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서의 은총 이해-바울로: 은총과 죄(로마서: 죄와 구원의 변증법)

 

4.3.4. 로마서: 죄와 구원의 변증법




        이처럼 거대한 그리스도교적 자유에 대한 주제는 로마서에서 반복된다. 그러나 이 경우 바울로의 생각은 그 이전보다 훨씬 발전되어 있다.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창조물들이 자유를 얻기까지 노예 살이에서 신음하고 있다는 점을 가르쳐 주고 있다(로마 8, 22: 우리는 모든 피조물이 오늘날까지 다 함께 신음하며 진통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동시에 사도는 죄 자체까지도 한가지 요소로서 섭리의 신비로운 개념안에 포함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 “성서는 온 세상이 죄에 갇혀 있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만이 그 믿음으로 약속된 그 선물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갈라 3, 22). 이와같은 죄는 은총을 위한 조건으로서 바울로 사도의 로마서에서 첫 페이지의 주요 주제가 되고 있다. 모든 인간은 죄를 지었다. 그러므로 모두가 구원을 필요로 한다(로마 3, 23).이것이 로마서의 기본적 가설이다. 첫 인간의 위법 이래로(5, 12), 죄는 이 세상에 널리 펴졌다. 이방인들의 역사 안에서는 이러한 죄의 폭압 속에서 아무도 그 도움을 얻을 곳이 없다(로마 1, 18-32). 인간들은 하느님 없이 행동하기를 원한다. 그리고 하느님은 그들의 욕망적인 삶에 방치하신다. 그와같이 그들을 점점 쇠퇴하게 하는 놀라운 폭력은 그들의 행위에 대한 대가이다.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준 율법의 긍정적인 면은 그들을 더욱 저주하는데 봉사할 뿐이다. 하느님의 율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에게 할례가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로마 2, 25). 비극적인 체험은 이러한 점을 증명해 준다. 율법 아래 살든지 혹은 율법 없이 살든지 그것은 인간의 마음 안에 새겨진 법 보다 그 어떤 윤리적인 안내 없이도 그는 단순하게 율법이 그에게 요구하는 일을 완성하는 힘을 지닐 수 없다는 것이다. 율법은 단순히 그의 본성적 연약함을 드러낼 뿐이다. 그것은 그를 지배하고 있는 죄의 잔인한 힘을 깨닫게 한다. 그것은 율법에 의하여 금지된 행위들 안에 빠져 있는 자신을 보여주고 깨어나도록 하고 있다(로마 7, 7-25). 율법은 좋은 것이고 정당하고 거룩하다. 그러나 인간이 그의 의지 안에서 깊은 투쟁을 겪고 있다는 것을 계시해주는 것 이상이 아니다. “나는 내가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선은 행하지 않고 해서 안되겠다고 생각하는 악을 행하고 있습니다”(로마 7, 19). 그와같은 죄스러운 인간은 그의 사슬을 끊어버려야겠다고 원하지만 그의 노예살이를 포기하지 않는 포로와 같다.


        아우구스티노는 훗날 이러한 바울로의 주제를 취하고 그에 대해 다양하게 언급하고 있다. 자신의 격정(사욕편정)의 불가항력적 힘과 죄의 체험에 적용한다. 죄는 실제적인 노예로 만든다(로마 6, 16). 폭군이며(7, 23), 죄와 죽음의 법이다(8, 2). 죄의 대가는 죽음이기 때문이다(로마 6, 21-23; 7, 13; 5, 12). 육신의 죽음이거나 영혼의 죽음이기 때문이다. 죄를 지은 사람들은 모두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들이 비록 긍정적인 법을 알고 있다 하더라도(로마 2, 12-16). 죄의 폭력과 죽음은 모든 창조를 노예로 만들기 때문에 그 구원을 갈망하며 신음하고 있다(8, 19-22). 바울로는 죄의 이러한 변증법을 소개하면서 모든 인간의 죽음이라는 결실을 가져왔다고 말한다(로마 7, 5). 그는 그것을 구원, 은총, 그리고 신적 생명과 대조시킨다(5, 12-21).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세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인들은 3중의 노예살이로부터 자유롭게 된다. 죽음으로부터, 죄로부터, 그리고 율법으로부터의 자유이다(5, 17; 6, 18; 7, 6). 세례 예식은 여기서 대단히 중대한 상징을 담고 있다. 물 속에 잠기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그리스도와 더불어 죽음을 의미한다. 물에서 나오는 것은 그분과 함께 다시 부활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상징은 사도 바울로가 특히 선호하는 개념과 관련된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고 갈라디아서에서 고백하고 있다(갈라 2, 20). 에페소서에서 그는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와 더불어 함께 살아가도록 한다”고 말하고 있다(에페 2, 5).머리에서 완성한 것은 역시 지체 안에서도 완성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죄라는 것은 죽음에서 끝난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모든 죄인들을 위하여 죽으셨다(로마 5, 8). 그리고 그 죄인들을 성부와 화해시키신다(로마 5, 10). 그러므로 죄가 있는 곳에 은총이 넘친다(5, 21).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다시는 죽지 않으신다면(로마 6, 9), 그리스도인들 역시 죽음으로부터 자유롭다. 거기에는 성령의 선물과 영광 속의 부활 사이에 결정적인 연결이 있다. 사도 바울로는 요한 사도에 의해 보고되고 있는 주님의 말씀을 반복하고 있다. 은총은 이미 시작된 영원한 삶이다. 예수를 일으키신 그 분은 역시 모두를 예수의 영안에서 살도록 일으키실 것이다(로마 8, 11). 죄와 죽음으로부터 이러한 자유는 어떻게 실현되는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써 된다. 사도 바울로은 여기서 갈라디아서의 주제를 강조한다. 유다적 영향을 받은 바리사이파적 정식은 할례와 율법 준수를 개종자들에게 부과하기를 원하였다. 아마도 그들은 로마 공동체의 평화를 파괴하는데 성공하리라고 기대하였던 것 같다. 그들을 대항하여 바울로는 신앙에 의한 의화라는 그의 복음을 옹호하였다(로마 3, 20; 갈라 2, 16). 하느님 눈에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이 아니다. 긍극적으로 이러한 율법은 무엇이 악인지 알수 있도록 할 뿐이다. 그것은 범죄를 늘어나게 할 뿐이다(로마 5, 20; 7, 9). 아무도 의롭게 행하지 못한다. 우리는 자기가 한 일에 대하여 정당하게 임금을 요구할 처지에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로마 3, 27: 4, 4). 의롭게 하는 것은 아브라함 시대에까지 소급하여 우리에게 구원을 약속한 아버지 하느님의 약속에 대한 신앙이다(로마 4, 13). 약속을 실현하신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로마 1, 2) 여기서 구원의 본질이다. 은총을 통하여 세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와 연결된다(로마 10, 9). 유다인이거나 이방인이거나 그는 그리스도의 한 구성원이 된다(로마 6, 5; 12, 4-5). 하느님의 약속에 의한 상속은 그리스도 전체, 그 머리와 지체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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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uest 님의 말:

     

    4.3.4. 로마서: 죄와 구원의 변증법


            이처럼 거대한 그리스도교적 자유에 대한 주제는 로마서에서 반복된다. 그러나 이 경우 바울로의 생각은 그 이전보다 훨씬 발전되어 있다.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창조물들이 자유를 얻기까지 노예 살이에서 신음하고 있다는 점을 가르쳐 주고 있다(로마 8, 22: 우리는 모든 피조물이 오늘날까지 다 함께 신음하며 진통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동시에 사도는 죄 자체까지도 한가지 요소로서 섭리의 신비로운 개념안에 포함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 “성서는 온 세상이 죄에 갇혀 있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만이 그 믿음으로 약속된 그 선물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갈라 3, 22). 이와같은 죄는 은총을 위한 조건으로서 바울로 사도의 로마서에서 첫 페이지의 주요 주제가 되고 있다. 모든 인간은 죄를 지었다. 그러므로 모두가 구원을 필요로 한다(로마 3, 23).이것이 로마서의 기본적 가설이다. 첫 인간의 위법 이래로(5, 12), 죄는 이 세상에 널리 펴졌다. 이방인들의 역사 안에서는 이러한 죄의 폭압 속에서 아무도 그 도움을 얻을 곳이 없다(로마 1, 18-32). 인간들은 하느님 없이 행동하기를 원한다. 그리고 하느님은 그들의 욕망적인 삶에 방치하신다. 그와같이 그들을 점점 쇠퇴하게 하는 놀라운 폭력은 그들의 행위에 대한 대가이다.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준 율법의 긍정적인 면은 그들을 더욱 저주하는데 봉사할 뿐이다. 하느님의 율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에게 할례가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로마 2, 25). 비극적인 체험은 이러한 점을 증명해 준다. 율법 아래 살든지 혹은 율법 없이 살든지 그것은 인간의 마음 안에 새겨진 법 보다 그 어떤 윤리적인 안내 없이도 그는 단순하게 율법이 그에게 요구하는 일을 완성하는 힘을 지닐 수 없다는 것이다. 율법은 단순히 그의 본성적 연약함을 드러낼 뿐이다. 그것은 그를 지배하고 있는 죄의 잔인한 힘을 깨닫게 한다. 그것은 율법에 의하여 금지된 행위들 안에 빠져 있는 자신을 보여주고 깨어나도록 하고 있다(로마 7, 7-25). 율법은 좋은 것이고 정당하고 거룩하다. 그러나 인간이 그의 의지 안에서 깊은 투쟁을 겪고 있다는 것을 계시해주는 것 이상이 아니다. “나는 내가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선은 행하지 않고 해서 안되겠다고 생각하는 악을 행하고 있습니다”(로마 7, 19). 그와같은 죄스러운 인간은 그의 사슬을 끊어버려야겠다고 원하지만 그의 노예살이를 포기하지 않는 포로와 같다.

            아우구스티노는 훗날 이러한 바울로의 주제를 취하고 그에 대해 다양하게 언급하고 있다. 자신의 격정(사욕편정)의 불가항력적 힘과 죄의 체험에 적용한다. 죄는 실제적인 노예로 만든다(로마 6, 16). 폭군이며(7, 23), 죄와 죽음의 법이다(8, 2). 죄의 대가는 죽음이기 때문이다(로마 6, 21-23; 7, 13; 5, 12). 육신의 죽음이거나 영혼의 죽음이기 때문이다. 죄를 지은 사람들은 모두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들이 비록 긍정적인 법을 알고 있다 하더라도(로마 2, 12-16). 죄의 폭력과 죽음은 모든 창조를 노예로 만들기 때문에 그 구원을 갈망하며 신음하고 있다(8, 19-22). 바울로는 죄의 이러한 변증법을 소개하면서 모든 인간의 죽음이라는 결실을 가져왔다고 말한다(로마 7, 5). 그는 그것을 구원, 은총, 그리고 신적 생명과 대조시킨다(5, 12-21).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세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인들은 3중의 노예살이로부터 자유롭게 된다. 죽음으로부터, 죄로부터, 그리고 율법으로부터의 자유이다(5, 17; 6, 18; 7, 6). 세례 예식은 여기서 대단히 중대한 상징을 담고 있다. 물 속에 잠기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그리스도와 더불어 죽음을 의미한다. 물에서 나오는 것은 그분과 함께 다시 부활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상징은 사도 바울로가 특히 선호하는 개념과 관련된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고 갈라디아서에서 고백하고 있다(갈라 2, 20). 에페소서에서 그는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와 더불어 함께 살아가도록 한다”고 말하고 있다(에페 2, 5).머리에서 완성한 것은 역시 지체 안에서도 완성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죄라는 것은 죽음에서 끝난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모든 죄인들을 위하여 죽으셨다(로마 5, 8). 그리고 그 죄인들을 성부와 화해시키신다(로마 5, 10). 그러므로 죄가 있는 곳에 은총이 넘친다(5, 21).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다시는 죽지 않으신다면(로마 6, 9), 그리스도인들 역시 죽음으로부터 자유롭다. 거기에는 성령의 선물과 영광 속의 부활 사이에 결정적인 연결이 있다. 사도 바울로는 요한 사도에 의해 보고되고 있는 주님의 말씀을 반복하고 있다. 은총은 이미 시작된 영원한 삶이다. 예수를 일으키신 그 분은 역시 모두를 예수의 영안에서 살도록 일으키실 것이다(로마 8, 11). 죄와 죽음으로부터 이러한 자유는 어떻게 실현되는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써 된다. 사도 바울로은 여기서 갈라디아서의 주제를 강조한다. 유다적 영향을 받은 바리사이파적 정식은 할례와 율법 준수를 개종자들에게 부과하기를 원하였다. 아마도 그들은 로마 공동체의 평화를 파괴하는데 성공하리라고 기대하였던 것 같다. 그들을 대항하여 바울로는 신앙에 의한 의화라는 그의 복음을 옹호하였다(로마 3, 20; 갈라 2, 16). 하느님 눈에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이 아니다. 긍극적으로 이러한 율법은 무엇이 악인지 알수 있도록 할 뿐이다. 그것은 범죄를 늘어나게 할 뿐이다(로마 5, 20; 7, 9). 아무도 의롭게 행하지 못한다. 우리는 자기가 한 일에 대하여 정당하게 임금을 요구할 처지에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로마 3, 27: 4, 4). 의롭게 하는 것은 아브라함 시대에까지 소급하여 우리에게 구원을 약속한 아버지 하느님의 약속에 대한 신앙이다(로마 4, 13). 약속을 실현하신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로마 1, 2) 여기서 구원의 본질이다. 은총을 통하여 세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와 연결된다(로마 10, 9). 유다인이거나 이방인이거나 그는 그리스도의 한 구성원이 된다(로마 6, 5; 12, 4-5). 하느님의 약속에 의한 상속은 그리스도 전체, 그 머리와 지체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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