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총 이해의 역사적 개관-희랍 교부들

 

5.3. 희랍 교부들


        은총이란 하느님으로부터 퍼져 나와 인간을 변화시키는 영광이다. 동방의 희랍 교부들은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행위 전체를 은총으로 이해하는 성서를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여기에는 본성과 은총, 창조와 구원의 구별이 없다. 하느님이 세상과 함께 그리고 세상을 향하여 어떻게 행위하시는가 그 유형양식이 은총이다. 따라서 그리스도교 전체, 그리스도교 신앙 전체, 또는 신앙의 특정적인 수렴점으로서 세례, 죄의 용서, 교회생활, 지복적 완성을 은총으로 이해한다. 특히  은총은 존재론적으로 전례를 통해서, 윤리적으로는 덕과 그리스도를 본받음으로 해서, 신비론적으로는 하느님과의 신비로운 결합을 통해서 인간에게 다가오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결합은 이러한 은총관과 은총의 결과에 대한 모델이 되고 있다. 그것은 인간 나자렛 예수라는 존재의 신격화를 잘 설명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희랍 교부들에게 은총의 목표는 바로 인간의 성화, 즉 Deificatio이다.


         좀더 세분하면,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이라는 성서의 기본 정의로부터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죄악으로부터 해방시켜 본래의 하느님의 모상을 실현하도록 지향하신다는 점에 초점을 두고 있다. 리용의 이레네오의 수렴이론이 그 대표적이다. 창조로부터 발전된 인류 역사는 죄와 타락으로 말미암아 뒤틀리게  되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업으로 역회전하여 다시 상승 발전하게 된다는 것이다. 소위 Exitus-Reditus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만사가 하느님께 이르도록 교육하는 하느님의 교육의 정점이요, 모범이다.


        이러한 하느님의 행위는 하느님의 주도권을 극명하게 드러낸다는 것이다. 인간에게 자유를 주신 하느님은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지 않고 자유스러운 교육 방식을 취하시며 설득하신다는 것이다. 여기서 하느님의 주도권이 인정되면서도 강요될 수 없는 인간의 자유로운 응답이 필요하다는 점을 역설한다. 어쩌면 자유란 인간이 하느님의 모상이라는 점을 가장 잘 반영하는 한가지 개념일 것이다. 물론 이 자유는 순수하게 중립적 가능성이나 백지 상태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인간이 자유롭게 동의할 때 하느님은 인간을 당신에게 이끄심으로서 해방시키신다는 것이다.


        이 해방이란 바로 인간의 신화이다. 즉 은총의 목표이다. 동방교부들은 ‘인간이 하느님이 되도록 하느님 인간이 되셨다’는 점을 예수 그리스도의 육화에서 찾아내고 있다. ‘인간의 신화’라는 표현은 오늘날 자칫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 창세기의 낙원설화는 아담과 에와가 바로 그러한 열망 때문에 낙원을 상실한 것이 아니냐? 니이체의 초인사상과 다르지 않느냐고 질문할 수 있다. 오늘날 인간이 참으로 원하는 것은 인간다움이 아닌가라고 반박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동방교부들의 진의가 무엇인가 물어야 할 것이다. 그들 역시 아담과 에와가 하느님과 같아지고 싶어했다는 인간의 본능적 욕구를 모르지 않았다. 동방교부들의 이 표현은 인간이 인간임을 포기하자는 의미가 아니다. 인간 속에 본능적으로 갈망하고 있는 무한한 것에 대한 동경, 무한한 개방성이 자리잡고 있고, 이러한 무한한 갈망이 하느님의 무한성에 참여함으로써 진정 성취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느님의 모상인 만큼 하느님께 가까이 갈수록 인간다움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지혜를 추구하는 그리이스 철학의 배경을 둔 희랍 교부들은 지식, 교육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하느님은 교육을 통하여 인간을 완성에로 이끄신다는 점을 강조한다. 인간은 완성을 이루기 위하여 하느님의 요청에 자유롭게 응답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교육과정으로서의 구원역사 전체가 은총으로 이해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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