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공통사제직의 신학적 의의
4.3.1 하느님께 직접 나아감
일반적으로 종교에서 사제직은 특수한 계층의 사람들, 특정한 종족, 가문들, 카스트, 전문적 직제들 안으로 통과제의를 거쳐 입회한 자들에게만 한정되는 경향을 보인다. 흔히 이들은 영적 사회적 지도자로서 특권적 위치를 차지하고 예배직에 관한 전문적이고 혹은 비밀스러운 지식을 독점한 채 초월적 영역과 속된 영역을 통제하는 기능을 행하였다.1) 그래서 사제들은 사회제도적으로 특권층을 형성하거나 종교적으로 초월 세계와 속된 세계의 이원화를 심화시키는 역기능을 행했다. 따라서 공동사제직의 특성인 하느님께 직접 나아간다는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사회제도적 측면과 종교적 측면을 살펴보아야 한다.
(1) 사회제도적 측면
메스테르스(C.Mesters)는 이스라엘 신앙의 유일신 사상은 이집트의 계급적 차별을 정당화하는 다신교 사상을 강하게 부정하는 것으로서 평등한 사회와 동전의 양면관계를 가진다고 한다. 그에 따르면, 출애급의 정신에 드러난 평등사회에 대한 염원은 다음과 같이 구체화된다. 전제 군주 제도와 정반대되는 부족 체제 조직은 상호보완과 상호연대의 원리에 입각하여 권력을 분산했으며, 토지제도는 그것을 하느님의 소유로 천명하고 안식년과 희년에 관한 법을 제정함으로써 토지 축적과 그에 따른 노동의 착취를 막았다. 십계명은 평등 체제를 수호하는 법이었고, 신화를 거행하는 중앙집권적인 경신례와 정반대되는 지방분권적인 경신례에서는 가문의 어른들이 이를 주관하였다. 더욱이 사제인 레위지파는 토지분배에 참여하지 않은 유일한
지파였다.2) 이와 같은 배경과 더불어, 공동사제직의 근거로 인용되는 베드로 전서 2장 9절과 묵시록 5장 10절 등이 공동으로 출애급기 19장 6절을 인용한다는 점을 같이 놓고 볼 때, 바로 이 구절이 십계명의 서언 앞에 위치한다는 사실은 사회제도적 평등의식이 공통사제직에 계승되고 있음3)을 의미한다.
그러나 종교와 사회가 밀접하게 연관될수록 항상 사제직은 하나의 지배체제와 결탁된 제도적 기구가 되기 쉽다. 곧, 이스라엘의 역사에서도 점차 왕권제도가 확립되고, 예루살렘에서 중앙집권적인 경신례가 레위지파에 의해 전문적으로 행해지기 시작했다. 아울러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되어갔고 예언자들은 이를 강도높게 비판하였다.
이런 이스라엘의 역사는 중세 교회에서도 비슷하게 반복되고 있다. 중세 교회가 시작될 무렵 그리스도교 조직을 게르만화하면서 게르만의 엄격한 신분제가 교회에 유입되었고 교회내의 귀족 정치를 비호했으며, 특히 황제들의 대관식은 통치관념에 종교적 기반을 마련해주는 구실을 하였다. 이 신성한 왕권은 영방교회를 낳았고, 왕이 교회의 최고 권위자가 되었으며, 황제들도 그들의 지위를 교회적이고 종교적인 것으로 간주하게 되었다.4) 따라서 세속 권력과 교황권이 서임권을 둘러싼 논쟁을 벌여야 했다. 이 모든 현상의 바탕에는 통일된 종교적 세계관이 강하게 영향을 미쳤다. 하느님에 대한 인간의 종교적 예속을 일반적으로 인정하는 이 세계관은 지상에서의 결정적인 최고의 윤리적 권위로 군림하는 교회 앞에 모든 이가 굴복하게 만드는 역기능을 행하게 된다. 아울러 공생활에서의 계급적 구성은 하느님이 정한 지상의 질서로 간주됨으로써 중세교회는 신분질서를 바탕으로 토지와 교육을 독점하였다.5)
결국 개신교가 대두하면서 루터의 만인사제론은 반교계적 태도를 취하게 된다. 『독일 귀족에게 고함』에서 군주가 개혁을 추진할 권리를 갖는 근거의 하나로서 군주도 모든 신자의 사제직에 참여하는 동료 그리스도인들이라는 점이 강조된다.6) 이로써 개신교는 모든 신앙인들이 공유하는 사제직의 실재성만이 진짜라고 강조하였고, 그것만이 교회의 참된 사제직이라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항하여 트리엔트 공의회는 성직계의 직무사제직의 실재성을 강조하였고, 그 결과 본래의 공통사제직마저 위험한 사상으로 평가되고 망각되기에 이른다.7)
(2) 종교적 측면
구약말기에는 이교뿐 아니라 유대교의 종교 의식에서도 사제들만이 성전의 가장 안쪽까지 접근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의 관점에서 볼 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전 개념은 변화되었고 구약의 예배도 종결되었다. 예수의 성전 정화사건과 예루살렘 파괴 예고 및 새 성전 건립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새 성전임을 의미하며, 특히, 예수의 죽음 순간 지성소의 휘장이 찢어진 것은 옛 성전이 더 이상 하느님 현존의 표지가 아님을 의미하기 때문이다.8)
그러나, 이제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와 하나된 신앙인은 그 자신이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성전을 구성하게 된다. 따라서 신앙인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과의 친교를 발견하고 보존하기 위해 궁극적인 의미에서 인간적인 중개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인간과 하느님 사이의 궁극적인 결단, 그리고 이에 따른 인간과 인간 사이의 결단은 가장 깊은 인격의 내면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직접 하느님 은총에 접하고 하느님의 영에게 인도되어 궁극적인 자유와 책임을 발견하게 된다.9)
사실 그리스도교 전통은 신앙행위에 있어서 하느님과의 직접적인 관계성을 항상 옹호해왔으며, 특히 신앙의 동기에 있어 인간적 개입보다 하느님의 권위가 결정적임을 논증해왔다. 즉, 신앙의 빛이라는 하느님의 내적 비추심을 받을 때, 하느님의 권위가 직접 작용한다거나, 신적 계시가 하느님의 권위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는 즉시, 직접 이 하느님의 권위에 근거하여 신앙행위를 발한다. 오늘날은 신앙행위자가 자기가 믿는 그 당신과 실존적으로 하나가 되어버리는 거기에서 신앙의 절대적 확실성이 생겨난다고 하면서 하나의 인격적 만남과 실존적 결단을 강조한다.10)
여기서 하느님과의 직접적인 만남이 곧 개인주의적 신앙을 뜻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오히려 사회제도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종교적 제도가 신적 권위를 배경으로 제도적 차별과 불평등을 정당화하고 옹호하는 것이 더 이상 합리화될 수 없음을, 그리고 하느님은 인간적 중개를 통해서만 접할 수 있는 현실과 동떨어진 하느님이 아님을 의미한다. 따라서 하느님과 인간의 직접 관계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결단에 대해서는 어떤 인간적 존재도 이 관계를 박탈할 수 없고, 통제나 명령을 할 수 없다.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