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척이나 불행한 삶을 살아온 정득철 씨는 올해 쉰여덟 살이다. 첫 번째 아내의 가출, 두 번째 아내의 정신장애로 인한 결별, 세 번째 아내와의 이혼 등으로 세 번이나 결혼을 했지만 자식도 없었고 어느 한때 행복하지 못했던 그는 5년 전쯤에 세 번째 아내와 이혼한 며칠 수 교통사고를 당했다. 흉칙할 정도로 찌그러진 얼굴에다 열흘 동안이나 의식불명 상태가 계속됐다.
사실 신자인 정 씨는 맨 처음 결혼할 때 상대방이 비신자였기에 관면혼배를 했다. 그러고는 조당에 걸리는 걸 알면서도 두 번째. 세 번째는 그냥저냥 함께 살았다. 생활이 고달프고 행복하지 못하니 신앙심도 점점 없어졌던지 조당에 걸렸어도 주일미사엔 꼬박꼬박 참석하던 정씨는 세 번째 결혼식을 할 때쯤엔 성당과는 아예 담을 쌓고 살았다.
그러나 교통사고 후 의식불명 상태에서 깨어난 그는 점차 의식을 회복해가면서 자꾸 신부님을 불러달라고 하였다. 고백성사와 병자성사를 받고 싶었던 것이다. 병원 봉사를 나갔던 한 신자가 자기가 소속된 본당신부에게 알려서 정씨에게 병자성사를 받게 해주었다. 당시 성사를 주었던 사제는 정씨의 사정을 간단하게나마 듣고 그가 조당중임을 알았었다고 한다.
그 뒤 퇴원한 정씨는 거의 회복되어 성당에 나가게 되었는데 그의 과거를 알게 된 한 신자가 조당에 걸린 사람은 어떤 성사도 받을 수가 없다고 했다. 본당에 가서 자세한 말을 들을 수도 있으나 그러기엔 켕기는 게 너무 많고 염치가 없어 털어놓을 수가 없다며 이런 경우는 어떻게 해야 좋은지 문의해왔다.
조당 상태에서 병자성사를 받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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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상가상(雪上加霜)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힘겹게 한 세상을 사고 있는 정씨의 딱한 사연을 대하면서, 지금부터라도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인간적인 불행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기원한다.
정씨가 비록 냉담중에 있었다고는 하더라도 교통사고 후 신부님을 청해서 고백성사를 받고 병자성사를 받겠다고 뜻을 보인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었다. 죽음에 직면해 있는 자신의 형편을 보면서 그 동안의 삶을 깨끗이 마감하기 위해서 하느님의 아들답게 살지 못했던 점에 대해 용서받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이런 태도는 비록 실천적 신앙인은 아니라 하더라도 세례성사를 받은 사람의 권리이기도 하다.
물론 그 환자를 찾아가 병자성사를 준 사제도 환자의 지나날의 잘못된 삶을 탓하기보다는, 앞날의 구원을 염려하는 마음으로 성사를 집전하면서, 하느님의 아들로서 떳떳하지 못했던 모든 죄를 용서하셨들 것으로 믿어진다. 사제는 언제나 신자들의 구원을 위해 할 수 있는 충분한 배려를 해야 하지만 특별히 죽을 위험에 처한 신자들에게는 하느님 앞에 부끄러움이 없이 설 수 있도록 준비시켜주어야 할 의무도 있는 것이다. 비록 고백을 들을 권한이 없는 사제라 해도 죽을 위험에 있는 참회자들에게는 어떠한 교정벌이나 죄라도 유효하고 적법하게 사해줄 수 있다(교회법 제976조 참조).
생사의 갈림길에서 병자성사를 받고 건강을 회복하기 시작한 정씨에겐 그 성서의 은총인 잃었던 신앙을 되찾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고 믿고 싶다. 정씨가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의 형편은 교회법적으로 볼 때 조당의 상태가 아니라, 과거의 조당과 결부된 죄인의 처지였고, 죄를 용서받는 성사를 통해서 지난날을 뉘우치고 새 삶을 되찾았기 때문이다.
물론, 정씨가 세 번째 아내와 살고 있을 때는 분명히 조당 상태였다. 왜냐하면, “비록 완결되지 아니한 혼인이라도 전의 혼인의 유대에 매여 있는 이는 혼인을 시도하여도 무효”일 뿐 아니라, “전의 혼인이 어떤 이유로든지 무효이거나 해소되더라도, 전의 혼인의 무효나 해소가 합법적으로 확인되기 전에는 다른 혼인을 적법하게 맺을 수 없다”라는 교회법 제1085조를 어긴 때문이다.
재혼을 금지하는 이 ‘혼인인연 장애’는 교회법적 장애가 아니라, 마르코 복음서(10,6-12)에 근거한 하느님의 설정법이므로 어떠한 인간 권위로도 관면할 수 없는 것이다.
정씨의 첫 번째 아내가 가출을 했지만, 그렇다고 정씨가 그 아내와 맺은 혼인의 유대가 풀린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민법에서는 배우자의가출이 이혼의 사유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당사자의 협의나 재판을 통해서 부부의 인연을 해소하는 국법상의 이혼을 인정하지 않는 교회의 입장에서 볼 때 이 부부는 별거의 상태에 있을 뿐이지 혼인 관계가 합법적으로 해소된 것은 아니다.
정씨는 이렇게 첫 번째 혼인 관계에 묶여 있으므로 두 번째, 세 번째 시도한 혼인은 ‘혼인 인연 장애’ 때문에 그 자체로 무효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리스도교 신자로서 바르지 못하다는 걸 알면서도 무효한 혼인을 고집하고 있기에 소위 말하는 조당에 처하게되면서 성사생활이 금지되었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악한 표양을 주었을 것이다. 허나, 세 번째 아내와 이혼을 한 당시의 상태는 자동적으로 조당에서 풀려나는 결과를 만들어주었으므로 독신으로 살아가는 동안은 지난날의 죄스러운 삶에 대해서 깊이 뉘우치고 고백성사를 통해서 용서를 받게 되면 성사생활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정씨가 지금처럼 독신으로 살아간다면 신앙생활 하는 데에는 아무런 걸림돌이 없다. 그러나 만일 또다시 혼인을 하려고 한다면 반드시 본당 주임신부와 상의하고 교회법원을 찾아가, 가출한 첫 번째 아내와의 혼인이 원칙적으로 무효한 것이었다고 여겨진다면 혼인 무효 선언을 위한 소송을 제기해야 하고, 그 혼인이 무효였다는 근거를 찾을 수 없다면 교황께 그 혼인의 인연을 해소시켜달라는 청원을 해야 한다. 이 두 가지 방법중의 하나로써 첫 번째 아내와 맺은 혼인의 인연에서 풀려나지 못한 채 인간적인 핑계를 가지고 다시 아내를 맞아들인다면, 지난날의 조당 상태에 처하게 되고, 교회의 성사생활도 할 수 없다.
하느님께서는 정씨에게 분명 새로 태어나는 기회를 마련해주셨다. 이제, 정씨가 독신으로 살기를 원한다면, 잘못된 혼인 관계 때문에 하느님과 교회 공동체에 누를 끼치고, 다른 사람에게도 악한 표양을 주었던 점에 대해서 깊이 반성하고 보속도 하면서 당당하게 살아가기를 바란다.
그러나 재혼하기를 원한다면, 죄스러운 삶을 반복하지 않도록 사전에 본당신부의 도움을 받아 교회법적인 조치를 취하고 성스러운 가정을 이룰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설상가상(雪上加霜)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힘겹게 한 세상을 사고 있는 정씨의 딱한 사연을 대하면서, 지금부터라도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인간적인 불행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기원한다.
정씨가 비록 냉담중에 있었다고는 하더라도 교통사고 후 신부님을 청해서 고백성사를 받고 병자성사를 받겠다고 뜻을 보인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었다. 죽음에 직면해 있는 자신의 형편을 보면서 그 동안의 삶을 깨끗이 마감하기 위해서 하느님의 아들답게 살지 못했던 점에 대해 용서받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이런 태도는 비록 실천적 신앙인은 아니라 하더라도 세례성사를 받은 사람의 권리이기도 하다.
물론 그 환자를 찾아가 병자성사를 준 사제도 환자의 지나날의 잘못된 삶을 탓하기보다는, 앞날의 구원을 염려하는 마음으로 성사를 집전하면서, 하느님의 아들로서 떳떳하지 못했던 모든 죄를 용서하셨들 것으로 믿어진다. 사제는 언제나 신자들의 구원을 위해 할 수 있는 충분한 배려를 해야 하지만 특별히 죽을 위험에 처한 신자들에게는 하느님 앞에 부끄러움이 없이 설 수 있도록 준비시켜주어야 할 의무도 있는 것이다. 비록 고백을 들을 권한이 없는 사제라 해도 죽을 위험에 있는 참회자들에게는 어떠한 교정벌이나 죄라도 유효하고 적법하게 사해줄 수 있다(교회법 제976조 참조).
생사의 갈림길에서 병자성사를 받고 건강을 회복하기 시작한 정씨에겐 그 성서의 은총인 잃었던 신앙을 되찾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고 믿고 싶다. 정씨가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의 형편은 교회법적으로 볼 때 조당의 상태가 아니라, 과거의 조당과 결부된 죄인의 처지였고, 죄를 용서받는 성사를 통해서 지난날을 뉘우치고 새 삶을 되찾았기 때문이다.
물론, 정씨가 세 번째 아내와 살고 있을 때는 분명히 조당 상태였다. 왜냐하면, “비록 완결되지 아니한 혼인이라도 전의 혼인의 유대에 매여 있는 이는 혼인을 시도하여도 무효”일 뿐 아니라, “전의 혼인이 어떤 이유로든지 무효이거나 해소되더라도, 전의 혼인의 무효나 해소가 합법적으로 확인되기 전에는 다른 혼인을 적법하게 맺을 수 없다”라는 교회법 제1085조를 어긴 때문이다.
재혼을 금지하는 이 ‘혼인인연 장애’는 교회법적 장애가 아니라, 마르코 복음서(10,6-12)에 근거한 하느님의 설정법이므로 어떠한 인간 권위로도 관면할 수 없는 것이다.
정씨의 첫 번째 아내가 가출을 했지만, 그렇다고 정씨가 그 아내와 맺은 혼인의 유대가 풀린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민법에서는 배우자의가출이 이혼의 사유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당사자의 협의나 재판을 통해서 부부의 인연을 해소하는 국법상의 이혼을 인정하지 않는 교회의 입장에서 볼 때 이 부부는 별거의 상태에 있을 뿐이지 혼인 관계가 합법적으로 해소된 것은 아니다.
정씨는 이렇게 첫 번째 혼인 관계에 묶여 있으므로 두 번째, 세 번째 시도한 혼인은 ‘혼인 인연 장애’ 때문에 그 자체로 무효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리스도교 신자로서 바르지 못하다는 걸 알면서도 무효한 혼인을 고집하고 있기에 소위 말하는 조당에 처하게되면서 성사생활이 금지되었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악한 표양을 주었을 것이다. 허나, 세 번째 아내와 이혼을 한 당시의 상태는 자동적으로 조당에서 풀려나는 결과를 만들어주었으므로 독신으로 살아가는 동안은 지난날의 죄스러운 삶에 대해서 깊이 뉘우치고 고백성사를 통해서 용서를 받게 되면 성사생활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정씨가 지금처럼 독신으로 살아간다면 신앙생활 하는 데에는 아무런 걸림돌이 없다. 그러나 만일 또다시 혼인을 하려고 한다면 반드시 본당 주임신부와 상의하고 교회법원을 찾아가, 가출한 첫 번째 아내와의 혼인이 원칙적으로 무효한 것이었다고 여겨진다면 혼인 무효 선언을 위한 소송을 제기해야 하고, 그 혼인이 무효였다는 근거를 찾을 수 없다면 교황께 그 혼인의 인연을 해소시켜달라는 청원을 해야 한다. 이 두 가지 방법중의 하나로써 첫 번째 아내와 맺은 혼인의 인연에서 풀려나지 못한 채 인간적인 핑계를 가지고 다시 아내를 맞아들인다면, 지난날의 조당 상태에 처하게 되고, 교회의 성사생활도 할 수 없다.
하느님께서는 정씨에게 분명 새로 태어나는 기회를 마련해주셨다. 이제, 정씨가 독신으로 살기를 원한다면, 잘못된 혼인 관계 때문에 하느님과 교회 공동체에 누를 끼치고, 다른 사람에게도 악한 표양을 주었던 점에 대해서 깊이 반성하고 보속도 하면서 당당하게 살아가기를 바란다.
그러나 재혼하기를 원한다면, 죄스러운 삶을 반복하지 않도록 사전에 본당신부의 도움을 받아 교회법적인 조치를 취하고 성스러운 가정을 이룰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설상가상(雪上加霜)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힘겹게 한 세상을 사고 있는 정씨의 딱한 사연을 대하면서, 지금부터라도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인간적인 불행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기원한다.
정씨가 비록 냉담중에 있었다고는 하더라도 교통사고 후 신부님을 청해서 고백성사를 받고 병자성사를 받겠다고 뜻을 보인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었다. 죽음에 직면해 있는 자신의 형편을 보면서 그 동안의 삶을 깨끗이 마감하기 위해서 하느님의 아들답게 살지 못했던 점에 대해 용서받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이런 태도는 비록 실천적 신앙인은 아니라 하더라도 세례성사를 받은 사람의 권리이기도 하다.
물론 그 환자를 찾아가 병자성사를 준 사제도 환자의 지나날의 잘못된 삶을 탓하기보다는, 앞날의 구원을 염려하는 마음으로 성사를 집전하면서, 하느님의 아들로서 떳떳하지 못했던 모든 죄를 용서하셨들 것으로 믿어진다. 사제는 언제나 신자들의 구원을 위해 할 수 있는 충분한 배려를 해야 하지만 특별히 죽을 위험에 처한 신자들에게는 하느님 앞에 부끄러움이 없이 설 수 있도록 준비시켜주어야 할 의무도 있는 것이다. 비록 고백을 들을 권한이 없는 사제라 해도 죽을 위험에 있는 참회자들에게는 어떠한 교정벌이나 죄라도 유효하고 적법하게 사해줄 수 있다(교회법 제976조 참조).
생사의 갈림길에서 병자성사를 받고 건강을 회복하기 시작한 정씨에겐 그 성서의 은총인 잃었던 신앙을 되찾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고 믿고 싶다. 정씨가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의 형편은 교회법적으로 볼 때 조당의 상태가 아니라, 과거의 조당과 결부된 죄인의 처지였고, 죄를 용서받는 성사를 통해서 지난날을 뉘우치고 새 삶을 되찾았기 때문이다.
물론, 정씨가 세 번째 아내와 살고 있을 때는 분명히 조당 상태였다. 왜냐하면, “비록 완결되지 아니한 혼인이라도 전의 혼인의 유대에 매여 있는 이는 혼인을 시도하여도 무효”일 뿐 아니라, “전의 혼인이 어떤 이유로든지 무효이거나 해소되더라도, 전의 혼인의 무효나 해소가 합법적으로 확인되기 전에는 다른 혼인을 적법하게 맺을 수 없다”라는 교회법 제1085조를 어긴 때문이다.
재혼을 금지하는 이 ‘혼인인연 장애’는 교회법적 장애가 아니라, 마르코 복음서(10,6-12)에 근거한 하느님의 설정법이므로 어떠한 인간 권위로도 관면할 수 없는 것이다.
정씨의 첫 번째 아내가 가출을 했지만, 그렇다고 정씨가 그 아내와 맺은 혼인의 유대가 풀린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민법에서는 배우자의가출이 이혼의 사유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당사자의 협의나 재판을 통해서 부부의 인연을 해소하는 국법상의 이혼을 인정하지 않는 교회의 입장에서 볼 때 이 부부는 별거의 상태에 있을 뿐이지 혼인 관계가 합법적으로 해소된 것은 아니다.
정씨는 이렇게 첫 번째 혼인 관계에 묶여 있으므로 두 번째, 세 번째 시도한 혼인은 ‘혼인 인연 장애’ 때문에 그 자체로 무효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리스도교 신자로서 바르지 못하다는 걸 알면서도 무효한 혼인을 고집하고 있기에 소위 말하는 조당에 처하게되면서 성사생활이 금지되었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악한 표양을 주었을 것이다. 허나, 세 번째 아내와 이혼을 한 당시의 상태는 자동적으로 조당에서 풀려나는 결과를 만들어주었으므로 독신으로 살아가는 동안은 지난날의 죄스러운 삶에 대해서 깊이 뉘우치고 고백성사를 통해서 용서를 받게 되면 성사생활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정씨가 지금처럼 독신으로 살아간다면 신앙생활 하는 데에는 아무런 걸림돌이 없다. 그러나 만일 또다시 혼인을 하려고 한다면 반드시 본당 주임신부와 상의하고 교회법원을 찾아가, 가출한 첫 번째 아내와의 혼인이 원칙적으로 무효한 것이었다고 여겨진다면 혼인 무효 선언을 위한 소송을 제기해야 하고, 그 혼인이 무효였다는 근거를 찾을 수 없다면 교황께 그 혼인의 인연을 해소시켜달라는 청원을 해야 한다. 이 두 가지 방법중의 하나로써 첫 번째 아내와 맺은 혼인의 인연에서 풀려나지 못한 채 인간적인 핑계를 가지고 다시 아내를 맞아들인다면, 지난날의 조당 상태에 처하게 되고, 교회의 성사생활도 할 수 없다.
하느님께서는 정씨에게 분명 새로 태어나는 기회를 마련해주셨다. 이제, 정씨가 독신으로 살기를 원한다면, 잘못된 혼인 관계 때문에 하느님과 교회 공동체에 누를 끼치고, 다른 사람에게도 악한 표양을 주었던 점에 대해서 깊이 반성하고 보속도 하면서 당당하게 살아가기를 바란다.
그러나 재혼하기를 원한다면, 죄스러운 삶을 반복하지 않도록 사전에 본당신부의 도움을 받아 교회법적인 조치를 취하고 성스러운 가정을 이룰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설상가상(雪上加霜)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힘겹게 한 세상을 사고 있는 정씨의 딱한 사연을 대하면서, 지금부터라도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인간적인 불행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기원한다.
정씨가 비록 냉담중에 있었다고는 하더라도 교통사고 후 신부님을 청해서 고백성사를 받고 병자성사를 받겠다고 뜻을 보인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었다. 죽음에 직면해 있는 자신의 형편을 보면서 그 동안의 삶을 깨끗이 마감하기 위해서 하느님의 아들답게 살지 못했던 점에 대해 용서받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이런 태도는 비록 실천적 신앙인은 아니라 하더라도 세례성사를 받은 사람의 권리이기도 하다.
물론 그 환자를 찾아가 병자성사를 준 사제도 환자의 지나날의 잘못된 삶을 탓하기보다는, 앞날의 구원을 염려하는 마음으로 성사를 집전하면서, 하느님의 아들로서 떳떳하지 못했던 모든 죄를 용서하셨들 것으로 믿어진다. 사제는 언제나 신자들의 구원을 위해 할 수 있는 충분한 배려를 해야 하지만 특별히 죽을 위험에 처한 신자들에게는 하느님 앞에 부끄러움이 없이 설 수 있도록 준비시켜주어야 할 의무도 있는 것이다. 비록 고백을 들을 권한이 없는 사제라 해도 죽을 위험에 있는 참회자들에게는 어떠한 교정벌이나 죄라도 유효하고 적법하게 사해줄 수 있다(교회법 제976조 참조).
생사의 갈림길에서 병자성사를 받고 건강을 회복하기 시작한 정씨에겐 그 성서의 은총인 잃었던 신앙을 되찾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고 믿고 싶다. 정씨가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의 형편은 교회법적으로 볼 때 조당의 상태가 아니라, 과거의 조당과 결부된 죄인의 처지였고, 죄를 용서받는 성사를 통해서 지난날을 뉘우치고 새 삶을 되찾았기 때문이다.
물론, 정씨가 세 번째 아내와 살고 있을 때는 분명히 조당 상태였다. 왜냐하면, “비록 완결되지 아니한 혼인이라도 전의 혼인의 유대에 매여 있는 이는 혼인을 시도하여도 무효”일 뿐 아니라, “전의 혼인이 어떤 이유로든지 무효이거나 해소되더라도, 전의 혼인의 무효나 해소가 합법적으로 확인되기 전에는 다른 혼인을 적법하게 맺을 수 없다”라는 교회법 제1085조를 어긴 때문이다.
재혼을 금지하는 이 ‘혼인인연 장애’는 교회법적 장애가 아니라, 마르코 복음서(10,6-12)에 근거한 하느님의 설정법이므로 어떠한 인간 권위로도 관면할 수 없는 것이다.
정씨의 첫 번째 아내가 가출을 했지만, 그렇다고 정씨가 그 아내와 맺은 혼인의 유대가 풀린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민법에서는 배우자의가출이 이혼의 사유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당사자의 협의나 재판을 통해서 부부의 인연을 해소하는 국법상의 이혼을 인정하지 않는 교회의 입장에서 볼 때 이 부부는 별거의 상태에 있을 뿐이지 혼인 관계가 합법적으로 해소된 것은 아니다.
정씨는 이렇게 첫 번째 혼인 관계에 묶여 있으므로 두 번째, 세 번째 시도한 혼인은 ‘혼인 인연 장애’ 때문에 그 자체로 무효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리스도교 신자로서 바르지 못하다는 걸 알면서도 무효한 혼인을 고집하고 있기에 소위 말하는 조당에 처하게되면서 성사생활이 금지되었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악한 표양을 주었을 것이다. 허나, 세 번째 아내와 이혼을 한 당시의 상태는 자동적으로 조당에서 풀려나는 결과를 만들어주었으므로 독신으로 살아가는 동안은 지난날의 죄스러운 삶에 대해서 깊이 뉘우치고 고백성사를 통해서 용서를 받게 되면 성사생활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정씨가 지금처럼 독신으로 살아간다면 신앙생활 하는 데에는 아무런 걸림돌이 없다. 그러나 만일 또다시 혼인을 하려고 한다면 반드시 본당 주임신부와 상의하고 교회법원을 찾아가, 가출한 첫 번째 아내와의 혼인이 원칙적으로 무효한 것이었다고 여겨진다면 혼인 무효 선언을 위한 소송을 제기해야 하고, 그 혼인이 무효였다는 근거를 찾을 수 없다면 교황께 그 혼인의 인연을 해소시켜달라는 청원을 해야 한다. 이 두 가지 방법중의 하나로써 첫 번째 아내와 맺은 혼인의 인연에서 풀려나지 못한 채 인간적인 핑계를 가지고 다시 아내를 맞아들인다면, 지난날의 조당 상태에 처하게 되고, 교회의 성사생활도 할 수 없다.
하느님께서는 정씨에게 분명 새로 태어나는 기회를 마련해주셨다. 이제, 정씨가 독신으로 살기를 원한다면, 잘못된 혼인 관계 때문에 하느님과 교회 공동체에 누를 끼치고, 다른 사람에게도 악한 표양을 주었던 점에 대해서 깊이 반성하고 보속도 하면서 당당하게 살아가기를 바란다.
그러나 재혼하기를 원한다면, 죄스러운 삶을 반복하지 않도록 사전에 본당신부의 도움을 받아 교회법적인 조치를 취하고 성스러운 가정을 이룰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