겠습니다.\”
그렇게 3일이 지났습니다. 날이 밝자 동네 사람들은 성당으로 몰려왔습니다. 그 거만한 귀족은 3일 동안 굶긴 당나귀를 의기양양하게 끌고서 성당으로 왔습니다. 사람들은 숨을 죽이며 당나귀가 어떻게 행동할까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람들 앞으로 나온 당나귀는 두리번거리더니 자기가 좋아하는 당근이 수북하게 쌓인 것을 보고는 입맛을 다시며 혀를 날름거렸다.
그런데 갑자기 머리를 돌려 성체가 있는 곳으로 가더니, 머리를 조아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탄성을 지르며 놀라워하면서 성체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 거만한 귀족도 당나귀의 그 모습을 바라보며 성체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성체 안에 계신 예수님께 믿음을 드렸습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예수님께 믿음을 드리고 있을 때, 당나귀는 그제야 당근 있는 곳으로 천천히 가서는 배고픔을 채웠다고 합니다. 당나귀도 알고 있는 것을 사람이 몰라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6장 51절~56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51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5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을 먹지 않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희는 생명을 얻지 못한다. 54 그러나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나도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릴 것이다. 55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
예수님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시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의 몸과 피가 바로 참된 양식이고 참된 음료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힘을 낼 수 있도록 하는 양식이요, 신앙생활의 어려움 속에서 영적 갈증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참된 음료이기 때문입니다.
전쟁으로 남편을 잃은 아내가 어렵게 외아들을 키웠습니다. 아내는 남편의 죽음으로 나오게 된 “보상금(위로금)”으로 작은 밭을 샀습니다. 그리고 그 밭을 일구어서 두 가족이 함께 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외아들은 어머니의 마음대로 커 주지 않았습니다. 삐딱한 친구들과 어울려 방탕한 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아들은 어머니 몰래 작은 밭을 팔았습니다. 도박 빚 때문에 밭을 몰래 팔았던 것입니다. 그것을 알게 된 어머니는 아들을 붙잡고 울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놈아! 그 밭이 어떤 밭인데, 그 밭은 네 애비 피여! 그 밭이 바로 네 애비 몸이란 말여! 어떻게 그것을 팔수가 있냐! 이놈아!~”
아버지의 목숨이 밭으로 바뀐 것입니다. 어머니가 밭에 나가서 일을 하는 것은 바로 아버지와 함께 있는 시간이었다는 것을 아들은 몰랐던 것입니다. 하지만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없었던 아들은 그 밭이 그저 밭일 뿐 이었던 것입니다.
성체도 마찬가지 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빵의 형상 안에 당신을 담으셨습니다. 포도주의 형상 안에 당신을 담으셨습니다. 우리 눈에는 빵과 포도주만 보이지만, 신앙의 눈으로 바라보면 그 안에 예수님께서 계심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신앙의 눈이 없다면 밀떡과 포도주밖에는 안 보일 것입니다.
29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너희와 함께 새 포도주를 마실 그날까지, 이제부터 포도나무 열매로 빚은 것을 다시는 마시지 않겠다.”
지금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마지막으로 만찬을 드시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최후의 만찬 중에 성체성사를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몸과 피를 우리에게 내어 주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성체를 모실 때, 그리고 그 힘으로 살아갈 때 우리는 하느님 나라에서 함께 잔치에 참례하게 될 것입니다.
나는 어떠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내 안에 모셨으며, 모신 후에는 성체를 모신 사람답게 살았는지, 나뿐만 아니라 내 옆에 있는 형제자매도 같은 성체를 모셨는데 그를 어떻게 대했는지, 성체를 모시고 있는 사람을 함부로 대하거나 비방하지는 않았는지, 나는 얼마만큼 성체를 자주모시며, 성체모시기를 갈망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돌아보면서 부족하다면 도움의 은총을 청하면서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먹어라.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줄 내 몸이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마셔라. 이는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맺는 내 피의 잔이니 죄를 사하여 주려고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 흘릴 피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30 그들은 찬미가를 부르고 나서 올리브 산으로 갔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이제 찬미가를 부르면서 과월절 식사를 끝냈습니다. 이 찬미가는 과월절 식사를 끝내는 감사의 노래로서 시편 114편에서 118편의 내용입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당신의 몸과 피를 내어 주시기 위해서 수난의 길을 걸어가십니다. 올리브 산에서 기도하시고, 그곳에서 유다의 배반으로 의회에 넘겨지고 수난을 당하시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수난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성체를 모시면서 예수님께 감사하는 마음과 죄송한 마음을 늘 간직해야 할 것입니다.
3. 나눔 및 묵상
① 오늘 말씀 중에서 마음에 와 닿는 말씀은 무엇이며, 왜 와 닿았습니까?
② 미사에 참례해서 성체를 영할 때, 나는 어떤 마음으로 성체를 영합니까?
③ 성체 안에 예수님께서 계시다는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요? 또 믿지 못하는 사람은 왜 믿지 못할까요? 어떻게 하면 그도 믿게 할 수 있을까요?
4. 실천사항
①
②
③
④
5. 말씀으로 기도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