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구성원 요건과 교회일치-교회일치 문제(가톨릭교회의 정당성-중)

 

아욱스부르그 신앙고백(Confessio Augustana)은 ‘복음의 정당한 선교 그리고 이 선교의 정당한 권위, 더 나아가서 여러 성서, 세례, 성찬식의 정당한 권리’를 진정한 교회의 기준에 유일한 기준으로 보았다. 종교 개혁자들은 진정한 교회의 기준에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다음과 같은 사실은 확신하고 있었다. 즉, 로마교회가, 특히 교황과 여러 가지 권리 주장이 그리스도에 반하는 모습이고, 반그리스도인의 교회라는 확신이었다.


오늘날 아주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여러 교회나 교파가 원칙적으로는 동등하게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경우에 그들은 다음과 같은 하나의 교회라는 것은 처음부터 존재하고 있지 않다는 것, 아니면 그리스도인의 불멸에도 어디엔가 항상 존재하고 있어서 다시 이루어야 할 필요가 없다는 것 이 둘중의 하나이다. 이런 생각은 근본적으로 교회일치의 모든 노력을 무의미하게 한다. 또는 교회일치는 다만 부수적인 일치이며 교회의 본질적인 일치와는 궁극적으로 관계가 없다.


우리는 이러한 교회론적 상대주의를 제쳐놓고 구체적인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찾고자 한다. 우리는 이 교회를 위해 다음과 같은 세가지 기준을 제시할 수 있다.


첫째, 예수의 교회는 원초적인 그리스도의 교회에 가장 가까이, 가장 명확한 연속성을 가지고 있는 곳에 가장 순수하게 발견할 수 있다는 기준이다. 만일 우리가 정말로 그리스도교와 그 역사성을 믿는다면 교회가 그때그때마다 새롭게 창립된다는 따위이 생각을 할 수 없다. 진정한 종교개혁파의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종교개혁이전의 교회를 자기 교회라고 주장할 것이다. 그리고 결코 교회가 종교개혁을 통해서 비로소 형성되었다는 따위의 주장은 할 수 없을 것이다.


즉 사도계승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며 종교개혁 이전에는 교회가 존재하지 않았다고는 주장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와 같이 주장하는 사람은 실제로 아무도 없다. 개신교 그리스도인도 종교개혁 이전의 교회를 역시 자기의 교회라고 주장한다. 즉 교회는 역사적이고 교회적인 합법성을 가지고 전달되고 종교개혁의 교회를 통해 계승되고 발전하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따라서 첫 번째 기준은 분명하다. 즉 그러한 교회적인 제도는 그것이 원초적인 그리스도교 교회에서 가능한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연속성을 유지하고 있는 한 진정한 그리스도의 교회라는 기준이다. 원로교회롸 현재교회 사이의 시간을 한마디로 반그리스도적이라든가, 반교회적이라고 단정하고 부정하거나 뛰어 넘을 수는 없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그리스도교의 역사적이고 구체적인 연속성을 체념할 수밖에  없다.


둘째, 그리스도교 신앙의 근본 본질, 우리가 자기의 종교적 실존 가운데서 경험한 것이 이 구체적인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원칙적으로 부정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사람은 자기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자기의 구체적인 신앙의 경험 속에서 그리스도교가 무엇인지를 이미 어느정도 알고 있다. 그리고 자기가 경험한 그리스도교의 현실이 이미 존재하는 데서만 예수 그리스도의  진정한 교회가 존재하는 것을 믿고 있다. 따라서 그리스도 교회는 자기가 실존에서 경험하는 그리스도교의 본질에 모순되지 않는 한에서 진정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로 인정된다.


셋째, 확실히 종교적인 공동체는 자기의 주관성에 의존하지 않는 존재로서 ‘교회’이어야 한다. 그리스도교의 종교성은 구체적이고 사회적인 자기 주관성에 의존하지 않는 존재로서의 교회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 교회는 정말로 우리의 자의에 의존자지 않는 교회라야 한다.


이상에서 제시한 세가지 원칙을 토대로 우리 가톨릭 교회에 적용해 본다. 이 경우 신학상의 논쟁을 피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또한 우리의 해답이 다른 그리스도인의 대답에 모순될지라도 이러한 사실은 이 문제를 방치해둘 수가 없다. 물론 어떤 그리스도인도 이 물음에 대답하기란 메우 어렵다. 어떤 구체적인 공동체가 정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로서 그 역사적이도 정당한 합법성과 근본본질을가지고 있느냐의 물음은  대단히 어려운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다음의 사실을 인정해야 함은 확실하다. 즉 다른 교파에 속한 그리스도인도 역시 하느님의 은총 속에 살고 있고, 성령에 충만되어있고, 의화받는 존재이고, 하느님의 자녀이며 예수 그리스도와 결합된 존재라는 것이다. 나아가 교회의 사회적 차원에서, 아주 많은 점에서 다른 모든 그리스도인, 다른 여러 교파와 결합된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을 하나로 하는 것, 그리스도인 모두에 공통된 것이 그리스도인을 분열시키는 것보다 훨씬 많다는 데에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리고 그리스도인 전체에 공동되는 것이 상이한 것보다 그리스도교 본질에 훨씬 더 근본적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심각한 문제로 다가오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교파로 나뉘어진 그리스도교 교회들이다. 왜냐하면 그 그리스도교 교회들은 정말로 우리가 피할 수 없는 역사적 존재이고 바로 그 때문에 우리에게 다가오는 구체적인 물음이기 때문이다.


이상에서 고찰한 모든 전제하에 우리는 가톨릭 신자로서 다음과 같이 묻는다. 가톨릭 교회가 그리스도의 교회일 수 있다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인가? 이에 대해 우리는 다음과 같이 대답할 수 있다.


“가톨릭 교회는 과거 교회와의 역사적 연속성을 구체적으로 사도시대까지 소급해서 가지고 있고, 그 연속성이 다른 교회들 보다 더 농후하고 더 자명하고, 즉시 인정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가톨릭 교회는 사도시대로부터 아주 커다란 변천과 확대와 발전을 거쳐서 구체적으로 그 모습을 갖추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톨릭교회에서 종교개혁이후의 교회와 교대교회와의 역사적 연속성은 다른 교파의 교회들보다 더 크고, 더 명확하고, 더 자명하다고 말할 수 있다. 가톨릭교회는 베드로의 직무와 사도시대에 소급하기까지 자명하고 역사적 유대를 지닌 주교제도를 가지고 있는 교회이다. 종교개혁이전에 이미 로마 주교가 있었고, 그 로마 주교가 지니는 특정한 권위가 있었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개혁이후의 가톨릭교회가 더 직접적이고 자명한 원초교회로부터의 연속성을 가지고 잇따는 것도 논란의 여지가 없다. 특히 개신교 교회는 자기 교회가 종교개혁이전 교회와의 연속성을 증명하기 위해서 이전 교회에서의 많은 요소를 불필요한 것이라든가, 혹은 비그리스도교적, 반그리스도교적이라고 말해야한다. 그들은 적어도 교회의 주교제도에 관해서, 이 주교제도의 계승에 관해서 그리고 베드로의 직무에 관해서는 가톨릭교회가 고대교회와 더 자명하고 계속적인 연속성이 있다고 말한다.(주교제도 이외에 예컨대 교회법이나 성사의 여러 가지 실천에 대해서도 꼭 같은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종교개혁시대의 개신교 교회는 아욱스부르그 신앙교백에서 분명히 천명하는 바와 같이 주교와 교황을 가진 교회를 그 자체가 합법적으로 계승된 교회라고 보고 있었다.


그리고 개신교 교회가 가톨릭교회를 탈퇴한 이유는다만 다음과 같은 확신에 의한 것이었다. 즉, 가톨릭교회가 참된 그리스도교 신앙과 은총에 의해서만 구원될 수 있다는 교회 가르침을 소홀히 유지했고, 또 그 유지방식이 충분히 명확치 못했다는 확신이었다. 원칙적으로 가톨릭 그리스도인도 다음의 사실을 부정할 필요가 없다. 즉, 중세 이후 교회의 생활과 실천에 모순된 많은 경향이 존재했던 것, 그리고 그 경향이 교회의 발전을 극심하게 거역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교회의 부족함과 잘못을 반성해야 하는것이지 이것이 가톨릭교회로부터 탈퇴라는 정당한 근거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게되면 그때그때마다 새로운 탈퇴들이 줄을 잇게 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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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uest 님의 말:

     

    아욱스부르그 신앙고백(Confessio Augustana)은 ‘복음의 정당한 선교 그리고 이 선교의 정당한 권위, 더 나아가서 여러 성서, 세례, 성찬식의 정당한 권리’를 진정한 교회의 기준에 유일한 기준으로 보았다. 종교 개혁자들은 진정한 교회의 기준에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다음과 같은 사실은 확신하고 있었다. 즉, 로마교회가, 특히 교황과 여러 가지 권리 주장이 그리스도에 반하는 모습이고, 반그리스도인의 교회라는 확신이었다.

    오늘날 아주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여러 교회나 교파가 원칙적으로는 동등하게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경우에 그들은 다음과 같은 하나의 교회라는 것은 처음부터 존재하고 있지 않다는 것, 아니면 그리스도인의 불멸에도 어디엔가 항상 존재하고 있어서 다시 이루어야 할 필요가 없다는 것 이 둘중의 하나이다. 이런 생각은 근본적으로 교회일치의 모든 노력을 무의미하게 한다. 또는 교회일치는 다만 부수적인 일치이며 교회의 본질적인 일치와는 궁극적으로 관계가 없다.

    우리는 이러한 교회론적 상대주의를 제쳐놓고 구체적인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찾고자 한다. 우리는 이 교회를 위해 다음과 같은 세가지 기준을 제시할 수 있다.

    첫째, 예수의 교회는 원초적인 그리스도의 교회에 가장 가까이, 가장 명확한 연속성을 가지고 있는 곳에 가장 순수하게 발견할 수 있다는 기준이다. 만일 우리가 정말로 그리스도교와 그 역사성을 믿는다면 교회가 그때그때마다 새롭게 창립된다는 따위이 생각을 할 수 없다. 진정한 종교개혁파의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종교개혁이전의 교회를 자기 교회라고 주장할 것이다. 그리고 결코 교회가 종교개혁을 통해서 비로소 형성되었다는 따위의 주장은 할 수 없을 것이다.

    즉 사도계승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며 종교개혁 이전에는 교회가 존재하지 않았다고는 주장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와 같이 주장하는 사람은 실제로 아무도 없다. 개신교 그리스도인도 종교개혁 이전의 교회를 역시 자기의 교회라고 주장한다. 즉 교회는 역사적이고 교회적인 합법성을 가지고 전달되고 종교개혁의 교회를 통해 계승되고 발전하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따라서 첫 번째 기준은 분명하다. 즉 그러한 교회적인 제도는 그것이 원초적인 그리스도교 교회에서 가능한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연속성을 유지하고 있는 한 진정한 그리스도의 교회라는 기준이다. 원로교회롸 현재교회 사이의 시간을 한마디로 반그리스도적이라든가, 반교회적이라고 단정하고 부정하거나 뛰어 넘을 수는 없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그리스도교의 역사적이고 구체적인 연속성을 체념할 수밖에  없다.

    둘째, 그리스도교 신앙의 근본 본질, 우리가 자기의 종교적 실존 가운데서 경험한 것이 이 구체적인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원칙적으로 부정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사람은 자기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자기의 구체적인 신앙의 경험 속에서 그리스도교가 무엇인지를 이미 어느정도 알고 있다. 그리고 자기가 경험한 그리스도교의 현실이 이미 존재하는 데서만 예수 그리스도의  진정한 교회가 존재하는 것을 믿고 있다. 따라서 그리스도 교회는 자기가 실존에서 경험하는 그리스도교의 본질에 모순되지 않는 한에서 진정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로 인정된다.

    셋째, 확실히 종교적인 공동체는 자기의 주관성에 의존하지 않는 존재로서 ‘교회’이어야 한다. 그리스도교의 종교성은 구체적이고 사회적인 자기 주관성에 의존하지 않는 존재로서의 교회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 교회는 정말로 우리의 자의에 의존자지 않는 교회라야 한다.

    이상에서 제시한 세가지 원칙을 토대로 우리 가톨릭 교회에 적용해 본다. 이 경우 신학상의 논쟁을 피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또한 우리의 해답이 다른 그리스도인의 대답에 모순될지라도 이러한 사실은 이 문제를 방치해둘 수가 없다. 물론 어떤 그리스도인도 이 물음에 대답하기란 메우 어렵다. 어떤 구체적인 공동체가 정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로서 그 역사적이도 정당한 합법성과 근본본질을가지고 있느냐의 물음은  대단히 어려운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다음의 사실을 인정해야 함은 확실하다. 즉 다른 교파에 속한 그리스도인도 역시 하느님의 은총 속에 살고 있고, 성령에 충만되어있고, 의화받는 존재이고, 하느님의 자녀이며 예수 그리스도와 결합된 존재라는 것이다. 나아가 교회의 사회적 차원에서, 아주 많은 점에서 다른 모든 그리스도인, 다른 여러 교파와 결합된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을 하나로 하는 것, 그리스도인 모두에 공통된 것이 그리스도인을 분열시키는 것보다 훨씬 많다는 데에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리고 그리스도인 전체에 공동되는 것이 상이한 것보다 그리스도교 본질에 훨씬 더 근본적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심각한 문제로 다가오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교파로 나뉘어진 그리스도교 교회들이다. 왜냐하면 그 그리스도교 교회들은 정말로 우리가 피할 수 없는 역사적 존재이고 바로 그 때문에 우리에게 다가오는 구체적인 물음이기 때문이다.

    이상에서 고찰한 모든 전제하에 우리는 가톨릭 신자로서 다음과 같이 묻는다. 가톨릭 교회가 그리스도의 교회일 수 있다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인가? 이에 대해 우리는 다음과 같이 대답할 수 있다.

    “가톨릭 교회는 과거 교회와의 역사적 연속성을 구체적으로 사도시대까지 소급해서 가지고 있고, 그 연속성이 다른 교회들 보다 더 농후하고 더 자명하고, 즉시 인정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가톨릭 교회는 사도시대로부터 아주 커다란 변천과 확대와 발전을 거쳐서 구체적으로 그 모습을 갖추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톨릭교회에서 종교개혁이후의 교회와 교대교회와의 역사적 연속성은 다른 교파의 교회들보다 더 크고, 더 명확하고, 더 자명하다고 말할 수 있다. 가톨릭교회는 베드로의 직무와 사도시대에 소급하기까지 자명하고 역사적 유대를 지닌 주교제도를 가지고 있는 교회이다. 종교개혁이전에 이미 로마 주교가 있었고, 그 로마 주교가 지니는 특정한 권위가 있었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개혁이후의 가톨릭교회가 더 직접적이고 자명한 원초교회로부터의 연속성을 가지고 잇따는 것도 논란의 여지가 없다. 특히 개신교 교회는 자기 교회가 종교개혁이전 교회와의 연속성을 증명하기 위해서 이전 교회에서의 많은 요소를 불필요한 것이라든가, 혹은 비그리스도교적, 반그리스도교적이라고 말해야한다. 그들은 적어도 교회의 주교제도에 관해서, 이 주교제도의 계승에 관해서 그리고 베드로의 직무에 관해서는 가톨릭교회가 고대교회와 더 자명하고 계속적인 연속성이 있다고 말한다.(주교제도 이외에 예컨대 교회법이나 성사의 여러 가지 실천에 대해서도 꼭 같은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종교개혁시대의 개신교 교회는 아욱스부르그 신앙교백에서 분명히 천명하는 바와 같이 주교와 교황을 가진 교회를 그 자체가 합법적으로 계승된 교회라고 보고 있었다.

    그리고 개신교 교회가 가톨릭교회를 탈퇴한 이유는다만 다음과 같은 확신에 의한 것이었다. 즉, 가톨릭교회가 참된 그리스도교 신앙과 은총에 의해서만 구원될 수 있다는 교회 가르침을 소홀히 유지했고, 또 그 유지방식이 충분히 명확치 못했다는 확신이었다. 원칙적으로 가톨릭 그리스도인도 다음의 사실을 부정할 필요가 없다. 즉, 중세 이후 교회의 생활과 실천에 모순된 많은 경향이 존재했던 것, 그리고 그 경향이 교회의 발전을 극심하게 거역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교회의 부족함과 잘못을 반성해야 하는것이지 이것이 가톨릭교회로부터 탈퇴라는 정당한 근거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게되면 그때그때마다 새로운 탈퇴들이 줄을 잇게 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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