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예시

이 기록(마태, 루가 1-2장)은 교회를 통해 신앙 안에서 이해된, 마음에 새겨진 내용이다. 이런 예수의 기원에 대한 역사가 마태오, 루가의 전체 복음의 예시로 드러난다.

(1) 마태오
① 1장
그리스도의 족보와 탄생을 통해 한편으로는 메시아의 일시적 족보(2-17절), 다른 한편으로는 초월적 기원(18-25절)을 상기시킨다. 이로써 예수를 당신 백성의 구세주로 제시한다.

② 2장
유아 시절의 4가지 이야기를 제시한다
① 2, 1-12 동방 점성가들의 예방
② 13-15 에집트에로의 피신
③ 16-18 헤로데의 학살
④ 19-23 에집트에서 돌아옴
이 이야기로써 아기 때의 예수의 메시아성을 미리 제시하려고, 이해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예수가 당한 이런 상황은 야훼 하느님 백성이 에집트로 이동했던 출애급의 사건에 결합시킨다. 이스라엘의 새 창시자 예수는 새로운 모세로 나타난다. 예수의 유아시절과 모세의 유아시절이 비교된다.
마태 2,19-21은 출애 4,19-20을 상기시킨다.
마태 2,16-18(헤로데의 학살)은 모세의 출생시기의 사건과 비슷하게 나타난다.
마태오는 모세의 모습을 항상 회상한다. 시나이의 모세처럼 예수는 40일간 재를 지키며 사막에서 생활하고 이스라엘의 역사적 유혹을 물리치고 승리로 일끌며, 새로운 입법자로서 산위에 오르시면서 하늘나라의 새 계명을 선포하신다(산상수훈). 또 다른 산에서는 거룩한 변화가 이루어진다(모세와 엘리아와의 대화). 여기서 마태오는 예수의 위격, 삶, 말씀을 통해 당신 자신이 구약 율법의 기초를 둔 그리스도의 우월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마태오 1 – 2장의 5가지 이야기 구조는 모세오경을 나타내고, 3 – 5장의 5가지 큰 가르침을 미리 선포하는 것이다. 특히 마태오 1 – 2장은 당신 백성 한 가운데 살아 계시는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 그리스도의 메시아성, 신적 정체성에 대한 확인 말씀을 하고 있으며 이는 마태오 복음의 특징인 것이다.
또 한가지 교회론적 전망이 강조되고 있다. 유다인들의 거절, 따라서 믿지 않는 이스라엘의 자리는 이교도들이 차지한다. 마태오 1 – 2장은 성령의 업적에 의해 태어난 예수(1,18 – 20)를 새로운 아담, 하느님의 새 백성, 새 인류의 출발점으로 제시한다(1, 23 :특히 임마누엘을 강조 ).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 임마누엘이라는 이름(1, 23)자체가 교회의 전체적인 함축적 성격을 갖는 것으로 교회론적 전망을 갖고 있다. 이런 것은 하나의 예언적 성취이고 시나고가(회당)와 구별되는 하느님의 참된 새로운 백성을 선포하고 그 백성으로 이해되는 마태오의 교회관과 연관 되는 것이다. 시작부터 모세에게 하느님의 약속이 있었다(출애 3, 12). 바로 “내가 너희와 함께 있겠다”가 수시로 이스라엘 역사에서 드러난다. 마태오에서는 그 약속이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성취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고 실제로 18,20 “당신의 이름으로 둘이나 셋이 모인 곳에 나 또한 함께 있겠다”라고 말한다. 28,20 “나는 세상 종말까지 어느 날이나 항상 여러분과 함께 있습니다.” 마태 1장에서 편집자는 임마누엘이라 부르면서 이미 복음의 마지막으로 인도하고있다.
하느님의 현존, 교회관이 1-2장에서 드러난다. 마태오의 유아시절에 대한 이야기에서 당신 백성들 편에서 메시아를 거절한다는 것, 박해의 위협이 나타나고 있다. 그는 새로운 모세로서 출애급에 나타나는 어려움과 박해적 상황을 참아 받아야 한다. 마태 2장의 예수의 도래에서 유다인의 왕을 처음 찾은 것은 이교도들이었다. 2,2 “유다인들의 왕으로 나실 분이 어디 계십니까?” 유대인의 거절과 이교도들의 받아들임은 예 이스라엘과 교회와의 갈등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당시 환경으로는 유대 크리스챤의 지배에 있었고, 그리스도 구원에 대해 선포할 때도 교회는 유대 문화 특성들속에서 문화적 갈등을 겪어야만 했다. 즉 유다이즘의 율법주의와 거기에 대조되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안에서 교회의 양심이 태어난다. 이것이 마태오 복음의 특징이고 교회의 복음이 되는 것이다.
이런 옛 이스라엘과 반대로 마태오는 그리스도께 충실한 사람들로써 회개와 시험을 통해서 새로운 백성으로 교회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이야기한다. 마태오 복음의 1,2장은 전체 서론과 요약으로 나타난다.
(2) 루 가
루가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루가 1-2장도 전체복음의 주요 사상과 일치․조화를 이룬다. 1 – 2장에서 저자의 고유한 의도를 나타내는 것은 지리적 언급인데 루가는 예루살렘을 부각시킨다(24번 정도). 즉 예수의 삶․죽음․부활․예언적․사제적 사명을 완수할 거룩한 도시로 움직이는 루가의 경향을 뚜렷이 제시한다. 그래서 성전을 중심으로 유아사화가 나타난다.
루가 1,16 – 17의 서언을 통해, 즈가리야의 노래 전체를 통해(1, 76) 요한의 사명은 하느님 자신이 야훼의 성전에 들어가는 길을 준비하는 것이라고 선포하면서 시작한다. 이런 방법으로 예루살렘 성전에서의 예수의 봉헌(2, 22)에서는 첫 이야기의 성취로서 드러난다. 예수가 당신의 집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제시되며, 성전에서의 예수의 봉헌은 예수의 영광을 나타내며, 성령의 계시는 성령이 계시기 위해 당신의 마땅한 집으로 계시는 분(19, 25)으로 표현한다. 여정의 절정인 수난과 부활의 첫 예시로서 나타난다. 성전에서의 봉헌은 수난에 대한 희생적 봉헌의 서언으로 나타난다. 마리아의 고통에 대한 예언은 수난에 마리아 자신이 동참했음을 나타내고, 이 봉헌 장면은 루가 1 – 2장에서 성전에서 예수를 되찾는 장면으로 완성한다. 루가에서의 빠스카 테마를 선언하고, 성전에서 예수의 봉헌과 긴밀한 관계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는 증거자들을(2, 47) 어안이 벙벙하게 하면서 당신을 계시한다. 성전에서의 예수의 잃음과 되찾음은 빠스카 수난예식의 상징이고, 예수를 찾는 것은 예수를 애타게 찾다가 3일 후에 찾는 것으로써 그리스도의 미래영광으로 지적되는 빠스카 사건의 선행으로 나타난다(2, 22). 루가 2,49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제가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 예수가 아버지의 집에 되돌아감을 상징한다.
루가 1-2장은 루가에서 강조되는 성령의 현존에 관계된다. 이런 성령의 약속은 예수의 시기와 교회의 시기를 포함하는 전체 구원 역사안에 작용한다. 이런 성령의 현존은 예수의 가시적 출발에서 시작하여 다시오시는 것을 내포하며, 사도적 교회안에서 성령에 대한 특별한 체험 안에 분명하게 나타난다. 그리스도의 영광을 통해서 사도로부터 주어지는 성령은 예수의 약속에 의해 주어질 수 있다. 성령의 현존을 나타내는 예수의 역사 안의 현존은 이미 구원의 역사 안에서 약속과 새 시기가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되었음을 말한다. 실제로 루가에서는 구약의 예언자들의 노선을 통해서 제시되고 있다. 1-2장은 그리스도의 잉태만이 아니라 교회탄생의 서론으로 나타난다. 그리스도의 예언적 사명을 강조하면서도 예수의 세례가 묘사된다. 이 성령의 충만함, 평온함이 루가의 특징이다. 루가 1-2장도 영광송과 기쁨의 노래로 엮어져 있다.
유아사화는 전체 복음의 진실성과 조화를 이룬다. 그렇다고 예수 기원에 대한 이야기가 진실된 것이 아니라는 주장을 할 수는 없다. 신앙을 가지고 예수의 기원의 역사 안에서 그 신비를 깨닫도록 노력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분명한 표징으로 드러나고, 보존되고, 숙고된 예수의 기원에 대한 숙고는 그 나름대로의 가치를 갖고 있다. 예수는 탄생부터 구약의 희망을 성취할, 구원의 충만함에 미리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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