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둔스타노(Dunstan)


 

성인명 – 둔스타노(Dunstan)

축일 – 5월 19일

성인구분 – 성인

신분 – 대주교, 수도승

활동지역 – 캔터베리(Canterbury)

활동연도 – 910-988년

같은이름 – 던스딴, 던스탄, 둔스타누스




 영국 글래스턴베리(Glastonbury)의 발톤스버러(Baltonsborough)에서 귀족 가문의 아들로 태어난 성 둔스타누스(Dunstanus, 또는 둔스타노)는 그곳의 아일랜드계 수도자로부터 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청년이 되어서는 애덜스턴(Athelstan)의 왕궁에 들어갔으나 934년경에 베네딕토회 수도자가 되었고, 939년에는 윈체스터(Winchester)의 주교이자 자신의 아저씨인 성 알페기우스(Alphegius, 3월 12일)로부터 사제품을 받았다.

 


 고향에서 얼마동안 은수자로 생활하던 성 둔스타누스는 국왕 에드먼드(Edmund)의 부름을 받고 궁중으로 들어갔다가 943년에 글래스턴베리 수도원의 원장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이 수도원을 학문의 중심지로 발전시켰고 또 다른 많은 수도원을 활성화하는데 큰 몫을 하도록 운영하였다.

 

 그는 에드먼드 국왕이 뜻밖에 살해되었을 때에 국왕의 형제인 에드레드(Edred)가 왕좌로 나아가는데 자문관이 되었으며, 그의 도움으로 모든 수도원들의 원대한 개혁을 추진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또 세속적인 정치 문제에도 깊이 관여하고 색슨족의 부도덕성을 들추어냄으로써 색슨 귀족들의 미움을 받기도 했고, 데인인(Danes)과의 평화 정착에도 기여하였다.

 


 그런데 955년 국왕 에드위가 사망한 후 그의 조카인 에드위(Edwy)가 국왕직을 승계하면서부터 그 왕은 성 둔스타누스의 가장 큰 적이 되었다. 새 국왕은 성 둔스타누스의 재산을 압류하고 그를 왕국에서 추방하였다. 그래서 성 둔스타누스는 플랑드르(Flandre)의 겐트(Gent)로 갔으나 국왕의 동생인 에드가(Edgar)에 의해 에드위가 축출되면서 영국으로 되돌아왔고 곧이어 캔터베리의 주교로 임명되었다. 새 국왕과 그는 국가와 교회의 개혁을 꾀하였다.

 


 성 둔스타누스는 교황 요한 12세(Joannes XII)에 의하여 교황대사로 임명되면서부터 성 에텔볼두스(Ethelwoldus, 8월 1일)와 성 오스왈두스(Oswaldus, 2월 28일)와 함께 교회 규율을 쇄신하기 시작하였고, 이전에 덴마크 사람들의 침입으로 폐허가 된 수많은 수도원들을 재건하였다. 성 둔스타누스는 국왕 에드가의 자문관으로 16년 동안 있으면서 그의 잘못을 발견하는 즉시 꾸짖고 진언을 올렸다. 그 후 그는 정계에서 은퇴하여 캔터베리로 돌아왔고 대성당 학교에서 교육에 임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다가 그곳에서 운명하였다. 성 둔스타누스는 영국 수도원의 재건자였다. 또한 그는 유명한 음악가로서 하프를 연주하거나 찬미가를 작곡하기도 하였고 숙련된 철공예가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는 갑옷 제조자, 금세공인, 자물쇠 제조자 및 보석 공예가들의 수호성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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