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의 영성 2

 

3. 성 프란치스꼬의 영성

어떤 성인의 영성을 알기 위해서는 그분의 저서나 글을 직접 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그런데 프란치스꼬 성인은 자신의 영성에 대한 특정한 저서를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성인의 ‘형제회에 보낸 편지’, ‘회칙’, ‘신자들에게 보낸 편지’, ‘성직자들에게 보낸 편지’, ‘유언’, ‘권고’ 등의 자료들을 통해서 그분의 영성을 아는 수 밖에 없다.

이제 이러한 프란치스꼬 성인의 몇 안되는 글들을 바탕으로, 부족하지만, 성인의 영성에 대해 알아보기 한다.



3.1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발자취를 따르는 길 (제 1회칙 1,1)

성 프란치스꼬의 영성의 목적은 복음의 단순성에로 돌아감과 다른 이들이 돌아가도록 하는 것이며, 하느님의 아들이 가져다 주신 생명의 메시지를 받아들이도록 하는 데 있다. 즉,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크리스챤 성소의 인식을 새롭게 하는 것이다.



3.1.1 가난하시고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가 성 프란치스꼬에게 계시되셨다.

성 프란치스꼬는 유언의 시작에 자신이 먼저 걸었던 소명의 체험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주님이 나 프란치스꼬 형제에게 이렇게 회개생활을 시작하도록 해 주셨습니다: 내가 죄 중에 있었기에 나병환자들을 보는 것이 나에게는 너무나 역겨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 친히 나를 그들에게 데리고 가셨고 나는 그들 가운데서 자비를 베풀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그들한테서 떠나 올 때에는, 역겨웠던 바로 그것이 내게 있어 몸과 마음의 단맛으로 변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있다가 나는 세속을 떠났습니다.”1)

성 프란치스꼬는 가난한 사람을 통해서, 특히 나병환자를 통해서 그리스도와 만나게 되었기 때문에 가난과 고통을 한 몸에 지닌, 가난하게 태어나시고 고통 중에 십자가에 못박히신 형제 그리스도를 체험하고 전하였다.  성인은 나병환자를 통해서 회개하였고, 그들과 함께 살면서 그들의 시중을 들면서 자신을 수련하였다. 회개의 과정에서 형제인 가난한 사람들을 통하여 하느님께로 가는 길은 성 프란치스꼬의 경우 외에도 하느님의 구원 역사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일이다.



3.1.2 “거룩한 복음의 양식을 따라 산다는 것” (유언)

성 프란치스꼬는 신학자들을 참으로 존경하였다. 그래서 그는 유언에서 “모든 신학자들과 지극히 거룩하신 하느님의 말씀에 봉사하는 사람들을 우리에게 영과 생명을 넣어주는 사람들로서 받들어 존경해야 합니다.”2)

성 프란치스꼬는 비록 성서 학자는 아니었지만 성서에 대한 그의 지식은 놀랄만한 것이었다. 성서에 대한 성 프란치스꼬의 지식은 무엇보다도 체험에서 나온 것이고 거룩한 말씀의 작용에 순명한 그는 그 어느 곳보다도 전례생활에서 그 맛을 보았다.

성인은 주님의 말씀이 기록된 책에 대하여 깊은 존경심을 가졌고, 그것들이 부당한 곳에서 발견되면 합당한 곳에 모시라고 형제들에게 단호히 명했다.3) 성인은 또한 학문적인 관심에 이끌려서 성서를 이해하려는 형제들을 주의시켰으며 무엇보다도 주님의 말씀이 가져다 주는 생명의 메시지를 받아들여 그것을 생활양식으로 삼을 것을 형제들에게 간곡히 권장하였다. 그것들은 “영과 생명”을 주기 때문이다.4)

“사도가 말합니다: ‘문자는 사람을 죽이고 성령은 사람을 살립니다.’(2고린토 3,6) 다른 사람들 보다 더 많은 지식을 가지 사람으로 인정받고 또한 친척이나 친구들에게 줄 많은 재물을 획득하려고, 다만 말마디만 배우기를 열망하는 이들은 문자에게 죽임을 당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문자(성서)의 정신을 따르기 원치 않고 말마디만을 배워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해 주기를 열망하는 수도자들은 문자에게 죽임을 당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알고 있는 문자나 알고 싶어하는 문자를 모두 자기 육신의 것으로 하지 않고 오히려 모든 선을 소유하시는 지극히 높으신 주 하느님께 그것들을 말과 표양으로 돌려드리는 사람들은 하느님의 문자의 정신으로부터 생명을 얻은 사람들입니다.”5)

따라서 복음은 생명을 주지 않으면 죽은 글이다. 그래서 성 프란치스꼬는 자기를 따르는 첫 제자들을 위한 ‘생활양식’을 만들려고 할 때 복음 이외의 다른 원칙을 세우지 않았다.

그는 복음을 단순히 어떤 도덕적이고 수덕적인 규범의 근거로만 생각한 것이 아니다. 항상 복음적인 권고를 첫 자리에 두었고, 회칙의 법적인 명령과 법칙은 중요시하지 않았다. 그것은 문자가 영을 죽이지 못하게 하려는 것으로서, 중요한 것은 형제들이 주님의 계명을 실행케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다음의 말씀은 깊은 뜻을 지닌다: “거룩한 복음과 자기의 생활양식을 통하여 약속한 주님의 계명을 굳게 실행할 때 참된 순명 위에 자신들이 머물러 있음을 모든 형제들은 알아야 합니다. 주님이 이들을 축복하시기를!”6)



3.1.3 육화의 겸손과 수난의 사랑 (1첼라노 84)

성인은 복음을 묵상할수록 복음 메시지의 핵심을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비하(Kenosis)의 신비 안에서 발견하였다. 그리고 성모 마리아께서 육화의 선물을 우리에게 가져다 주신 특은을 받으셨기에 성 프란치스꼬는 성자의 육화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또한 성모 마리아께도 드렸다.

“또한 당신 아드님을 통하여 우리들을 창조하셨음 같이 우리들을 사랑하신 그 거룩한 당신 사랑 때문에, 참 하느님이시며 참 사람이신 그분을 영원히 영화로우시고 지극히 복되신 동정녀이시며 거룩하신 마리아에게서 태어나게 하셨사오니….. 아버지께 감사드리나이다.”7)

그리스도께서 살아가신 한 걸음 한 걸음은 성인에게 그 분을 더 가깝게 따르고 모방하게 하는 초대였다. 그래서 그는 자주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른다.”는 말씀을 사용한다. 인간이신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는 신심을 시작한 사람은 성 프란치스꼬가 아니다. 그러나 성 프란치스꼬와 함께 인간적 주관주의가 강하게 발생하자 모든 일에서 자아를 주장하는 당대의 사회는 새로운 종교적 열정으로 그 사상을 받아들였다.

모든 형태의 완덕의 목적이 그리스도와 일치되는 것이라면, 이것은 얼핏 정반대로 보이는 다음 두가지 생활 형태의 통합으로 성취될 것이다. 첫째, 모든 것을 버리고 은둔의 고요함 속에 생활하는 형태, 둘째, 사도직의 생활 형태인데 그리스도의 사랑을 맛본 사도는 그 사랑의 힘으로 세상에 나아가 모든 사람들에게 그 사랑의 풍요와 힘을 전하지 않고는 못 배긴다.

성 프란치스꼬가 본 그리스도는 신학적이며 또한 신비의 그리스도이시며, 묵상과 신비적 체험을 통해 그분을 알게 된다. 십자가는 그에게 비하를 말해 주고 있었으며 자기 포기와 내적 가난으로 초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수난에 대한 성인의 묵상은 단지 동정심으로 움직여지는 주관적 묵상이 아니었다. 그리스도의 희생이 가져다 주는 생명의 은총을 감사한 성인은 기쁨에 넘친 기도를 하였다. 그리고 구원의 신비에 관한 프란치스꼬 성인의 신학적 사상을 보면 종말론적 요소도 충분히 포함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프란치스꼬 성인은 강생과 수난의 은총에 대해 지극히 높으신 성부께 감사드린 다음, 구원사업의 마지막 은총인 주님의 재림에 대해서도 감사를 바친다.



3.1.4 성체는 이 세상에서 볼 수 있는 성자의 현존

회개한 후에 성 프란치스꼬가 받은 은총 가운데 하나는 사제들에 대한 신앙심과, 성체에서 그리스도의 현존을 알아 보는 것이었다. 성체 안의 그리스도의 실제적인 현존 자체도 십자가상에서 이루어진 구속사업의 연장으로 성인은 보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여러분의 발에 입맞추면서 또 내가 할 수 있는 사랑으로 모든 형제 여러분에게 부탁드립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지극히 거룩하신 몸과 피에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최대의 존경과 영예를 나타내도록 하십시오, 그분은 하늘과 땅에 있는 만물을 평화롭게 하시고, 전능하신 하느님과 화해시키셨습니다.”8) 또한 성인이 성체 안에서 공경한 그리스도는 지상에 사셨던 역사적인 그리스도가 아니라, “이제 죽지 않고 영원히 살아 계시어 영광 받으신 그리스도이시다.”9)

성체에 대한 신앙심은 성체의 봉사자들인 사제들을 존경하도록 만들었다. 또한 많은 성직자들이 성체의 거룩한 신비를 소홀히 다루는 것을 마음 아파했기에 형제회의 사제들에게 이 점에 관해서 간곡히 부탁하였다.

“나는 주 안에서 사제가 된 나의 모든 형제들과 사제가 될 형제들과 지존하신 분의 사제가 되려는 뜻을 가진 형제들에게 부탁드립니다. 미사를 거행할 때…. 거룩하고 깨끗한 지향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지극히 거룩한 몸과 피의 참다운 제사를 존경심을 가지고 순수한 사람이 되어 순수하게 드리도록 하십시오…. 들으십시오, 나의 형제들이여, 복되신 동정녀께서 지극히 거룩하신 태중에 그분을 품으신 것만으로도 공경을 받는 것이 지당하다면, 복된 세례자가 두려워 감히 하느님의 거룩한 머리 손을 대지 못했다면, 그분이 잠시동안 누워 계셨던 무덤도 존경을 받는다면, 하물며 이제 죽지 않고 영원히 살아 계시어 영광 받으신 분이며 천사들도 보고 싶어하는 분을, 손으로 만지고 마음과 입으로 영하며 다른 이들이 영하도록 주는 사람은 그 얼마나 거룩하고 의롭고 합당해야 하지 않겠습니까!”10)

 그래서 성체성사를 거행할 형제 사제에게 죄가 없어야 하는 것 외에 깨끗하고 순수한 마음이 요구된다. 이것은 그리스도를 완전히 차지하기 위해서 자기 자신을 완전히 비워야 하기 때문이다.

미사성제가 부활하신 그리스도와의 교류의 길이며 형제들 공동체의 일치의 표시이고 근거이므로, 성 프란치스꼬는 형제들이 사는 곳마다 제대를 중심으로 모여 매일 공동 미사 한 대를 바치기를 원하였다. 그러나 불행히도 성인이 주장한 신학적이고 영신적인 사상은 당대의 사람들 중에 소수만이 이해할 수 있었다. 어디서든지 신심이나 의무 때문에 사제 각자가 개인적으로 미사를 드리는 것은 쉽게 바꿀 수 없는 관례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3.2 사랑이신 하느님

3.2.1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

삼위일체의 신비는 성인의 영신 생활과 기도에서 중심이었다. 성인은 삼위일체를 활동하시는 하느님으로 보고 성부를 생명의 창조주로서, 성자는 구원을 주시는 구세주로서, 성령은 성화의 작업을 이룩하시며 사람들을 사랑의 일치로 초대하시는 영으로서, 각각의 위(位)를 공경하는 것이다. 그래서 성 프란치스꼬는 성부, 성자, 성신께서 각 영혼 안에 현존하시고 활동하시는 신비에 감탄하면서 삼위일체께 합당한 거처를 마련하도록 신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권고한다.

“이것들을 실행하며 끝까지 항구하는 모든 남녀들에게 ‘주님의 영이 그들 위에 임하실 것이고’(이사 11,2) 그들을 당신의 거처와 집으로 삼으실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일을 실천하기에 아버지의 아들들이 될 것입니다. 그리되면 그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정배들이요, 형제들이요, 어머니들이 됩니다… 거룩하시고 위대하신 아버지를 하늘에 모시는 것이 얼마나 거룩한 일인지! (아버지의) 마음에 드시고 겸손하시고 평화로우시고 달콤하시고 사랑할만 하시고 또한, 무엇보다도 바랄만한 그러한 형제와 아들을 모시는 것이 오, 얼마나 거룩하고 좋은 일인지!”11)



3.2.2 사랑이신 하느님

하느님에 대하여 말할 때, 성인이 가장 마음에 들어한 정의는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성인의 신심은 사랑이신 하느님의 사랑에 응답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성 프란치스꼬의 기도의 분위기, 영성의 특징, 형제회에 첫째 가는 법은 사랑이고, 형제들이 세상에 전해야 할 가장 근본적인 메시지도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라는 것이다. 하느님의 뜻을 따르고 그분을 즐겁게 해드리는 것은 바로 하느님에 대한 사랑이다.

이와 같은 사랑의 열정은 그의 신심, 예수 그리스도와의 친교, 마리아에 대한 신심, 인간들에 대한 친밀감, 그리고 창조물에 대한 그의 형제적 태도에 생기를 불어 넣었다.



3.2.3 주님의 영과 그 거룩한 작용

“주님의 영”이라는 표현은 성 프란치스꼬의 영성에 있어서 특이한 요소이며 성서적 배경에 기초를 둔 요소이다. 성 프란치스꼬가 말하는 “주님의 영”이란 신앙 안에서만 받아들일 수 있는 요소로서, 인간에게 빛, 확신, 길, 사랑, 자극제가 되는 각 사람 마음 속에서 활동하시는 “하느님의 현존”이다. 사실 이 요소는 다름이 아니라, 사람 안에 머무르시면서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임을 증거해 주시고 우리의 약함을 도와 주시며 우리를 위해서 간구하시고 우리 인격을 개선해 나가시는 성령이시다.

무엇보다도 성령의 활동은 성인의 설교에 나타났다. 프란치스꼬의 설교는 열정과 기쁨이 풍부하며 그의 내적 생활에서 우러난 간단하고 단순한 설교였고 회개를 목적으로 하는 설교였다. 성 프란치스꼬는 우리가 하는 식으로 강론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분의 강론 준비는 구원의 큰 신비를 묵상하는 방법이었다. 설교할 때는 말주변과 효과를 “주님의 영”에 맡겼다.

성인은 형제들이 어느 때 주님의 영으로 인도되고 어느 때 육으로 인도되었는가를 분별할 지혜를 가졌다. 그리고 그 분별의 원칙을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하느님의 종이 주님의 영을 지니고 있는지 없는지를 이렇게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이 그를 통하여 어떤 선을 행하실 때 그의 육신은 그것 때문에 자기 자신을 높이지 않고… 오히려 자기 자신을 비천한 자로 여기고 다른 모든 사람들보다도 더 작은 자로 평가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12)

한편, 육과 영의 용어를 성인이 많이 쓰는데, 성인의 이 사상은 성 바오로의 신학에서 깊은 영향을 받고 있다. 육이라고 할 때는 성령을 자유로이 활동하지 못하게 하는 온갖 장애물을 포함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육”, 육의 정신이란 이기주의와 같다. 모든 선과 영광을 하느님께 돌리지 않고 자기 자신을 위해서 차지하려는 교만과 욕심을 일컫는다. 반면에 주님의 정신이란 각 사람을 위한 하느님의 계획, 성령을 통해 이루어지는 그리스도의 구원사업과 은총의 생활, 성화와 봉사의 길인 애덕의 생활을 뜻한다.



3.2.4 영의 자유

프란치스꼬 성인은 아씨시의 주교 앞에서 모든 것을 버림으로써 놀라운 마음의 자유를 체험하였다. 성 프란치스꼬가 참된 영신적 자유를 지니고 있었다는 것을 다음의 세가지 사실들이 증명하고 있다.

① 하느님을 대하는 그의 인격적이고 직선적이며 신뢰가 있는 태도.

② 성령의 은총이 자기 안에서 일할 수 있도록 그의 마음을 개방함.

③ 특히 다른 형제들을 지도하는 방법들.

형제들 안에서 활동하시는 성령에 대한 믿음 때문에 성인은 형제들의 생활과 자유를 세밀한 규칙으로 제한시키려고 하지 않았다. 성인은 회칙에서 특히 형제들의 생활을 지도하는 장상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자주 하였다. “하느님이 계시하신 대로” 혹은 “하느님의 뜻에 맞다고 행각할 때에” 등이다. 이렇게 해서 성인은 “형제들의  충실함을 믿고 형제회가 언제나 장소와 환경 그리고 추운 지방에 따라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대로”13) 적응할 것을 바랬다

성인은 형제회의 조직과 활동이 자유 정신으로 생기를 갖기를 원했으며, 따라서 수도회의 제도를 보존하기 위하여 세밀한 규칙이나 계힉 등을 세우는 것보다도 각 형제의 인격적 카리스마가 으뜸을 차지하기를 바랐다. 그래서 프란치스꼬는 “대수도원적” 체제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리고 당대의 보속과 고행의 양식 앞에서 성인은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하였다.

영의 정신을 최고의 원칙으로 세워왔던 프란치스칸 카리스마는 다른 수도회와는 달리 한 “학파”를 이루지 않았다. “프란치스칸 영성”이라는 말이 있지만, 그의 특징은 바로 자발성과 정해진 노선의 결핍이며, 정해진 노선보다는 생활 양식이다. 그리고 “프란치스칸 철학” 혹은 “프란치스칸 신학”이라는 말이 있지만, 그의 특징은 “이성”에 앞서 “사랑”이 우선하며, “진리”에 앞서 “선”을 목적으로 하는 의지의 으뜸을 주장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 안또니오, 성 보나벤뚜라, 둔스 스코뚜스, 오캄, 라이몬 룰, 브린디시오의 성 로렌조’와 같은 학자들은 각각 다른 특징을 보여 주었다. 따라서 진리를 향한 프란치스칸들의 다양한 성격을 한 “학파”로 묶을 수는 없다.



3.3 주 하느님을 깨끗한 마음과 순수한 정신으로 사랑하는 길 (제 1회칙 22,26)

3.3.1 프란치스칸 기도

프란치스꼬 성인에게는 회개 후 하느님과 일치하기 위한 특별한 기도 양식이 필요없었다. 그의 기도는 일정한 시간표에 얽매여 있는 행위가 아니었고 “걸을 때나 앉아 있을 때나 먹을 때나 마실 때나…”(1첼라노 71) 언제나 밤낮으로 그는 중단없이 기도하였다. 프란치스꼬는 “하느님은 영적인 분이시다”라는 요한복음의 텍스트를 자주 인용하였고, 하느님을 영적으로 참되게 예배드려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그러므로 성 프란치스꼬가 보통하는 기도는 그리스도처럼 찬미와 감사의 기도이다. 왜냐하면 당신 사랑으로 모든 것을 충만케 하시고 모든 것을 채우신 하느님의 무한하심을 잊어 버리고, 인간이 자기와 자기 문제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자세를 가지고 기도한다는 것이 성인에게는 아무런 뜻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느님을 중심으로 하는 이러한 프란치스칸 기도는 정(情)적인 기도 즉, 감정을 포함시키는 기도이다. 따라서 항상 천상적인 빛과 은총으로 인도되는 프란치스칸 기도의 특징은 자유와 자발성이다. 또한 관상 기도이다. 즉, 보나벤뚜라 성인의 가르침과 같이 자기 자신을 비우고 사랑의 길로 하느님과의 완전한 일치를 목표로 하는 지혜적 관상이다. 그러나 성령의 작용을 은밀한 자기 마음 안에서만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접근하시려고 사용하시는 갖가지 표지 안에서도 발견한다. 즉 성서, 창조물, 각 사람의 존재, 역사 등의 표지들이다.

프란치스꼬 신심에서는 전례기도가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성 베네딕도는 회칙에서 성무일도를 바칠 때 “마음은 목소리와 일치시키라”고 명했다. 이와는 반대로 성 프란치스꼬는 말하기를

“목소리의 음률보다는 마음의 일치에 관심을 두어 하느님 앞에서 열심히 성무일도를 바치게끔 하십시오. 그렇게하여 목소리는 마음과, 마음은 하느님과 일치시키고, 목소리를 곱게 내어 사람의 귀를 즐겁게 하기 보다는 깨끗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도록 하십시오,”14) 라고 하였다. 프란치스칸 기도에 기원을 둔 이 전례적 새 영성은 13세기의 예절에 치우친 딱딱한 기도와 개인 신심과의 조화와 균형을 이루었다. 이렇게 해서 평신도들도 전례생활에 참여하여 그 맛을 볼 수 있게 하였다.

성 프란치스꼬가 또한 특별히 좋아한 기도의 방법은 염경(Vocalis)기도이다. 그 대표적인 기도로 성무일도 전에 바치는 찬미경과 주의 수난 성무일도를 들 수 있다. 초창기의 프란치스칸들은 일정한 장소에 거처를 두지 않았기 때문에 공동으로 성무일도를 바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성무일도를 바치는 관습은 성 프란치스꼬로부터 시작되었다. 개인적으로 성무일도를 바칠 의무가 없었음에도 이렇게 성무일도를 개인적으로 바치려는 것은 영혼에 양식을 주고 교회의 공식기도 참여하려는 의도 때문이었다. 이와 같이 전례에 관한 성 프란치스꼬의 가르침과 태도는 전례생활과 실제 생활과의 조화를 요구하는 오늘의 교회의 의도와 동일하다.



3.3.2 정결하게 산다

프란치스꼬에게 “정결하게 산다”라는 표현은 “마음의 깨끗함과 정신의 단순성”이다. 정결이란 마음이 가난한 데에서 우러나온다. 마음이 깨끗함은 영혼이 높이 날아가지 못하게 하는 모든 장애물에 대한 이탈이요 해방이다. 해방된 상태에서 마음을 다 바쳐 하느님과 모든 인류를 사랑하는 정결은 결혼의 포기나 육체적 안락을 포기한다는 뜻보다 더욱 넓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 육체적 정결보다는 영신적 정결을 의미한다. 그리고 마음의 정결의 목적은 항상 “순결한 마음과 순결한 정신으로 하느님을 사랑하고 흠숭하는 것이다.”15)

여기서 다시 “육”, “육적인 것”을 설명하는 프란치스꼬의 뜻을 볼 수 있다. 성인에 의하면, 이기주의, 자기편의, 자기 뜻을 찾는 욕망에서 나오는 것이 “육적인 것”이고 정욕, 교만과 헛된 욕망, 현세의 근심 걱정에서 나오는 것도 “육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프란치스꼬는 모든 형제들에게 다음과 같이 권고하였다. “마귀는 우리가 육적으로 살 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영원한 생명에서 우리를 떼어 놓기를… 원하고 있으므로, 우리는 우리의 육체를 그 악습과 죄와 함께 미워합시다.”16)

한편, 성인은 형제들의 여자들에 대한 태도를 언급한다. “불순한 눈으로 여자들을 바라보거나 만나지 말 것입니다.”라는 제 1회칙 12장에서, 형제들에게 눈을 조심하고 여자들과 갖는 교제를 피하고, “그들과 단독으로 이야기하거나 길에서 그들과 함께 걸어 가거나 식탁의 같은 그릇에서 식사하지 말 것”을 명했다. 그러나 여자들에 대한 성인의 태도는 그 당시 수덕학이 가르친 부정적이고 금욕적인 자세와는 꽤 다르다고 말할 수 있다. 프란치스꼬는 여자들을 죄악의 대상처럼 피하거나 멸시하는 태도를 취하지 않았다. 오히려 존경심과 예의 바른 자세를 취하였다. 특별히 그리스도께 대한 성인의 충실성은 모든 여자들을 존중하도록 만들었다. 왜냐하면 영적인 눈으로 볼 때, 모든 여자들은 정배이신 그리스도께만 속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자들에 대하여 불순한 마음을 둔다면 그리스도의 소유인 그들을 부당하게 차지하는 도둑이 된다.

마지막으로, 정결생활을 보호하고 그 유혹을 이기기 위한 길은 사랑이다. 사랑에서 포기가 나오고 포기 생활을 기꺼이 받아들일 때 정결를 거스리는 유혹을 성공적으로 이길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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