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절 민중의 예수
민중신학에서는 민중의 의미를 예수의 민중성에서 찾고자 노력한다. 안병무,「민중신학 이야기」 (서울:한국신학 연구소,1987), p.27 ; 전경연,「한
국민중신학의 조명」 (서울:대화출판사,1985), p.53 참조;그러나 대부분의 민중
신학자들은 민중의 개념을 명확히 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으며, 오히려 거부한다.
민중은 살아 있는 실체이므로 대상화될 수 없으며, 따라서 개념적인 정의 따위는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민중신학은 아직도 주먹구구식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따라서 민중신학에서는 민중의 관점에서 예수의 행위와 메세지를 바라봄으로써 예수와의 관계속에서 드러나는 민중의 의미, 곧 민중의 그리스도론적 의미를 밝히고자 한다.
첫째, 예수의 사명 자체는 민중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었다.
주님의 성령이 나에게 내리셨다.
주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주께서 나를 보내시어
묶인 사람들에게 해방을 알려주고
눈먼 사람들을 보게 하고
억눌린 사람들에게는 자유를 주며
주님의 은총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 루가 4,18-19 ).
예수의 이 사명선포는 예수가 실제로 가난한 사람들, 묶인 사람들, 눈먼 사람들, 억눌린 사람들을 해방하기 위하여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음을 보증해 준다는 것이다. 즉 예수의 삶의 본질적 목적이 민중과 직결되어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안병무,「갈릴래아의 예수」 (서울:한국신학 연구소,1990), p.100
예수에게 있어서 민중의 문제는 곧 자신의 문제였던 것이다.
둘째, 예수는 자신을 민중과 동일시했다.
예수는 자신을 주린 자, 목마른자, 방랑자, 헐벗은 자, 병든 자와 일치시킨다. 안병무,위의 책, p.239.
또한 민중신학자들은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 (루가 10장)에서 그리스도의 역을 담당한 자는 다름아닌 ‘강도 만남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서남동,「한(恨)-신학․문학․미술의 만남」, pp.72-73.
특히 서남동은 이렇게 찾아오시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세속적 그리스도’ 혹은 ‘한의 그리스도’라고 칭한다. 민중신학에서는 예수가 스스로를 억눌리고 가난한 이들과 일치시켰다는 점에서,민중을 그리스도의 현존을 드러내는 하나의 성사로 본다.
세째, 예수 자신이 스스로 민중이었다.
우선 예수는 자신의 출신이나 삶의 형태로 보아 하나의 민중이었다. 또한 삶의 방식까지 완전한 민중의 방식이었다. 더우기 “예수의 수난과 죽음은 민중이 당한 억울함의 압축이며 버림받은 자의 죽음이다.” 안병무는 예수 개인이 부당한 재판으로 처형당하는 것이 아니라, 민중집단이 그
렇게 당하는 것으로 보며, 따라서 예수를 수난당하는 민중의 표상으로 본다.
따라서 그는 예수사건을 단 일회적 사건으로 보지 않고 역사속에서, 민중 가운데
서 끊임없이 재현되는 것으로 본다.
네째, 예수는 민중과 더불어 살았다.
예수가 가는 곳에 언제나 민중이 있었고 (마르 2,4.13 ; 3,9 .20 .32등), 민중과 함께 식탁을 함께 했고 (마르 2,13-17 ; 루가 7,33-34), 예수는 이 민중을 “내 어머니와 내 형제”라고 선언했다 (마르 3,31-34). 즉 예수는 지금 고난당하는 무리, 지금 배고프고,지금 울고, 지금 목마르고, 지금 억눌린 자들과 함께 살았다. 다시 말해서 “민중과 더불어 예수가 있는 곳에 민중이 민중이 있고, 민중이 있는 곳에 예수가 있다” 고 할 수 있다. 안병무,「민중과 한국신학」 (서울:한국신학 연구소,1982), p.181
즉, 민중은 더 이상 예수 행위의 들러리가 아니라, 예수의 민중운동의 중심세력으로 이해된다.

제 2 절 민중의 예수
민중신학에서는 민중의 의미를 예수의 민중성에서 찾고자 노력한다. 안병무,「민중신학 이야기」 (서울:한국신학 연구소,1987), p.27 ; 전경연,「한
국민중신학의 조명」 (서울:대화출판사,1985), p.53 참조;그러나 대부분의 민중
신학자들은 민중의 개념을 명확히 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으며, 오히려 거부한다.
민중은 살아 있는 실체이므로 대상화될 수 없으며, 따라서 개념적인 정의 따위는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민중신학은 아직도 주먹구구식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따라서 민중신학에서는 민중의 관점에서 예수의 행위와 메세지를 바라봄으로써 예수와의 관계속에서 드러나는 민중의 의미, 곧 민중의 그리스도론적 의미를 밝히고자 한다.
첫째, 예수의 사명 자체는 민중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었다.
주님의 성령이 나에게 내리셨다.
주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주께서 나를 보내시어
묶인 사람들에게 해방을 알려주고
눈먼 사람들을 보게 하고
억눌린 사람들에게는 자유를 주며
주님의 은총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 루가 4,18-19 ).
예수의 이 사명선포는 예수가 실제로 가난한 사람들, 묶인 사람들, 눈먼 사람들, 억눌린 사람들을 해방하기 위하여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음을 보증해 준다는 것이다. 즉 예수의 삶의 본질적 목적이 민중과 직결되어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안병무,「갈릴래아의 예수」 (서울:한국신학 연구소,1990), p.100
예수에게 있어서 민중의 문제는 곧 자신의 문제였던 것이다.
둘째, 예수는 자신을 민중과 동일시했다.
예수는 자신을 주린 자, 목마른자, 방랑자, 헐벗은 자, 병든 자와 일치시킨다. 안병무,위의 책, p.239.
또한 민중신학자들은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 (루가 10장)에서 그리스도의 역을 담당한 자는 다름아닌 ‘강도 만남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서남동,「한(恨)-신학․문학․미술의 만남」, pp.72-73.
특히 서남동은 이렇게 찾아오시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세속적 그리스도’ 혹은 ‘한의 그리스도’라고 칭한다. 민중신학에서는 예수가 스스로를 억눌리고 가난한 이들과 일치시켰다는 점에서,민중을 그리스도의 현존을 드러내는 하나의 성사로 본다.
세째, 예수 자신이 스스로 민중이었다.
우선 예수는 자신의 출신이나 삶의 형태로 보아 하나의 민중이었다. 또한 삶의 방식까지 완전한 민중의 방식이었다. 더우기 “예수의 수난과 죽음은 민중이 당한 억울함의 압축이며 버림받은 자의 죽음이다.” 안병무는 예수 개인이 부당한 재판으로 처형당하는 것이 아니라, 민중집단이 그
렇게 당하는 것으로 보며, 따라서 예수를 수난당하는 민중의 표상으로 본다.
따라서 그는 예수사건을 단 일회적 사건으로 보지 않고 역사속에서, 민중 가운데
서 끊임없이 재현되는 것으로 본다.
네째, 예수는 민중과 더불어 살았다.
예수가 가는 곳에 언제나 민중이 있었고 (마르 2,4.13 ; 3,9 .20 .32등), 민중과 함께 식탁을 함께 했고 (마르 2,13-17 ; 루가 7,33-34), 예수는 이 민중을 “내 어머니와 내 형제”라고 선언했다 (마르 3,31-34). 즉 예수는 지금 고난당하는 무리, 지금 배고프고,지금 울고, 지금 목마르고, 지금 억눌린 자들과 함께 살았다. 다시 말해서 “민중과 더불어 예수가 있는 곳에 민중이 민중이 있고, 민중이 있는 곳에 예수가 있다” 고 할 수 있다. 안병무,「민중과 한국신학」 (서울:한국신학 연구소,1982), p.181
즉, 민중은 더 이상 예수 행위의 들러리가 아니라, 예수의 민중운동의 중심세력으로 이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