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 로사 필리피나 뒤센(Rose Philippine Duchesne)


 

성인명 – 로사 필리피나 뒤센(Rose Philippine Duchesne)

축일 – 11월 17일

성인구분 – 성녀

신분 – 수녀원장, 선교사

활동연도 – 1769-1852년

같은이름 – 뒤센느, 뒤셴, 뒤셴느, 로싸, 로즈, 필리핀




 프랑스 그르노블(Grenoble)에서 부유한 어느 상인의 딸로 태어난 성녀 로사 필리피나 뒤센(Rosa-Philippine Duchesne)는 그 도시 근교에 있던 생트 마리 당 오(Sainte-Marie-d’en-Haut)의 성모 방문 수녀회에서 교육을 받았고, 강력하게 결혼을 요구하던 양친을 뿌리치고 17세 때에 성모 방문 수녀회에 입회하였다. 그리고 1791년의 프랑스 공포정치 동안에는 그 수녀회가 프랑스에서 추방되었으나, 자신은 몰래 집으로 돌아와서 병자들을 방문하거나 교육하는데 헌신하였으며, 혁명의 희생물로서 감옥에 갇힌 성직자들을 찾아다니며 위로하는 일을 하였다.

 


 1801년 교황 비오 7세(Pius VII)와 나폴레옹이 국가와 교회간의 평화스런 관계 회복을 목적으로 하는 협정을 체결 후, 그녀는 자신이 교육을 담당해오던 곳에 수도원을 재건하려고 크게 노력하였으나 성공하지는 못하였다. 그녀는 성녀 막달레나 소피아 바라(Madeleine Sophie Barat, 5월 25일) 원장을 설득하여 막달레나(마들렌) 원장이 성심 수녀회를 세우는데 기여하였고, 자신과 다른 네 명이 청원자가 되어 그 다음 해에 서원하였다.

 


 1818년 그녀는 4명의 수녀와 함께 미국으로 파견된 분원의 원장이 되었고, 세인트루이스(Saint Louis) 근교인 세인트 찰스에 미국의 첫 번째 성심 수녀회 수도원을 세웠다. 그들은 미시시피 서안에 무료학교를 처음으로 운영하다가, 다음 해에 세인트루이스의 플로리샌트(Florisant)로 옮겼다. 많은 난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공동체는 크게 꽃피울 수 있었고, 1828년경에는 미시시피 강변을 따라 6개의 분원을 갖게 되었다. 그녀는 1840년에 미국 지부장직을 사임하고는 캔자스(Kansas)의 슈가크릭(Sugarcreek)에서 인디언들을 위한 학교를 시작했는데 이때 그녀의 나이는 71세였다. 그러나 불과 1년 후에 건강이 나빠서 떠나고 말았지만 그녀의 정열적인 활동은 큰 발자취를 남겼다. 그녀는 세인트 찰스로 은퇴하여 지내다가 1852년 10월 18일에 사망하였다. 그녀는 1940년에 시복되었고, 1988년 7월 3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이 글은 카테고리: saint, TN-saint-C11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