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5. 죽음의 무력화는 죄의 무력화
바오로는 죄의 세력과 죽음의 세력이 서로 관련되어 있다고 본다. 즉 죄를 통해서 세상에 죽음이 (우주적인 세력처럼) 들어왔고, 죄의 극복과 함께 죽음도 무력화된다.
죄와 의화에 관련해서 전개되면서 죄와 죽음의 연관에 대해서 암시하는 로마 5,12-19의 아담―그리스도의 비유는 1고린 15,21-22에서는 분명하게 죽음과 부활의 관계에 대해서 적용된다.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죽음이 (왔으니) 역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죽은 자들으이 부활도 (이루어질 것입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이가 죽듯이, 그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이가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에 대적되는 세력들의 섬멸은 죽음의 극복에서 정점에 이른다. “마지막으로 없어질 원수는 죽음입니다”(1고린 15,26). 바오로는 죽음의 퇴치를 미래의 사건으로 본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1고린 15,57)를 드린다. 물론 바오로는 의화된 사람도 죽을 것을 안다. 그러나 죄는 극복이 되어서 죽음에서 독침은 제거되었다. “죽음의 독침은 죄입니다”(1고린 15,56). 즉 죄의 극복으로 말미암아 죽음의 무력화가 이미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2.9. 이미 지금 영원한 생명(요한)
요한계 문헌에서는 육신적 죽음이라는 한계의 상대화가 더욱 진전된다. 요한계 문헌은 현재적인 강조점을 강하게 부각시킨다. 하느님 아들을 믿는 사람은 이미 영원한 생명을 지닌다. 그는 심판으로 들어가지 않고 “죽음에서부터 생명으로 이미 옮겨간 것입니다”(요한 5,24). 여기서 도대체 미래의 희망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인가 아니면 전통적인 용어를 이용해서 신앙의 결단을 통한 현재 삶의 질적인 변화에 대해서 말하는 것인가?
그러나 요한계 문헌에서는 미래적으로 정향된, 묵시문학적 장면과 연관된 텍스트들이 발견된다. “무덤 속에 있는 모든 이가 그의 목소리를 듣게 될 때가 오고 있습니다. 그러면 선을 행한 이들은 부활하여 생명을 누릴 것이고, 악을 저지른 이들은 부활하여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요한 5,28-29; 참조: 5,25).
서로 긴장 관계에 있는 두 가지 텍스트들을 균형있게 연결하기란 쉽지가 않다. 두 텍스트를 이해하기 위한 열쇠는 요한의 그리스도론에 있다. 요한복음에서 지상 예수는 처음부터 지속적으로 현양된 그리스도의 관점에서 서술되었다. 예수 안에서 구원이 현존하기 대문에 그와의 만남은 모든 것을 결정하는 순간이다. 즉 그를 거부하는 것(“불신앙”)은 죽음을 의미하고 그를 받아들이는 것(“그를 믿는 것”)은 영원한 생명을 의미한다. 신앙과 불신앙의 결단을 통해서 이미 지금 심판이 실현된다. “그를 믿는 이는 심판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이는 이미 심판을 받았습니다”(요한 3,18). 이렇게 강하게 현재적으로 강조된 복음 선포에서 종말론적 미래가 거부되지는 않지만, 그러나 우선은 근본 주제가 되지는 않는다. 나중 단계에 아마도 영지주의적―열광주의적 사조(思潮)와의 대결을 통해서 아직 기다려야 하는 완성에 주목하게 되었다.
이런 시각의 변화를 특징지어주는 것은 요한 5,25과 28-29의 미래적 표현과 여러 차례 반복되어 나오는 단어 “마지막 날”(요한 6,39-40.44.54), 그리고 미래에 아버지의 집에 거처하게 된다는 주제(요한 14,2-3),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게된다(요한 17,24)는 주제등이다.
이와 비슷한 현재와 미래와의 긴장은 요한 1서에서도 발견된다. 요한의 편지는 한 편으로는 구원의 현재성을 강조한다: 믿는 사람들은 오늘 이미 “아버지와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의 친교”(1요한 1,3) 안에 산다. 이 친교 안에서의 “머무름”은 구체적으로 교회 공동체 구성원에 대한 사랑과 예수를 하느님의 아들로 고백하는 데에서 이루어진다(1요한 4,12.15). 다른 한 편 요한 1서는 신앙인이 현재 체험하는 것을 넘어서는 미래의 희망, 즉 하느님을 뵙고 그분과 비슷해지게 되는 삶에 대해서 알고 있다. “이제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은 밝히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우리가 그분을 닮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그분을 실제 모습 그대로 뵈올 것이기 때문입니다”(1요한 3,2).
3. 교의사적 전개
종말론의 교의사적 전개에서는 두 가지 신학적 주제가 중점으로 드러난다. 하나는 보편적 희망과 심판 사상이고 다른 하나는 부활 희망과 불멸 사상과의 연결이다.
3.1. 보편적 희망과 심판
전체가 완성되리라는 보편적 희망과 종말의 심판에 대한 믿음, 그리고 개개인의 자유로운 결단이 종말의 구원에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을 어떻게 연결지을 수 있을까? 완성을 “두 개의 극(極)”으로 생각해야 하는가? 즉 인류가 영원히 행복한 사람들의 집단과 잘못된 자유의 결단으로 인해서 영원히 불행해지는 사람들의 집단으로 분리되는가? 혹은 이런 분리도 다시 한 번 보편적 희망에 의해서 능가되는 포괄적인 전망이 있는가? 이에 대해서 교의사에서는 사로 상의한 의견들이 대두되었다.
3.1.1. 고대교회의 신앙고백
고대교회의 다양한 신앙고백(DS 10-40)에는 항상 심판에 대한 언급이 대부분 두 번째 그리스도론적 부분에 등장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산 이와 죽은 이들을 심판하러 오실 것이다”. 그러나 이 고백은 세 번째 성령론적 부분에서 이중의 결말(천국과 지옥)에 대한 기대로 끝나지 않고 단지 긍정적인 전망, 즉 “육신의 부활과 (대부분의 전승에 언급되는) 영원한 삶”에 대한 희망으로 끝난다. 이런 노선에 서 있는 것으로는 히뽈리뚜스(Hippolytus)의 사도전승에 나타나는 세례 때의 신앙고백(215년경, DS 10)과 에피파니우스(Epiphanius)의 신앙고백(374년경)이 있다. 후자의 경우에는 세 번째 부분에서 “죽은 이들의 부활과 다가올 세상에서의 삶”(DS 42)에 대한 고백이 나타난다.
그러나 이와는 다른 내용을 전하는 것으로는 5세기 경에 형성된 “Quicumque” 신앙고백이 있는데, 이 신앙고백은 종말론을 성령론적 고백이 아니라 그리스도론적 고백과 연결짓는다. “그가 오시면 모든 인간들이 육신과 함께 부활하여서 자신들의 행동에 대해서 셈을 바칠 것이다. 좋은 일을 한 사람은 영원한 삶에로 들어갈 것이고 악행을 저지른 자들은 영원한 불로 들어갈 것이다”(DS 76). 5세기 경에 유래하는 이른바 “Fides Damasi”도 이와 비슷하게 두 극으로 끝을 맺는다. “우리는 우리가 그리스도로부터 선업에 대한 보답으로서 영원한 생명을 얻거나 아니면 죄에 대한 벌로서 영원한 죽음을 얻으리라고 기대한다”(DS 72).
이렇게 여러 신앙고백에서 나타나던 두 가지 경향이 교부들의 신학에서는 더욱 분명하게 체계화되어서 내용적으로 서로 대립되는 양상으로 등장한다. 한 편에서는 무엇보다도 알렉산드리아의 오리게네스가 주장한 “만물회복설”(apokatastasis), 즉 종말에는 모두가 구원되어 완성에 참여한다는 가르침이 있고, 다른 한 편에서는 아우구스티노에 의해서 대표되는 주장으로서, 역사가 이중의 결말로, 그것도 인간의 대부분은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으로 끝을 맺으리라는 주장이 있다.
3.1.2. “만물회복설”(終末回復說, Apokatastasis)
3.1.2.1.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
이미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215년 이전)에게서 만물회복설의 흔적이 발견된다. 그는 가끔 “불 속에서의 영원한 벌”(Quis dives 33,3)이라고 말을 하지만, 죽은 다음의 벌을 구원을 위한 수단, 완성의 도상에서 겪는 “훈육을 위한 교정(矯正)의 고통”(Strom. V 14)이라고 간주하였다. 그래서 클레멘스는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모든 인간의 보편적 구원을 전망하는 방향으로 나가던 최초의 그리스도교 저술가라고 간주된다. 또한 그는 같은 이유에서 죽은 이후의 정화의 가르침을 위한 첫 번째 증인으로 취급되기도 한다.
3.1.2.2. 오리게네스
만물회복설은 무엇보다도 동방교회 신학에 큰 영향을 끼쳤던 알렉산드리아의 오리게네스(+ 254년경)의 이름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오리게네스에게서 만물회복설이란 원초적인 세상의 일치가 회복되는 것, 즉 하느님을 통해서 인간 모두가 의지와 존재 안에서 일치를 이루는 역사의 완성을 의미한다. 그는 구원역사가 심판으로 끝나지 않고, 심판과 일정한 시간의 벌이 있은 후에 일종의 전체적 화해, 창조계 전체의 복원이 이루어진다고 보았는데, 여기에는 죄인과 저주받은 이들, 심지어 악마들까지도 포함된다고 주장하였다.
Apokatastasis란 단어는 사도 3,21의 “αποκαταστασισ παντον(만물의 복원)”이라는 말을 연상케한다. 그러나 오리게네스에게 가장 중요한 성서 구절은 1고린 15,25-28로서 특별히 마지막 구절이다. 완성은 하느님께서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이 되심으로 이루어진다. 모든 것이 아들에게 “굴복”하고 아들은 아버지에게 굴복함으로써 이 완성에 이르게 된다. 오리게네스에게 “굴복”이란 강제적 조처를 의미하지 않는다. 굴복이란 피조물이 하느님을 받아들이도록 변화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과정에서 교육적, 치유적 도움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성적 존재인 인간의 자유룰 전적으로 요구한다. 이 과정에서 로고스는 교사와 의사의 역할을 한다. 그는 앞으로 가려고 노력하는 이들을 “가르치고”(De Princ. III 6,9), “그가 지니고 있는 치유력으로”(Contra Celsum VIII 72) 영혼의 허약함을 치유한다. 그는 정신적 존재인 인간이 천성적으로 성취하려고 노력하는 것을 자유 안에서 실현할 수 있는 능력을 준다. 죽은 이후의 모든 벌도 교육적이며 치유적인 기능을 지닌다.
오리게네스의 신학은 성서적 신앙을 그리스적으로 교육받은 당시의 사람들의 생각과 중재하려는 동기에 의해서 움직여졌다. 그래서 오리게네스는 구원사를 우주론과 연결짓으면서 고대의 순환적 시간 이해를 바탕으로 삼는다. “항상 끝은 시작과 유사하다”(De Pric. I 6,2). 그는 세상의 원래의 일치는 인간의 범죄로 말미암아 인류의 역사가 시작되기 이전에 이미 깨어졌다고 보았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모두가 “다시 하느님의 선하심, 그리스도 아래 굴복, 성령 안에서의 일치를 통해서 시작과 동일한 종말에 이르게 될 것이다”(De Princ. I 6,2).
오리게네스가 악이 궁극적으로 극복되어 사라지는 완성을 생각하였는지, 아니면 새로운 범죄, 단절, 회복의 순서로 끝없이 이어지는 것을 완성에 포함시켰는지(예를 들어서 De Princ. I 6.3; Contra Celsum VIII 72)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대답하기 어렵다. 특히 그가 만물회복설 전체에 어느 정도의 확실성을 부여하였는지는 명확하지가 않다. 만물회복설은 오리게네스의 확고한 확신을 반영하는 것인가, 아니면 단지 하나의 이론을 시험해보고 사변적으로 전개해본 것인가? 논리에 빈틈이 없는 점에서는 첫 번째에 가깝지만, 종종 머리말과 종결부분에 사용된 어법(예를 들어서 De Pric. I 6,1: “가르침이라기 보다는 논의의 성격을 지닌 연습”)을 보아서는 두 번째에 가깝다고 하겠다.
그리스 지역에서 이후에 전개되는 종말론은 오리게네스와의 논쟁으로 엮어진다. 신학적들은 그를 경탄하는 이들과 비판하는 이들로 갈린다. 니싸의 그레고리오(+394)는 오리게네스의 노선에게 계속 생각해간다. 그는 만물의 회복을 부활과 동일시하고서, 보편적 구원에 대한 희망에 대한 근거로서 선을 향해 나가는 부활 이후의 인간 본성의 역동성과 인간의 영혼이 하느님을 최종 선으로 갈망하는 것을 든다. 그러나 그는 오리게네스와는 달리 영혼이 선재한다는 생각은 배척하였다.
3.1.2.3. 6세기의 단죄
4세기와 5세기에도 계속 지속되던 오리게네스에 대한 논쟁은 6게기에는 팔레스티나의 여러 수도자 그룹 사이의 경쟁 때문에 더욱 날카롭게 되었다. 마침내 6세기에는 오리게네스에 대한 교회의 단죄가 내려진다. 유스티니아누스(Justinianus) 황제는 543년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고 매나스(Menas)에게 보낸 편지에서 오리게네스에 대해 정식으로 파문을 선고하고 만물회복설을 분명하게배척한다. “마귀나 하느님을 배반한 사람들이 받는 벌이 한시적이어서 언젠가는 끝을 맺게 된다고 말하거나 혹은 마귀와 하느님을 배반한 사람들이 復元(apokatastasis)된다고 말한다면 파문될지어다”(DS 411). 제2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553)는 황제의 비난을 수용하였다.
공의회는 배척의 대상이 되는 15주제를 제시하였다. 여기에는 오리게네스 이름이 명시적으로 등장하지는 않았지만, 553년 이후 오리게네스적인 종말론은 동방에서는 물론 서방에서도 일반적으로 이단적인 설로 간주되었다.
3.1.3. “저주받은 무리(Massa damnata)”
3.1.3.1. 아우구스티누스
서방에서는 만물회복설은 이미 아우구스티노(+430)에 의해서 그 근거를 잃게 된다. 그는 미래의 영원한 벌을 거부하는 당시의 “가련한” 학설들을 나열한다(Civ. Dei XXI 17-22). 이런 학설에 반대해서 죽은 이후에 받을 벌이 실재로 있고 영원하다는 확신을 내세운다.
아우구스티노는 영원한 벌을 거부하는 데에 반대하는 중요한 논거로서 성서에서 분명하게 영원한 벌에 대해서 언급하는 구절과 천국과 지옥을 같은 등급에 놓는 구절들(예를 들어서 마태 25,41.46.; 2베드 2,4; 묵시 20,10)을 제시한다. “여기서는 영원한 고통 저기서는 영원한 삶이 있다”(Civ. Dei XXI 23). 또한 그는 원수들을 위해서 기도하라는 하느님의 계명에도 불구하고 마귀와 그의 졸개들을 위해서는 기도하지 않는 교회의 실천을 근거로 내세운다. 즉 이런 교회가 이렇게 실천하는 것은 교회가 지옥벌의 영원성과 불변성을 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같은 이유에서 “종말의 심판에서 영원한 불로 심판받을 사람들에게 대한 대도(代禱)가 소용이 없게 된다”(XXI 24).
아우구스티노의 종말론에서는 다가올 것에 대한 희망과 기쁨의 필치(筆致)가 나타난다: 인간이 앎과 사랑 안에서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는 것은 행복을 추구하는 모든 노력의 성취를 의미하고, “끝없이 바라보고 싫증이 나지 않도록 사랑하는” 하느님 자신이 “우리 갈망의 종점”이 된다(XXII 30). 아우구스티노는 오리게네스와 마찬가지로 1고린 15,28를 인용한다: “모든 악이 제거되고 선이 숨겨져있지 않는” 미래의 영광에서 하느님은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이 되실 것이다(XXII 30). 그러나 이렇게 아우구스티노가 아주 인상적으로 강조한 희망의 전망은 구원될 사람에게 해당된다. 이와는 달리 인류 전체의 미래에 대한 전망은 비관적인 시각이 지배적이다. 즉 아우구스티노에게 인간이 처한 근본적 상황은 아담에 뿌리를 두고 있음으로 말미암아 죄인의 “저주받은 무리”의 상황인 것이다. 단지 무상이며 자비로운 하느님의 은총만이 일부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다. 구원될 인간의 수는 저주받을 사람들의 수에 비해서 훨씬 적다. 아우구스티노의 이런 견해는 구원된 이들에게 선사된 은총이 가득찬 결말의 상황을 부정적인 평상의 상황과는 뚜렷하게 차이을 두고, 이를 통해서 구원은 은총으로 인한 것임을 분명히 하는 데에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이렇게 “인류가 양분(兩分)된다: 몇몇에게는 하느님의 자비로운 은총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가 드러나고, 나머지에게는 정의로운 벌이 드러난다”(XXI 12). 이에 상응해서 인류 역사도 양분된 종말을 맞는다: 한쪽은 영원한 행복을, 다른 한쪽은 영원한 벌을 받는다.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양분된 종말은 단지 가능성만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다는 확신을 자신의 예정설(豫定說)을 통해서 강조한다.
3.1.3.2. 중세와 근세
아우구스티노 이후에 모두가 구원되리라는 보편적 완성에 대한 희망은 서방교회에서는 더 이상 자리하지 못하였다. 토마스 아퀴나스(+1274)도 아우구스티노와 그의 논거에 의존해서 오리게네스와 분명히 거리를 두었다(Sth I q.64 a.2; suppl. q.99 a.2 참조). 그러나 그는 구원으로 예정된 이들이나 멸망될 사람들의 숫자에 대한 물음에서는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한다. “하느님 홀로 선택된 이들의 수를 아신다”(Sth I q.23 a.7). 이를 통해서 아우구스티노의 비관적 구원론이 적어도 어느 정도는 교정되었다고 하겠다. 근세에는 인류의 역사가 이중의 결말로 끝날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고, 그래서 지옥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다.
16세기에 ‘재세례파 운동’에서 다시 등장했던 만물회복설은 “아욱스부르크 고백(Confessio Augustana)”(1530, 17항)에서 배척됨으로써 프로테스탄트 교회 내에서도 자리를 잡지 못하였다. 더구나 라이프니츠(Gottfried Willhelm Leibniz, +1716)는 영벌을 받을 사람들의 수는 구원받을 사람들의 수보다 비교할 수 없이 더 많다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가르침“과 세상은 생각할 수 있는 한 최선으로 창조되었다는 자신의 견해를 별 어려움 없이 연결지을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셀 수없이 많은 혹성(惑星)에 아마도 어떤 이성적인 존재들이 살 것이고, 그 가운데서 멸망될 사람은 단지 소수일 뿐이라고 생각하면서, 우리가 이 세상에서 보는 악은 우주 전체의 선과 비교해서 “거의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주장한다(Theodizee I 19).
그러나 점점더 인간학적으로 시각이 정향되면서 한 개인의 운명이 우주의 균형보다도 더 중요하게 여기게 된 인본주의, 필연적인 이성의 근거를 찾는 계몽사상, 그리고 진보주의적 사상은 지옥벌의 영원성에 대해서 다시 논의를 하지 않을 수 없도록 이끌었다.
프로테스탄트 신학에서 요한 엘브레히트 벵엘(Johann Albrecht Bengel, +1752)과 프리드리히 크리스토프 웨팅어(Friedrich Christoph Oetinger, +1782)와 같은 경건주의자들을 통해서 만물회복설은 다시 영향력을 발휘하고, 슐라이어마허(Friedrich Schleiermacher, +1834)는 만물회복설을 인류의 진보와 연결짓는다. 이와는 반대로 가톨릭 신학자들은 거의 전부가 지옥벌의 영원성을 고수한다. 하지만 몇몇 가톨릭 신학자들(예를 들어서 Jacques-André Emery, +1811, Franz Oberthür, +1831)은 죽은 이들을 위한 교회의 대도(代禱)에 힘입어서 아마도 지옥벌의 고통이 감소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현재에는 거의 모든 개신교와 가톨릭 신학자들은 구원의 역사가 실제로 어떻게 끝날지에 대해서 결정할 수 없고 그래서 신학적으로 두 가지 전망을 열어 놓는 것을 포기할 수 없다는 태도를 취한다. 최근에는 한스 우르스 폰 발타살(Hans Urs von Balthasar, +1988)이 보편적 희망(그러나 확실한 예언은 아니다)에 대한 생각을 발전시켰고, 이에 대해서 몇몇 보수적인 가톨릭 신학자들이 반박을 하였다.
3.1.4. 요약
이미 고대교회에서 우주의 미래에 대해서 가졌던 관심이 개개의 인간 집단의 운명에 대한 관심으로 바뀌는 것을 보게 된다. 이와 관련해서 1고린 15,29에 의존한 보편적 완성에 대한 희망은 묵시문학적 심판의 사고의 뒤로 물러 서면서, 인류 역사의 종말은 선과 악으로 결정적으로 나뉘게 된다고 전망하게 되었다. 근세에는 인간학적의 강조점이 더욱 강하게 되었다. 이와 함께 몇몇 신학자들은 인간이 결정적으로 멸망할 가능성에 반대해서 이의를 제기하면서 새롭게 만물회복설로 이끌리게 된다.
3.2. 부활, 불멸 그리고 중간상태
개인의 종말론적 운명에로 주의를 집중하게 되면서 최종 목표가 아니라 죽은 다음의 인간의 길을 설명하려는 관심이 점점 증가하였다. 그래서 비교적 단순한 원시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인 죽은 이들의 부활 신앙은 죽음과 종말 사이에 “시간”을 포함시키고 또한 인간의 구성(“육체”와 “영혼”)에 대한 숙고를 전제로 하는 이론으로 발전되어 갔다. 이런 이론이 형성되는 데에는 작용한 본질적인 요인으로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불멸의 사고와 고대의 인간학과의 대결이고, 다른 하나는 교회의 관습인 순교자 공경과 죽은 이들을 위한 기도이다.
3.2.1. 사도적 교부들
사도적 교부들은 모두 일치해서 죽은 이들의 부활을 가르쳤다. 그들이 사용한 정식인 “육신의 부활”은 아직 반유심론(反唯心論)적 색채를 띄지 않았다. 여기서 sarx는 구약성서에 나타난 히브리 단어 “basar”와 비슷하게 피조물로서의 무상함 속에 있는 세상 전체를 의미한다. 죽은 직후의 운명에 대해서는 통일된 가르침을 발견할 수가 없다. 클레멘스 전서(96년 경)는 그리스도의 왕국이 나타날 때까지의 “경건한 이들의 장소”, 혹은 “단지 짧은 순간 방에 들어간다”(1Clem 50,3-4)고 말함으로써 일종의 중간시기를 생각하고 있다. 이와는 반대로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 117년경)는 순교 이후에 가능한 빨리 하느님 혹은 예수 그리스도께로 가기를 갈망한다(IgnRom 4,1; 5,3 참조).
3.2.2. 호교론자들
초기의 그리스도교 호교론자들은 아주 다양한 사조(思潮)들이 지배하는 이방인 세계와의 대화에 관심을 기울였다. 모든 종말론적 이론에 대해서 극단적인 회의를 보이면서 어떤 희망도 갖지 않으려는 경향은 “대중적인 에피쿠로스주의(향락주의)”로 흘러갔다. 이런 향락주의자들은 바오로가 인용한 대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먹고 마십시다. 내일이면 죽을 터이니 말입니다”(1고린 15,32). 이런 경향 외에도 죽음 육신 안에 불멸의 영혼이 있다는 플라톤적 가르침이 (육신을 멸시하는) 이원론적 특징을 지니면서 다시 살아나게 된다. 플라톤 자신이 존재론적 혹은 단지 윤리적 이원론을 주장했는지에 대해서는 오늘날 토론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그리스도교 초기의 몇 세기 동안에 플라톤 사상은 존재론적 이원론의 의미로 수용되었다. 더욱 강하게 이원론적으로 물들은 영지주의는 영적인 영혼이 어두운 물질의 영역에서 구원된다, 이 세상에서 벗어나 하느님의 영역으로 “천상여행”을 떠난다고 가르쳤다.
그리스도교의 호교론자들은 플라톤 사상에서 극단적인 회의와 절망적 태도에 반대하는 동맹자(同盟者)를 발견하였다. 그들은 불멸의 영혼을 받아들이는 사상에 접목하여 이 사상을 능가하게 된다. 즉 영혼만이 아니라 육신도 죽음을 넘어선 희망을 지닌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호교론자들은 그리스 철학의 용어(“육신”과 “영혼”)를 넘겨 받는데, 이 용어는 그리스 철학과는 다른 의도로 사용된다. 즉 종말에 영혼과 육신의 일치가 이루어진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사용된다.
이에 대한 전형적인 예는 가(假)유스티노 저서이다. “부활에 대해서”: 하느님은 “육신도 부활하도록 부르셨다… 왜냐하면 인간은 영혼과 육신이 합쳐진 이성적 생물이기 때문이다… 영혼과 육신 중에 어느 하나만이 아니라 둘이 합쳐진 것을 인간이라고 부른다면, 그리고 하느님께서 인간을 삶과 부활로 부르셨다면, 하느님은 한 부분이 아니라 전체를, 즉 영혼과 육신을 부르신 것이다”(Pseudo-Justinus, De Resurr. 8).
호교론자들은 유심론적이고 개인주의적인 경향의 영지주의에 대해서는 전체 인간이 세상과 함께구원된다고 강조하였다. 이런 점은 우리는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것과 같은 육신으로”(예를 들어서 “Fides Damasi”: DS 72) 부활할 것이라는 정식을 통해서 자주 분명하게 표현되었다. 때때로 반 영지주의적 논쟁은 아주 과도하게 물질적인 상상으로 흘러갔다. 즉 부활한 육신의 모든 뼈와 신경, 눈과 기관들은 이승에서의 육신의 것과 동일하다는 것이다.
3.2.3. 오리게네스
오리게네스는 위와 같이 너무 단순한 상상이나 영지주의적 육신의 포기에서 거리를 둔다. 그는 부활한 육신을 묘사하는 데에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부활한 육신과 이승의 육신과의 동일성은(이틀 이상 같은 것으로 머물지 않는) 질료의 동일성을 근거로 하지 않고 영속적인 eidos, 즉 세상의 삶에서 한 인간을 다른 인간과 구별짓도록 하는 특징적인 형상을 근거로 이루어진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와 유사하게 오리게네스도 부활은 죽은 다음의 사건이 아니라 이미 세례 안에서, 그리스도교적 삶의 실천을 통해서, 그리고는 죽음 안에서, 또 죽은 이후의 정화를 통해서 실현되는 사건이라고 말한다. 이런 주장은 오리게네스가 그리스도교의 종말 희망을 내면적, 정신적인 차원으로만 생각한다는 인상을 주게 되고, 그래서 위험한 영지주의에 가깝지 않은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하였다. 이 때문에 죽음과 부활에 대한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해석은 신학의 역사에서 관철되지 못하였다.
3.2.4. 아우구스티노
아우구스티노도 (요한 5,25를 다루면서) 현재적 부활을 알지만, 그러나 (묵시 20,5의 “첫째 부활”이라는 말을 보면서) 분명하게 두 가지 부활을 구분한다: “지금 일어나는 첫째 부활”, 즉 인간이 죄에 죽고, 하느님 아들의 부르심을 통해서 신앙 안에서의 삶에로 부활하게 됨으로서 이루어지는 “영혼의 부활”과 “둘째 부활”, 즉 세상의 마지막 날에 선인이든 악인이든 모든 인간이 심판을 받기 위해 이루어지는 “육신의 부활”을 분명하게 분리한다. “첫째 부활”에는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따른 사람들만 참여하고, 둘째 부활에는 모든 사람이 참여하게 된다. “이 첫째 부활은 은총에 의한 부활이고 둘째 부활은 심판을 위한 부활이다”(Civ Dei XX 6; XX 9 참조).
이렇게 해서 세 가지 새로운 강조점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1) 현재적 부활이라는 주제는 아직 기억에 간직되어 있다. 그러나 오리게네스가 중요시하였던 부활의 과정(過程)적 성격, 즉 부활은 회개, 세례, 죽음 그리고 죽은 다음의 정화라는 그리스도교 구원의 길 전체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생각은 퇴보하게 되었다. (2) 미래의 부활은 더 이상 분명하게 희망적인 내용으로서가 아니라, 한편에게는 구원을, 다른 한편에게는 멸망을 선고하는 심판을 위한 중립적인 전제로 나타난다. (3) “육신”, “부활”, “마지막 날”이라는 개념들이 서로 연결되면서 영혼이 육신없이 존재하는 중간 시기를 생각하도록 한다.
실제로 아우구스티노는 “자신의 육신을 아직 돌려받지 못한 순교자들의 영혼”이라는말을 한다(Civ Dei XX 9). 그러나 아우구스티노에게서는 아직 중간상태에 관한 분명한 이론을 발견할 수 없다. 그는 하느님을 바라보면서 누리는 영혼의 행복을 가르치기도 하고(예를 들어서 De Trini. XV 25), 중간상태의 임시성을 강조하기도 한다(예를 들어서 Civ Dei XIII 8; Ench. XXIX 109). 또 다른 저서에서는 이 문제에 관해서 자신의 견해는 불확실하다고 설명한다(Retract. 14,2).
그러나 아우구스티노 시대에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가르침인 죽은 다음의 정화의 불과 새로 형성되기 시작한 중간상태에 대한 상상이 이미 연결되었다. 사도 바오로가 “불을 거쳐서 구원을 받는다”(1고린 3,15)고 표현한 것에 바탕을 둔 다양한 만물회복설과의 대결에서 아우구스티노는 정화하는 불과 저주받은 이들에게 속한 영원한 불을 구분한다. 이렇게 된 데에는 정화는 현재의 삶이나 혹은 죽으면서 고통을 수반하는 (죄의) 분리의 체험이라는 해석 외에도 “육신이 죽음 다음 그날에 이르기까지… 죽은 이들의 영혼은 일종의 불을 통과해야만 한다”는 가르침이 영향을 미쳤다. 이 가르침에 대해서 아우구스티노는 조심스럽게 입장을 표명한다. “나는 이 견해를 반박하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올바른 견해일 것이다”(Civ. Dei XXI 26).
아우구스티노가 인용한 견해에 따르면 죄의 오점이 묻어 있는 사람만이 아니라 죽은 모든 사람이 불을 거쳐야 한다. 차이는, 태워버려야할 죄의 찌꺼기가 없는 사람은 불의 뜨거움을 느끼지 않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불의 뜨거움을 느낀다는 것이다. 이 이론은 후대의 연옥교리와 동일하지는 않다. 아우구스티노 자신이 죽음 이후의 고통이 시간적으로 한정되고 치유적 성격의 것이라고 가르쳤는지에 대해서 오늘날의 연구에서는 계속 토론될 여지가 있다. 그러나 위에 인용된 구절은 처음에 동방의 만물회복설과 함께 등장한 정화에 대한 가르침이 이제는 서서히 형성되는 중간상태에 대한 가르침에서 새롭게 자리를 잡는다는 것을 암시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