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에서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리고 싶다는데…

비신자였던 서영희 씨는 10년 전에 가톨릭신자이면서 냉담중에 있던 김영석 씨를 만났다. 서로 사귀다보니 그들은 깊이 사랑하게 되었고 특별한 죄책감 없이 동거하게 되었다. 그러다 서씨가 애를 갖게 되자 남의 이목도 있고 부끄럽기도 하여 둘은 결혼을 서둘렀다. 그러나 김씨 쪽 집안사정으로 결혼식까지는 올리지 못했고, 약혼식만 한 채 살다가 애를 둘이나 낳게 되었다.
애들을 키우고 살림을 꾸려가는 동안,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으나 빠듯하고 여유없는 생활로 그 뜻은 좀체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다 남편 김씨의 권유로 ’92년에 서씨는 아이들과 함께 영세를 하게 되었다. 냉담중인 채 조당 상태에 있던 남편 김씨는 서씨가 영세하기 전에 근처 성당의 신부님을 찾아가서 조당을 풀었다.
지금은 착실한 성가정이 되어 신자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으나 식을 올리지 않은 것에 대해서 늘 마음에 서운함으로 남아 있다. 더욱이 성당에 나가면서 성당에서는 혼전관계를 금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어 지난 일이지만 죄스럽고, 성당에서 혼배미사 하는 걸 볼 때면 너무 부럽기도 했다. 이제 어느 정도 아이들도 컸고 여유를 갖게 된 서씨와 김씨는 가족과 아는 분들을 모시고 축복 받으면서 성당에서 정식으로 식을 올리고 싶은데 그것이 가능한지에 대해 물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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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에서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리고 싶다는데…에 1개의 응답

  1. user#0 님의 말:

    우리 나라의 민법은 법률혼(法律婚)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혼인의 실질적 성립 요건을 갖춘 – 그러니까 혼인장애가 없는 – 한 남자와 한 여자가 호적법에 따라 관계기관에 신고할 때 혼인이 성립되는 것으로 간주한다는 뜻이다(민법 812조 1항). 법률혼주의의 관점에서 보면 혼인식은 혼인을 성립시키는 필수적 조건이 아니라, 당사자들이 가족과 친지들 앞에서 혼인 사실을 공표하며, 그들에게 축복을 청하고 그 기쁨을 함께 나누는 의식일 뿐이다. 혼인식 자체가 혼인 관계를 사회적으로나 법적으로 인정받게 하는 수단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가톨릭교회에서는 의식혼(儀式婚)주의를 택한다. 즉 혼인이 이루어지려면 교구 직권자나 본당 사목구 주임 또는 이 두 사람중 한 사람으로부터 위임받은 사제나 부제가 주례하고 두 명의 증인 앞에서, 법으로 명시된 규칙에 따라 맺어져야만 한다(교회법 제1108조 2항 참조). 이 규범은, 실무에 있어서, 두 가지 방법으로 적용되고 있다. 인생의 두 번째 출발점이라고 하는 혼인을 화려하게 시작하기 위해서 예복, 장식, 미사, 노래 등을 갖추어 외적으로도 성대하게 거행하는 경우를 성식혼인(盛式婚姻)이라고 한다. 그러나, 개인적인 여러 가지 사정이 겹쳐 화려한 식을 거행하지 못할 경우에, 필요한 요건만을 갖추어 간력하게 거행하는 경우는 약식혼인(略式婚姻)이라고 한다. 약식혼인은 흔히 신자와 비신자 또는 신자와 타교파 신자가 관면을 받고 사회의 예식장과 같이 성당 아닌 다른 곳에서 예식을 올리려고 할 때, 신자로서 교회법적 형식을 지키게 하기 위하여 사용한다. 또한 교회법적 형식을 지키지 않고 사회적 예식만 거행하였거나, 그러한 식도 없이 동거함으로써 조당중에 살던 신자가 조당을 풀기 위한 방법으로도 많이 사용되고 있다.

      이 부부의 경우는 김영석 씨가 가톨릭신자였으니까, 식을 올릴 형편은 안 되고 동거는 해야 할 처지였다면, 그러한 사정을 본당 주임신부님께 말씀드리고, 서씨가 비신자였으니 관면을 받고, 약식혼인이라도 했어야 옳은 일이었다. 물론 김씨가 냉담중이었다니 그렇게 하지 못한 이유를 이해할 수는 있다. 이 부부는 교회법적 형식을 지키지 않았기에 조당 상태가 되었지만, 서씨가 영세하기 전에 근처 성당에서 신부님을 찾아가 조당을 풀었다니 다행스러운 일이다. 조당을 풀지 않았다면 서씨의 영세는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당을 풀었다는 사실 자체는 동거중인 김씨와 서씨에게 필요한 요건을 갖춰 약식혼인을 거행했다는 말이다. 당사자들은 아마 그런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질문을 하게 되었다고 본다.
      우리들의 일반적인 사고방식 때문에 겉으로는 혼인식처럼 보이지 않는 약식혼인도 한 남자와 한 여자를 부부로 맺어지게 하는 혼인합의를 교환하는 완전한 식이다. 김씨와 서씨는 조당을 푸는 약식혼인 예식으로 교회법적으로도 또 교회공동체 안에서도 정당한 부부로 인정받은 것이다. 이들 부부가 교회에서 성식혼인하기를 원한다면 조당을 풀 때 했어야 한다. 한번 한 혼인을 개인의 편의에 따라 반복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이 부부가 원하는 성식결혼식은 이제 성당 안에서는 할 수 없다. 김씨와 서씨가 동거중일 때에는 교회가 인정하는 혼인관계가 아니었기에 그들의 관계는 불법적일 뿐 아니라 유효한 것도 아니었다. 또 이들이 동거하기 전에 관면을 얻고 혼인을 하였다 하더라도 – 관면혼인이라 함 – 신자와 비신자의 혼인이기 때문에 성사적 혼인이라 하지 않고 자연적 혼인이라 한다.
      그러나 동거중이었던 김씨와 서씨가 약식혼인을 통해 김씨의 조당을 해소하고 서씨가 영세하였기 때문에 이제 이들의 혼인관계는 성사적 혼인으로 격상되었다(교회법 제 1055조 1항 참조). 세례를 받은 사람이라는 신분이 혼인을 성사화하기 때문이다. 부부가 다 영세한 상태에서 성대한 의식을 통하여 혼인합의를 다시 교환한다는 것은 성사를 남용하는 일이 될 뿐이다.
      그렇지만 이들 부부의 형편도 나아졌고, 남들처럼 화려하게 혼인식도 거행하고 싶고, 양가의 부모와 친지들에게 늦게라도 인정받기 위해서나 그 외의 다른 이유로 꼭 성대한 결혼식을 원한다면 사회의 예식장과 같은 성당 밖의 장소에서 식을 올리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 부부는 이미 혼인신고가 되어 있는 상태이므로, 성당 밖에서 사회적인 격식을 갖추어 결혼식을 거행하는 것은 사회적으로나 교회법적으로도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니 당사자들이 결정해야 하겠다.
      서씨의 질문에 곁들여 사족(蛇足)을 붙인다면, 서씨는 과거에 사회적 윤리나 교회의 가르침을 어긴 점에 대해 이제는 부끄러워할 것도 없고 죄책감을 가질 이유도 없다. 하느님을 알지 못했을 때 저질렀던 모든 죄와 허물을 사해주고 하느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나게 한 세례성사의 은혜를 믿어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사람으로 불러주신 하느님께 대한 한결같은 믿음과 성실한 나날의 생활 안에서, 원만한 부부관계와 책임 있는 자녀교육을 통하여 건전한 가정을 이루기를 축원한다.

     

  2. user#0 님의 말:

    우리 나라의 민법은 법률혼(法律婚)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혼인의 실질적 성립 요건을 갖춘 – 그러니까 혼인장애가 없는 – 한 남자와 한 여자가 호적법에 따라 관계기관에 신고할 때 혼인이 성립되는 것으로 간주한다는 뜻이다(민법 812조 1항). 법률혼주의의 관점에서 보면 혼인식은 혼인을 성립시키는 필수적 조건이 아니라, 당사자들이 가족과 친지들 앞에서 혼인 사실을 공표하며, 그들에게 축복을 청하고 그 기쁨을 함께 나누는 의식일 뿐이다. 혼인식 자체가 혼인 관계를 사회적으로나 법적으로 인정받게 하는 수단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가톨릭교회에서는 의식혼(儀式婚)주의를 택한다. 즉 혼인이 이루어지려면 교구 직권자나 본당 사목구 주임 또는 이 두 사람중 한 사람으로부터 위임받은 사제나 부제가 주례하고 두 명의 증인 앞에서, 법으로 명시된 규칙에 따라 맺어져야만 한다(교회법 제1108조 2항 참조). 이 규범은, 실무에 있어서, 두 가지 방법으로 적용되고 있다. 인생의 두 번째 출발점이라고 하는 혼인을 화려하게 시작하기 위해서 예복, 장식, 미사, 노래 등을 갖추어 외적으로도 성대하게 거행하는 경우를 성식혼인(盛式婚姻)이라고 한다. 그러나, 개인적인 여러 가지 사정이 겹쳐 화려한 식을 거행하지 못할 경우에, 필요한 요건만을 갖추어 간력하게 거행하는 경우는 약식혼인(略式婚姻)이라고 한다. 약식혼인은 흔히 신자와 비신자 또는 신자와 타교파 신자가 관면을 받고 사회의 예식장과 같이 성당 아닌 다른 곳에서 예식을 올리려고 할 때, 신자로서 교회법적 형식을 지키게 하기 위하여 사용한다. 또한 교회법적 형식을 지키지 않고 사회적 예식만 거행하였거나, 그러한 식도 없이 동거함으로써 조당중에 살던 신자가 조당을 풀기 위한 방법으로도 많이 사용되고 있다.

      이 부부의 경우는 김영석 씨가 가톨릭신자였으니까, 식을 올릴 형편은 안 되고 동거는 해야 할 처지였다면, 그러한 사정을 본당 주임신부님께 말씀드리고, 서씨가 비신자였으니 관면을 받고, 약식혼인이라도 했어야 옳은 일이었다. 물론 김씨가 냉담중이었다니 그렇게 하지 못한 이유를 이해할 수는 있다. 이 부부는 교회법적 형식을 지키지 않았기에 조당 상태가 되었지만, 서씨가 영세하기 전에 근처 성당에서 신부님을 찾아가 조당을 풀었다니 다행스러운 일이다. 조당을 풀지 않았다면 서씨의 영세는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당을 풀었다는 사실 자체는 동거중인 김씨와 서씨에게 필요한 요건을 갖춰 약식혼인을 거행했다는 말이다. 당사자들은 아마 그런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질문을 하게 되었다고 본다.
      우리들의 일반적인 사고방식 때문에 겉으로는 혼인식처럼 보이지 않는 약식혼인도 한 남자와 한 여자를 부부로 맺어지게 하는 혼인합의를 교환하는 완전한 식이다. 김씨와 서씨는 조당을 푸는 약식혼인 예식으로 교회법적으로도 또 교회공동체 안에서도 정당한 부부로 인정받은 것이다. 이들 부부가 교회에서 성식혼인하기를 원한다면 조당을 풀 때 했어야 한다. 한번 한 혼인을 개인의 편의에 따라 반복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이 부부가 원하는 성식결혼식은 이제 성당 안에서는 할 수 없다. 김씨와 서씨가 동거중일 때에는 교회가 인정하는 혼인관계가 아니었기에 그들의 관계는 불법적일 뿐 아니라 유효한 것도 아니었다. 또 이들이 동거하기 전에 관면을 얻고 혼인을 하였다 하더라도 – 관면혼인이라 함 – 신자와 비신자의 혼인이기 때문에 성사적 혼인이라 하지 않고 자연적 혼인이라 한다.
      그러나 동거중이었던 김씨와 서씨가 약식혼인을 통해 김씨의 조당을 해소하고 서씨가 영세하였기 때문에 이제 이들의 혼인관계는 성사적 혼인으로 격상되었다(교회법 제 1055조 1항 참조). 세례를 받은 사람이라는 신분이 혼인을 성사화하기 때문이다. 부부가 다 영세한 상태에서 성대한 의식을 통하여 혼인합의를 다시 교환한다는 것은 성사를 남용하는 일이 될 뿐이다.
      그렇지만 이들 부부의 형편도 나아졌고, 남들처럼 화려하게 혼인식도 거행하고 싶고, 양가의 부모와 친지들에게 늦게라도 인정받기 위해서나 그 외의 다른 이유로 꼭 성대한 결혼식을 원한다면 사회의 예식장과 같은 성당 밖의 장소에서 식을 올리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 부부는 이미 혼인신고가 되어 있는 상태이므로, 성당 밖에서 사회적인 격식을 갖추어 결혼식을 거행하는 것은 사회적으로나 교회법적으로도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니 당사자들이 결정해야 하겠다.
      서씨의 질문에 곁들여 사족(蛇足)을 붙인다면, 서씨는 과거에 사회적 윤리나 교회의 가르침을 어긴 점에 대해 이제는 부끄러워할 것도 없고 죄책감을 가질 이유도 없다. 하느님을 알지 못했을 때 저질렀던 모든 죄와 허물을 사해주고 하느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나게 한 세례성사의 은혜를 믿어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사람으로 불러주신 하느님께 대한 한결같은 믿음과 성실한 나날의 생활 안에서, 원만한 부부관계와 책임 있는 자녀교육을 통하여 건전한 가정을 이루기를 축원한다.

     

  3. user#0 님의 말:

    우리 나라의 민법은 법률혼(法律婚)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혼인의 실질적 성립 요건을 갖춘 – 그러니까 혼인장애가 없는 – 한 남자와 한 여자가 호적법에 따라 관계기관에 신고할 때 혼인이 성립되는 것으로 간주한다는 뜻이다(민법 812조 1항). 법률혼주의의 관점에서 보면 혼인식은 혼인을 성립시키는 필수적 조건이 아니라, 당사자들이 가족과 친지들 앞에서 혼인 사실을 공표하며, 그들에게 축복을 청하고 그 기쁨을 함께 나누는 의식일 뿐이다. 혼인식 자체가 혼인 관계를 사회적으로나 법적으로 인정받게 하는 수단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가톨릭교회에서는 의식혼(儀式婚)주의를 택한다. 즉 혼인이 이루어지려면 교구 직권자나 본당 사목구 주임 또는 이 두 사람중 한 사람으로부터 위임받은 사제나 부제가 주례하고 두 명의 증인 앞에서, 법으로 명시된 규칙에 따라 맺어져야만 한다(교회법 제1108조 2항 참조). 이 규범은, 실무에 있어서, 두 가지 방법으로 적용되고 있다. 인생의 두 번째 출발점이라고 하는 혼인을 화려하게 시작하기 위해서 예복, 장식, 미사, 노래 등을 갖추어 외적으로도 성대하게 거행하는 경우를 성식혼인(盛式婚姻)이라고 한다. 그러나, 개인적인 여러 가지 사정이 겹쳐 화려한 식을 거행하지 못할 경우에, 필요한 요건만을 갖추어 간력하게 거행하는 경우는 약식혼인(略式婚姻)이라고 한다. 약식혼인은 흔히 신자와 비신자 또는 신자와 타교파 신자가 관면을 받고 사회의 예식장과 같이 성당 아닌 다른 곳에서 예식을 올리려고 할 때, 신자로서 교회법적 형식을 지키게 하기 위하여 사용한다. 또한 교회법적 형식을 지키지 않고 사회적 예식만 거행하였거나, 그러한 식도 없이 동거함으로써 조당중에 살던 신자가 조당을 풀기 위한 방법으로도 많이 사용되고 있다.

      이 부부의 경우는 김영석 씨가 가톨릭신자였으니까, 식을 올릴 형편은 안 되고 동거는 해야 할 처지였다면, 그러한 사정을 본당 주임신부님께 말씀드리고, 서씨가 비신자였으니 관면을 받고, 약식혼인이라도 했어야 옳은 일이었다. 물론 김씨가 냉담중이었다니 그렇게 하지 못한 이유를 이해할 수는 있다. 이 부부는 교회법적 형식을 지키지 않았기에 조당 상태가 되었지만, 서씨가 영세하기 전에 근처 성당에서 신부님을 찾아가 조당을 풀었다니 다행스러운 일이다. 조당을 풀지 않았다면 서씨의 영세는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당을 풀었다는 사실 자체는 동거중인 김씨와 서씨에게 필요한 요건을 갖춰 약식혼인을 거행했다는 말이다. 당사자들은 아마 그런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질문을 하게 되었다고 본다.
      우리들의 일반적인 사고방식 때문에 겉으로는 혼인식처럼 보이지 않는 약식혼인도 한 남자와 한 여자를 부부로 맺어지게 하는 혼인합의를 교환하는 완전한 식이다. 김씨와 서씨는 조당을 푸는 약식혼인 예식으로 교회법적으로도 또 교회공동체 안에서도 정당한 부부로 인정받은 것이다. 이들 부부가 교회에서 성식혼인하기를 원한다면 조당을 풀 때 했어야 한다. 한번 한 혼인을 개인의 편의에 따라 반복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이 부부가 원하는 성식결혼식은 이제 성당 안에서는 할 수 없다. 김씨와 서씨가 동거중일 때에는 교회가 인정하는 혼인관계가 아니었기에 그들의 관계는 불법적일 뿐 아니라 유효한 것도 아니었다. 또 이들이 동거하기 전에 관면을 얻고 혼인을 하였다 하더라도 – 관면혼인이라 함 – 신자와 비신자의 혼인이기 때문에 성사적 혼인이라 하지 않고 자연적 혼인이라 한다.
      그러나 동거중이었던 김씨와 서씨가 약식혼인을 통해 김씨의 조당을 해소하고 서씨가 영세하였기 때문에 이제 이들의 혼인관계는 성사적 혼인으로 격상되었다(교회법 제 1055조 1항 참조). 세례를 받은 사람이라는 신분이 혼인을 성사화하기 때문이다. 부부가 다 영세한 상태에서 성대한 의식을 통하여 혼인합의를 다시 교환한다는 것은 성사를 남용하는 일이 될 뿐이다.
      그렇지만 이들 부부의 형편도 나아졌고, 남들처럼 화려하게 혼인식도 거행하고 싶고, 양가의 부모와 친지들에게 늦게라도 인정받기 위해서나 그 외의 다른 이유로 꼭 성대한 결혼식을 원한다면 사회의 예식장과 같은 성당 밖의 장소에서 식을 올리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 부부는 이미 혼인신고가 되어 있는 상태이므로, 성당 밖에서 사회적인 격식을 갖추어 결혼식을 거행하는 것은 사회적으로나 교회법적으로도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니 당사자들이 결정해야 하겠다.
      서씨의 질문에 곁들여 사족(蛇足)을 붙인다면, 서씨는 과거에 사회적 윤리나 교회의 가르침을 어긴 점에 대해 이제는 부끄러워할 것도 없고 죄책감을 가질 이유도 없다. 하느님을 알지 못했을 때 저질렀던 모든 죄와 허물을 사해주고 하느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나게 한 세례성사의 은혜를 믿어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사람으로 불러주신 하느님께 대한 한결같은 믿음과 성실한 나날의 생활 안에서, 원만한 부부관계와 책임 있는 자녀교육을 통하여 건전한 가정을 이루기를 축원한다.

     

  4. user#0 님의 말:

    우리 나라의 민법은 법률혼(法律婚)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혼인의 실질적 성립 요건을 갖춘 – 그러니까 혼인장애가 없는 – 한 남자와 한 여자가 호적법에 따라 관계기관에 신고할 때 혼인이 성립되는 것으로 간주한다는 뜻이다(민법 812조 1항). 법률혼주의의 관점에서 보면 혼인식은 혼인을 성립시키는 필수적 조건이 아니라, 당사자들이 가족과 친지들 앞에서 혼인 사실을 공표하며, 그들에게 축복을 청하고 그 기쁨을 함께 나누는 의식일 뿐이다. 혼인식 자체가 혼인 관계를 사회적으로나 법적으로 인정받게 하는 수단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가톨릭교회에서는 의식혼(儀式婚)주의를 택한다. 즉 혼인이 이루어지려면 교구 직권자나 본당 사목구 주임 또는 이 두 사람중 한 사람으로부터 위임받은 사제나 부제가 주례하고 두 명의 증인 앞에서, 법으로 명시된 규칙에 따라 맺어져야만 한다(교회법 제1108조 2항 참조). 이 규범은, 실무에 있어서, 두 가지 방법으로 적용되고 있다. 인생의 두 번째 출발점이라고 하는 혼인을 화려하게 시작하기 위해서 예복, 장식, 미사, 노래 등을 갖추어 외적으로도 성대하게 거행하는 경우를 성식혼인(盛式婚姻)이라고 한다. 그러나, 개인적인 여러 가지 사정이 겹쳐 화려한 식을 거행하지 못할 경우에, 필요한 요건만을 갖추어 간력하게 거행하는 경우는 약식혼인(略式婚姻)이라고 한다. 약식혼인은 흔히 신자와 비신자 또는 신자와 타교파 신자가 관면을 받고 사회의 예식장과 같이 성당 아닌 다른 곳에서 예식을 올리려고 할 때, 신자로서 교회법적 형식을 지키게 하기 위하여 사용한다. 또한 교회법적 형식을 지키지 않고 사회적 예식만 거행하였거나, 그러한 식도 없이 동거함으로써 조당중에 살던 신자가 조당을 풀기 위한 방법으로도 많이 사용되고 있다.

      이 부부의 경우는 김영석 씨가 가톨릭신자였으니까, 식을 올릴 형편은 안 되고 동거는 해야 할 처지였다면, 그러한 사정을 본당 주임신부님께 말씀드리고, 서씨가 비신자였으니 관면을 받고, 약식혼인이라도 했어야 옳은 일이었다. 물론 김씨가 냉담중이었다니 그렇게 하지 못한 이유를 이해할 수는 있다. 이 부부는 교회법적 형식을 지키지 않았기에 조당 상태가 되었지만, 서씨가 영세하기 전에 근처 성당에서 신부님을 찾아가 조당을 풀었다니 다행스러운 일이다. 조당을 풀지 않았다면 서씨의 영세는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당을 풀었다는 사실 자체는 동거중인 김씨와 서씨에게 필요한 요건을 갖춰 약식혼인을 거행했다는 말이다. 당사자들은 아마 그런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질문을 하게 되었다고 본다.
      우리들의 일반적인 사고방식 때문에 겉으로는 혼인식처럼 보이지 않는 약식혼인도 한 남자와 한 여자를 부부로 맺어지게 하는 혼인합의를 교환하는 완전한 식이다. 김씨와 서씨는 조당을 푸는 약식혼인 예식으로 교회법적으로도 또 교회공동체 안에서도 정당한 부부로 인정받은 것이다. 이들 부부가 교회에서 성식혼인하기를 원한다면 조당을 풀 때 했어야 한다. 한번 한 혼인을 개인의 편의에 따라 반복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이 부부가 원하는 성식결혼식은 이제 성당 안에서는 할 수 없다. 김씨와 서씨가 동거중일 때에는 교회가 인정하는 혼인관계가 아니었기에 그들의 관계는 불법적일 뿐 아니라 유효한 것도 아니었다. 또 이들이 동거하기 전에 관면을 얻고 혼인을 하였다 하더라도 – 관면혼인이라 함 – 신자와 비신자의 혼인이기 때문에 성사적 혼인이라 하지 않고 자연적 혼인이라 한다.
      그러나 동거중이었던 김씨와 서씨가 약식혼인을 통해 김씨의 조당을 해소하고 서씨가 영세하였기 때문에 이제 이들의 혼인관계는 성사적 혼인으로 격상되었다(교회법 제 1055조 1항 참조). 세례를 받은 사람이라는 신분이 혼인을 성사화하기 때문이다. 부부가 다 영세한 상태에서 성대한 의식을 통하여 혼인합의를 다시 교환한다는 것은 성사를 남용하는 일이 될 뿐이다.
      그렇지만 이들 부부의 형편도 나아졌고, 남들처럼 화려하게 혼인식도 거행하고 싶고, 양가의 부모와 친지들에게 늦게라도 인정받기 위해서나 그 외의 다른 이유로 꼭 성대한 결혼식을 원한다면 사회의 예식장과 같은 성당 밖의 장소에서 식을 올리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 부부는 이미 혼인신고가 되어 있는 상태이므로, 성당 밖에서 사회적인 격식을 갖추어 결혼식을 거행하는 것은 사회적으로나 교회법적으로도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니 당사자들이 결정해야 하겠다.
      서씨의 질문에 곁들여 사족(蛇足)을 붙인다면, 서씨는 과거에 사회적 윤리나 교회의 가르침을 어긴 점에 대해 이제는 부끄러워할 것도 없고 죄책감을 가질 이유도 없다. 하느님을 알지 못했을 때 저질렀던 모든 죄와 허물을 사해주고 하느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나게 한 세례성사의 은혜를 믿어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사람으로 불러주신 하느님께 대한 한결같은 믿음과 성실한 나날의 생활 안에서, 원만한 부부관계와 책임 있는 자녀교육을 통하여 건전한 가정을 이루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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