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정의의 실천(Kingdom value)
예수그리스도의 직무의 핵심은 하느님 나라와 그의 정의이다(마태6,33). 이것은 온갖 묵은 것의 완전한 전환이기에 신앙(회개)의 문제다. 예수가 이해하는 하느님, 자신과 하느님과의 고유한 관계, 그 모든 비전과 내용이 하나로 집약된 말이 하느님 나라다. 하느님 나라는 단순히 하늘이나 이 세상의 고통이나 덕행에 대한 보상으로 주어지는 내세의 상급이 아니다.1) 하느님 나라는 영토나 국가가 아니라 ‘하느님의 다스림’이다. 하느님 나라는 모든 것을 능가하는 ‘절대 선’이다(복음선교8). 하느님 나라는 예수님 안에 결정적으로 임했으나, 세상 종말에 새로움과 함께 완결될 것이다. 그러나 이 나라의 효과는 역사 내적인 실재이기에, 우리의 현재는 마직막 완성에 기여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그래서 하느님의 미래는 현재에 있어서 하느님의 부르심이며 현재는 하느님의 미래의 빛 아래 있는 결단의 시간이다2).
그래서 하느님 나라의 완성은 미래의 세상에서 실현된다. 그러나 다른 또 하나의 나라가 아니라, 다른 하나의 나라다. 이것은 우리가 바라는 것은 이 세상을 탈출하거나 다른 나라로 대체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바로 하느님의 나라가 된다는 것이다. 우리의 세상이 새롭게 변화되고 전환되고 하느님의 뜻대로 완성될 때 하느님의 나라는 충만하게 된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나라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그렇게 되어야만 하고 그렇게 되도록 요청되는 미래의 이상적 세상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들의 윤리적인 행동의 변화를 의미하지 않고 인간사회의 정치, 문화, 경제 등 구조조정을 의미한다.
교회가 해야 할 첫 단계는 우리 세상 어디에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일어나고 있는가를 살피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느님 나라가 오늘의 세상의 완성이요 실현이라면, 이 세상 어딘가에 하느님 나라가 초기나 미세한 방법으로라도 이미 존재한다는 하느님 나라의 낌새(요소)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신자와 교회가 찾아야 하고 길러야 할 하느님 나라의 씨앗이다. 이것이 하느님 나라 건설의 초기단계가 식별이라 하는 이유다. 실재로 중요한 움직임이 일고 있다면, 신앙인은 어디에 힘을 쏟을지 알게 될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이 세상과 교회의 공동체와 제도 안에서 하느님 나라의 씨앗을 경작하기 시작할 것이다.3)
***Signs of the time
교회는 지난 30여년간 어디에 하느님의 나라가 임하시며 존재하는지 식별하기 위하여 세상에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 의식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신자 개인이나 교회 당국은 시대의 징표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인권과 전반적인 구조적인 정의에 초점을 둔 인간의 기본권에 대한 투쟁으로 보았다. 두 가지 중요한 점은 정의란 단순히 물질적인 재화를 공평하게 나눈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이며,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주는 의사결정에 일반 사람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중요하다는 점이다.4) 성서(마태6,33; 루가4,18-19)와 교회의 가르침에 의하면, 정의란 올바른 관계를 말한다.-자신, 하느님, 이웃, 환경. 올바른 관계란 공동체나 하느님 나라의 다른 말이다. 삼위일체의 공동체, 인간 공동체, 창조 공동체. 그렇다면 정의를 위한 행동은 복음선포의 기본적인 요소가 된다. 교회는 하느님 나라의 실현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가 자라나야 할 씨앗이요 누룩으로서 그 일부이다. 교회는 하느님 나라와 그 정의를 힘있게 증거 해야 하고, 그들을 북돋우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 증거와 도구의 역할이 소공동체 운동에서 확고하고 효과적으로 실현된다.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