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본론
제 1 장. 민중 예수
제 1 절 해방자 예수
신약성서 전체에서 말하고 있는 메세지는 한마디로 ‘예수는 착취당하고 억압당하고 버림받고 짓밟히는 가난한 사람들의 해방자’ 라는 것이다. 예수는 스스로 가난한 사람이었으며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가난 그 자체였다. 그는 가난한 이들의 숨결로 말했다. 또한 그는 가난한 이들과 희노애락을 함께 했으며, 가난한 이들에게 운명지워진 죽음을 맞이했다.예수는 예언자의 경우나 계약법전 (출애 20,22-23,19) 과 같이, 집권자․부자의 죄악에 대해 경고하고 규탄한데 비해 가난한 자․눌린 자․소외된 자에게는 위로와 희망과 그들과의 동일화를 표명했다. 서남동,「한(恨)-신학․문학․미술의 만남」 (왜관:분도출판사,1984), p.69
복음서 자체도 가난한 이들의 공동체로부터 생겨나왔다. 성서에서 “가난”은 경제적, 사회적 상태만 뜻하지 않고, 인간의 정신적 성향과 마음의 자세를 나타낸다. 실제 성서는 진실로 가난한 자들이 하느님 나라를 상속할 특전을 소유한다고 보여준다.ꡒ세속적인 견지에서 볼 때 여러분 중에 지혜로운 사람, 유력한 사람, 또는 가문이 좋은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었습니까?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 이 세상의 어리석은 사람들을 택하셨읍니다ꡓ(I고린 1,26-27).
그리고 복음서들은 억압받는 자들의 공동체에서 생겨났다 (야고 2,6-7 참조). 특히 마르코 복음서에 의하면 예수는 민중 운동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H.C.Pajares,「민중의 예수」,이종렬 역 (서울:성요셉출판사,1987), pp.13-21 참
조.
즉 예수는 역사와 사회안에서 민중이 곧 주체임을 역설하였다. ꡒ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마침내 문 앞까지 빈틈없이 들어 섰다ꡓ(마르 1,45 ; 2,2 ; 3,20 ; 4,1 ; 5,21 ; 6,31 참조). 이런 예수는 특권과 권위에 충돌하였으며, 예수를 고발한 자들은 소위 권력있는 자들이었다. 예수의 태도는 충격적이며, 지식층의 빈축을 사서 반감을 불러 일으키고 말았다. 그래서 예수는 신성 모독죄로 고발되어 민중에게 운명지어진 죽음을 맞이 했던 것이다.
신약성서에 의하면 건강을 가져다 주는 예수는 바로 기쁨을 주는 예수이다 (마르 2,10.15-17). 그의 모든 행위와 목적은 치유하는 것, 즉 고통스런 상태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병자의 치유와 죽은 자의 소생은 예수의 메시아적 사명의 표징이며,예수의 최종적 승리의 전주곡이다. 의사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예수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고통받고 있는 민중의 처지이다. 위의 책, p.26
다시 말해서 예수의 사명은 고통받는 민중의 해방에 있었다. 예수의 큰 뜻은 하층민의 처지에 무관심한 경건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예수가 맡은 일은 곧 그들의 죄악과 비참함을 제거하는 데 있었던 것이다. ꡒ없는 이를 티끌에서 일으키시고 가난한 이 거름에서 일으키시어 당신 백성들 으뜸들 그 으뜸들과 한자리에 있게 하시었도다. 돌 계집도 집안에 살게 하시어 아들 두고 기뻐하는 어미되게 하셨도다.ꡓ (시편 112,7-9).예수는 사실 말로써뿐 아니라 (마르 2,5-10) 행동으로까지 그들의 죄악을 용서하시고 비참을 제거하신다. 예수의 용서는, 민중을 배척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분쇄해 버리는 힘이다. H.C.Pajares,앞의 책, p.28 참조.
예수는 세상의 장벽을 강화시키기 위해서 세상에 온 것이 아니라, 그것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온 것이다. 따라서 예수가 버림받은 자들에게 몰두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예수의 힘은 극도로 소외되어 멸시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것이다. 그는 기쁨으로 가득한 하느님 왕국의 초대장을 전하는 주님이시다 (마태 22,1-14 ; 루가 14,16-24). 이 잔치의 초대에 응한 사람들은 바로 가난한 사람, 불구자, 절름발이, 맹인 즉 소외된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예수를 따른다는 것은 소외된 사람들의 형제 자매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하느님 나라의 정의는 언제나 곤경에 처한 사람들, 약자들, 불행한 자들, 피해자들 편에 서 있는 것이다. W. Schweitzer,“가난한 자들의 신학.”, p.176에서 재인용.
즉, 이러한 예수의 사명은 바로 억압받는 민중을 해방시키는 하느님의 사랑으로부터 나오는 것으로 그들을 기쁨에로 초대하는 것이다 (마르 2,19). 다시 말해서 ‘예수는 착취당하고 억압당하고 버림받고 짓밟히는 가난한 사람들의 해방자’ 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