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평신도 영성에 대한 잘못된 이해
오랫동안 다른 어떤 부분과 마찬가지로 평신도들에게 영성이라는 것은 너무나 자주 사회적, 문화적, 현세적인 맥락과 격리된 것처럼 인식되어 왔고 그런 방법으로 시도되어 왔다. 이렇게 현세적인 측면과 동떨어져 시도된 영성은 평신도 고유의 특성인 ‘세속성’에 맞지 않기 때문에 현세적인 그 어떤 것에도 영향을 주지 못하고 있다.
엄밀한 의미에서 그리스도교의 영성은 오직 한 가지이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하느님의 구원 진리를 받아들이고 생활화하는 삶의 총체적이고 신비적인 차원을 말한다. 이 때 ‘총체적’이라는 말은 인간의 초자연적인 면과 자연적인 면, 영적인 차원과 육적인 차원, 聖과 俗 모두를 포함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수직적인 교계 제도의 고정화와 더불어 이러한 영성의 의미가 초자연적이고 영적인 것, 성스러운 면만 지니는 것으로 인식되어 왔고 이런 인식은 성직자나 수도자의 영성 생활만이 그리스도의 완덕으로 이르는 최선의 길 인양 오해케 만들었다. 평신도들이 가지는 영성은 이런 것에 비해 열등한 방법이고 다른 이들에게 모범이 되는 영성생활이 아닌 것이다. 성직자 수도자들의 영성에 비해 하급적인 것으로 취급되는 평신도들의 영성은 평신도 영성이라는 고유한 측면을 개발하는 데 많은 방해가 되었다.
일반적으로 수직적(종말적) 영성이라고 말하는 영성 이해는 세상의 것을 뛰어 넘는, 그리스도인 삶의 경험적 현실을 뛰어 넘는 차원을 말하는데 이것은 종말에 올 하느님의 나라를 지금 여기서 살아 나아가야 한다는 의미에서 수평적인 영성의 측면과 구분해서 이해되어서는 안된다. 수직적인 영성과 수평적인 영성을 자주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은 영과 육으로 이루어진 인간을 영적인 면과 육적인 면을 분리해서 이원화하려는 것과 같다. 교회는 종말에 올 하느님의 나라를 앞당겨 완성해 가는 표징이며 영성의 이해도 이와 같이 현세적인 질서 속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 모두가 초자연적이며 영적인 삶을 지금 여기서 살아 내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초자연적이고 영적인 것만을 추구하는 영성생활이나 성직자 수도자들의 영성이 모든 평신도들이 따라가야 할 모범인 것처럼 인식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리스도교적 영성은 종말의 희망을 가지고 지금 여기 삶의 자리에서 앞당겨 실현하는 힘이 되는 것이고 초자연적이고 영적인 면뿐만 아니라 자연적이고 육체적인 것을 총체적으로 포함하는 것이기에 그리스도교적 영성은 본질적으로 사회성과 현실을 존중한다. 평신도의 영성이 그 밖의 영성보다 하등하다고 말할 수 없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역사의 진행 과정에서 종말을 先取하여 살아간다는 점에서 모든 그리스도교적 영성은 수직적 영성과 수평적 영성을 동시에 이해하는 것이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