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개방된 삼위일체 하느님에 대한 사귐과 일치(세인격과 하느님의 수난)

 

Ⅳ. 개방된 삼위일체 하느님에 대한 사귐과 일치




1. 세인격과 하느님의 수난




    세인격과 하느님의 수난은 몰트만의 변증법적 원리에서 하느님의 증명을 볼 수 있다. 신적인 것은 오직 신적인 것만이 알 수 있다. 따라서 인간은 신을 알 수 없다. 또한 모든 본질은 오직 반대되는 것에서 나타난다. 따라서 하느님의 버림받은 상태와 무신성에서 하느님으로 계시될 수 있다.1)


    무신론은 하느님을 부정하지 않고, 세계를 신성의 거울로 인식한다. 또한 세계로부터 하느님의 선하심, 정의를 보지 않고 고난과 불의의 악취로 보며, 세계를 악의 파괴적인 경험으로 이해한다. 경험된 세계에서 하느님을 볼 때, 악으로 가득한 세계에서 하느님을 역추적하여 이 경험들의 근거인 하느님은 마귀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결과 하느님의 불합리성, 세계로부터의 원인과 근거의 추적은 결국 허무주의를 낳는다. “서구 무신론의 역사는 허무주의의 역사가 되었다.”2) 몰트만은 여기서 무신론자의 두려워함을 본다. “하느님의 무관심과 인간의 세계로부터의 그의 결정적인 퇴각을 무신론자는 두려워하는 것이다.”3) 그러면서 하느님은 무감정한 분이므로 고통도 아무런 수난도 당하실 수 없다고 한다. 한편 인간은 고통이나 수난으로 인하여 사랑을 알게 되고, 이런 면에서는 하느님보다는 인간이 더욱 위대하다고 한다. 고통 당하지 않는 자는 사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몰트만은 본질의 것은 반대로 이해할 때 의미를 알 수 있다고 했다. 사랑의 하느님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수난 당하시는, 버림받은 상태에 계신 하느님을 이해할 때 가능한 것이라고 한다. 그의 십자가 신학에서 하느님의 버림받은 상태는 세계를 향하여 이해되고 하느님의 자기 자신 안에서도 이해된다. 예수의 마지막 발언 행위인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는 곧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자신을 버리시나이까’로 통한다. ‘성부의 버림받음’인 동시에 ‘성자의 버림받음’인 것이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몰트만은 하느님을 하느님으로 이해하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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