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
평신도는 교회의 능동적 구성원으로서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참여하며, 그 고유한 세속성으로 말미암아 증험적 방식으로 세상을 성화하도록 불리웠다. 평신도의 공통사제직은 평신도가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실제로 참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성서가 증언하고, 교부들이 한결같이 가르쳤으며,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천명하였고, 1987년 세계 주교 시노드가 확인하는 사실이다. 비록 공통사제직이 중세의 교계중심적 교회에서 쉽게 간과되거나, 반교계적 종교개혁에서 그 의미가 편중되었던 역사가 있을지라도, 오히려 이런 역사는 오늘날 평신도의 공통사제직을 더욱 정확하게 이해하게 해준다.
‘행위는 존재를 따른다.’(Agere sequitur esse.) 이 그리스도교 윤리의 기본원칙은 공통사제직에도 매우 적절하게 적용된다. 세례와 견진으로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었고,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그리스도인의 존엄한 품위에서부터 그리스도 사제직 참여의 사명이 나온다. 이는 공통사제직의 그리스도 중심적 측면을 밝혀준다. 그리스도 사제직 참여의 방법은 한마디로 그리스도 추종을 통한 세상의 성화이다. 그것은 창조된 세상 안에서 충만을 건설하는 일, 육화로써 이미 성화되어 있는 세상 안에서 그 완전한 실현을 지향하는 일, 그리스도께로 정향된 자유로움으로 세상 안에서 살되 세상 방식과 달리 상종하는 일이다. 따라서 평신도의 공통사제직은 그 시작과 끝이 그리스도와의 일치에 달려있다.
‘모든 것이 그분 안에 있다.’(Omnia in ipso constant.) 이 신앙 고백 또한 공통사제직에 매우 합당하게 적용된다. 세상의 모든 것을 성화할 수 있고, 또 성화해야 한다는 것은 공통사제직의 종말론적 측면을 밝혀준다. 모든 삶의 영역과 삶의 양식이 부르심의 장소가 될 수 있고, 모든 곳에서 복음화와 성화로의 욕구가 채워질 수 있다. 이처럼 일상생활의 모든 영역을 성화하는 것은, 평신도의 고유한 세속성에 비추어 볼 때, 더욱 평신도에게 직접적으로 요구된다. 특히, 가정과 사회에서의 기도, 사랑, 봉사, 노동, 인내 등은 전례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 뜻에 맞는 훌륭한 영적인 제물이 된다.
그러므로 공통사제직은 하느님의 구원 경륜을 구체화한다. 거룩한 백성으로 불리운 소명은, 그리스도인이 하느님과 맺는 수직적 관계와 세상과 맺는 수평적 관계가 서로 교차하는 점접이다. 하느님의 부르심과 인간의 응답은, 수직적 차원에서 직접적으로, 동시에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지고, 수평적 차원에서 세상 안에서, 동시에 세상과 다른 삶의 방식에서 이루어진다.
또한 공통사제직은 그리스도 홀로 참되고 유일한 사제라는 사실을, 따라서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참여함으로써 참으로 하느님께 합당한 경배를 드릴 수 있으며, 이를 위해 평신도와 성직자가 함께 협력해야 한다는 사실을 구체화한다. 꽁가르의 다음 정식은 이를 잘 표현하였다. “알파요, 오메가며, 길이신 그리스도 홀로 사제이다. 알파와 오메가 사이에, 그분의 희생제사를 성사적으로 기념한다는 관점에서,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대한 성사적인 참여가 이루어진다. 그 기념 안에 결합하기 위해 세례와 견진에서 모든 이가, 그 기념을 수행하기 위해 성품에서 교계적으로 (모든 이들 중) 일부가,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참여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영적인 생활을 통해 모두가 사제들이고, 천상에서 그들은 다만 이 사제직만을 수행하게 될 것이며, 이 사제직이 최종적이고 결정적인 실재이다.”1) 그래서 공통사제직과 직무사제직 사이에 그리스도의 유일한 사제직 참여라는 공통성과 서로 다른 방식의 참여라는 차이성이 공존하며, 두 사제직은 서로 대립되지 않고 상호보완성을 갖는다. 따라서 공통사제직은 반교계적인 의미에서 강조되어서도 안되고, 비실재적인 의미에서 무시되어서도 안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하느님과 교회의 관계, 세상과 교회의 관계, 교회 내의 구성원들 상호간의 관계에 대해 성서와 초대교회의 전통에 입각하여 가르쳤다. 평신도의 공통사제직은 이런 관계들 속에 자리잡고 있다. 따라서 공통사제직의 수행에 있어, 현세의 순례와 종말의 완성 사이에서, 세상의 참여와 세상의 초월 사이에서, 교계적 교회와 개인주의적 신앙 사이에서, 팽팽한 긴장을 유지하는 균형감각이 요청된다. 이 균형감각의 유지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되묻는 것, 그래서 세례와 견진이라는 출발점으로 돌아가는 것, 마침내 그리스도라는 그리스도인 실존의 존립기반과 최종목표로 정향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참여하는 평신도의 공통사제직은 이런 측면에서 강조되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