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활동의 요소-증언과 증거(외부 전달)(체험과 증언-부활 증언에서 체험과 언어)

 

3. 부활 증언에서 체험과 언어




부활 증언은 체험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신앙의 재해석에 의한 부활의 실재를 입증하려는 언어의 사건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실재로 발생한 실질적인 사건이며 동시에 ‘언어의 사건’으로서의 신앙의 사건이다. 증언한다는 것은 한사건의 직접적인 체험을 언어의 사건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증언이란 단순한 반복과는 다른 것으로서 항상 한 사건의 독창적인 재현(reproduction)이다. 부활은 역사적 사건으로 환원될 수 없는 사건이다. 하지만 역사적 사건에서 기원하는 부활 증언은 그 증언의 구조에 관계되는 신약성서의 언어를 분석함으로써 부활에 대한 지표를 추정할 수 있게 한다.


부활의 증언은 소송 사건과 같이 경험적인 확증이나 보고서와 같은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사실에 대한 체험과 증인의 주도권과는 상관없는 외부의 사건으로서 새로운 체험이다.




(1) 부활 신앙의 언어들




신약성서의 세 종류의 전승


첫째, 신앙고백문이다. 일정한 양식으로 고정되고 간결하다. 사도들의 설교에서, 교리교수에서, 원시교회의 전례에서 발생하였다. 원래 독립된 거이기에 문맥 안에서 쉽게 가려낼 수 있다. 부활 전승 가운데서 가장 오래 된 증언이며 제일 먼저 기록된 대목들이다(로마 1,3-5; 필립 2,6-11; 에페 5,1-14; 1디모 3,16; 사도 10,40; 2,22-40; 3, 12-16).


“그리스도께서는 성경대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으셨으며, 묻히셨고, 또한 성경대로 제3일에 일깨워졌으며, 게파에게 나타나셨으며, 그 후에는 열두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1고린 15,3-5).


“주님은 참으로 일깨워졌으며 시몬에게 나타나셨습니다.”(루가 24,34).


둘째, 빈 무덤 사화는 신앙고백문과는 독립된 것으로 늦게 저술된 초대교회의 저승이다.


셋째, 발현 사화다. 독립된 것도 있으나 빈 무덤과 결합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본래 독립된 것들을 복음사가들이 연결하였다(마르 16,7; 루가 24,36-49; 요한 20,14-17; 21,1-23).


부활에 관한 전승들은 부활 언어의 유형들(신앙고백, 증언, 서술적 보고, 전례적 기록, 신학적 해석)을 가지고 있다. 고린토 전서는 신앙고백문이면서도 1인칭의 증언의 양식을 갖고 있다(15,5-8). 복음서들은 차츰 3인칭으로 객관성을 담으러 시도하고 있으나 발현은 직접적인 체험을 표현한 것으로 이 체험에 대한 신앙의 재해석이다. 그래서 증언의 주관성과 객관성에 관계  없이 수신인의 신앙을 일깨우고자 하는 점에 유의할 것이다(사도 1,1-3). 이 기록들은 사실을 확증하는 진술이 아니라 신앙을 권유하고 유발하는 진술이란 점이다. “참으로 주께서 부활하셨다”(루가 24,34)는 초기 신앙고백문은 신앙에 대하여 보고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을 알려주고 선포하고 있다. 이것은 서술적이거나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 예수께 대한 동의를 중재하는 것이요 결단을 초대한다.




(2) 역사적 체험과 언어




역사는 있는 그대로의 생생한 사건들에서부터 출발하는 사건들의 총체가 아니다. 인간들의 삶으로서의 인간 역사는 삶에 대한 기억과 이해와 새로운 희망으로 어우러져 있다. 역사에 대한 이해에 따라 사건들이 다르게 산출된다. 이런 역사 체험과 이해의 관점에서 그리스도의 죽음과 교회 탄생 사이의 오십일 안에 발생한 사건들에 대한 증언들은 역사적인 체험과 해석이 불가피하게 결합되어 산출된 결과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부활은 십자가 사건과는 다른 역사적 탐구의 대상이 되는 다른 역사적 사건들과는 성질이 다르다. 그런데 부활 사건은 역사를 초월하지만 역사적인 차원을 포함하는 것으로서 역사 안에 구체적인 흔적을 남긴다. 그것은 빈 무덤과 발현 그리고 사도들의 부활의 선포라 할 수 있다.


발현을 부활의 역사적 표징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표징일 뿐 증거는 아니다. 발현은 경험의 차원에서 감각적인 경험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표징으로서의 발현은 증인의 자유에 완전히 맡겨져 있다. 발현은 신앙에로의 초대이지 부활에 대한 경험적인 확증은 아니다.


부활이 역사적인 흔적을 남긴다는 관점에 집착하여 발현의 역사성을 정립하기 위하여 초기 증인들의 신앙의 해석이 없이도 사건들을 생생히 드러낼 수 있다는 생각은 오판이다. 발현은 실제 역사적 사건들과 언어의 사건들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증인들은 발현의 실제 사건들을 증언한다. 그러나 이 사건들은 가공되지 않은 있는 그대로 보고되는 것이 아니라 증언들은 해석된 사건들이다.


사건들의 실질적인 원천과 증인들의 예수에 대한 이미지와 성서의 저자들에 의해서 주어진 예수의 역사를 동일시 할 수 없는 것이다. 부활 사건 자체와 증언을 동일시 할 수도 없다. 증언들은 보고가 아니라 선언으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성서 텍스트가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택한 증언 방법은 “객관적으로 본 것”을 말하는 것이다(사도 1,3). 그러나 이 증언은 청자에게 신앙고백으로 다가오고 신앙의 체험으로 포장되는 것이다. 부활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과는 다르다. 이것은 부활 신앙의 고유한 언어에서 출발해야만 도달할 수 있는 해석되어진 사건이다. 사실 자체는 언어의 사건에서 굴절되는 것이다. 부활신앙은 발현의 증인들인 사도들의 역사적 증언에서 기인한다. 사도들의 신앙은 보고된 사건들의 史實的인 성격에서보다 사건들을 넘어서는 자신을 계시하시는 부활하신 예수의 인격에서 기인한다. 증언(언어) 없는 부활 신앙은 없는 것이다. 실질적인 현상에 대한 체험 없이는 부활에 관한 증언이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이 역사적 체험은 신앙의 체험 안에서 포장되어 다양한 표현들을 만들어 낸다.


해석학은 텍스트가 작성된 과거의 문화와 오늘의 문화와의 시간적인 거리뿐 아니라 텍스트가 근거하는 역사적인 사실과 텍스트의 증언과의 거리를 극복해야 할 이중의 과제를 갖고 있다. 부활의 신비를 표현하는 다양한 부활 언어들을 분석하면 역사적인 체험과 신앙의 언어의 관계를 규명할 수 있을 것이다.


다양한 표현 중에서 전승에 포함되고 가장 오래된 양식은 “하느님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예수를 일으키셨다”는 것이다. 이 것은 불완전함에도 불구하고 교회 전승 안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부활의 어휘들을 교정하고 보완하는 기능을 가진 생명과 현양과 같은 성서의 언어들도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 부활에 부정적인 희랍인들에게 루가와 바오로는 “영원한 생명”이나 “죽은 자들 가운데서 처음으로 살아난 자”라고 하면서 새로운 생명을 입증하려고 노력하나, 이는 이 전의 생명에로 돌아갔다는 것을 뜻할 수 있는 위험이 있다. 현양이란 표현은 부활의 종말론적인 성격을 강조하는 기능을 갖는다. 이 해석은 시체가 생명을 되찾은 것으로서의 부활 기적과 하느님 오른편에 현양되고 영광을 입으셨다는 것으로서의 부활의 신비를 분별하도록 도와준다. 성서의 독자들이 상상의 모든 함정을 극복하고 차안의 영역을 넘어서는 다른 생명과 다른 육체에 대해서 착상하도록 돕는다.


부활 신앙은 간단히 고백된다. “예수께서는 주님이시다.” 이는 “하느님께서 예수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시키셨다.”는 초기 양식과는 다르게 표현되는 것이다.


부활 증언은 종말론적인 목적을 갖는다. 사도들은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그리고 종말론적 심판자로 이해하였다. 이것은 부활의 역사 초월의 차원을 말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부활 증언은  해석적인 신앙이 경험적인 확인 검증보다도 더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데, 이 증언은 사건에서 체험의 언어에로 옮아가는 것이다. 이 체험의 분석에 의하면 목격 증인들도 접근할 수 없는 하느님의 행위로 이해된다. 그리스도의 부활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느님, 증언 역시 하느님의 능력으로 이해된다. 하느님은 사도들의 증언에 역사하시고 그 증언에 대한 신앙의 동의 안에서도 역사하신다. 초기의 목격 증언과 사도들의 설교의 증언, 신앙인들의 신앙고백의 증언은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이해되는 것이다(1고린 2,4). 이처럼 증언은 그 자체로 증언의 근원이 되는 부활 사건의 연속이요 언어의 사건이 되는 것이다.




(3) 언어의 사건으로서의 증언




부활 신앙의 다양한 언어들의 분석 결과 부활 증언 안에는 체험과 해석이 서로 분리될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부활이 증언에 의해서 언어의 사건이 됨으로써 그 사건은 새로운 실재로 해석되고, 증언은 창의적인 성격을 가지면서 언어의 사건이 된다.


Bultmann1)에 의하면 “그리스도의 부활 진리는 부활한 자를 주로 승인하는 신앙 이전에 통찰될 수 없다. 부활의 사실은 -1고린 15,3-8에도 불구하고- 객관적으로 확인되는, 믿을 수 있는 근거가 되는 사실(Faktum)로써 증명 또는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부활은-이렇게만 믿을 수 있다- 그것 또는 부활한 자가 선포된 말에 현존하는 한, 믿어질 수 있다….그리스도는 사도에게서 바로 부활한 자로 현존한다.” 이 말은 “예수는 케리그마 즉 부활 선포 안에 부활하셨다.”라고 이해된다. 만일 이 말이 부활의 역사성을 부정하는 것을 의미한다면 이 말은 받아들여질 수가 없다. 그렇지만 이 말이 경험적인 사실로서의 발현들에 의해서만 예수 부활은 역사 안으로 들어온 것이 아니라, 사도들의 신앙 증언을 통해서 예수 부활이 역사 안으로 들어 왔다는 것을 발하기 위한 것이라면 이 말은 아주 의미 깊은 것이다.


케리그마 자체 안에 부활의 완성이 있다. 모든 역사적 사건은 그 무엇으로부터 어떤 말과 증언을 유발한다. 실질적인 사건이 언어의 사건이 되었을 때 이 사건은 이로써 참으로 그 의미가 현실화되며 이로써 인간 역사에 속하게 된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 사건에서 특히 그렇다. 한 사건의 역사성은 史實에 관한 농도와 생생한 자료에서보다는 인간 공동체가 그 역사를 인식할 수 있는 그리고 교정하고 다시 만들 수 있는 언어 안으로 들어가는 그 敵性에 더 기인한다. 증언을 일으키지 않는 사건이나 경험은 관심이 없거나 더나아가서 존재하지 않는다. 역사는 전통 안에서 언어에 의해서 즉 의미들의 조직 안에서 이름지어지고 해석되고 재배치되는 사건들만을 거두어들인다. 역사적 신빙성과 그 실재가 어떠하든 간에 말로써 내가 언어에게 역사적으로 주어진 상황을 일어나게 하려는 것은 그 사건의 인간적인 의미의 시발이며 이러한 의미에서 그 사건이 재구성된다.


증언한다는 것은 실제의 역사적인 사건을 언어에게 일어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순수하게 그리고 단순하게 사건을 상세하게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사건을 새로운 현존으로 향상시키는 것이다. 누구도 실제로 사건과 증언에 의해서 사건에 덧입혀지는 새로운 의미를 분리시킬 수 없다. 사건과 의미의 살아 있는 진술(articulation)이 입증되는 것은 말씀의 언어학에서다.


史實로부터의 의미의 추출은 사건의 선포로서의 증언에 의해서 진행된다. 부활의 경우, 부활에 관한 증언들에 의해서만, 신앙고백들에 의해서만, 그리스도의 부활에 이를 수 밖에 없음을 말한다. 우리는 시-공간의 부활의 조건에서는 부활에 도달할 수 없으며, 부활이 언어의 사건이 되었을 때 도달 가능하다는 것이다.


인간의 증언은 과거의 것을 사진 복사하거나 속기하는 기술과는 다르다. 사건을 말에게로 옮아가게 함으로써, 증언은 사건을 재창조하며, 사건에게 새로운 실재를 부여한다. 이로써 역사적 사실성을 갖는 사건은 이 사건의 증인이 갖는 이해와 분리시킬 수 없는 선포되어진 것으로서의 사건이 되어 고유한 생명을 갖게 된다.


역사가는 실재들을 창조한다. 하지만 부활의 경우에는 증인의 자유로운 해석과 증언에 의해서 이 사건이 새로운 실재에로 승급하는 것은 아니다. 증인의 부활 해석과 신앙 고백은 하느님의 성령의 업적이며 신앙의 업적이다. 역사적 사건으로서의 그리스도의 부활 안에서 활동하시는 하느님의 능력이며 이 능력은 부활 사건에서와 같이 사건에 대한 증언 안에서 활동하신다. 하느님의 능력은 신앙 고백된 부활과 언어의 사건이 된 부활 안에서 활동하신다. 부활에 대한 신앙인들의 증언들을 도외시하고 부활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못하다. 부활의 고유한 자리는 소여 역사라기보다는 부활 신앙의 언어인 것이다.


실재와 언어의 살아 있는 얽힘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하는 자만이 그리스도의 부활은 초기 증인들의 신앙의 산물일 뿐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이 이유는 부활은 증인들이 물리적인 기적에 대한 세세한 보고를 전달한 그 물리적인 기적의 사실성을 넘어서기 때문이며 부활이 신앙공동체 모두의 말이 되었기 때문이며 부활이 진정한 역사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부활에 대한 증언들은 이 증언들을 유발하게 된 역사적인 사건에 되돌려 보낸다. 그러나 이 증언들은 이 증언들과 신앙공동체의 전통의 역사적 자취가 되는 신앙 고백의 공동체의 전통이 분리될 수 없는 방법으로 돌려보낸다. 이것은 우리가 같은 신앙의 전통에 속하기 때문이며 우리도 이러한 다양한 증언들을 통하여 부활자의 인격에 결합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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