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과: 겟세마니에서 기도하시는 예수님

 

28과: 겟세마니에서 기도하시는 예수님

1. 말씀읽기: 마태26,36-46

3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니라는 곳으로 가셨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하는 동안 여기에 앉아 있어라.” 하고 말씀하신 다음, 37 베드로와 제베대오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셨다. 그분께서는 근심과 번민에 휩싸이기 시작하셨다. 38 그때에 그들에게 “내 마음이 너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다. 너희는 여기에 남아서 나와 함께 깨어 있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39 그런 다음 앞으로 조금 나아가 얼굴을 땅에 대고 기도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이 저를 비켜 가게 해 주십시오. 그러나 제가 원하는 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십시오.” 40 그러고 나서 제자들에게 돌아와 보시니 그들은 자고 있었다. 그래서 베드로에게 “이렇게 너희는 나와 함께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란 말이냐? 41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여라. 마음은 간절하나 몸이 따르지 못한다.” 하시고, 42 다시 두 번째로 가서 기도하셨다. “아버지, 이 잔이 비켜 갈 수 없는 것이라서 제가 마셔야 한다면,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 43 그리고 다시 와 보시니 그들은 여전히 눈이 무겁게 감겨 자고 있었다. 44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그대로 두시고 다시 가시어 세 번째 같은 말씀으로 기도하셨다. 45 그리고 제자들에게 돌아와 말씀하셨다. “아직도 자고 있느냐? 아직도 쉬고 있느냐? 이제 때가 가까웠다. 사람의 아들은 죄인들의 손에 넘어간다. 46 일어나 가자. 보라, 나를 팔아넘길 자가 가까이 왔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 말씀연구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니 동산으로 가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내가 기도하는 동안 너희는 여기에 앉아 있어라.”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공포와 번민에 휩싸이기 시작하십니다. 이제 잠시 후면 유다가 자신의 일을 할 것이고, 예수님께서는 붙잡혀 끌려가 온갖 수난을 당하시고 마침내 돌아가시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공포와 번민에 휩싸이기 시작하신 것입니다. 그 고통을 너무도 잘 알고 계시기에…,



3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니라는 곳으로 가셨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하는 동안 여기에 앉아 있어라.” 하고 말씀하신 다음, 37 베드로와 제베대오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셨다. 그분께서는 근심과 번민에 휩싸이기 시작하셨다.

 성체성사를 제정하신 그 밤에, 이제 수난을 앞둔 그 밤에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니 동산으로 가십니다. 그리고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하는 동안 여기에 앉아 있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근심과 번민에 휩싸이기 시작하셨습니다. 이제 때가 가까워졌기 때문입니다.



38 그때에 그들에게 “내 마음이 너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다. 너희는 여기에 남아서 나와 함께 깨어 있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고통을 말씀하십니다. “내 마음이 너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여기에 남아서 깨어 있어라.”

 제자들이 깨어서 할 일은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 고통스럽게 기도하시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고통을 이해하고, 예수님께 위로를 드리는 것입니다. 당신을 믿고 따르고 있는 제자들만큼 예수님께 큰 힘이 되는 사람들은 없습니다. 그 제자들을 통해서 당신의 일을 계속 하실 것이기 때문에 제자들은 모두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깨어서 할 일은 예수님의 마음이 되어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지금 이 순간 예수님을 위해서 할 일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죽음을 기꺼이 맞이한 소크라테스와 비교를 합니다. 소크라테스는 독배를 마시고 죽었습니다. 하지만 그 죽음은 예수님의 수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시어 고통을 당하시기에 그 고통은 더 클 수밖에 없고, 예수님께 가해진 고통은 상상할 수가 없는 고통이었습니다. 결코 쉬운 죽음이 아닙니다. 그래서 함부로 비교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감히 비교할 수 없는 상황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39 그런 다음 앞으로 조금 나아가 얼굴을 땅에 대고 기도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이 저를 비켜 가게 해 주십시오. 그러나 제가 원하는 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신 다음 조금 나아가 땅에 엎드리시어 기도하십니다.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가 원하는 것을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것을 하십시오.” 이 일을 하러 오셨지만 그 고통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셨기에 괴로워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유약한 모습을 보여주시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영웅적인 모습으로 인간을 구원하시는 메시아가 아니심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또한 신앙생활 하면서 힘들고 지쳐서 도저히 할 수 없는 상황이 닥친다 할지라도 힘을 내라고 모범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고통은 고통입니다. 하지만 그 고통을 이겨나가는 사람들이 바로 신앙인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보여주십니다.



 또한 기도는 자신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하느님께 협박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뜻이 아니라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는 것. 그것이 기도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기도 안에서 “기도의 효과”는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 기도하셨지만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렇다면 기도하지 말아야 될까요? 해도 소용이 없다면 무엇 때문에 기도 할까요? 우리 눈에는 기도의 효과가 없는 것 같지만 예수님께서는 기도의 효과를 보십니다. 즉 고통스럽지만 당당하게 십자가를 지실 수 있는 힘을 얻으신 것입니다. 내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 이것은 기도가 아니라 협박이요 하느님께 드리는 불경함의 폭력입니다.



40 그러고 나서 제자들에게 돌아와 보시니 그들은 자고 있었다. 그래서 베드로에게 “이렇게 너희는 나와 함께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란 말이냐?

 예수님께서는 간절하게 기도를 하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에게 돌아와 보시니 자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나와 함께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란 말이냐?”하고 말씀하십니다. 스승의 고통을 몰라주는 제자들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당신의 고통을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괴롭게 기도하고 있는 당신을 위해 함께 깨어 있기를 바라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따르고 있는 나는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시간에,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방법으로 예수님을 위해서 할 수 있는 내가 되어야 합니다.



41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여라. 마음은 간절하나 몸이 따르지 못한다.” 하시고, 42 다시 두 번째로 가서 기도하셨다. “아버지, 이 잔이 비켜 갈 수 없는 것이라서 제가 마셔야 한다면,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여라.”라고 말씀하시면서 “마음은 간절하나 몸이 따르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베드로 사도는 주님을 위해서라면 목숨까지도 바칠 수 있다고 하였지만 죽음의 위협 앞에서는 무너지게 됩니다. 그러니 더더욱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영혼이 간절히 원하는 것을 할 수 없습니다.



 순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순교를 하고 싶은 열망이 있다할지라도 모진 고문에 배교한 신앙인들이 있었습니다. 순교 하고 싶다고 해서 모두 순교하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그 고통을 참아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육신은 나약하기에 쉽게 넘어질 수 있습니다.  순교자 조용삼 베드로에 관한 기록을 살펴봅시다.



 아버지와 함께 포졸들에게 잡혀서 길을 가는 동안 조 베드로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말하였다. “이번에 나는 천주를 위해서 목숨을 바치기로 결심했으니, 나는 틀림없이 순교자가 될 것이다. 너는 어떻게 하겠느냐?” 하고 물으니, 조용삼 베드로는 “아무도 자기 결심과 자기 힘을 믿을 수 없습니다. 약하고 불쌍한 제가 어떻게 감히 순교하기를 기대할 수가 있겠습니까?” 하고 대답하였다. 그들은 관장 앞에 끌려갔는데, 첫 번 신문에서부터 아버지는 그의 어리석은 자만과 자신의 힘을 너무 믿은 데 대하여 벌을 받아 슬프게도 굴복하였다. 관장은 베드로에게 너도 배교하라고 말하니 조 베드로는 “저는 배교할 수 없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아니 네 아비가 목숨을 보전하려고 하는데 너는 죽기를 원한단 말이냐?” 조 용삼 베드로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하늘에는 두 임금이 없고 사람은 두 마음이 없습니다. 이제 제가 원하는 것은 다만 천주를 위하여 죽는 것뿐입니다. 제게 더 이상 물어 보시는 것은 무익한 일이며, 저는 다른 말씀드릴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자 그는 어떻게나 잔인하게 매질을 당하였던지 하루나 이틀 후 2월 14일 옥중에서 성세를 받은 후 숨을 거두었다. 그때까지 그는 예비신자에 불과하였었다.



 베드로 사도가 자신 있게 장담하였지만 결국 유혹에 넘어가고 만 것처럼, 신앙인이 깨어있지 않으면, 기도하지 않으면 유혹이 밀려올 때 100% 넘어간다는 것을 꼭 명심해야 합니다. “나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라고 말하는 교만한 사람에게 찾아오는 것은 “죄의 수렁에 빠지게 되는 멸망”밖에 없음을 꼭 명심해야 합니다.



43 그리고 다시 와 보시니 그들은 여전히 눈이 무겁게 감겨 자고 있었다. 44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그대로 두시고 다시 가시어 세 번째 같은 말씀으로 기도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지극한 번민에 사로잡혀 계시고, 제자들은 지극한 피로와 졸음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피땀을 흘리시며 기도하셨고, 제자들은 세상모르고 잠을 자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잠들어 있는 제자들을 그대로 두시고 다시 가시어 같은 말씀으로 기도를 하십니다. 예수님의 번민을 위로해 주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느님 아버지 한 분 밖에는 안 계십니다.



 내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려운 일이 주어질 때 내가 매달릴 수 있는 분은 하느님 한 분 밖에는 안 계십니다. 답답하다고 점을 친다거나 기타 이상한 곳에 가서 마음의 위로를 얻으려 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깨어 있기를 원하시는 것처럼, 나도 어려움에 처한 형제자매들을 위해 함께 가슴 아파하고, 함께 기도해 주며, 위로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어느 신흥종교에 가 본 적이 있습니다. 유행하고 있는 그 종교가 궁금해서 그 종교를 알아보려고 갔던 것입니다. 그런데 처음 면담을 해 주는 자매가 있었는데 불행하게도 천주교 신자였습니다.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더욱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저도 천주교 신자였고, 세례명은 막달레나입니다. 레지오 단장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신앙이 저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는데 이곳에서 마음의 평화를 얻었습니다…,”마침 그곳에 중년 남성도 그곳을 찾아왔었는데 그도 천주교 신자였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자세히 설명을 해 주면서 그를 데리고 나왔습니다. 지금도 신앙인들이 어려움에 처하면 신앙 안에서, 교회 안에서 도움을 받으려 하지 않고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님께로 향하지 않으면 어느새 교회 밖으로 나가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됨을 꼭 명심합시다.



45 그리고 제자들에게 돌아와 말씀하셨다. “아직도 자고 있느냐? 아직도 쉬고 있느냐? 이제 때가 가까웠다. 사람의 아들은 죄인들의 손에 넘어간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보셨고, 제자들도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제자들은 스승의 말씀을 따르지 못함에 어쩔 줄 몰라 합니다. 예수님의 얼굴에는 피와 땀이 흐르고 있지만 제자들은 졸음에 겨워 눈이 무겁게 내리 감기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직도 자고 있느냐? 아직도 쉬고 있느냐?”고 말씀을 하십니다. 이제 시간이 얼마 없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이제 뿔뿔이 흩어질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마음은 조급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제 일어날 일을 말씀해 주십니다. “사람의 아들은 죄인들의 손에 넘어간다.”이제 당신께서 어떻게 백성의 지도자들에게 넘어가게 될지를 말씀하십니다. 알고 계시기에 더 마음이 아프실 것입니다.



46 일어나 가자. 보라, 나를 팔아넘길 자가 가까이 왔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수난을 맞으러 나아가십니다. “일어나 가자.”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기도의 효과는 고통을 피하게 만들거나 없던 것으로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당당하게 맞이하게 만들어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둠 속을 뚫고 다가오는 유다와 그 일행들을 보십니다. 악행은 늘 어둠 속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때 유다가 수석 사제들과 율법학자들과 원로들이 보낸 무리가 칼과 몽둥이를 들고 왔습니다. 그들에게 양심의 가책은 전혀 없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옳은 일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음을 열지 않고, 자기 확신에 가득 차 있는 사람의 모습은 어떤 말을 해 줘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헛된 열정은 칼과 몽둥이를 들고 어둠속을 걷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나 또한 올바로 보지 못하면 그렇게 어둠 속에서 칼과 몽둥이를 들고 설치게 됩니다. 빛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내가 잡고 있는 것들을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유다는 어둠 속에서도 예수님을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을 그들과 정했습니다. “내가 입 맞추는 이가 바로 그 사람이니 그를 붙잡아 잘 끌고 가시오.”입을 맞추어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심을 알려 주었습니다. “스승님!”하면서 입을 맞추는 유다의 모습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게 됩니다. 반갑게 인사를 하면서 뒤에 가서는 험담을 하는 사람. 말로는 안 되는 것이 없는 것처럼 하면서 막상 일을 시작하면 얼굴도 안 보이는 사람. 나 또한 그런 사람이 되어 배반자 유다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지는 않는지 반성해 보아야 합니다.



또한 수난을 향하여 당당하게 나아가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 나 또한 주어지는 어려움들을 기도하며 당당하게 맞서 싸울 수 있어야 합니다.



3. 나눔 및 묵상

① 오늘 말씀 중에서 마음에 와 닿는 말씀은 무엇이며, 왜 와 닿았습니까?



② 깨어 기도하기를 바라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제자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것은 무엇입니까? 만일 나였다면 어떻게 했을까요?



③ 수난을 향해 나아가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내가 대처하는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 해 봅시다. 나는 어떤 식으로 어려움을 이겨나갑니까? 그리고 어떻게 기도합니까?





4. 실천사항







5. 말씀으로 기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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