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 데레사 자서전 – 천주 자비의 글-신비적 체험,탈혼

 

1. 대 데레사 성녀의 생애와 영성적 배경1)




  데레사는 1515년 아버지 세페다의 알론소 산체스와 그의 두 번째 부인 아우마다의 베아트리스 사이에서 세째로 태어났다. 데레사는 신심깊은 어머니로부터 기도와 성모신심을 배웠다. 데레사는 그 당시의 귀족 자녀들이 받는 교육의 영향으로 아주 어릴 때부터 일기를 썼다.

  그 당시 아빌라만큼 종교적 분위기를 띤 도시는 에스파냐 안에서도 별로 없었다. 그래서 아빌라는 ‘왕들의 나라, 성인들의 고장, 기사들의 아빌라’라고 칭송받고 있었다.

  데레사가 7살 때 오빠 로드리고와 함께 순교의 열망 때문에 하느님을 위한 사랑으로 구걸하면서 무어인의 나라를 찾아나선 일이 있다. 즉 데레사는 그 시대 영웅들의 훌륭한 행위를 흉내내면서, 그 이상으로 더욱 자기를 완전히 개화시키려는 것이었다. 데레사의 열정적인 성격 때문에, 그녀는 즉시, 모든 것을 소유하기를 원하였다.

  나이가 들면서 데레사의 매력과 천부적인 자질은 더해갔으나 그녀 안에 싹텄던 하느님을 위한 절대적인 사랑의 소망은 점점 사라져갔고, 어머니를 닮아 기사소설을 읽는 데 열중하였다. 그녀 역시 그녀를 위하여 모든 것을 바치는 한 기사가 나타나기를 꿈꾸었으며, 스스로가 <아빌라의 기사>라는 제목의 소설을 쓸 정도였다. 그녀의 아버지 알론소는 데레사를 아우구스티노회의 수도원에 맡겨 데레사를 연인으로부터 떼어놓았다. 데레사는 수도원에서 자기 안에 영원한 행복에 대한 소망이 또다시 싹트는 것을 느꼈으나 수도생활에 대해서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1532년에 중병에 걸려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다시 수도생활을 선택하여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535년 11월 2일 새벽에 강생 가르멜 수도원으로 들어간다.

  데레사의 생애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숙부로부터 받은 <에스파니아식 초보의 제삼부>라는 프란치스꼬회의 오수나 수사의 책이었다. 오수나의 방식에 따라 열심히 잠심하였을 때 그녀는 처음으로 신비적인 체험을 하게 된다. 아빌라의 데레사의 영적, 인간적인 성공은 그 묵상기도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 자신을 억제하는 데에 익숙하지 못했던 그녀는 묵상기도에 열중하면서도 묵상기도에 포함되어 있는 요구를 아직 파악하지 못했다. 그녀는 하느님께 대한 희망과 애정의 욕구 사이에서 헤매면서, 또 수도회의 규칙을 충실히 이행함으로써 수도생활의 본질적 조건을 지킨다고 생각하였다. 그녀는 약 일 년 동안 묵상기도를 할 수가 없게 되어 버렸다.

  그녀가 영적 무기력에서 벗어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성 아우구스티노의 <고백록>이었다. 고백록을 읽는 순간 자신의 얘기가 씌어진 게 아닌가 의심할 정도였다고 한다. 거의 같은 시기(1554년 말이거나 155년 초기)에 기도소에서 본 성상이 그녀의 회심을 마무리지었다. 그 성상은 온몸이 상처투성이인 그리스도의 모습이 너무나 잘 나타나 있었는데, 그녀는 그것을 보며 강렬하고 경건한 열정을 느끼게 된다. 

  이 두 사건으로 그때까지 헛되이 싸운 세월들을 자기 나름대로 더욱 잘 이용할 각오가 된 데레사는 드디어 그 생애의 제 3단계로 들어가게 된다. 그녀의 영적 향상의 출발점은 이 두 사건 가운데서 자기의 비참을 마음속으로부터 자각한 데에 있었다. 그녀가 결심한 대로 기도와 고독을 잘 지켜감에 따라서 신비적인 은혜도 그만큼 깊어지고 증대해 갔다. 그러나 그녀가 여전히 얼마간의 세속적인 우정을 보존하고 있었기에 이 고독은 아직 불완전한 것이었고, 또한 그녀가 받은 신비적인 은혜의 “분별” 때문에 고민에 빠져있었다. 신비적인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고백신부들은 그것을 악마의 활동이라고 단정하기도하고, 의심을 품고 거절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예수회의 세티나 디에고는 그녀 안에서 활동하는 것은 분명히 하느님의 영임을 보증하면서 데레사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고, 영적 지도를 해 주었다. 새 고해신부인 예수회 프라다노스의 요한은 그녀에게 <오소서 성령이여>를 읊으면서 젊은 미망인과의 세속적인 우정을 끊고 주님께 온전히 의탁할 것을 권고했다. 어느 날 그녀는 기도중에 최초의 탈혼을 경험했고 “나는 이제 네가 사람과 말하는 것을 원치 않으니 다만 천사하고만 말하라”는 음성을 듣게 된다. 데레사는 이 탈혼으로 드디어 마지막 신비적 단계에 들어서기 위한 마음의 준비가 되었던 것이다. 이때 그녀의 나이는 마흔 한 살이었다.

  그 후로 그녀는 우정에 빠져드는 일은 없었고, 우정이 그녀의 자유를 구속하거나 하느님을 향해 더욱 깊어 가는 그녀의 사랑을 방해하지도 않았다.    

  1559년 6월 29일 그녀는 최초로 그리스도의 지적 환시를 보는 은혜를 받았다. 그 다음 데레사는 거듭 환시를 받고, 그리스도를 환시중에 보았다. 데레사는 1560년 4월 그녀가 신비적인 여정중에 있을 때에, 심장의 “상처”라 불리는 은혜를 받았다. 즉 천사의 화살이 자기의 심장을 꿰뚫는 듯한 체험이 몇 차례나 거듭 일어났던 것이다. 이런 특별한 표징은 때로 여러 사람들 앞에서도 일어나곤 했는데, 그때 그녀의 “심한 고통”을 본 박해자들은 더욱 자기들이 옳다고 여겨서 더욱 더 그녀를 박해했다. 그러나 47년 동안 고행을 해온 프란치스꼬회 회원인 알칸타라의 베드로 수사는 데레사를 완전히 이해했으며 그녀의 환시 문제에 대해서도 안심을 시켜준다. 또한 데레사는 1572년 11월 16일에 영적 혼인이라는 은혜를 받았다. 즉 주님으로부터 배우자가 되는 표를 받게 된다.   

  1560년 9월의 어느날 데레사는 몇몇의 친구들과 얘기를 나누던 중, 그 중 한 사람이 알칸타라의 베드로 수사가 개혁에 힘쓴 맨발의 프란치스꼬회회원들의 방법을 모방하여, 가르멜 산의 원시 회칙을 지키는 새로운 수도원을 창립할 안을 내놓았다. 데레사의 더 엄격한 생활을 하고 싶어했던 은밀한 소망에 그 제안은 너무도 마음에 와 닿았다. 데레사는 주위의 박해와 수많은 곤경에 부딪쳤으나, 불굴의 용기로 이를 극복하여 몸소 열다섯 개의 수도원을 창립하게 된다.

  개혁자로서의 활동과 수많은 창립으로 데레사는 가르멜회를 그 원천으로 되돌아가게 함으로써 수도원을 재생시키고 그 개혁 수도원들은 교회와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완수하였다.  그녀는 드높은 가르침과 자신의 체험을 담은 훌륭한 저서들을 남기고 1582년 알바 드 도르메스에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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