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 교회 직무의 본질
교회 구조에 대한 탐구는 근본적으로 교회상을 규정짓는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또한 우리가 교회상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의 문제는 우리는 과연 나자렛 예수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으며 예수는 도대체 어떤 교회를 원했는가 하는 문제로 요약된다.
교회는 예수를 근거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전통을 토대로 고찰할 때 우리는 먼저 예수가 공동체와 관련되는 어떠한 직무도 구상하지 않았다는 것을 첫 번째로 말할 수 있다. 예수는 우선적으로 스스로를 파견된 자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사실 예수는 직무와 연결된 부르심을 생각하지 않았다. 예수는 하느님의 권능 안에서 소명을 이루려고 왔고 그 소명을 자신의 이름으로 이루려 하지 않았다. 예수는 자신을 보내신 분으로 아버지를 말했고 아버지에 의해 파견된 자로 스스로를 이해했다. 그리고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자신의 소명이 계속되기를 원했다. 따라서 교회상과 교회 구조는 근본적으로 이러한 구도 안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즉 교회는 하느님으로부터의 권위에 의해 규정된다는 것이다 :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요한 29.21)
이러한 기본 구도를 토대로 우리는 먼저 12제자에 주목한다. 12제자의 선정은 다분히 상징성을 내포하고 있다. 즉, 새로운 이스라엘을 미리 앞당겨 보여주는 예표로서, 현재의 이스라엘에 대한 사자로서, 또한 마지막 시대에 이스라엘 12지파를 심판할 판관으로서의 상징이다. 12제자의 부르심은 결코 교회 위에 있는 존재로서의 의미가 아니었다. 오히려 공동체의 형성과 존재와 관계되었다. 12제자는 지금 이 자리에 모여드는 하느님 백성을 일치시키고 결합시키는 중심으로서 의미를 가진다. 12제자는 그들 안에 시몬 베드로를 머리로 하여 교회의 기초를 세우는 일치를 형성한다. 예수에 의해서 12제자는 예수가 보내졌던 소명인 세상에로의 봉사를 확장하도록 명받았고 바로 그 소명에로 파견되었던 것이다.
예수의 아버지에 대한 관계와 제자들의 예수에 대한 관계는 서로 유비적인 의미를 가진다. 예수가 아버지로부터 파견된 사람인 것처럼 제자들은 예수로부터 파견된 사람들이다. 예수는 아들로서 자기 스스로는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것처럼12제자도 제자로서 그들 스스로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 제자로서 삶의 내용과 소명은 오로지 하느님 말씀이다. 제자로서의 권위는 자신들의 이름으로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하고 행하는 ‘자기 스스로를 버리는 것’에 있다.
이러한 신약 성서적인 직무는 예수가 준 명령을 계속 이행하는데 있고 그것은 전혀 다른 방법으로 새로운 시작과 과업이라 할 수 있다. 사도들은 민주적으로 선출된 것이 아니라 다만 예수에 의해 소명으로 불림을 받았다. 그리스도교이외의 고대 종교 사회 안에는 초대 교회의 직무와 같은 직무의 유형이나 비슷한 예를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초대교회내에는 오직 봉사만이 존재했고 이 봉사의 직무는 종교역사안에서 대단히 독특한 것으로 주목할 수 있다. 따라서 모든 그리스도교 직무는 오직 예수의 말씀에 따른 봉사인 것이고 또 봉사만이다. 그리스도교 직무담당자는 무엇보다도 희생 제사나 예배 행위로부터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의 봉사자로서 이해되어야 하는 것이다. 교회 직무에 대한 가장 오래된 신학은 첫 번째로 말씀을 선포하는 능력과 소명을 말하고 있다. 이로부터 나아가 직무의 전례적인 요소가 결부된다. 성찬은 바로 예수의 행위 안으로 몰입하는 것이고 교회를 건설하는 것이지 때문이다. 성찬은 말씀과 성사 그리고 그리스도교 삶의 당위성을 하나로 일치시키고 있고 여기에 또한 봉사 직무의 포괄적인 과업이 가시적으로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모든 직무의 형성은 그리스도의 몸을 건설하는 봉사인 것이다. 봉사는 바로 직무의 척도인 것이다.
신약성서적인 직무의 유형은 유대 그리스도교 지역과 이방인 그리스도교 지역에서 보여주는 바와 같이 두 가지로 구별된다. 유대 그리스도교는 보다 더 배타적이고 지방색을 갖는 지역 교회의 특성을 가지고 있고 이방인 그리스도교는 보다 더 선교적이고 확장되는 선교 교회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물론 여기서는 단순한 2분법은 허용되지 않는다. 이방인 그리스도교에도 지역 교회가 있었고 유대 그리스도교도 선교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대 그리스도교 지역은 본질적으로 유대교 회당과 성전 직무의 형태와 연결된다. 또한 유대 그리스도교 지역 공동체들은 사제들의 연대를 토대로 하고 있다. 공동체는 ‘사제’와 ‘원로’들에 의해 유지되었다. 따라서 사제와 원로들은 즉시 각각 공동체의 지도자로 영적인 기능을 포함하게 되었다. “여러분 가운데 앓는 사람이 있으면 교회의 원로들을 청하십시오. 원로들은 주님의 이름으로 그에게 기름을 바르고 그를 위하여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야고보 5. 14) 여기에는 다만 관리자로서의 지도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수장이라는 요소도 포함되어 있다.
이방인 그리스도교 지역은 무엇보다도 부활하신 예수에 의해 이방인들의 선교에로 불림을 받은 바오로의 영향으로 각인되어 있다. 이방인 그리스도교 지역은 물론 지역 교회도 존재했지만 바오로 선교의 중심 역할을 담당했다. 필립비서에서부터 ‘주교’와 ‘봉사자’들에 대한 언급이 시작된다.(필립 1. 1) 이방인 그리스도교 지역에 있어 본래의 중점은 선교에 있었고 결정적인 봉사는 선교를 의미했다. 이 지역 본래의 직무는 지역교회적인 것이 아니라 선교적인 특성을 갖는다. 바오로에 있어서 사도란 다름 아닌 주님의 봉사자요 파견된 사람이었다.(로마 16. 7; 2고린 8. 23; 필립 2. 25; 사도 14. 4, 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