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적 고찰-공통사제직의 근거 : 세례와 견진

 

4 신학적 고찰




4.1 공통사제직의 근거 : 세례와 견진




   성서는 세례와 공통 사제직의 연관성을 보여준다. 즉, 그리스도인은 예수의 피로 말미암아 지성소에 들어가게 되었으며, 예수는 휘장인 자신의 육체를 통해 그리스도인에게 새로운 생명의 길을 터주었으므로,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의 집, 곧 교회공동체를 다스리는 대제관을 모시게 되었다.(히브 10,19-22) 아울러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세례를 받음으로써 누구나 그리스도를 새옷으로 입었기 때문에, 예수 안에서 신앙으로 말미암아 하느님의 아들이 되었다.(갈라 3,26-27)


   그래서, 초대교회와 교부시대에는 도유(塗油)받지 않은 이를 그리스도인으로 간주하지 않았고, 교부들과 전례서들도 신자의 품위를 도유와 관련시켰다. 이레네오는 모두가 의로운 사제들(sacerdoti)이므로 모두 사제직을 가진다고 했다.1)


   한편, 교부들의 가르침에 따르면, 그리스도교 입문 예식인 세례와 견진2)은 그리스도인에게 이중효과를 가진 인호를 새긴다. 곧 그리스도인을 그리스도의 소유로 만들고, 그리스도 및 삼위일체의 모습과 일치시킨다는 것이다. 이는 암시적으로 일종의 구별을 내포하고 있다. 그것은 인호의 영원한 날인과 성화은총에 의해 영혼에 하느님 모습을 새기는 것 사이의 구별이다.3) 이 구별은 아우구스티노에 의해 명확해지고,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해 공통사제직의 신학적 근거로 자리잡게 된다.




   (1) 아우구스티노




   아우구스티노는 분명히 공통사제직4)을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갖는 은총과 신앙과 자비의 삶이라는 특성과 관련지었다. 그러면 공통사제직은 성화은총과 동일시되는 것이 아닌가? 이런 측면에서 보면, 공통사제직은 하느님 자녀로서 신성한 생명을 누리는 신앙인의 상태에 아무 것도 더 보태지는 않는다. 그러나 아우구스티노가 명백하게 신앙인의 사제적 품위를 세례성사, 특히 도유와 관련시켰다는 사실이 중요하다.5)


    아우구스티노는 엄격주의를 내세운 도나투스(Donatus)파에 반대하면서, 인호를 새기는 도유와 성화은총을 최초로 명백하게 구별하였다. 그에 따르면, 비록 세례가 은총을 주지 않는다 할지라도, 세례는 유효하게 수여될 수 있고, 영혼 안에 영구적인 실재로 남아있으므로, 그것은 반복될 수 없다. 또한 유효한 세례는 영혼에 표시를 새김으로써, 돌이킬 수 없게 그리스도인을 그리스도에게 봉헌한다.6) 그래서 “신비한 크리스마 도유로 말미암아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들(축성된 이들)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이, 이처럼 우리는 하나의 구성원들이므로 우리는 모두 사제들이다.”7)




   (2) 토마스 아퀴나스




   토마스는 최초로 성사 인호를 사제직과 연결시켰다. 그는 교부들의 가르침을 되풀이하여, 예배와 사제직을 생명의 신성함과 양자신분이라는 용어로 설명하였다. 그에 따르면 세 가지 성사 인호들(세례, 견진, 성품)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리스도에 의해 설립된 대중 경배 예식을 수행할 권한을 준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있어 다른 등급에 참여하게 된다.8) “모든 성사들은 다 인간을 죄악에서 정화하는 성화의 은총을 주지만, 어떤 성사는 하느님 예배를 담당하도록 사람을 속사(俗事)에서 갈라놓는 인호를 박아준다.”9) “어떤 이들은 받기 위해, 다른 이들은 주기 위해 행동하며, 곧 구성원들은 스스로를 또는 다른 이들을 완전하게 하기 위해 행동하는 것이다.” 그리고 세례와 견진과 성품 성사들의 성사 인호들에 의해 교회 내에서 그리스도의 예배의 연속성이 보장된다.10)


   사실 토마스는 공통사제직을 영적 희생을 봉헌한다는 완전히 내적인 의미로 이해하므로, 그것은 성사나 전례와 명백한 관련이 없다. 그러나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세례받은 이의 사제직에 있어 다른 품위, 곧 세례 인호를 인정한다. 이는 토마스의 전체적인 사상 체계 안에서 고유한 의미가 드러난다. 곧 토마스에 의하면, 인간은 하느님으로부터 와서 하느님께로 돌아간다. 예수가 그 길이다. 따라서 영적 행위(신학대전 제2부)와 성사들(신학대전 제3부)에는 서로 내용과 형식의 일치가 있고, 또한 도덕적인 삶이 영적 경배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지혜롭고 배운 자들이 의로운 삶으로써 영적 경배를 봉헌한다거나, 예수 그리스도의 하느님께 영적 경배를 봉헌한다는 차원이 아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예수가 하느님께 스스로를 바침으로써, 그리스도인의 경배를 이끈다는 점이다. 이는 외적인 제물의 희생제사 대신에 구약의 예언자들이 예고한 진리와 영 안에서의 예배, 번제물이 아니라 인간 자신의 희생 안에서 이루어지는 참된 예배를 성취시킨다는 것을 의미한다.11) 따라서 그리스도인에게는 세례와 견진의 특성으로 하느님을 예배하기 위한 위임이 주어진다. 곧, 인간이 신적인 것을 받아들이거나 다른 이들에게 전수하는 것이다.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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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적 고찰-공통사제직의 근거 : 세례와 견진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4 신학적 고찰


    4.1 공통사제직의 근거 : 세례와 견진


       성서는 세례와 공통 사제직의 연관성을 보여준다. 즉, 그리스도인은 예수의 피로 말미암아 지성소에 들어가게 되었으며, 예수는 휘장인 자신의 육체를 통해 그리스도인에게 새로운 생명의 길을 터주었으므로,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의 집, 곧 교회공동체를 다스리는 대제관을 모시게 되었다.(히브 10,19-22) 아울러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세례를 받음으로써 누구나 그리스도를 새옷으로 입었기 때문에, 예수 안에서 신앙으로 말미암아 하느님의 아들이 되었다.(갈라 3,26-27)

       그래서, 초대교회와 교부시대에는 도유(塗油)받지 않은 이를 그리스도인으로 간주하지 않았고, 교부들과 전례서들도 신자의 품위를 도유와 관련시켰다. 이레네오는 모두가 의로운 사제들(sacerdoti)이므로 모두 사제직을 가진다고 했다.1)

       한편, 교부들의 가르침에 따르면, 그리스도교 입문 예식인 세례와 견진2)은 그리스도인에게 이중효과를 가진 인호를 새긴다. 곧 그리스도인을 그리스도의 소유로 만들고, 그리스도 및 삼위일체의 모습과 일치시킨다는 것이다. 이는 암시적으로 일종의 구별을 내포하고 있다. 그것은 인호의 영원한 날인과 성화은총에 의해 영혼에 하느님 모습을 새기는 것 사이의 구별이다.3) 이 구별은 아우구스티노에 의해 명확해지고,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해 공통사제직의 신학적 근거로 자리잡게 된다.


       (1) 아우구스티노


       아우구스티노는 분명히 공통사제직4)을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갖는 은총과 신앙과 자비의 삶이라는 특성과 관련지었다. 그러면 공통사제직은 성화은총과 동일시되는 것이 아닌가? 이런 측면에서 보면, 공통사제직은 하느님 자녀로서 신성한 생명을 누리는 신앙인의 상태에 아무 것도 더 보태지는 않는다. 그러나 아우구스티노가 명백하게 신앙인의 사제적 품위를 세례성사, 특히 도유와 관련시켰다는 사실이 중요하다.5)

        아우구스티노는 엄격주의를 내세운 도나투스(Donatus)파에 반대하면서, 인호를 새기는 도유와 성화은총을 최초로 명백하게 구별하였다. 그에 따르면, 비록 세례가 은총을 주지 않는다 할지라도, 세례는 유효하게 수여될 수 있고, 영혼 안에 영구적인 실재로 남아있으므로, 그것은 반복될 수 없다. 또한 유효한 세례는 영혼에 표시를 새김으로써, 돌이킬 수 없게 그리스도인을 그리스도에게 봉헌한다.6) 그래서 “신비한 크리스마 도유로 말미암아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들(축성된 이들)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이, 이처럼 우리는 하나의 구성원들이므로 우리는 모두 사제들이다.”7)


       (2) 토마스 아퀴나스


       토마스는 최초로 성사 인호를 사제직과 연결시켰다. 그는 교부들의 가르침을 되풀이하여, 예배와 사제직을 생명의 신성함과 양자신분이라는 용어로 설명하였다. 그에 따르면 세 가지 성사 인호들(세례, 견진, 성품)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리스도에 의해 설립된 대중 경배 예식을 수행할 권한을 준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있어 다른 등급에 참여하게 된다.8) “모든 성사들은 다 인간을 죄악에서 정화하는 성화의 은총을 주지만, 어떤 성사는 하느님 예배를 담당하도록 사람을 속사(俗事)에서 갈라놓는 인호를 박아준다.”9) “어떤 이들은 받기 위해, 다른 이들은 주기 위해 행동하며, 곧 구성원들은 스스로를 또는 다른 이들을 완전하게 하기 위해 행동하는 것이다.” 그리고 세례와 견진과 성품 성사들의 성사 인호들에 의해 교회 내에서 그리스도의 예배의 연속성이 보장된다.10)

       사실 토마스는 공통사제직을 영적 희생을 봉헌한다는 완전히 내적인 의미로 이해하므로, 그것은 성사나 전례와 명백한 관련이 없다. 그러나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세례받은 이의 사제직에 있어 다른 품위, 곧 세례 인호를 인정한다. 이는 토마스의 전체적인 사상 체계 안에서 고유한 의미가 드러난다. 곧 토마스에 의하면, 인간은 하느님으로부터 와서 하느님께로 돌아간다. 예수가 그 길이다. 따라서 영적 행위(신학대전 제2부)와 성사들(신학대전 제3부)에는 서로 내용과 형식의 일치가 있고, 또한 도덕적인 삶이 영적 경배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지혜롭고 배운 자들이 의로운 삶으로써 영적 경배를 봉헌한다거나, 예수 그리스도의 하느님께 영적 경배를 봉헌한다는 차원이 아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예수가 하느님께 스스로를 바침으로써, 그리스도인의 경배를 이끈다는 점이다. 이는 외적인 제물의 희생제사 대신에 구약의 예언자들이 예고한 진리와 영 안에서의 예배, 번제물이 아니라 인간 자신의 희생 안에서 이루어지는 참된 예배를 성취시킨다는 것을 의미한다.11) 따라서 그리스도인에게는 세례와 견진의 특성으로 하느님을 예배하기 위한 위임이 주어진다. 곧, 인간이 신적인 것을 받아들이거나 다른 이들에게 전수하는 것이다.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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