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론 쇄신 배경과 내용
교회 외적 요소로는 세속화와 교회의 위치 변화를 들 수 있다. 16세기 이후 인본주의와 종교 개혁, 프랑스 혁명과 신대륙 발견 등으로 서구사회 전체에서 세속화가 진행된다. 사회에서 신성한 제도들을 제거해 버리려는 세속주의(saecularismus)로 말미암아, 온갖 인간생활 영역이 교회의 영향에서 물러나게 되고, 인간과 세상이 자립성과 고유한 법칙을 갖고 있다는 의식이 대두하게 된다. 한편 계몽주의와 절대주의 국가의 출현은 교회의 존립을 위협하게 된다. 그리고 20세기에 들어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의식의 변화와 전통의 붕괴로 사회는 변화되고, 현대에서 교회의 위치도 변하게 된다. 곧 교회는 세속화된 사회에서 점점 더 디아스포라의 상황, 곧 이방인의 위치에 처하게 되었다. 그러나 바로 이 때문에 “작은 무리”의 모든 구성원들을 활성화시키면서 그들의 단체를 자극하고 보다 많은 것을, 다른 이들로부터 구별하는 것에 보다 보편적인 것에 집중시키면서 마침내 교회의 일반적인 삶에 관해 그리고 교회 권위의 이해와 수행에 관해 민주적 정치의 실천들의 흐름들이 있었고, 마침내 교회 자신에 대한 이해가 바뀌게 된다. 이런 변화된 의식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반영된다.1)
교회 내적 요소에 관해서는 19세기의 역사학 발전에 따른 교부학 및 성서학, 전례학의 발전이 교의신학에 새로운 방향과 방법, 과제를 제공함으로써 교회론 쇄신을 자극하였다. 특히, 튀빙엔 학파를 중심으로 한 신비체 개념의 부상은 교회를 기존의 구조론이나 기능론의 틀이 아니라, 본체론을 심화하는 방향에서 조명하게 되었다.2) 그리고 20세기초의 전례 쇄신은 반종교개혁적, 호교론적 강조점을 수정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졌다.
비오11세는 『Ubi Arcano』에서 그리스도인 사도직은 신자들의 ‘왕다운’ 사제직의 중요한 표현이라고 선포했으며, 비오12세는 『Meditor Dei』를 통해 전례에서 왕다운 사제직의 중요한 역할을 주지시키면서 그 가르침을 자세히 설명했다. 동시에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성찬식을 축성하는 힘을 부여하려는 오류에 반대하여 경고했다. 즉 등급뿐만 아니라 본질에서도 신자들의 사제직과 성품성사에 의해 주어진 특수 사제직 사이에 차이점이 있음을 강조했던 것이다.3)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어떤 교부들은, 여전히 공통 사제직이 불확실하거나 신자들을 혼동시키기 쉬운 것이라며 반대했으나, 공통 사제직은 전례헌장 1항과 14항에서 확고하게 구체화되었다. 교회헌장에서는 미사와 성사에 대한 신자들의 보다 활동적인 참여를 요구하는 기초가 만들어졌다. 그 가르침의 결정적인 부분을 반영한 다른 논의들에서 평신도 사제직의 두드러짐은 교회를 축성된 공동체, 곧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이 세례에 의해 구원사업에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도록 불리운 것으로서 다시 깨닫게 되는 데 기여했다.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