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2. 평신도 영성의 뿌리 – 세속성
평신도의 특징이 세속성에 있는 것만큼 평신도 영성의 뿌리는 세속성에 있다. 세속이 영적인 세계에 반대되어서 더럽고 피해야 할 대상으로만 이해된다면 평신도 영성을 논할 길이 없다. 사실상 세속은 더럽고 경멸하거나 도피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 내고 성화시켜야 할 삶의 자리를 의미한다. 평신도 영성은 세속 안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고 꽃 피울 수 있다. 한마디로 세속은 우리들이 보듬어 안고 나가야 할 우리의 자리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평신도의 신앙생활이 교회활동과 동일시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때로 평신도들은 영성과 열심을 구분하지 못한다. 열심히 교회활동을 하는 것만이 하늘에 보화를 쌓는 일이 아닌데도 그것이 자신이 할 일의 전부인 양 생활한다. 사회적으로는 그렇지 않은 사람이 성당에서는 너무나 정의롭고 사랑이 넘치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을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다. 교회 안에서 봉사하는 것만이 참된 영성의 표출이 아닌 것처럼 평신도들이 더욱 더 인간답게 살아가고자 투신하고, 불의에 대항하여 과감하게 맞서는 행동들 모두가 신앙생활의 한 측면이다. 참다운 그리스도교 영성은 평신도들의 그 어떤 행동에 있어서도 動因이 된다. 세상의 질서를 정화하고 하느님의 질서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 바로 ‘세속성’에 기인한 평신도 영성의 지향점이다. 교회가 종말의 하느님 나라를 지금 보여주는 표징이라는 세속 안에서 하나의 ‘교회’로 살아가야 할 평신도들 역시 지금 여기서 참된 삶을 살아 내야 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육화사건은 바로 영성의 모든 측면을 한 번에 보여 주는 모범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육화는 현세 안에서 살아가는 평신도들에게 ‘세속성’이라는 특징을 배우게 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그 분의 人性이 배제되는 것을 보지 못한다. 하느님의 사랑은 자신의 외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시는 부분에서 절정을 이룬다. 이 세상에서 활동하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행적은 바로 평신도들이 가져야 하는 영성과 사명을 잘 드러내 주고 있다.

4. 2. 평신도 영성의 뿌리 – 세속성
평신도의 특징이 세속성에 있는 것만큼 평신도 영성의 뿌리는 세속성에 있다. 세속이 영적인 세계에 반대되어서 더럽고 피해야 할 대상으로만 이해된다면 평신도 영성을 논할 길이 없다. 사실상 세속은 더럽고 경멸하거나 도피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 내고 성화시켜야 할 삶의 자리를 의미한다. 평신도 영성은 세속 안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고 꽃 피울 수 있다. 한마디로 세속은 우리들이 보듬어 안고 나가야 할 우리의 자리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평신도의 신앙생활이 교회활동과 동일시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때로 평신도들은 영성과 열심을 구분하지 못한다. 열심히 교회활동을 하는 것만이 하늘에 보화를 쌓는 일이 아닌데도 그것이 자신이 할 일의 전부인 양 생활한다. 사회적으로는 그렇지 않은 사람이 성당에서는 너무나 정의롭고 사랑이 넘치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을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다. 교회 안에서 봉사하는 것만이 참된 영성의 표출이 아닌 것처럼 평신도들이 더욱 더 인간답게 살아가고자 투신하고, 불의에 대항하여 과감하게 맞서는 행동들 모두가 신앙생활의 한 측면이다. 참다운 그리스도교 영성은 평신도들의 그 어떤 행동에 있어서도 動因이 된다. 세상의 질서를 정화하고 하느님의 질서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 바로 ‘세속성’에 기인한 평신도 영성의 지향점이다. 교회가 종말의 하느님 나라를 지금 보여주는 표징이라는 세속 안에서 하나의 ‘교회’로 살아가야 할 평신도들 역시 지금 여기서 참된 삶을 살아 내야 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육화사건은 바로 영성의 모든 측면을 한 번에 보여 주는 모범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육화는 현세 안에서 살아가는 평신도들에게 ‘세속성’이라는 특징을 배우게 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그 분의 人性이 배제되는 것을 보지 못한다. 하느님의 사랑은 자신의 외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시는 부분에서 절정을 이룬다. 이 세상에서 활동하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행적은 바로 평신도들이 가져야 하는 영성과 사명을 잘 드러내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