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선교의 목적-교회의 건설로서의 선교

 

2. 교회의 건설로서의 선교




교회의 전통적 선교이론은 선교활동을 외인들의 구령사업으로 생각하고 있었다(5. 전통적 선교 개념, 참조). 선교이론은 인간의 미약함과 약한 자의 기만을 강조하며 선교활동을 재촉하였다. 그리하여 선교사들은 영원한 멸망으로부터 하나의 영혼이라도 건져 주기 위하여 목숨을 걸고서 대양을 건넜다(외방선교).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목적으로 하는 교회의 확장과 건설이라는 선교개념은 초대교회부터 (사도15,36; 18,21-23; 로마15,20-21) 제2차 바티칸 공의회까지 계속된다. “선교활동의 본 목적은 아직 교회가 뿌리를 박지 못한 백성이나 집단에 있어서 복음을 선포하며 교회를 扶植하는 일이다.”(선교6). 그러나 일반적 의미의 선교와 선교활동이라는 좁은 의미의 개념을 구분해서 사용하고 있고, 제국주의 식민지적인 교회의 扶植이라는 의미와는 다르다. 그래서 공의회는 선교의 유일한 목적이 교회의 건설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다만 선교활동이라는 좁은 의미로서 교회의 형성(건설)을 언급한다. 「현대의 복음선교」는 성사생활에서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이 완성된다고 하면서 선교의 목적을 교회의 건설이라고 한다.




복음선교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이루어진 하느님과의 새로운 약속과 희망에 대해서도 말해야 하고 우리에게 대한 하느님의 사랑, 하느님께 대한 우리의 사랑, 복음의 중추를 이루는 사람들에 대한 형제애, 사람들에게 선물을 줄 수 있고, 용서하고, 희생하고, 도와줄 수 있는 사랑, 악의 신비, 선행의 추구, 그밖에 긴급한 것으로는 기도, 경배와 감사, 하느님과의 만남의 가견적 표지인 교회와의 친교를 통해서 하느님 자신을 추구하는 것들을 가르쳐야 합니다. 교회와의 친교는 교회 안에 살아 계시고 활동하시는 그리스도의 다른 표지 즉, 성사집행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성사생활을 한다는 것은 크리스챤 생활의 완성을 위한 것이므로, 일부 어떤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복음화의 장애가 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완전을 기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복음선포는 복음의 메시지만을 전하는 것이 아니고, 교회를 그 땅에 심는데 의미가 있는 만큼, 성체성사에 정점을 둔 성사생활의 힘 없이는 교회건설도 이루어 질 수 없습니다(28).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와 가시적인 관계가 없이도 하느님의 은총으로써 양심에 따라 사는 외교인들의 구원이 가능하다는 기본교리를 잊지 않고 있으며(교회16), 하느님의 나라가 세상 도처에 선포되고 건설되기 위해서는(선교1), 그 나라가 구현되는 場으로서 인격적 사회적 공동체가 필요하고 그 주체는 세례 받은 그리스도교인 이기에 교회의 형성은 필요하다고 본다. 그러나 선교는 교회의 이식과 확장을 넘어선다. 교회는 인류의 구원을 위한 「세상의 성사」이기에 선교는 성사인 교회를 세상 곳곳에 형성하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구세주이시며 일치와 평화의 원천이신 예수를 신봉하는 사람들을 한데 불러모아, 교회를 세우심으로써 모든 사람과 각 사람을 위하여 구원을 이룩하는 일치의 볼 수 있는 성사 역할을 하게 하셨다. 이 교회는 모든 지역에 전파되어야 할 것이므로 인류역사 속에 들어 있지만 동시에 시대와 민족의 한계를 초월한다(교회9).




전통적인 교회관에서는 ‘구령사업’의 결과로 수많은 새로운 지역교회들이 탄생했는데도 그 교회들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못했던 중앙집권적 교회론 때문에 교회의 수립과 선교활동을 원활히 종합할 수 없었다. 그러나 공의회는 지역교회들의 중요성을 재발견하고 말씀의 선포와 생활의 증거, 그리고 공동체적 삶의 구현을 전재로 하여(선교19) 지역교회의 건설을 선교활동의 목표로 하였다.1) 이제 만민의 구원을 원하시는 하느님의 의도와 동시에 이 의도를 드러내는 성사로서의 지역교회는 교회의 부식과 성장의 과정을 밟아 선교활동을 계속한다(선교6).


그러나 교회부식의 선교이론은 편협한 교회중심주의와 개선주의에 빠질 위험이 있다. 이는 교회의 선교활동은 제도적이고 가시적인 교회에 속해야 구원이 가능하고 그 수적인 증가를 목표로 하며 성사생활로 삶을 평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의회 이후 교회부식으로서의 선교개념은 비판받고 있다. 오늘날 선교지역이 구분되지 않고(지리적) 모두가(인간적) 복음화 되어야 하기 때문이며(교환으로서의 선교), 복음의 정신은 가정, 사회, 경제, 정치 등의 모든 부문에 침투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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