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활동의 요소-증언과 증거(외부 전달)(체험과 증언-신앙인들의 오늘의 증언)

 

4. 신앙인들의 오늘의 증언




증언은 특별한 체험에 대한 해석이다. 사도들의 부활 증언은 이 발현의 체험과 함께 예수의 말씀과 성서의 종말론적 약속에 대한 신앙의 깨우침이 상호작용한 결과다. 체험은 이미 발생한 것을 해석하는 언어로 표현되며 이로써 체험은 해석으로써의 언어와 동일시된다 이점이 증언이 사건에 대한 순수한 회고와 다른 이유다. 증인이 그 체험을 증언하려고 할 때 어는점에서는 체험을 재창조한다. 체험이 언어와 만나게 되어 언어가 되면서 증인이 된다.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은  사도들에 비해서 상황의 새로움과 신앙의 정통성을 동시에 강조해야 할 것이다.


1.사도들의 증언은 신앙 안에서의 증언이며 중개 없는 직접적인 목격 증인이다. 사도들은 세례자 요한에 의한 예수의 세례에서부터 승천에 이르기까지 예수의 말씀과 행적(특히 죽음과 부활; 사도 1,22)에 대한 직접적인 목격 증인들이다. 그들이 보았기 때문에 말하지 않을 수 없는 자들이다(사도 4,20). 이들의 인식은 독점적 특혜로써 이 특혜와 사도적 카리스마는 전해질 수 없는 것이다.


후대의 신앙인들은 위임된 자의 대리인으로서 증인들이다. 신도들은 전해 들음으로써 알 수 있을 뿐이며 전해 받은 것만을 전달할 수 있을 뿐이다. 신도들이 증인이 될 수 있는 길은 사도들의 증언과 연속성을 가질 때뿐이다.


2.사도들은 중립적인 증인이 아니라 신앙인이다. 사도들의 신앙 발생과정은 신도들의 과정과 다르지 않다. 사도들의 신앙이 발현과 같은 역사적인 징표에 근거하며 신도들의 신앙이 사도들의 증언이라는 역사적인 실재에 근거한다고 할지라도 신앙은 발현의 징표나 사도들의 증언 그 자체에서 자동적으로 발생하지 않는다. 성령의 내적인 증언에 의해서 신앙인은 죽음과 교회의 탄생 사이의 오 십일의 동시대에 놓여지게 된다. 사도들의 신앙은 에수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난 종말론적인 구원의 표징들로서의 사건들에 근원한다.  마찬가지로 신도들의 신앙은 일어난 일에 대한 언어 행위로서의 복음의 기록이라는 물적인 구성체에서 기원하는 것이 아니라, 사도적 증언을 구원의 복음으로 받아들이도록 하는 성령의 활동에 근원한다.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신앙인이 된 신도들은 에수를 증언하기로 결심하고 증인이 된다(루가 1,1-4; 요한 20,29).


오늘의 신앙인의 증언의 근원에는 사도들과 마찬가지로 개인적인 체험과 신앙 안에서의 해석이 있다. 복음의 역사적인 증언, 예수의 현존에 대한 교회의 표징들, 나자렛 예수와의 인격적인 만남이 있다(2고린 4,13).


3.신앙인의 증언은 개인적인 체험의 단순한 표현은 아니다. 그것은 살아 있는 전통과 세기를 걸친 신앙을 고백하는 공동체로서의 교회 안에 있다. 그러나 그 새로운 해석 작업과 창조적인 노력은 있어야 한다. 신앙인의 고유한 실존적인 중개 없이는 증언이 어려우며 부활 신앙의 내용을 나의 것으로 만들려는 의지가 있어야만 한다. 이러한 언어의 사건 안에서 부활의 메시지를 재해석하는 작업만이 현대인에게 신앙을 일깨울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교회의 전통 안에서 간직해 온 그 의미를 왜곡시키지 않으면서 어떻게 오늘의 언어로 옮기는 작업이 가능한가? 그리스도교  선교의 시급하고도 중요한 과제라 할 것이다.


나의 증언은 나의 고유한 실존이 그리스도의 현존과 능력을 내가 증명하는 그러한 방법에 의해서만 살아 있다. 그러나 부활 증언은 신앙 고백이어야 하며, 교회의 신앙에 일치해야 한다. 부활 신앙의 표현 양식에 있어서도 재독과 재해석은 사도적 증언들이 발생한 초대 교회 공동체와 연속성을 가진 해석의 공동체인 교회 안에서 항상 이루어져야 한다.


초대 증인들의 체험과 오늘의 기대를 동시에 충족할 유일한 언어는 희망의 언어가 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다’는 초대 그리스도인들의 오랜 신앙고백을 되풀이하는 것만이 아니라 삶 안에서 인류 사회 안에서 그리고 역사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약속된 미래의 의미 깊은 희망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인간의 실존이 가치가 있다는 증언은 미래의 희망이어야 하고, 모든 증언은 희미하게 보이는 미래의 희망에 대한 실천적인 해석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모든 인간의 증언은 막연하게나마 부활의 진리를 향한 것처럼 생각된다. 인간의 증언의 기능은 닫힌 언어의 사막에서, 침묵의 사막에서 항상 새롭고 예측 불가능한 그 어떤 것에로 인간의 역사를 희망을 향하여 열어 놓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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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uest 님의 말:

     

    4. 신앙인들의 오늘의 증언


    증언은 특별한 체험에 대한 해석이다. 사도들의 부활 증언은 이 발현의 체험과 함께 예수의 말씀과 성서의 종말론적 약속에 대한 신앙의 깨우침이 상호작용한 결과다. 체험은 이미 발생한 것을 해석하는 언어로 표현되며 이로써 체험은 해석으로써의 언어와 동일시된다 이점이 증언이 사건에 대한 순수한 회고와 다른 이유다. 증인이 그 체험을 증언하려고 할 때 어는점에서는 체험을 재창조한다. 체험이 언어와 만나게 되어 언어가 되면서 증인이 된다.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은  사도들에 비해서 상황의 새로움과 신앙의 정통성을 동시에 강조해야 할 것이다.

    1.사도들의 증언은 신앙 안에서의 증언이며 중개 없는 직접적인 목격 증인이다. 사도들은 세례자 요한에 의한 예수의 세례에서부터 승천에 이르기까지 예수의 말씀과 행적(특히 죽음과 부활; 사도 1,22)에 대한 직접적인 목격 증인들이다. 그들이 보았기 때문에 말하지 않을 수 없는 자들이다(사도 4,20). 이들의 인식은 독점적 특혜로써 이 특혜와 사도적 카리스마는 전해질 수 없는 것이다.

    후대의 신앙인들은 위임된 자의 대리인으로서 증인들이다. 신도들은 전해 들음으로써 알 수 있을 뿐이며 전해 받은 것만을 전달할 수 있을 뿐이다. 신도들이 증인이 될 수 있는 길은 사도들의 증언과 연속성을 가질 때뿐이다.

    2.사도들은 중립적인 증인이 아니라 신앙인이다. 사도들의 신앙 발생과정은 신도들의 과정과 다르지 않다. 사도들의 신앙이 발현과 같은 역사적인 징표에 근거하며 신도들의 신앙이 사도들의 증언이라는 역사적인 실재에 근거한다고 할지라도 신앙은 발현의 징표나 사도들의 증언 그 자체에서 자동적으로 발생하지 않는다. 성령의 내적인 증언에 의해서 신앙인은 죽음과 교회의 탄생 사이의 오 십일의 동시대에 놓여지게 된다. 사도들의 신앙은 에수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난 종말론적인 구원의 표징들로서의 사건들에 근원한다.  마찬가지로 신도들의 신앙은 일어난 일에 대한 언어 행위로서의 복음의 기록이라는 물적인 구성체에서 기원하는 것이 아니라, 사도적 증언을 구원의 복음으로 받아들이도록 하는 성령의 활동에 근원한다.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신앙인이 된 신도들은 에수를 증언하기로 결심하고 증인이 된다(루가 1,1-4; 요한 20,29).

    오늘의 신앙인의 증언의 근원에는 사도들과 마찬가지로 개인적인 체험과 신앙 안에서의 해석이 있다. 복음의 역사적인 증언, 예수의 현존에 대한 교회의 표징들, 나자렛 예수와의 인격적인 만남이 있다(2고린 4,13).

    3.신앙인의 증언은 개인적인 체험의 단순한 표현은 아니다. 그것은 살아 있는 전통과 세기를 걸친 신앙을 고백하는 공동체로서의 교회 안에 있다. 그러나 그 새로운 해석 작업과 창조적인 노력은 있어야 한다. 신앙인의 고유한 실존적인 중개 없이는 증언이 어려우며 부활 신앙의 내용을 나의 것으로 만들려는 의지가 있어야만 한다. 이러한 언어의 사건 안에서 부활의 메시지를 재해석하는 작업만이 현대인에게 신앙을 일깨울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교회의 전통 안에서 간직해 온 그 의미를 왜곡시키지 않으면서 어떻게 오늘의 언어로 옮기는 작업이 가능한가? 그리스도교  선교의 시급하고도 중요한 과제라 할 것이다.

    나의 증언은 나의 고유한 실존이 그리스도의 현존과 능력을 내가 증명하는 그러한 방법에 의해서만 살아 있다. 그러나 부활 증언은 신앙 고백이어야 하며, 교회의 신앙에 일치해야 한다. 부활 신앙의 표현 양식에 있어서도 재독과 재해석은 사도적 증언들이 발생한 초대 교회 공동체와 연속성을 가진 해석의 공동체인 교회 안에서 항상 이루어져야 한다.

    초대 증인들의 체험과 오늘의 기대를 동시에 충족할 유일한 언어는 희망의 언어가 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다’는 초대 그리스도인들의 오랜 신앙고백을 되풀이하는 것만이 아니라 삶 안에서 인류 사회 안에서 그리고 역사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약속된 미래의 의미 깊은 희망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인간의 실존이 가치가 있다는 증언은 미래의 희망이어야 하고, 모든 증언은 희미하게 보이는 미래의 희망에 대한 실천적인 해석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모든 인간의 증언은 막연하게나마 부활의 진리를 향한 것처럼 생각된다. 인간의 증언의 기능은 닫힌 언어의 사막에서, 침묵의 사막에서 항상 새롭고 예측 불가능한 그 어떤 것에로 인간의 역사를 희망을 향하여 열어 놓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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