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지역교회 건설(내부 전달)
삼위일체가 교회 실재의 근원이요 형태와 목표가 되는 까닭에, 시원과 종말 사이에서 순례하는 하느님의 백성(현세 안의 교회)은 친교의 개념 곧, 가톨릭적 다양성 안에 있는 일치의 개념을 취하게 된다. 복음을 받아들여 진정으로 회개한 사람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가 되어 하느님 나라를 구하고 건설하면서 생활해 간다. 그들은 공동체를 이루고 동시에 복음을 선포한다’(현대 복음선교 13).
1. 친교(communion)1)인 교회
교회는 무엇보다도 우선 ‘거룩하신 분의 친교’(communio Sancti) 곧 그리스도의 성령 안에서 이루어지는 친교이다. 교회는 삼위일체로부터 온 신적 주도권의 결실(성령의 업적)로서 ‘신비’이다. 이 신비는 가시적인 지상의 실재임에도 지상적인 지평을 뛰어넘고 역사 안에 실재하는 신적인 것의 현존으로서 선사되는 것이다. 교회의 임무는 강생하신 말씀 안에서 성취된 성령과 육의 만남, 하느님과 사람들의 만남을 온 시대의 모든 상황에서 실현시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 안에서 성부에게로 온 세계를 이끌어야 하는 지상 과제를 안고 있다. 이 친교인 교회는 성령이 하느님과 사람들의 일치, 사람들 간의 일치를 실현시키고 나타내는 표징이요 도구 혹은 성사다.
교회는 그리스도가 하느님의 성사인 것처럼 교회를 그리스도의 성사가 되게 해주는 거룩한 실재들의 친교, 곧 ‘거룩한 성사들의 친교’(communio sanctorum sacramentorum)이다. 이 교회적 친교의 전반적인 성사성은 하느님의 말씀과 성사를 통해서 표현된다. 말씀과 성사는 주님의 만찬 안에서 가장 훌륭히 현존하고 합류한다. 성체는 ‘일치의 성사’(sacramentum unitatis)요 유일한 그리스도의 몸이며 교회를 성령의 능력 안에서 태어나게 하는 유일한 빵이다. 말씀과 빵은 성찬례 안에서 또 그로부터 교회적 친교가 생겨나도록 하는 성사이다. 이렇게 성체가 교회를 이루는 것이 사실이라면 교회가 성체를 이루게 한다는 것도 사실이다.2) 말씀과 성사는 교회의 직무, 선포의 봉사직, 희생제사를 거행하는 봉사직과 거룩한 하느님 백성의 일치 안에 흩어져 있는 인류 가족을 한데 모으는 봉사직을 필요로 한다(로마 10, 14-15). 친교인 교회는 온전히 직무적이며 직무들의 다양성 안에서 삼중직능 곧 예언직과 사제직과 및 왕직에 전적으로 부름 받고 있다. 세례 받은 모든 인은 성령에 의해 예언자이고 사제이며 목자이신 그리스도와 결합되어 일치의 직무 봉사자, 곧 서품된 교역자를 중심으로 다른 이들과 누리는 친교 안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생활로써 선포하고 파스카의 기념제를 거행하며 다가오는 하느님 나라의 정의를 역사 안에서 실현해야 할 임무를 맡는다.
교회는 ‘성인들의 친교’(communio sanctorum fidelium)이다. 교회는 세례 받은 이들이 한 분 성령과의 관계를 맺고 그분의 다양한 선물로 부유하게 된다는 뜻에서 ‘거룩한 이들’(sancti: 성도들)의 친교이다(로마 8,14). 성령의 무상의 선물(카리스마)은 위로자이신 성령의 자유와 창조력의 결실로서 풍성하게 베풀어짐으로써 신비체인 교회의 성장에 기여한다(1고린 12,7). 모든 세례자는 봉사와 친교 안에 살도록 은사를 부여받으므로 아무도 봉사의 임무에서 면제되지 않는다(1고린 12,4-7).
친교로서 이 새로운 공동체는 ‘이미’와 ‘아직’ 사이에서 성장해야 할 종말론적 실체이다. 또한 친교라는 하느님의 선물을 즐길 뿐만 아니라, 이 선물을 온 인류와 함께 나누는 봉사에로 나가야 한다.
2. 지역교회
지역교회가 바로 ‘가톨릭 교회’(교회적 주체: subjectus ecclesialis), 즉 자기 신비의 충만함 안에 있는 교회, 시간과 공간의 구체적 상황 안에서 실현되는 교회(교회 26)로서 교회의 지역적 실현이다. 이 명제의 근거는 교회의 삼위일체적 기원, 교회의 성찬적 본질, 교회의 인간학적 차원에 있다.
친교인 교회는 하느님의 삼위일체적 역사와 인간 역사가 만나는 자리로서, 바로 여기에서 그 두 역사는 서로를 변화시키고 활력을 불어넣기 위하여 끊임없이 교류하고, 여기에서 이 세상의 사건들은 하느님 안에 완성될 날을 향해 이끌린다. 교회는 계약의 장소로서, 사람들의 시간 안에 현존하시는 삼위일체 하느님의 표징으로서 이 같은 조건 때문에 인간 역사의 과정 안에 구체적으로 자리잡아야 하는 것이다. 삼위일체 하느님의 주도권과 신의는 존재하지도 않는 추상적 역사가 아니라 구체적 역사, 시공간 안에 굳건히 뿌리내리고 발생한 ‘역사들’을 향해 있다. 바로 그 역사들 안에 성부로부터 성자를 통하여 일어나고 언제나 성자를 통하여 성부에게로 돌아가는 성령의 움직임이 작용한다. 즉 성령은 지금 여기서 삼위일체를 현존케 하고, 성령 안에서 시공간의 모든 것이 기원인 삼위일체적 신비에 접근하게 된다. 성령은 그리스도인의 하느님이 중요하게 여기시는 모든 것을 보증하고 사람들의 역사를 자기 것으로 만드신다. 성령은 신비의 역사적 차원이시며 이것을 교회에 선사하신다. 성령이 임하시는 특별한 자리는 그리스도가 제자들에게 지적하시고 내맡기신 것들, 즉 말씀과 새 계약의 생생한 표지들이다.
교회 삶의 절정과 원천으로 제기되는 자리는 성체성사의 거행이다(전례 10). 성찬례는 성령의 사건이고 아울러 그리스도에 의해 제정되고 교회에 의해 충실히 전해진 성사이다. 이것은 새로운 은사적 사건이고 동시에 직무적 구조를 갖춘 제도, ‘교회의 전통’ 안에 지속되는 제도이기도 하다. ‘이미’ 이면서 ‘아직 아니’의 담보이기도 하다. 이 성령론적이고 그리스도론적인 의미에서, 성체성사는 교회를 이루고 교회는 성체성사를 이룬다. 성체성사는 그리스도의 파스카를 재현하여 파스카에 의해 실현되는 화해의 힘으로 사람들을 모으시는 성령 강림의 자리이므로 교회를 이룬다. 교회가 성체성사를 이룬다는 것은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새 계약의 기념제를 거행하기 위해 직무적 분담 하에 스스로 모이는 전례 거행의 공동체인 까닭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 신앙은 성체성사를 일치의 성사로 이해했고 성체성사와 교회를 가리키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몸’(Corpus Christi)이라는 같은 용어를 사용해 왔던 것이다.
그런데 성체성사는 그 본질상 전례를 거행하는 한 구체적 공동체, 뚜렷한 특정 장소와 시간에 결부되어 있다. 그러므로 성체성사 안에서 태어나고 드러나는 교회는 무엇보다 지역교회이다. 파스카 기념제의 거행 중 그리스도의 신비의 충만이 우리에게 베풀어지는 것과 같이 성찬례를 거행하는 지역 공동체 안에 그리스도교의 가장 오랜 전통에 따라 로마 주교의 주재 아래 교회 신비의 충만, ‘지금 여기에서’ 성취되는 ‘가톨릭 교회’가 현존하는 것이다. 이 성찬적 교회론이 교회헌장 3장에 잘 요약되어 있다(교회 26). 지역교회의 일치의 표지이고 직무 봉사자인 주교의 주재아래 모이는 성찬적 지역 공동체는 이를 이루는 유일한 성령과 유일한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하나이요, 동일한 성령에 힘입어 거룩하며, 주님의 신비를 충만하게 재현하므로 보편되며, 사도적 전승의 이어받는 직무적 구조를 갖기에 사도로부터 이어온다.
인간학적 질서의 고찰도 지역교회를 정당하게 평가하게 해준다. 인간은 추상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상호 의존의 특정의 문화와 역사에 뿌리를 두고 구체적으로 존재한다. 이들에게 구원의 소식이 선포되고 이해되고 수용되어야 한다(토착화). 인간학적 관점에서 교회는 본래 지역교회, 그리스도 안에서 선사되는 구원의 실재와 특유한 자연적, 사회적, 문화적 모든 특징을 구비한 구체 상황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만남의 자리로 나타난다.
지역교회의 일치는 사제단과 부제단과 더불어 세례 받은 모든 이들의 능동적 참여와 더불어 주교에 의해 집전 되는 성체성사에서 가장 고귀하게 표현되는 동시에 그 원천을 두고 있다(교회 26). 개인들과 공동체들이 부여받는 은사와 직무의 다양성은 지역적으로 실현되는 친교 안에서 유일한 말씀과 유일한 빵과 한 분 성령의 능력에 힘입어 일치시키는 주교의 직무와 다른 모든 직무의 수행에 의해 수용되고 조정된다. 주교는 그의 지역교회 안에서 실현되는 ‘가톨릭 교회’ 일치의 표징이고 직무 봉사자이다(단일성과 다양성 및 친교).
선교(mission)에 있어서도 지역교회는 삼위일체적 친교와 신적 파견(missio) 사이에 현존하는 관계를 반영하는 파견과 친교의 연간으로 말미암아 우위를 차지한다(선교 1장). 세례와 성체성사로 교회 공동체 안에 선교사명에서 제외된 자는 아무도 없다. 각자 맡은 은사와 직무에 따라서 일치에 봉사하는 교역자인 주교와 사제의 직무를 중심으로 선교사명에 부리었다. 지역교회가 복음 전체를 선포하는 것이다(선교적 주체의 가톨릭적 차원).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