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코린 10,23-11,1 ;무슨 일이나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무슨 일이나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1. 말씀읽기: 1코린 10,23-11,1

23 “모든 것이 허용된다.” 하지만, 모든 것이 유익하지는 않습니다. “모든 것이 허용됩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성장에 도움이 되지는 않습니다. 24 누구나 자기 좋은 것을 찾지 말고 남에게 좋은 것을 찾으십시오. 25 시장에서 파는 것은 양심을 따져 보지 말고 무엇이든지 먹으십시오. 26 “세상과 그 안에 가득 찬 것들이 주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27 불신자 가운데 누가 여러분을 초대하여 여러분이 가고자 한다면, 양심을 따져 보지 말고 여러분 앞에 차려 놓는 것은 무엇이든지 먹으십시오. 28 그러나 누가 여러분에게 “이것은 제물로 바쳤던 것입니다.” 하고 말하거든, 그것을 알린 사람과 그 양심을 생각하여 먹지 마십시오. 29 내가 말하는 양심은 여러분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양심입니다. 사실 무엇 때문에 내 자유가 남의 양심으로 판단을 받아야 하겠습니까? 30 내가 감사하는 마음으로 식사를 함께 하면, 내가 감사하는 그 음식 때문에 비난받을 까닭이 어디 있겠습니까? 31 그러므로 여러분은 먹든지 마시든지, 그리고 무슨 일을 하든지 모든 것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십시오. 32 유다인에게도 그리스인에게도 하느님의 교회에도 방해를 놓는 자가 되지 마십시오. 33 무슨 일을 하든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애쓰는 나처럼 하십시오. 나는 많은 사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내가 아니라 그들에게 유익한 것을 찾습니다.

11장 1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처럼 여러분도 나를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2. 말씀연구

무엇을 결정하고 어떤 행동을 할 때, 그 중심에는 “가치”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생각하기에 가치가 없는 것을 위해 투자를 하거나 열정을 바칠 사람은 없습니다. “가치”가 없는 것에 목숨을 내어 놓을 사람도 없습니다. “가치”가 있을 때 마음이 움직이고, 몸이 움직이고,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이 움직이게 됩니다.

그런데 신앙인들은 그 “가치”를 하느님께 두고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에 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느님을 위해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나에게 원하시는 것을 하고자 합니다. 그렇게 주님을 따르는 사람이 되고자 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참으로 멋진 말씀을 해 주십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처럼, 여러분도 나를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이렇게 말하며 노력하는 내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렇게 살아갈 때 어떤 일을 하던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게 될 것입니다.



23 “모든 것이 허용된다.” 하지만, 모든 것이 유익하지는 않습니다. “모든 것이 허용됩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성장에 도움이 되지는 않습니다. 24 누구나 자기 좋은 것을 찾지 말고 남에게 좋은 것을 찾으십시오.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자유의지”라는 큰 선물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있습니다. 하지만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지 않을 자유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행동에는 책임이 따릅니다. 내가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했다면, 그것에 대한 책임은 반드시 져야 합니다. 그렇다고 하여 해야 할 것을 당연히 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것을 요구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네가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 주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따라 살아갈 때 나는 내가 좋은 것만을 하지 않고, 남에게 좋은 것을 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리고 남도 좋고 나도 좋은 것들을 찾으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그런데 먹는 것들은 생각을 해 보아야 합니다. 상대방이 혐오스럽게 생각하는 것을 상대방이 보는 앞에서 거창하게 먹어 놓고, 그 상대방과 친교를 이룬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겠지만, 상대방을 배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25 시장에서 파는 것은 양심을 따져 보지 말고 무엇이든지 먹으십시오. 26 “세상과 그 안에 가득 찬 것들이 주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음식을 먹는데 있어서 무엇이든 먹을 수 있습니다. 음식이 사람을 부정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나오는 것들이 나를 부정하게 만들고, 내 주변을 부정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1)

그런데 당시 시장에서 파는 것들 중에는 우상에게 바쳐진 것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상은 없는 것이므로 모든 음식은 먹어도 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세상과 그 안에 가득 찬 것들이 모두 주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27 불신자 가운데 누가 여러분을 초대하여 여러분이 가고자 한다면, 양심을 따져 보지 말고 여러분 앞에 차려 놓는 것은 무엇이든지 먹으십시오. 28 그러나 누가 여러분에게 “이것은 제물로 바쳤던 것입니다.” 하고 말하거든, 그것을 알린 사람과 그 양심을 생각하여 먹지 마십시오.2)

또 비신자가 신자를 초대하여 음식을 먹게 되었다면 맛있게 먹어야 합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이것은 제물로 바쳤던 것입니다.”하면 그 사람을 위해서 먹지 말라고 하십니다. 즉 “우상에게 바쳤던 것을 어떻게 먹을 수 있겠는가?”하고 먹지 않은 그 사람을 존중하여 그 음식을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음식을 먹는다 하여 죄를 짓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금요일에 비신자 가정에 초대를 받아 갔는데, 고기 요리가 다양하게 나왔습니다. “오늘은 금요일이니까 난 김치만 먹어야지.”하고서 김치만 먹고 온 사람이 과연 주님께로부터 칭찬을 받을까요? 물론 금육을 했으니 칭찬받아야 할 것입니다만 초대한 사람의 정성을 외면했기에 결코 칭찬받을 일은 아닌 것 입니다. 이런 경우에는 다음날을 금육으로 정하여 지키며, 어제 내가 비신자로부터 받은 축복과 오늘 금육하여 모든 것을 정성스럽게 봉헌금으로 준비하여 봉헌하면 주님께서 크게 기뻐하실 것입니다. “나는 초대받아서 갔지만, 금요일이라 고기 안 먹었어.”라는 말을 안 하는 것이 훨씬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림을 알아야 합니다.



29 내가 말하는 양심은 여러분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양심입니다. 사실 무엇 때문에 내 자유가 남의 양심으로 판단을 받아야 하겠습니까?

내가 초대를 받아서 “우상에게 바쳤던 고기”를 안 먹는 이유는 “우상에게 바친 고기를 안 먹기 위해 그동안 열심히 노력해 왔던 형제의 마음”을 존중해 주기 위해서입니다. 우상이란 없으니 안 지켜도 되지만, 그가 열심히 지키고 있다면 그것을 안 지키도록 할 필요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가 열심히 하고 있다면, 그 열성을 칭찬하면 되는 것입니다.



죄라는 것은 각 개인의 성덕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어떤 이는 주일 미사에 빠지는 것만을 죄라고 생각하지만, 어떤 이들은 매일 미사에 참례하지 않은 것도 죄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미사에 갈 수 있었지만 다른 것에 마음을 빼앗겨 미사를 하지 못했기에 주님께 죄송스러운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자신이 안 해도 되는 것이지만, 다른 형제자매가 힘든 봉사를 할 때 죄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해 놓았다면 그 형제자매들이 안 해도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각자의 수덕생활의 위치가 다르기 때문에 함부로 판단해서도 안 되고, 각자의 행동을 존중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한 걸음 한 걸음 걷는 이들을 존중해 줄 수 있어야 하고, 격려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30 내가 감사하는 마음으로 식사를 함께 하면, 내가 감사하는 그 음식 때문에 비난받을 까닭이 어디 있겠습니까? 31 그러므로 여러분은 먹든지 마시든지, 그리고 무슨 일을 하든지 모든 것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십시오.

비신자가 우상에게 바쳤던 고기를 시장에서 사다가 맛있는 음식을 준비해 주었는데, 내가 그 비신자의 감사하는 마음을 받아들여, 그 음식을 맛있게 먹었다면 비난받을 까닭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바오로 사도는 “어떻게 사도가 우상에게 바쳐진 고기를 먹을 수 있을까? 바오로 사도를 그렇게 보지 않았는데. 신앙이라는 것이 그저 말이나 하는 것은 아닐까? 나도 이 기회에 신앙생활을 접어볼까?”하며 혹시 의혹을 가지고 고민하는 형제들이 생긴다면 “차라리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하는 것입니다.3)



자전거를 탈 줄 아는 사람이 성당에 갈 때, 자전거를 탔다 하여 자전거를 못 타는 사람 때문에 비난을 받아서는 안 되지 않겠습니까? 또 누군가가 나에게 자전거를 선물해 주어서 그것을 탔는데, 자전거를 탄 행동은 선물한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해 주지 않겠습니까? 자전거를 타던, 타지 않던 간에 그것이 신앙생활에는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함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성당에 갈 때는 한 걸음 한 걸음 기도하면서 가야 하는데, 저 형제는 기도하지 않고 그냥 편하게만 다니려 하는군!”하고 불편해 한다면 “차라리 자전거를 타지 않고 걸어 다니는 것이 그 형제를 위한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을 탓하려 하지 않고, 그 사람도 구원하시려고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 놓으신 우리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할 수 있지만, 그것을 할 때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내가 자제하는 것입니다. 내가 주님의 영광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행동도 그렇게 남을 배려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32 유다인에게도 그리스인에게도 하느님의 교회에도 방해를 놓는 자가 되지 마십시오. 33 무슨 일을 하든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애쓰는 나처럼 하십시오. 나는 많은 사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내가 아니라 그들에게 유익한 것을 찾습니다.

“유다인에게도, 그리스도인에게도,하느님의 교회에도 방해를 놓는 자가 되지 마십시오.”라고 바오로 사도는 권면합니다. 유다인들과 함께 있으면서 우상에게 바쳐진 고기를 자랑스럽게 먹는다면 유다인들은 “그리스도인들은 율법에 금지된 음식을 즐겨 먹는 사람들이요, 율법을 거스르는 사람이다.”라고 비난할 것입니다. 또 그리스도인이 “우상에게 바쳐진 고기라 하여 먹지 않겠다.”고 한다면 우상을 인정하는 꼴이 됩니다. 우상은 없습니다. 오직 주님만이 계십니다. 그리고 내가 그 음식을 먹는다면 다른 신자들도 “아하! 먹어도 되는 것이구나. 그래 우상은 없지. 오직 주님만이 계시지.”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에는 주님은 예수 그리스도 한분이 계시고,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존재합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교회를 위하여 주님께 더욱 굳은 믿음을 보여 드려야 하고, 우상을 섬김으로써 그리스도께 죄를 지어서는 더더욱 안 됩니다.



그러므로 내가 어떤 행동을 할 때는 내 주변의 형제자매들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들에게 유익한 것을 찾아야 합니다. 그들이 구원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11장 1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처럼 여러분도 나를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신앙인이 행동을 할 때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따라” 해야 합니다. 그렇게 바오로 사도는 살아가고 있기에 “여러분도 나를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나를 통해 구원의 손길을 형제자매들에게 펼치시고자 합니다. 그러므로 나의 모든 행동은 나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를 통해 사랑의 손길을 내밀고자 하시는 주님 마음을 알아야 하고, 나를 통해 주님 사랑을 알고자 하는 믿음이 약한 형제자매들의 마음도 헤아릴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자연스럽게 주님을 본받고,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길을 걸어가기 때문입니다.



3. 나눔 및 묵상

① 살아가는데 있어서 내가 중요한 가치를 두는 곳은 어디입니까? 신앙입니까? 아니면 사회생활입니까? 신앙에 중심 가치를 두고 사회생활을 하는 형제자매들을 칭찬해 보고, 그들의 어떤 면을 본받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이야기 해 봅시다.



② 나는 내 옆에 있는 형제자매를 배려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배려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내 형제자매들은 나를 어떻게 배려하고 있습니까?



4. 말씀으로 기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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