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론-제 2 차 바티칸 공의회(공의회의 배경)

 

6. 제 2 차 바티칸 공의회




6. 1. 공의회의 배경


제 2차 바티칸 공의회는 16세기 종교 분열 이후 약 4백년간에 걸쳐 교회의 생활과 양상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끼쳤던 트리엔트 공의희 사상에 막을 내리게 한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트리엔트 시대의 특징은 단적으로 말해서 종교 개혁에 대한 반종교 개혁적 자세와 세속주의에 대한 반세속주의 내지 반세계적 태도로 일관된 시대였다. 물론 이것은 16세기에서 19세기에 이르는 시대 상황 아래에서 교회가 취한 호교적 입장의 외적 표현이다. 몇 가지 대표적 입장을 나열해 본다.1)


첫째, 종교 개혁가들이 교회의 교계 제도를 공격함에 따라, 가톨릭 교회는 교계 제도가 신적 권위의 설정임을 주장한 동시에, 교회를 완전한 사회(Societas Perpecta)라 하여 교회의 가시적 사회성을 강조해왔다. 이것은 교회로 하여금 군주정체(君主政體)와 다름없는 봉건적 신분 사회로 교회를 인식하게 했고, 그리하여 성직자와 평신도 사이에 격심한 신분적 차별이 생기게 되었으며 성직자 위주의 교회상을 간직한 채 ‘성직자 중심주의’(Clericalism)로 비판 받아왔다.


둘째, 종교 개혁가들이 성직자의 직무 사제직을 부인함에 따라 가톨릭 교회는 신품 성사의 존엄을 더 강조했고, 그것은 모든 신자들의 공통 사제직(Sacerdotium commune)을 등안시하게된 역효과를 낳았다. 지금에 와서 평신도들을 향해 “여러분도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참여하는 사제입니다”라고 외친다해도 그들에게 잘 납득되어지지 않는 현실의 경험은 교회의 사제직에 대한 관념이 얼마나 성직자들에게 편중되어 있었는지를 잘 드러내 준다.


세째, 성서지상주의(Sola Scriptura)를 외치고 갈라져 나간 종교 개혁가들은 성서의 자유 해석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분열에 분열을 거듭했고, 이것을 지켜본 교회는 이들의 유설과 분열상에 대한 경계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지나치게 성서 해석에 조심스러웠고 그 결과 성서 연구의 부진과 평신도들의 성서에 대한 지식을 감퇴시켰다.


네째, 전례면에 있어 종교 개혁가들이 각 지방 모국어를 전례어로 사용함에 따라 가톨릭은 전통대로 라틴어를 고집했고 그 때문에 전례가 형식화, 제도화, 율법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 결과 전례는 성직자들의 전유물이 되다시피 했고, 전례의 생활화는 저해되고 평신도와 성직자의 계급적 차별과 괴리는 더욱 심해져 갔다.


호교론적 입장에서 오는 역효과들로 인한 이런 문제와 반세계적 자세 안에서 교회는 과거 4백년동안 자라나는 새 시대에 대한 몰이해로 말미암아 차례 차례 자녀들을 잃어가는 아픔을 겪었다. 16세기에는 종교 분열의 혼란 속에서 시대적 선구자들을 잃었고, 17세기에는 갈리까니즘(Gallicanism)에 대항하다 지배층을 상실했고, 18세기에는 사고력의 빈곤으로 위대한 사상가들을 잃었고, 19세기에 와서는 노동자와 대중을 잃어버린 것이다.2)


2차 바티칸 공의회는 이런 상황 하에서 교회 자신에 대한 자각과 그 본성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교회내의 쇄신을 도모하기 위해 (그리고, 그리스도교계의 일치를 촉진하고, 현대 세계와의 대화를 증진하기 위해) 소집되었다. 공의회에서 교회에 대한 새로운 자각 중에서 우리가 중점을 두고 살펴볼 것은 위의 둘째 부분, 곧 트리엔트 시대동안 잊혀졌고 등안시되었다가 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해 새롭게 부각된 공통 사제직에 대해서, 그리고 직무 사제직에 대한 공의회의 입장과 그 이후 교회의 입장은 어떠한지 등에 대해서이다. 사실 공통 사제직은 직무 사제직과의 그 미묘한 관계 속에서, 그리고 성직자 중심주의의 중세, 근대적 상황 속에서 거의 잊혀져왔던 사실이다.


2차 바티칸 공의회에 와서 성직자와 평신도의 신분의 차이를 강조하는 입장은 근본적으로 지양된다. 공의회가, 트리엔트 공의회 후로 성직자와 구별되는 평신도를 일컬어 왔던 ‘하느님의 백성’(Populus Dei) 개념을 성직자와 평신도 모두를 포함하는 전 교회 구성원을 일컫는 개념으로 새롭게 인식하게 되면서 교회의 사제직을 이해함에 있어서도 획기적인 전환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 개념에 의해 그 동안 등안시 해왔던 공통 사제직이 다시 부각되게 되었고, 직무 사제직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2차 바티칸 공의회를 깃점으로 마련되게 되었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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