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화은총과 성화은총-성화은총의 본질(은총 본질 규명의 신학사적 개관)

 

13.2 성화은총의 본질


13.2.1 은총 본질 규명의 신학사적 개관


은총의 본질 규정에서 주의할 점은 내적 자명성에서가 아니라 계시 신앙 속에서 파악되어야 한다. 성서를 따르면 은총은 하나의 실재이지만 마술적으로 필연적으로 작용하지는 않는다. 인간은 이 은총 안에서 온전히 자유로이 머문다. 인간은 자신의 과실로 인해 잃을 수 있으나, 스스로의 힘으로는 획득할 수 없고 선사되어야 한다. 은총은 인간으로부터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만드는데, 인간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으로부터 선사되는 초자연적인 것이다.


        은총의 형이상학적 규정은 1240년대 이래  알베르토 막뉴스 등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1) 은총은 실제 본성(substantia natura)이 아니라 우유(accidentia)이다. 이로써 은총이 인간의 자유를 손상하지 않는다는 것이 보증된다. 은총이 외부로부터 오고 인간의 내면에 거주한다고 일컬어진다. 이로서 인간 영혼 안에서의 은총이 초자연적 성격을 드러낸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하느님의 은총의 본질 참여로서 이점을 설명한다(신학대전 I-II 110, 2,2). 하느님에게 있어서 그 실체의 속성은 그의 본질과 동일하다. 그런데 인간이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려면 하느님에게 실체적으로 있는 것이 인간 속에서는 우연적으로만 있을 수밖에 없다. 인간 속성 자체가 우유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이 토마스의 해설은 형이상하적 은총 규명에서 가장 깊은 해설로 간주되고 있다.


        은총을 비추는 신적광명으로 보는 프란치스코 학파는 은총의 우유적 성격을 새롭게 해설한다. 은총은 인간의 영혼에 있어서 덕처럼 우유적이다. 하지만 덕에서 주체와 덕의 원인이 동일하지만 은총 안에서는 주체인 인간 영혼과 원인인 하느님은 본질적으로, 또 실제로 상이하다. 덕에 있어서 영혼이 본성상 필요한 주체라면 은총에 있어서 영혼은 자유로운 주체이다. 덕의 원인이 주체인 인간 영혼보다 미소하나, 은총의 원인은 주체 인간 영혼보다 항상 무한하며 가치가 있다.




        2)은총은 성화은총으로서 하나의 발생(actus)으로 보지 않고 상태(habitus)로 본다. 이 규정은 성서가 표현하듯 은총을 생명으로 볼 때 의미가 깊다. 여기서 말하는 상태는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처럼 성질(qualitas)의 2차적 분류로 이해된다. 배열(dispositio)이 성질의 1차적 분류로서 영혼의 잠정적 가능성 내지 준비태세라면, 상태는 2차적 분류로서 우유적이기는 하나, 확고한 점유성, 지속적 성질을 나타낸다(신학대전 I-II, 50.1) 토마스는 이와같이 은총을 추상적으로 규정한다. 은총은 영혼의 신적 본성에의 참여로서 규정되어야 하는 고차적이고 영적인 무엇을 부여하는 상태이다. 이를테면 덕행의 새로운 질을 위한 존재 기반이 아주 간단한 상태로서 인간 본성을 완성시키고 하느님께 합당하도록 만들어 초자연적 역사를 가능하게 하는 초자연적 상태이다(신학대전 I-II, 110,2). 경향을 달리하는 보나벤투라에게서 은총의 본질을 규명하는데 상태의 개념은 경미한 역할을 할 뿐이다. 보나벤투라에게서 은총은 인간에게 힘과 성성을 주고, 인간으로 하여금 하느님의 자녀가 되고 성령의 신부로 만드는 신적 광명으로 이해되고 있다.


        모든 진정한 사랑에서 체험하듯 인간은 은총으로부터 하느님의 사랑을 사랑받는 사람의 선물로 이해한다. 둔스 스코투스(1265-1308)는 은총을 사랑과 동일시 한다. 그러므로 은총의 인격적 성격과 은총 안에서의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맺어지는 사랑의 공동체의 신비가 이 규정을 통해 명백히 된다. 은총은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께 가합하게 만드나, 선물일뿐 아니라 우리가 함께 작용하고 우리를 완성시키는 구체적으로 체험할 수 없는 실재이다.


이 글은 카테고리: catholicdictionary3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