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데레사적 묵상기도1)
데레사 성녀의 전 생애는 기도생활로 점철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성녀에게 있어서 기도란 영혼이 점차적으로 오롯이 주님 사랑을 행해 나아가는 길이다. 성녀에게 묵상기도의 본질은 우리 안에 현존하시는 하느님을 바르게 인식하는 것이다. 이 기도는 지성의 작용과 의지의 정감이 신앙 안에서 승화하는 것이다. 이 기도는 보다 자발적이고 능동적이며 영혼의 노력의 결과이다.
성녀의 저서 「자서전」 가운데 제11장 ~ 제22장까지는 묵상기도에 대한 중요한 글이다. 여기서 묵상기도의 4단계를 논리있게 설명하면서 하느님의 은총에 대해 쓰고 있다. “묵상기도란 자기가 하느님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 하느님과 단 둘이서 자주 이야기하면서 사귀는 친밀한 우정을 나눔”2)인 것이다. 성녀 데레사에게 묵상기도는 적극적으로 서로 찾고 서로 만나 평화 가운데 사랑을 나누는 자유로운 표현 외에 다른 특별한 규범은 없다.3)
성녀가 말하는 묵상기도는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고 또 생각이 의지를 지배하는 것은 더욱더 아니다. 왜냐하면 영혼의 진보는 생각이나 추리를 많이 하는데 있지 않고 얼마나 많이 사랑하느냐에 있다. 그러기에 성녀는 묵상기도를 “많이 생각하는 일이 아니고 많이 사랑하는 일이다.”4)하였다.
5.1. 묵상기도의 기초
5.1.1 오수나의 영향
데레사는 여러 곳으로부터 영향을 받았으나 특히 프란치스꼬회의 오수나신부의 저서 「에스파냐식 초보의 제3부」의 신비생활 가운데 ‘기도의 초보’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다. 오수나신부의 묵상 방법은 내적인 마음의 거둠이라는 길을 통하여 영혼이 하느님과의 일치를 추구하는 기도이다. 오직 자신을 침묵시키고, 잠심하기 위해 귀가 먹고, 눈이 멀고, 벙어리가 되고 피조물에 대한 모든 인간적 사고의 오성을 비워야 한다는 오수나신부는 오직 하느님께만 그리고 그분의 천주성에 시선을 집중시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묵상방법은 사고의 추리력이 약한 성녀에게 매우 적합한 기도방법이었고 묵상기도에 힘이 되었다. “주님은 내게 오성을 이용하여 여러모로 생각하는 재주나 상상력을 이용하는 재간 따위를 주시지는 않았습니다.” “나는 내 안에 계시는 우리의 보화시요 스승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데 힘썼습니다. 이것이 내 기도방법이었습니다.”5)
오수나 묵상방법을 통해 하느님을 알게 된 데레사의 첫 경험은 앞으로 성녀가 추구하게 되는 모근 것의 토대와 특히 기도 형태의 본질을 이루게 된다. 성녀는 아우구스티노 성인처럼 “당신은 여기저기에서 하느님을 찾던 끝에 드디어 자신 안에서 발견했다.”6)는 말에 깊이 공감하면서 “피조물 안에서보다 우리 자신 안에서 하느님을 발견하는 것이 더 낫고 큰 우리의 소득인 것입니다.”7)라고 말한다.
성녀의 묵상기도 기초는 사고와 생각이 없는 상태를 만들기 위해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라는 권고를 받아들인다. 그래서 감각적이고 정신적인 무(Nada)의 상태를 만들므로써 자연스럽게 영혼이 하느님을 발견하게 한다. 또한 묵상의 본질이 작용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것을 배우게 되고 살아계신 하느님을 체험하게 된다.
그러나 성녀의 묵상기도는 자신에게 알맞는 것을 찾기 위해 오랫동안 시간과 인내를 필요로 하였다. 많은 어려움과 묵상기도의 중단 등의 고통을 통해 자신의 묵상방법을 찾게 되고 굳혀 나갔다. “나는 나를 이해해줄만한 스승, 곧 고해신부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때부터 20년간 그런 분을 찾았지만 영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 때문에 내 영혼에 받은 손해란 이루 말할 수 없이 큰 것이었습니다.”8) 성녀는 묵상을 1년반 동안 포기하게 되는데 이 때가 자신의 생애에서 가장 큰 유혹의 시기였다고 했다.9)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그런 지도자를 만나지 못했던 것은 하느님의 각별하신 섭리였다고 생각됩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18년간이나 이런 시련, 이렇게 삭막한 메마른 상태를 지탱해 나가기란 도저히 불가능했을 것입니다.”10) 성녀는 주님께서 “내 자신 안으로 나를 거두어 들이는 습성”11)을 깨우쳐 주셨다고 말한다.
5.1.2 하느님의 현존
묵상기도의 직접적인 준비는 여러가지 모양으로 할 수 있지만 시작에서 가장 기본적으로 해야 할 것은 거룩하신 하느님의 현존을 느끼는 것이다. 영혼이 하느님과의 첫 만남인 현존 수련은 묵상전체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
다른 여타 기도와 마찬가지로 묵상기도도 겸손되이 자기 죄를 뉘우치고 양심을 살피는 일부터 시작한다.12) 이것이 현존체험의 첫 수련이 된다. 성녀는 하느님과의 일치를 위해 꼭 묵상이나 다른 기도 안에서만 하느님 현존을 느끼려 노력할 것이 아니라 힘이 닿는 데까지 삶안에서 노력해야 하고 그 다음에는 온전히 하느님께 모두를 맡겨야 한다고 했다. 왜냐하면 은총은 우리의 몫이 아니고 우리의 노력이나 능력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우리의 노력을 보시고 또 생활 안에서 잠심하려고 노력할 때 주님은 우리를 만나러 오신다.
성녀가 주창하는 묵상은 하느님과의 정다운 대화이기에 묵상 시작부터 그분과의 현존체혐을 강조한다. 많은 영혼들이 묵상기도에서 시간을 허비하게 되는 것은 이 묵상 시작의 훈련이나 수련이 미비하거나 소홀 하다는 것이다. 이 현존체험은 특히 묵상중에 일어나는 분심을 완전히 없애 주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빨리 고요한 잠심을 갖게 해 준다. 묵상기도에서 하느님 현존체험은 하느님과의 일치에 기본조건이다. 특히 우리 안에 현존하시는 하느님은 본체와 능력으로, 즉 창조주로 현존하신다.
5.2. 묵상기도의 본질적 요소
데레사의 묵상기도는 크게 나누어 3가지의 본질적인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5.2.1 마음을 모으기
묵상기도를 하려는 영혼은 무엇보다 마음을 한데 모아야 한다. 마음을 모으는 첫 행위의 이유는 하느님께 가까히 다가가기 위해서는 자신의 불완전함과 비참함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13) 그 다음 하느님의 면전에서 진정한 겸손으로 찬미할 수 있을 것이다. 기도는 자신을 앎으로써 시작되고 끝나야 하는 것이다.14)
묵상의 이 첫번째 요소는 외부세계에 대하여 초연해야 함을 뜻한다. 묵상기도 시간에는 보고 듣는 것에 정신이 팔리지 않게 차츰 습관을 들여서 고요 중에 머물도록 해야 한다. 데레사는 이러한 기도를 ‘거둠’이라고 일컫는데 영혼이 제 모든 능력을 거두어 들여 자기 안으로 들어가 주님과 같이 있기 때문이다.15) 마음을 모으기 위해서 영혼은 외적인 감관들, 특히 시각과 청각의 활동을 단호하게 거부하고 “외계의 사물에서 감관을 거두어 들이고 모든 것을 알은 체 아니할 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눈이 감겨지고 그것들이 보이지 않고 영혼의 눈만이 환히 밝아오는 것.”16)이다. 또한 성녀는 마음을 한데 모으기 위해서 “책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고 하면서도 “그런데 나는 전원풍경이나 물, 꽃같은 것을 보는 것이 크게 도움이 되었다”고 말한다.17)
마음을 한데 모으기 위해 초기에는 침묵과 고독의 조건들을 수련하는 것이 유익하다. 외적인 침묵과 고독은 하느님의 현존을 찾기 위해 내적으로 마음을 평정시키고 모으는 기본조건이다. 외적인 감관의 활동에서 이탈해야 하는 이유는 보다 강력하게 영혼의 내적 활동을 위해서이다. 영혼의 눈을 맑고 밝게 하기 위한 마음의 모음은 우리들의 정신과 감각들에서 이탈하여 영혼 안에 하느님의 존재를 보다 깊이 뿌리내리는 데 있다. 하느님과의 대화를 위해 특히 외적인 것과 정신적인 이탈은 비워지고 이탈하는 그만큼 영혼은 하느님께만 주의를 집중하게 된다. 물론 마음의 모음은 우리의 의지적인 노력도 필요하지만 하느님의 은총의 도움이 있어야 한다.
5.2.2 그리스도와 만남
묵상기도에서 하느님은 현실적으로 내 안에 존재하시고, 나는 그분 앞에 있다는 것을 의식함은 중요하다. 성녀는 기도하는 영혼이 누구와 무슨 대화를 하는지 모른다면 이것은 기도가 아니라고 했다. 참된 영성생활은 묵상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삶 안에서 주님과 개인적인 만남의 체험이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와의 만남은 그분의 인성 안에서의 체험이다.
“나는 오성의 힘을 빌려서 사물을 그려 보는 일이 서툴렀으므로 눈 앞에 있는 것 외에는 상상할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이와는 달리 마음을 모으는 데 도움이 되는 상상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나는 오직 주님의 인성에 대해서만 생각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을 상상속에 떠오르게 할 수는 없었으니, 아무리 주님의 아름다움을 서술한 책을 읽거나 성화를 바라보아도 헛수고였습니다.”18)
그러면서도 데레사는 묵상에서 상상력을 절대로 배제하지는 않는다. 성녀는 묵상에서 자신의 마음속에 그리스도를 느끼도록 권고할 때 “그분을 여러분 곁에 뫼시고 그분이 얼마나 큰 사랑과 겸손을 가지고 여러분을 가르치고 계시는지를 그려보십시오.”19)라고 하며 또 “아름다우시고 자비로우시고 눈물이 흥건한 눈으로 여러분을 보고 계시는”20) 그리스도를 상상해 보라고 한다. 여기서 성녀가 말하는 그리스도의 재현은 시각적이고 동시에 지속되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살펴보는 것이다.21) 또한 성녀가 묵상에서 권고하는 상상은 그리스도의 현존을 믿음 안에서 꿰뚫어 보는 현실적인 재현이다.22) 성녀는 묵상기도에서 ‘인간으로서의 그리스도’를 생각하면서 신적인 순수한 본질에 대한 믿음의 시력을 강조하고 있다. 그 대신 데레사는 두 가지 탈선 방법을 배격했다. 첫째는 육체를 떠난 영성의 추상적인 관념과 둘째로 피상적인 신심의 감각적이고 감정적인 열광을 피했다. 그래서 성녀는 그리스도깨서 ‘가까이 살아 계심’에 대한 믿음의 확신을 근거로 하여 신성에 대한 강생의 확고한 진리에 모든 가치를 부여했다.
시각적이 아닌 신앙적인 이 재현은 묵상기도에서 매우 중요하며 차츰 경험을 통해 나중에는 주부적 관상에서 직관으로 변모될 수 있다. 묵상에서 그리스도의 재현의 체험에서 데레사 성녀는 때로는 그리스도 ‘곁’에, 때로는 그리스도 ‘앞’에 그리고 자신의 내면에서 오직 영적인 눈으로만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았다고 했다.
묵상기도의 중심 사상은 그리스도께 대한 영혼의 시선과 영혼에 대한 그리스도의 시선이다. 성녀가 말하는 하느님과 신앙인의 ‘시선’은 실제로 직접적인 개인적 관계, 상호간의 존재의 현실적인 관계를 표현한다는 것이다. 이는 사랑하는 영혼을 단순히 애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자세를 뜻한다. 성녀는 영혼이 그리스도의 현존을 살아있는 대상으로 실존적이고 실제적인 방법으로 기도 안에서 직관한다고 말한다. 성녀는 기도에 대한 단순한 정의로 “나는 내 안에 계시는 우리의 보화이시요 스승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데 힘썼습니다.”23) 영혼의 시선은 그리스도의 인격 전체를 바라보고 만난다. 이것을 영성가들은 사랑에 알이 찬 바라봄이라고 말한다.
5.2.3 사랑의 대화
성녀의 세번째 기도의 요소는 하느님과 사랑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다. 하느님의 현존 안에 머물고 그분과 내적인 만남을 위해 영혼은 침묵을 깨뜨리고 꾸밈없이 자기 존재를 송두리채 털어놓고 싶어진다.24) 진리, 자유, 사랑은 영혼이 하느님과 단둘이서 나누는 대화로써 특징을 갖는다고 데레사는 말한다. 자신의 비참, 나약함, 가난함에 대하여 아무것도 숨기지 않는 영혼의 진실은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다는 것이다.
묵상기도 중에 그리스도와의 현존적인 만남을 유지하고 활발하게 하기 위해서는 보다 폭넓은 사랑의 관계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 즉 하느님을 때로는 아버지처럼, 오빠처럼, 상전처럼 또는 님처럼 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느님과 마음을 터놓고 대화하는 묵상기도의 형태는 두 가지 모습이다. 첫째는 단순한 대화의 형태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을 꾸밈없이 말씀드리는 것이다. 이때 영혼은 자기의 마음속에 쌓아 놓았던 것과 느낌들을 솔직하고 단순하게 이야기하게 되는데 이때 성령의 이끄심이 있게 된다. 두번째 대화의 형태는 복음을 주제로 한 대화이다. 이 형태는 오성의 도움이 의지를 북돋우기 위해서는 매우 필요한 방법이다.
복음을 주제로 한 묵상기도의 대화는 크게 두 가지 특징을 갖는다. 첫째는 일반적 관념인 공심판, 천국, 지옥 등이 아니라 복음의 한 장면을 택한다는 것이다. 이때, 묵상의 초보자들은 그리스도의 생애에 대해 묵상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즉 그리스도의 고통, 십자가의 사랑을 느끼는 것이다. 다음에는 극장에서 관객이 바라보는 객관적인 자세로 그리스도의 생애와 사건들을 바라보는 것이다.
성녀 데레사의 묵상의 근거는 그리스도의 수난에 많은 주제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성녀는 복음의 다른 구절들을 선택한 묵상을 인정하지만 거의 대부분 언제나 그리스도의 사랑의 고통에로 되돌아 온다. “그렇지만 주님의 수난과 생애로 가끔 되돌아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거기에서야 말로 우리에게 온갖 선이 왔고 또 올테니 말입니다.”25)
데레사 성녀가 시도한 묵상에서의 사랑의 대화는 특히 그리스도의 수난과 고통에 기초하고 있다. 성녀는 묵상기도 중에 예수님의 깊은 사랑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며 단순한 사랑의 시선을 갖도록 노력했다. 데레사의 사랑의 대화는 단순하면서도 자유스러웠다. 억지로 난폭하게 영혼을 대화에로 이끌지 않았다. “영혼을 폭력으로 끌고 가는 무리를 하지 말고, 가장 큰 진보를 위하여 부드럽고 고요하게 인도하는 것이 중요한 일입니다.”26) 결국 묵상기도는 그 영혼이 얼마만큼 주님과 사랑의 대화를 나누며 사랑 안에서 성장하느냐에 있다.
5.3. 묵상의 4단계
「자서전」의 제11장에서부터 제21장까지는 묵상기도의 4단계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성녀는 묵상의 발전 단계를 정원에 물을 주는 비유를 통해 구체적으로 말한다.
“이 정원에 물을 주는 방법은 네 가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팔의 힘으로 우물에서 물을 긷는 것인데 이것은 우리에게 퍽 힘겨운 것입니다. 둘째로는 두레박을 단 도르레를 손잡이로 돌리면서 긷는 것인데, 때때로 그렇게 물을 길어 보았더니 힘이 덜 들고 훨씬 더 많은 물을 길을 수 있었습니다. 세째는 시내나 도랑에서 물을 끌어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땅은 한층 더 축축하게 적셔지고 자주 물을 줄 필요도 없으니 정원사의 일은 훨씬 줄어 듭니다. 끝으로는 다량의 비가 내리는 것인데 이 경우는 우리의 힘든 일은 아예 없이 주님께서 물을 주시는 것입니다.”27)
5.3.1 첫째 단계
묵상은 무엇보다 정신과 마음이 외적으로 쏠려 있는 감각들을 차츰 내적으로 향하게 하는 과정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간단없이 마음이 고요중에 머물도록 훈련되어야 한다.
우물에서 물을 길어 올린다는 뜻은 묵상에서 오성을 가지고 기도한다는 것이다. 오성의 도움으로 추리를 하고 한 가지 묵상 주제에서 많은 생각이나 반성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사람들이라도 주님께서 빛을 전달해 주실 때 까지 인내하며 기다려야 한다.
팔의 힘으로 우물을 길어 정원에 물을 주는 첫째 단계는 우물속에 물이 없을 수도 있고, 있다 하여도 그 물을 길어내는 고통이 있다는 사실을 성녀는 상기시키면서 묵상을 포기하지 말고 하느님께 대한 전적인 신뢰와 용기가 필요함을 강조한다.
생활 속에서 되도록이면 주님 곁에 머물면서 자신의 소망을 여쭙고 스스로 겸손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즉 의롭고 굳건하고 겸손된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고 사랑하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또한 마음의 메마름이나 흩어짐과 잡념에 너무 신경을 쓰거나 실망하지 않고 우리 대문에 고통과 죽음을 당하신 주님의 십자가를 두려워 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성녀는 묵상기도의 초보자에게는 묵상기도에 경험이 있는 영성지도자가 꼭 필요함을 주장한다. 왜냐하면 묵상 시초에는 영혼들은 쉽게 방황하고 포기하는가 하면 반대로 묵상이 아닌 자기 도취나 감각적인 기도로 변화되기 쉽기 때문이다.
5.3.2 둘째 단계
성녀는 이 단계의 묵상기도를 고요의 기도라 부르며 마음을 한데 모으는 것을 중요시한다. 이 단계는 애써 팔의 힘으로 물을 긷지 않고 도르레를 사용하기에 물을 긷는 것이 훨씬 쉽다. 이때 영혼은 전보다 명백하게 주님의 은총을 인식한다. 그리고 오성의 단계를 떠나 의지의 작용이 시작되며 영혼이 주님의 포로가 되기 시작한다. 왜냐하면 오성의 작용이 길게 늘어 놓는 수다스러움에 비해 의지는 주님의 일치에 감미로움을 느끼고 그분 안에 머물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혼은 특별한 위로를 가금 느끼게 되고 자신의 나약성과 미천함을 인식하기 시작하며 하늘나라의 영광의 기쁨에 대한 지식을 갖는다. 오성과 기억이 흩어짐에도 불구하고 의지는 하느님과의 일치에 머물기 시작하며 고요와 평화를 간직하여 잠심한다.
이 단계는 주님이 조금씩 영혼 안에 참 사랑의 작은 불꽃을 불붙이는 시기이다. 즉 영혼은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알아 듣기 시작한다. 이 때 영혼은 이 보화를 간직하기 위해 더욱 더 죄에서의 이탈을 시도하면서 고요와 잠심에서 십자가를 지려고 노력한다.
이 단계에서 조금씩 조심스럽게 덕을 실천하기 시작하고 그것이 영혼을 주님께 더욱 다가서게 한다. 이 때 주님은 당신 현존의 효과를 영혼이 느끼도록 해주신다. 묵상기도에서 이 두번째 단계에 이르는 영혼은 많으나 더 높이 오르는 사람은 적다고 한다.
5.3.3 세째 단계
이 단계의 묵상은 감미로움이나 즐거움이 있다고 한다. 영혼은 은총의 물에 흠뻑 젖어서 위대한 영광을 즐기고 싶을 뿐이다.
성녀의 체험은 이 묵상의 단계에서 모든 기능은 하느님만을 생각하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움직이려 들지 않는다고 한다. 이때 영혼은 하느님의 영광을 외치고 싶어지고 혼자서 누릴 수 없을 정도의 큰 행복을 이웃과 나누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영혼은 커다란 용기가 주님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을 체감하는데 이 용기는 순교자들이 고문에서 어떻게 하느님을 위해 자신을 바쳤는가를 어렴풋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하고 이 세상살이에서 오는 모든 근심 것정에 얽매이지 않고 조금씩 자유로워지게 한다. 또 이 자유는 주님없이 이승의 삶을 산다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 것인가를 깨닫게 하여 주님 안에서만 살고자 하는 원의를 일깨워준다.
세째 단계의 묵상은 묵상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둘째 단계의 고요의 기도에서 보다 덕이 굳건하게 되며 때로는 꽃이 향기를 내듯 자신도 모르게 애덕을 베풀게 된다고 한다. 그리고 하느님의 크신 은총을 뚜렷이 인식하며 영혼은 다만 받아들일 뿐이다. 이 단계에서 의지는 하느님과 매우 뚜렷하게 일치한다.
둘째 단계인 고요의 기도 때 영혼은 몸을 움직이지 않고 마리아의 거룩한 성소를 키워가지만, 세째 단계에서 영혼은 마르타가 될 수 있어 활동생활과 관상생활을 동시에 영위할 수 있다. 주님과 일치하는 이 단계의 기도는 그 영혼으로 하여금 무거운 짐을 지고 세상 마칠 때까지 살고 싶어하며 특히 작고 보잘것 없는 일이라도 봉사하기를 원하게 된다.
5.3.4 네째 단계
이 마지막 단계에서는 매우 큰 영광과 위로가 따르므로 영혼은 마냥 주님 안에서 즐기는 것뿐이다. 영혼이 하느님을 체험한다는 것보다 오히려 하느님의 영광 안에 그냥 머무는 상태라고 표현하는 것이 옳다.
정원에 다량의 비가 내리는 비유는 기도하는 영혼의 감각은 주님의 즐거움에 온통 사로잡혀 선(善) 자체가 무엇인지도 모르며 즐길 뿐이다. 세째 단계에서 영혼은 자기가 누리는 큰 기쁨의 어떤 표현을 할 수가 있었지만 지금은 영혼에 비교할 수 없는 커다란 기쁨 속에서 머물 뿐이다. 육체는 아무 힘도 없고 영혼은 그 기쁨을 전달할 만한 어떤 능력도 없기 때문이다. 성녀 스스로 묵상기도의 이 단계를 두고 기도의 방법과 성질이 어떤 것인지 이해시킬 수 없다고 말한다. 네번째 기도는 영혼으로 하여금 주님을 찾는 동안 그윽하고 흐뭇한 즐거움 가운데 거의 정신을 잃어버리는 것을 느낀다고 한다.
이 단계의 기도에서 주님이 영혼에게 주시는 은총은 극히 짧은 시간이다. 감각력은 잃고 의지만이 주님 안에 고요히 머물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시 지성과 의지의 두 기능이 그전처럼 활동하게 된다.
성녀가 말하는 이 네째 단계에서의 영혼은 자신이 주님과 일치되어 있음을 느끼는 것과, 이 은총의 확실성이 영혼 안에 남기 때문에 영혼은 이것을 조금도 의심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영혼은 이 일치에서 주님께 대한 지극한 사랑으로 환희의 눈물을 흘리게 된다고 한다. 영혼은 점점 더 겸손하게 되고 그래서 삶에서 더욱 뚜렷이 선을 실천하게 된다.
5.4. 소결론
성녀가 말하는 기도의 본질은 하느님과 영혼의 개인적인 사랑의 관계를 현실화하는데 있다. 이 관계는 사랑의 대화나 침묵을 통해 실현된다는 것이다. 성녀는 이론적이고 일반적이며, 보편적이고 일관성있는 묵상의 특징을 논리적으로 추구하는 것을 묵상기도에서 요구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성녀는 자신이 쓴 글에서 확고한 교의의 필요성과 진리에 대한 지속적인 탐구와 신학자들과 고해사제들이 해야 할 역할을 강조한다.
성녀가 주장하는 묵상기도는 특히 마음을 한데 모으는 습관을 통해 그리스도의 살아계신 현존 안에 머물러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줄곧 주님을 곁에 뫼시는 한 … 여러분이 주님을 내칠 수 없고, 주님 또한 여러분을 버리실 리 없습니다. 그리하여 주님은 여러분이 하는 일마다 도우실 것이요, 여러분은 어디서든지 그분과 함께 있게 될 것입니다.”28) 묵상기도는 완전히 그리스도와 언제든지 하나가 되는 데 있고 더 구체적으로는 언제 어디서든지 그리스도와 인격적인 사랑에 집중되어 있다. 성녀의 묵상기도의 목적은 영혼으로 하여금 “구세주의 짝으로 살게”29)하고 그리스도의 현존 안에서 살도록 하는 데 있다.
묵상기도는 신앙인의 삶이 그리스도의 생애에 뿌리내린 삶이 되게 한다. 뿐만 아니라 한걸음 더 나아가 성녀가 지향하는 묵상기도는 묵상 그 자체로써 끝맺음을 원하지 않는다. 묵상기도는 전적인 자기투신을 필요로 한다. “온통 우리를 주님께 바치기 전에는 온통 당신을 우리에게 주시지 않습니다.”30) 묵상하는 시간에만 하느님과 사랑을 토막토막 나누는 삶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삶 전체가 기도화되는 열성과 그리스도를 체험하려는 열성이 묵상기도를 은총 안에서 완성시켜준다.
성녀의 영성사상에서 볼 때 묵상기도란 어떤 실천적인 훈련이 아니고 현존하시는 하느님과의 친밀한 만남이고 일치이다. 이 말은 우리의 사랑이 하느님 안에서 성장되어야 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요, 이 사랑의 성장을 위해 특별한 방법보다는 묵상기도에 힘써야 함을 뜻하는 것이다. 묵상기도의 열매는 예수님의 확실한 응답의 말씀으로 이루어지기 보다는 기도하는 영혼의 가장 내적인 곳에서 이루어지는 변화를 통해서 영성생활에 맺어진다. 사랑에 의해 변화된 영혼 안에 부드럽고도 강한 능력이 하느님의 뜻대로 작용될 때 비로소 묵상기도는 완성되어질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