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교 신자들은 현존하는 소외된 실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극복되었음을 믿는다. 억압적인 지배와 비정과 이기주의의 악순환이 그리스도의 삶과 십자각, 죽음 속에서의 사랑, 봉사, 헌신으로 깨어지고 인간의 삶의 가능성이 그리스도를 뒤 따르는 속에서 만민을 위해 개방되었음을 믿는다. 형제들 가운데 맏형으로서 그리스도의 부활은 희망의 힘을 역사 안에서 생활하는 인간에게 일깨워주었다. 그리스도에게서 나가는 해방의 힘은 해방된 자들로 하여금 하나의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하게 하였다. 이로써 구체적인 자유의 공간이 역사 안에서 형성되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교회이다. 교회의 유일한 존재 근거는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 이시다.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에게서 무한한 비통과 실재의 분열과 소외, 그리고 비화해성이 뼈아프게 드러나고 부활한 그리스도에게서는 인고의 힘과 궁극적인 자유에 대한 희망이 깨어난다. 십자가와 부활에 들어서게 된 교회는 그리스도를 따르고 봉사와 헌신에로의 자유를 얻는다. 이런 교회 안에서의 존재는 바로 의화 은총을 뜻하는 그리스도에 의해 해방된 인간의 자유를 구체적으로 이해받고 체험할 수 있다. 의화가 개개인의 인격과 그의 구원과 관계하고 사회적 구원을 관심밖에 둔다는 점이 근대에 와서 지적되고 있다. 사실상 교회는 한편으로는 내면성과 신심, 다른 한편으로는 세속적 행동을 분리하여 본연의 사명을 이행했다고 보기 힘들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의화를 통해 현존하는 불의를 거슬러 투쟁하기보다는 불의를 참아내야 한다는 결론을 이끌어냈다. 결국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의식 무의식 중에 기존하는 사회적 질서를 지지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자세가 의화론에 상응하는지 물어야 한다. 교회가 진심으로 본연의 사명에 집중할 때 사회 구조에 대해 무비판적일 수 없다. 인간은 이중 의미에서 외부와 관련된다. 구원은 외부로부터 인간에게 오고 외부로부터 인간은 이웃을 만난다. 이 이웃과의 해후 속에서 인간은 생명을 유지하고 구원으로 인도된다. 이 이중의 외부로 인하여 교회는 사회문제에 무관심할 수 없다. 그리스도의 공동체로서의 교회는 인간을 억압하려는 외부의 여하한 요청도 거부해야 한다. 그러나 교회는 사회의 중요성을 부인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의 자유와 권리를 제도적으로 사회 안에서 보장하도록 노력한다. 이런 교회의 자세는 소외된 실재 안에서 사회에 대한 가치와 투신의 두가지 입장을 동시에 내포한다. 비판적인 간격, 거리감없이 통용되는 사회질서가 진실로 인간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지 판단할 수 없다.
한편으로는 사회 안으로의 투신없이는 불완전한 질서를 개선시킬 수 없다 올바로 이해된 의화관에서부터 사회에 대해 긍정적이고 비판적인 이중적 입장이 생겨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