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바티칸 공의회와 공의회 이후 시대

3. 1. 1. 2차 바티칸 공의회와 공의회 이후 시대
1차 대전 이후에 로마노 과르디니가 한 이 말 “거대한 사건이 일어나고 있다. 교회가 영혼들 사이에서 깨어나고 있다.” 이 말은 즉시 독일 가톨릭 개혁의 구호가 되었다. 이 각성의 결실이 2차 바티칸 공의회였다. 2차 바티칸 공의회는 근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교회의 개방을 천명하였다. 이제는 인간을 지시하고 명령하고 군림하는 것이 아니다. 이제는 교회 스스로 개방을 먼저 천명했다는 말이다. 교회는 현대 인간의 상태, 인간이 처해있는 상황을 직시하고 인간에 대하 연민과 배려를 고찰했다. 특별히 GS는 새로운 인간상의 정립을 그 고찰의 전체로 삼았는데, 교회와 인간의 공동 존재의 필연성, 서로 서로에 대한 책임이라는 도덕을 먼저 촉구하고 있다.
현대인간은 한편으로는 교회로부터 일방적으로 지시를 받던 수동적인 입장에서 스스로의 자율성과 자유를 요구하는 존재로, 또 한편으로는 인간이 해결할 수 없는 근본 문제들(-죽음, 질병, 고통들-)로 고민하고 있는 존재로 파악된다. 이것은 GS 첫 부분(1-10항)에 잘나오는데, 특별히 4-10항이 현대인간의 고민, 상태를 잘 서술하고 있다. 이렇게 희망과 불안이 공존하고 있는 인간 앞에서 교회는 하느님으로부터 특별히 부여받은 임무가 있다. 이 인간 앞에서 교회가 할 일, 그것은 GS 3항에 나와 있는대로, 이런 인간의 문제에 대해서 교회는 인류와 더불어 “대화”를 나누며 “복음의 빛으로 해명”해 주어야 하는 임무가 있다.. 이 대화를 나눈다는 말은 2천년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말이었다. 인간은 대화상대가 아니었다. 인간은 수동적인 입장이었으니까.

자, 이런 전반적인 분위기에 낙관주의가 도래했다. “다른 공의회들과는 달리 2차 바티칸 공의회는 평화롭고 또 신앙의 열정으로 가득찬 교회의 삶에로 젖어 들고 있다.”. 후에 교황 바오로 6세가 된 몬티니 추기경
다른 공의회가 아주 전투적이고 그야말로 무엇에 대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의지를 강력하게 천명했다고 하면 2차 바티칸 공의회는 적어도 평화롭고 신앙의 열정으로 가득찬 교회의 삶에로 젖어 들고 있다. 즉 아주 다르다는 얘기다.
과연 공의회 이후에 낙관주의가 그대로 도래하였는가? 실상은 가톨릭 교회에 대단히 부정적으로 전개되었다. 과르디니의 희망찬 구호는 오히려 정반대가 되었다. 교회가 영혼들 사이에서 사라지고 있고 공동체들 안에서 파괴되고 있다. 이것이 오늘날에 부정적으로 전개되는 상황에 대한 묘사라고 할 수 있다. 공의회를 개최했던 두 교황과 공의회 교부들은 새로운 가톨릭의 일치를 기대했지만, 이러한 일치 대신에 분열과 불일치가 찾아왔다. 새로운 감격이 기대되었는데 무력감에 빠져들게 되었고, 일보증진을 기대했는데 드러난 것은 붕괴의 과정이었다.
2차 바티칸 공의회가 인류에 다가서고 세상과 대화하고 뭔가 이제는 자기 자신을 개방하고 이제는 뭔가 좋은 일들이 일어날 것이다, 새로운 일치가 올 것이다, 그야말로 각박하고 꽉 조아붙이던 빈틈이 없이 화석처럼 굳어버린 그런 교회와 인간, 세상과의 관계 안에서 이제는 좀 여유를 가지고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내 의견을 낼 수 있는 상황으로 가면서 이제는 뭔가 희망이 보인다고 기대를 했지만 사실은 오히려 정반대의 경향이었다.
공의회 이후에 흘렀던 이러한 세 가지 상황을 살펴보면, 첫째로 진보주의; 공의회 이후에 진보적인 사상을 가진 사람들의 의견은 2차 바티칸 공의회가 완전히 한 물 간, 그래서 더 이상 현대에 적합하지 않은 과거지사로밖에 생각하지 않는다. 진보주의는 3차 바티칸 공의회가 다시 열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두번째로 전통주의; 2차 바티칸 공의회가 바로 현재 일어나는 교회 붕괴의 원인이 되었다. 그리고 1차 바티칸 공의회와 트리엔트 공의회의 정신을 파괴시켰다. 2차 바티칸 공의회 때문에 우리가 망했다는 말. 셋째로 중도주의; 성서와 교부에 근거를 두고 교회를 건설하려는 노선. 이것은 2차 바티칸 공의회를 가능케했던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 부류의 사람들이 2차 바티칸 공의회를 주도했고 또 지금까지 교회를 이끌고 있다(칼 라너).
이렇게 공의회 이후의 시대에는 이와 같은 여러 가지 자기 주장들이 나오고 곳곳의 지역교회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게 됨에 따라서 자율과 개방을 주었더니 이제는 불일치, 서로간의 극단적인 대립을 가져왔다(예: 보프). 이런 새로운 교회의 위기. 자율과 개방을 허용하면서 그것이 자기 목소리를 내면서 완전히 혼란에 빠졌다. 공의회 이후의 이러한 상황을 되프너 추기경은 이렇게 말한다; “공의회 이후의 교회는 설계도를 잃어버린 하나의 거대한 건축 공사장과 같다. 그래서 각자 자기 생각대로 작업하는 공사장이다.” 이 상황은 교회법과 위계질서라는 커다란 장벽 앞에서 가톨릭 내부에 잠재되어 있던 다원적이고도 원심적인 여러 가지 긍정적인 힘이 전면에 부각되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이것은 과도기적 상황으로서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괜찮다고 한다. 하지만 사실은 갑작스런 무분별한 개방, 저마다 각자의 준거점에 따라서 개방을 실행하려고 하는데 더 큰 원인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적어도 한 가지는 분명하게 되었다. 공의회의 참된 정신을 아직 구현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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