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별 성장

 

유형별 성장




   1) 각 유형별 강박 행동1)


우리는 앞의 장에서 에니어그램이 말하는 아홉 유형의 모습에 대한 개괄적인 素描를 하였다. 이제 이번 장에서는 각 유형들이 가지는 근원적인 죄의 모습들로써 회피 행동과 강박 행동에 대해 살펴 볼까한다. 유형별 강박 행동을 살피는 것은 자신의 문제를 깊이 인식하고 구원의 길로 나아가기 위한 필수적인 작업이다.


ⅰ일 유형


일 유형들은 분노를 피한다. 이들은 고뇌와 당혹감에 빠져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스스로 분노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도 분노를 터뜨리지 않는 것이다. 또한 이들은 강박적으로 완벽을 추구한다. 이들은 욕구를 나타내는 자신을 부정하고 억누르며, 천성적으로 금욕적인 생활을 찾아간다. 결국 이들은 완벽을 통해 자신을 보상받으려 한다. 하지만 이들의 눈앞에 펼쳐진 세계는 불의와 부정이 가득한 불완전한 세상이기에 이들은 분노한다. 이들이 인정하지는 않지만 이들에게 분노는 근원적인 죄이다. 하지만 일 유형들의 분노와 그것을 부정하려는 회피는 동시에 이루어진다. “발달이 잘 되지 못한 일 유형들은 흔히 위선적으로 그리고 고집스러울 정도로 도덕적이며, 모든 사람에게 집게손가락을 세우고 끊임없이 말하며 비판한다.”2)이들이 피해야 할 함정은 완전성과 그것에 이르기 위한 자신과 타인과 세상에 대한 비판이다.


ⅱ 이 유형


이 유형들은 그들에게 욕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이들은 다른 사람들의 욕구에 대해서 쉽사리 눈치를 챈다. 이들은 남을 도와주는 일에는 열중하나 자신은 욕구가 있으며, 남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한다. 이 유형들은 타인들과의 융화를 갈망하며 여기에 자신들의 재능을 쏟는 것을 자랑으로 여긴다. 하지만 이 유형들은 자신들이 이 관계에 의존해 힘을 얻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며 또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이들의 근원적인 죄는 ‘교만’이다. 이들의 교만이란 자기를 부풀리는 것, 팽창된 자아이다.”3)하지만 이들의 교만은 타인에 대한 배려나 관심이라는 미끼를 통해서 드러난다. 이 유형들은 관계에 있어 독점욕과 소유욕을 강하게 드러낸다.


ⅲ 삼 유형


삼 유형들은 실패를 피한다. 무엇인가가 이들로 하여금 인생에서의 성공을 위하여 항상 열심히 일하도록 몰아 간다. 이들의 성격은 실제로 이들이 거두어들이는 성공을 통하여 확인된다. 그러므로 이들에게 가장 큰 유혹은 능력과 효율이다. 이들은 실패를 회피하기 위해 근원적인 죄인 ‘기만’과 ‘거짓’을 초래한다. 이들은 우선 자기 자신을 기만한다. 즉 거짓말을 하고서도 스스로 인식 못하는 것이다. 또한 이들은 외적 성공을 위해 내면의 세계를 무시하며, 일에 맹목적으로 투신한다. 그리고 이들은 자신의 성공을 과대 포장해서 선전하며, 허영이라는 함정에 빠지기도 한다.


ⅳ 사 유형


사 유형들은 평범한 것을 피한다. 이들이 중요시하는 것은 늘 특별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이들은 스스로를 세련되고 감수성이 있는 사람으로서 결코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고 여긴다. 이들은 자신들만의 고유함에 집착한다. 이를 위해 남들이 인위적이라고 비판할 정도의 치장을 하기도 한다. “근원적인 죄는 선망이다 .그들은 누가 더 자기보다 멋이 있고 더 품위 있는가, 혹은 안목이 더 있으며 재주가 비상하거나 훨씬 독특한 생각들을 하며, 더 천재적인가를 즉각 알아본다.”4)이들은 자신들만의 독창성과 특별함을 찾기에 단체에서 추방당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자신들만의 슬픔과 우수를 채워 줄 것을 찾아 나서며 결국 예술에 빠져든다.


ⅴ 오 유형


오 유형들은 공허성을 피한다. 이들은 지식의 축적에 열중하며, 그것도 전적으로 자신의 힘으로 지식을 습득하려고 한다. 이들은 공유하게 되면 자신들이 공허해지기나 할 것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말한 것 이상으로 더 많이 알기를 원한다. 이들이 받는 최대의 유혹은 지식이다. 이들에게 지식은 자신의 공허성을 메꾸어 주는 힘이라고 믿기에 지식에 매달린다. 하지만 이들은 구체적이고 감정적인 관계에 얽매이는 것은 피한다. 그러기에 이들은 항상 관계의 한계를 규정짓기를 먼저 한다. “오 유형의 근원적인 죄는 탐욕이다. 오 유형들은 주는 사람이 아니다. 그들은 자신의 물질적 소유물에다 지적 소유물까지도 저장하는 경향이 있다.”5)이들은 인색한 구두쇠이며, 세상에 대한 초탈자이다.


ⅵ 육 유형


육 유형들은 일탈 또는 이상 행동을 피한다. 이들이 보기에 인생은 법과 규범에 의하여 다스려진다. 인생이 요구하는 책임감 때문에 이들은 어떠한 의무라도 무시하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이들은 특히 권위자에 의하여 주어졌거나 명문화된 모든 규칙들을 철저히 엄수한다. 이들이 받는 두드러진 유혹은 자신들의 불안감을 가라앉혀 줄 안전에 대한 갈망이다. 그래서 그들은 전통적이고 폐쇄적인 체계를 좋아한다. 이들은 스스로 판단하고 기준을 세우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기에 비교적 가시적인 외적 구조나 권위에 의존하는 것이다. “육 유형의 근원적인 죄는 불안 중에서도 으뜸인 공포다.”6)이들은 내적 권위가 없이 항상 외적 규율을 찾아 나서므로 행동에 있어 소심한 면을 많이 보인다. 행동과 판단에 있어 늘 주위의 눈치를 보며 낌새를 알아차리려고 노력한다.


ⅶ 칠 유형


칠 유형들은 고통을 피한다. 이들은 매우 낙천적이고 놀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며, 어쨌거나 인생이란 고통을 피해서 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주변 사람들이 겪고 있는 고통이다 고뇌로부터 아예 눈을 돌리려고 한다. 이들은 항상 기쁨과 즐거움을 타인에게 선사하기 위해 사는 이상주의자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고통과 어두움을 회피하려는 성향이 강하기에 타인이 어려움을 호소하기가 힘들다. 이들의 즐거움은 쾌락으로 향하기 쉬우며 심지어는 그들의 근원적인 죄인 ‘무절제’에 떨어지기도 한다. 이들에게 현실적인 문제들은 너무 감당하기 두려운 것들이기에 자꾸만 자기 안의 공상의 세계의 하나인 ‘계획 세우는 일’에 집착한다. 그들에게 계획은 실현이 중요한게 아니라 그것에 대한 공상으로 현실을 회피할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ⅷ 팔 유형


팔 유형들은 허약한 것을 피한다. 이들은 자신이 강력한 사람이라는 것을 자랑한다. 이들에게 인생이란 정의를 위한 투쟁이다. 세상일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은, 이들의 위신을 세우기 위해서라도, 잘못된 것과 정면으로 대결하여 불의와 겉치레의 허울을 벗겨야만 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이들은 정의를 위해 투쟁한다. 하지만 이 투쟁은 순수한 의미의 정의추구보다는 복수와 앙갚음의 발로인 경우가 많다. 이들은 자신들의 진실에 맞지 않는 진리는 부정해 버린다. “팔 유형들의 근원적인 죄는 파렴치함이다. 이들은 정욕이 넘치는 유형들이며 이 힘으로 타인을 파렴치하게 이용하고 소유하고 억압하는 것이다.”7)이들은 힘을 즐기고 항상 더 많은 권력을 가지려고 한다. 선천적으로 이들은 약하고 부드러운 면이나 여성적인 면을 수용하지 못한다.


ⅸ 구 유형


구 유형들은 갈등을 피한다. 이들은 사람들 사이에서 빚어지는 긴장이나 불화를 싫어한다. 이들이 중요시하는 것은 평화의 자세이다. 이들은 꽤 실현하기 쉬운 내적 평온은 물론 주변 사람들과 화평을 유지하는 일에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 구 유형들의 이러한 태도에는 자신을 과소 평가하는 내적 모습이 숨겨져 있다. 이들은 항상 뒤로 물러나서 현실의 고통스러움을 피하려 한다. 특별히 이들은 잠을 즐기는데 이것은 잠이 바로 이상적인 도피처라는 의식 때문이다. 이들의 근원적인 죄는 ‘게으름’, ‘나태’이다. 이들은 갈등을 피해 게으름과 안락함 속으로 숨어든다. 주변의 심각한 문제에 대해서도 자신은 그 일에 무관하므로 빠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실제적으로 피한다. 이러한 태도는 자신의 내적 발전에도 영향을 미쳐 자기 개발이나 성찰에 대해서도 태만하다. 그러므로 자아인식이 부족하고 항상 숨어 다니며 자아 표현 능력 특히 분노에 대한 표현이 어렵다.




   2) 그리스도와의 만남 ( 悔改와 救援 )8)


에니어그램에서 각 유형의 감추어진 문제점들에 대한 고찰은 그들의 회개와 구원에 대한 지식을 제공한다. 우리의 본론 마지막 작업은 각 유형에 대한 회개를 제시함에 있어 우리의 모델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그 가능성을 고찰하는 것이 될 것이다. 예수님이 에니어그램에서 우리의 모델이 된다 함은 그분은 어느 한가지만의 유형을 가지신 분이 아니라 그분 안에는 아홉 유형의 이상적인 모습이 다함께 조화를 이루면서 드러난다는 의미이다. 예수님은 모든 유형의 완성이시다.


에니어그램에서 성숙과 구원의 의미는 단순히 근원적인 문제점들을 알고 물리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먼저 각자는 자기를 바르게 알고 자신의 에너지를 더 이상 왜곡된 강박 행동으로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에너지를 공동체 안에서 다른 유형과 조화를 이루는 적극적인 모습으로 나아감을 의미한다.


에니어그램은 각 유형이 성숙을 향해 나아가는데 필요한 지침을 제공한다. 아래 그림Ⅰ은 각 유형이 걸어가야 할 길을 제시하는 에니어그램의 지도이다.




.


               그림 Ⅰ


각 유형의 화살표가 향하는 방향은 지금까지 잘못 걸어온 길을 말하며, 에니어그램이 제시하는 회개의 길은 자기에게로 향하는 화살표를 역행하는 방법이다. 각 유형의 개인들은 화살표에 역행하려는 노력을 통해 해방과 구원을 체험할 수 있다. 우리의 이 작업은 복음서가 우리에게 전해주는 예수님의 모습 안에서 이루어 질 것이다




ⅰ 일 유형 → 칠 ( 나는 낙천적이고 행복하며 멋지다 )


일 유형들은 ‘나는 멋있다’고 말하는 칠 유형들의 자만 쪽으로 화살표에 역행해 행동함으로써 그들의 강박적인 공격성을 거슬러 성숙에 이를 수 있다. 일 유형들은 ‘불완전하고 잘못 살고 있다’라는 실의에 빠져들 때, ‘잘 지낸다. 모든 것이 잘 되어 간다’라는 칠 유형들의 낙천적인 면을 배워 긴장을 풀고 삶을 즐기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또한 ‘무엇인가 잘못 되었다’는 현실에 대한 공격적인 태도를 벗어나 칠 유형들처럼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다면 인생에 있어 긍정적인 것들을 볼 수 있게 되고, 무작정 열심히 하려고 애쓰기보다 여유를 갖고 시간을 허비할 줄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면 일 유형들도 인생을 즐김으로써, 긴장을 해소하고 작은 것에서도 행복감을 느끼며 자유 속에 살게 될 것이다.


이상주의자로서의 예수님 – 일 유형의 이상주의자요 완전에 집착하는 모습은 예수님의 모범 안에서 해결된다. 복음서가 전하는 예수님의 모습 안에는 개혁가요 완전을 추구하는 이상주의자의 모습이 들어 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 같이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라.”(마태 5, 48) 하지만 예수님은 이상을 추구하시면서 불의에 대한 비판만이 아니라 죄인들과 창녀들에 대한 인내와 관용의 모습을 함께 보여 주신다. 일 유형들은 자신이 사랑 받기 위해 반드시 완전해야만 한다는 강박을 죄인들을 사랑해 주시는 예수님 안에서 해결해야 할 것이다. 하느님의 사랑은 인간의 행동에 앞서는 무상이요 섭리이지 행동에 대한 보답이 아님을 알아야 할 것이다. 또한 그분은 내적 분노를 억압하시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나쁜 동기에 대한 노기와 분노를 보이기도 하신다.(마르 9, 19) 이렇게 일 유형들은 예수님의 모습 안에서 인내와 불의에 대한 분노가 함께 조화를 이룰 수 있음을 배워야 할 것이다.


ⅱ 이 유형 → 사 ( 나는 독창적이고 민감하며 교양 있다 ) 


이들은 사 유형의 ‘나는 특별하다’라는 자만에로 향함으로써 자기 극복을 이룰 수 있다. 사 유형들은 자신의 심오한 감정을 드러내기 위해 스스로의 독특한 표현을 하려고 애쓴다. 이 유형들은 이러한 사 유형들의 자만으로 이동함으로써, 자신이 기쁨과 슬픔에 대한 깊은 감정을 갖고 있는 아주 특별한 사람임을 알고 표현하게 될 것이다. 이 유형들은 자신이 봉사하지 않아도 사랑 받을 수 있는 유일하고 특별한 사람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또한 사람은 행위나 활동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고귀하게 존재함을 배우고, 일을 멈추고 자신을 위한 휴가를 떠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면 이들은 남을 돕느라고 잊은 자신을 찾게 될 것이며, 일상생활 안에서 죄의식 없이 멋과 예술을 즐기며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게 될 것이다.


남을 위한 예수님의 봉사 – 남들을 도우려는 이 유형들의 강력한 의지는 예수님 안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인자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마태 20, 28) 예수님은 항상 자신을 필요로 하는 병자와 죄인들의 요구에 응하셨다. 당신의 마지막 행동이셨던 십자가의 죽음은 이타존재로서 당신의 모습을 가장 확실히 드러내신 사건이다. 하지만 이런 예수님의 사랑과 봉사 안에는 타인을 지배하려는 이유형의 죄의 모습은 전혀 없다. 예수님은 마귀를 쫓아 주었던 사람이 따라다니게 해달라고 애원하나 떠나 보내신다. (마태 5, 18-20) 또한 타인의 도움을 거부하는 이 유형들에 비해 예수님은 당신의 고통에 제자들이 함께 할 것을 겟세마니 동산에서 요구하기도 하신다. 즉 당신의 고통을 호소하시며 종이 아니라 벗으로써 함께 하도록 우리를 부르신다. “이 유형에 대한 초대는 자유에의 부르심이다. 그것은 자기를 내던지고 남들을 자유롭게 하는 자유고, 도와주고 스스로 도움을 받는, 혼자 있고 남들과 함께 있을 자유다.”9)


ⅲ 삼 유형 → 육 ( 나는 충실하고 복종적이며 충성스럽다 )


성공에 집착하는 삼 유형들은 충실하고 헌신적인 육 유형에로 향함으로써 성숙에 이를 수 있다. 자기 중심적 야망으로 집단을 이용하는 삼 유형들은 충성스러운 육 유형들의 자만으로 옮겨감으로써, 동료 집단 전체에 더욱 충성하게 되고, 스스로 집단의 규범에 얽매이게 된다. 또한 어떤 값을 치르더라도 성공하고야 말겠다는 강박 행동을 벗어나 충성스럽고 순종적인 시민으로써 사회의 일원이라는 자아상을 가지게 된다. 삼 유형들은 지나친 확신감보다는 의혹을 갖고 자신의 행동에 대한 한계를 인식하며, 그 한계 내에서 성실히 노력하는 육 유형들을 본받아, 함께 사는 삶의 중요성을 인정하는 법과 사람에 대해 헌신하고 충성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성공을 위해 전력하시는 예수님 – 예수님은 혼신의 노력을 다해 성취를 향해 달려가신 본보기이시다. 성공을 추구하는 삼 유형들처럼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설파하셨다. 이것을 위해 예수님은 뛰어난 지도자의 모습으로 제자단을 조직하셨으며, 둘씩 짝지어 파견 보내는 조직력을 발휘하기도 하신다.(루가 10, 1) 예수님은 당신의 역할과 소명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 바치셨으며, 결국에는 생명까지 바치신다. 하지만 예수님은 삼 유형들처럼 실패를 감추거나 실패 앞에서 포기하지는 않으신다. 당신은 예루살렘 입성 후 끝내 당신의 길을 알지 못하는 도시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셨으며 나아가 당신의 십자가는 가장 분명한 실패가 가장 큰 승리의 구원이 됨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이렇게 영원한 것을 향한 희망 때문에 현세의 실패를 감수하시는 예수님의 모습 안에서 삼 유형들은 현세적 지위나 재산에 매달리기보다는 더 큰 희망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ⅳ 사 유형 → 일 ( 나는 정직하고 열심히 일하며 규칙을 지킨다 )


실의에 빠진 사 유형들은 일 유형에로 나아감으로써 성숙을 이룰 수 있다. 사 유형들은 ‘세상은 변형시킬 수 있으며, 상황은 바꿀 수 있다’는 일 유형들의 자만을 배워야 한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며 정직하고 공정하게 노력하는 일 유형들의 태도를 닮아 감정보다는 가치를 더 중요시하고, 이해 받지 못한다는 슬픔에 잠기기보다는 비판적으로 상황을 변화시키도록 노력해야 한다. 방어적이기보다는 개방적이고, 보다 현실적으로 세상에 접하고 ‘지금 여기에 집중하라’는 일 유형들의 충고를 받아들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감수성이 풍부하신 예수님 – 자신만이 슬픔과 오해 속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던 사 유형들은 예수님 안에서 오해 받는 자의 가장 처참한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예수님은 감수성이 예민한 분이셨다. 예수님은 여러 가지 비유들 안에서 당신만의 뛰어난 감수성을 발휘하셨으며 겟세마니 동산에서 깊은 슬픔에 잠기시는가 하면 나자로의 죽음 앞에서 눈물을 흘리기까지 하셨다.( 요한 11, 34 ) 하지만 자신이 우는 것 부끄러워하지 않으셨으며 자신의 감정을 감추거나 필요 이상으로 가장하지도 않으셨다. 예수님의 삶의 방식은 가식 없고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그분은 세상을 성스러운 것과 세속적인 것으로 구분하지 않으셨으며, 온 세상은 그 자체로 하느님께 속한 거룩하고 아름다운 것임을 보여 주셨다. 사 유형들은 자기들만의 엘리트 집단을 만들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엘리트 집단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어부, 세관장)을 당신의 제자로 뽑으셨다. “가족, 고향, 그리고 이스라엘의 권력 엘리트에게 배척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분 자신의 제자들조차 그분을 이해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예수께서는 우수에 찬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는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있었지만, 그분은 자신이 가야 할 길을 벗어나지 않는다.”10)


ⅴ 오 유형 → 팔 ( 나는 정의롭고 강하며 지배적이다 )


움츠리기만 하는 오 유형들은 힘과 능력을 과시하는 팔 유형에로 향하려는 노력을 통해 성숙에 이를 수 있다. 은퇴해서 뒤로 물러 앉아 있기보다는 ‘나는 할 수 있다’는 팔 유형들의 확신을 배워 삶에 뛰어 들어야 한다. 또한 현실에 직면하여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믿고 자신의 주장을 내세워야 한다. 팔 유형들처럼 단정적이지는 못하더라도 도전적이고 호전적인 방향으로 자신을 바꿔야 할 것이며, 나아가 자신이 가진 정보, 지식, 사고를 건전한 사회를 이루는데 사용해야 한다.


지혜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 오 유형들은 삶을 지혜롭게 살아가시는 예수님의 본보기 안에서 자신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소년 시절 학자들과의 대화, 궁지에 몰린 창녀를 구해내신 일과 당신의 반대자들이 던지는 황제에 대한 세금을 슬기롭게 대처하신 일 (루가 2, 47. 요한 8, 1-11. 마르 12, 13-17) 등은 예수님이 충분한 지혜의 본보기가 됨을 알게 해준다. 또한 예수님은 오 유형들처럼 세상을 피해 물러서서 방해받지 않는 자기만의 공간을 찾기도 하신다.(마르 6, 46) 하지만 예수님은 자기만의 공간에서 자유를 누리시면서도 당신을 찾아오는 제자들과 군중들을 물리치지 않고 가르침을 베푸신다. 또한 예수님은 단순히 진리를 소유하는 것에 머무시지 않고 항상 그것을 가르침을 통해 제자들과 군중들과 나누셨다. 예수님의 침묵 또한 중대한 결정의 과정일 뿐 그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님을 성경은 말한다. “하느님이 그리스도로 현현하셨다는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은 인간과의 밀접한 접촉을 추구하는 하느님, 그리고 가장 낮은 곳에 임하시는 역사상 최악의 상태에 임하시는 하느님을 계시하고 있다.”11)


ⅵ 육 유형 → 구 ( 나는 평온하고 조화롭고 균형 잡혀 있다 )


내적 권위가 부족한 육 유형들은 내적 평화의 구 유형에로 향하려 노력을 통해 성숙에 이를 수 있다. ‘나는 틀림없다’고 말하는 구 유형들의 자만 쪽을 택하여 화살표의 방향을 거슬러 옮겨감으로써 외적 현실에 상투적으로 동조하기만 하는 그들의 강박적 의존성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구 유형들은 좀처럼 내적 갈등을 일으키지 않는데, 육 유형들은 구의 이러한 자만 쪽으로 옮겨감으로써 자신감을 갖게 되고, 남들이 생각하는 것에 대해 덜 걱정하게 된다. 이렇게 육 유형들은 긴장을 풀고, 걱정하기보다는 수용적인 구 유형들의 내적 고요를 배워야 한다. 주저하고 조심하기보다는 자신의 본능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자신감을 갖고 내부의 평화를 이루어야 한다. 


충성스러운 예수님 – 집단이나 권위에 대한 충성을 요구하는 육 유형들은 예수님 안에서 올바른 충성의 본보기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수님은 스스로 하느님의 충직한 종으로 섬기러 왔음을 밝히신다.(마르 10, 45) 예수님은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유래한 내적 권위를 가지고 계셨다. 그분은 기꺼이 회당에 가서 기도하시며, 율법에 대해서도 완전한 충성을 가르치신다. 하지만 예수님에게 있어 율법이나 법조문은 그 자체로 효력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그 정신에 부합할 때에만 효력이 있다. 그러므로 육 유형들은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면 된다’(마르 5,36)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은 서열에 따른 권력의 행사나 지배가 아니라 ‘첫째가 될 사람은 종이 되어 섬겨라’(마태 20, 25-27 참조)하신 것처럼 봉사자가 되는 것임을 알게 된다면 육 유형들은 훨씬 더 자유롭게 법과 권위를 따를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더 이상 두려움에 의한 율법 준수가 아니라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기쁜 소식을 받은 자로써 자유를 누려야 할 것이다. 이들이 율법의 독선을 피할 수 있는 길은 법과 권위에 담긴 하느님과 인간 사랑의 정신을 깨닫는 것이다.


ⅶ 칠 유형 → 오 ( 나는 현명하고 영리하며 수용력이 풍부하다 )


외적인 조화를 추구하는 칠 유형들은 내면의 관찰자인 오 유형에로 향함으로써 성숙에 이를 수 있다. ‘나는 알고 있다’고 말하는 오 유형들의 자만으로 이행함으로써 쾌락에 대한 강박적 의존성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오 유형들처럼 매사에 심사 숙고하는 인생을 살아감으로써, 칠 유형들은 피상적으로 ‘모든 것이 멋있다’는 식의 낙관주의에 매달리기보다는 좀더 객관적으로 외적 현실에 뛰어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이 조용하고 안정된 모습이 되면 사려 깊고 이해심이 깊고 고요를 즐기게 된다. 나아가 계획한 것들을 구체적이고 진지하게 추진하고 이런 일 유형들을 통해 현실의 복잡성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낙관적인 예수님 – 칠 유형들에게는 예수님이 항상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고 즐기셨다는 것을 아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예수님은 고행자가 아니셨다. 바리사이들이 그분에게 단식을 하지 않음에 대해 비난하자 예수님은 당신과 함께 있음이 혼인 잔치와 같이 즐거운 것이므로 지금은 필요치 않다고 거부하신다. 실제로 예수님은 단식과 고행보다는 세리, 죄인 혹은 바리사이 할 것 없이 여러 부류의 사람들과 함께 식탁에 앉아 먹고 마시기를 즐기셨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의 집단을 먹고 마시기만 한다고 비난했던 것이다.(마태 11,19) 또한 예수님의 메시지인 하느님 나라도 잔치에 비유되는 기쁜 소식(복음)이었다. 하지만 예수님은 산상 설교에서 거짓된 기쁨을 경고하신다. 지금 웃는 자, 배부른 자, 부유한 자들은 불행할 것이다.(루가 6, 24-26) 칠 유형들은 불쌍한 나자로의 비유를 기억해야 할 것이다. 예수님은 어울리고 놀기를 좋아 하셨지만 당신이 겪으셔야 할 고난을 피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의 삶은 부활이란 십자가 없이 불가능한 것임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음을 고통을 회피하는 칠 유형들은 기억해야 할 것이다.


ⅷ 팔 유형 → 이 ( 나는 사랑스럽고 이기심이 없으며 남을 도와준다 )


호전적인 팔 유형들은 ‘나는 도움이 된다’고 말하는 이 유형의 자만을 취함으로써 성숙에 이를 수 있다. 항상 타인의 욕구를 향해 움직이는 이들의 자부심은 다른 사람들을 짓밟고 상냥함이란 조금도 없는 팔 유형들의 공격성에 대한 강력한 해독제가 될 것이다. 이 유형에로 향하려는 노력을 통해 더 이상 자신의 입지만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남의 존재를 수용하고 자신의 약한 면도 받아들이게 된다. 또한 나를 화나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고심하기보다는 남을 돕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묻고 찾을 때 너그럽게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이들의 부드러움을 배우게 되면 강력한 팔 유형들의 힘은 남을 위해 건전하게 발휘될 수 있다.


불의의 대항자 예수님 – 힘을 자랑하는 팔 유형들은 강력한 사람에 대한 본보기로 예수님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예수님은 당신의 사명을 수행함에 있어 물러섬이 없었다. 이것은 성전에서 장사꾼들과 환전상들을 다루신 예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그리고 그분은 말과 행동에 있어 결코 요점을 피하지 않으셨다. “이 위선자들아, 너희는 화를 입을 것이다.”(마태 23, 16) “여러분은 말을 할 때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오’ 할 것은 ‘아니오’ 하시오.”(마태 5, 37) 이러한 예수님의 단호성은 당시 지배계층에게 상당히 위협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때가 이르기 전까지는 누구도 예수님께 도전하지 못하였는데 그것은 예수님에게서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내적 권위를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렇게 강한 힘만을 발휘하신 게 아니라 부드러움과 친절도 함께 가지셨다. 그분은 고기잡이 나간 제자들을 위해 손수 아침을 마련하셨으며, 아이들을 귀여워해 주시기도 하셨다. 또한 예수님은 약자들 편에 서서 당신 힘을 사용하셨다. 그리고 이 힘을 자제하시기도 하셨다. “예수는 강했지만 무적은 아니었다. 그분은 당신이 쓰실 수 있는 힘을 사용하고 싶은 유혹에 저항했다. 그분은 ‘천사 유형들의 군단’(마태 26, 53)에 도움을 청하지 않았던 것이다.”12)


ⅸ 구 유형 → 삼 ( 나는 성공적이고 유능하며 능률적이다 )


구 유형들의 회피 경향은 ‘나는 성공적이다’고 말하는 삼 유형의 자만으로 향함으로써 성숙에 이를 수 있다. 삼 유형들의 활동성과 목표에 대한 집착은 인생으로부터 움츠려 들려는 구 유형들의 강박 행동을 해결하는 좋은 본보기가 된다. 스스로 일을 시작하고 추진해 나가는 삼 유형들을 모방함으로써 구 유형들은 자신의 타고난 재능을 인정하는 가운데 사회적 현실에 대해 좀더 단호한 태도로 행동할  수 있을 것이다. 인생에 있어 ‘나는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다’는 구 유형들의 자포 자기하는 태도는 관계를 중시하는 심장 중심의 활동적인 삼 유형들 안에서 스스로를 사랑하고, 가치 있는 사람으로 인정하게 될 것이다.


평화의 주님 – 예수님은 당신 친히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노라고 말씀하신다. 그분은 사람들을 부르신다. “수고하고 짐을 진 여러분은 모두 내게로 오시오. 그러면 내가 여러분을 쉬게 하겠습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기 때문입니다.”(마태 11, 28) 또한 예수님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침착하셨다. 폭풍우 치는 가운데서도 배 위에 누워 잠을 자고 계셨다.(마르 4, 35-41 참조) 그분은 싹이 트듯이 점진적으로 다가오는 하느님 나라 비유를 통해 참을성을 가질 것을 가르치기도 하신다. 하지만 예수님은 마냥 쉬려고만 하는 구 유형들에게 충고를 하신다.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시오.”라고. 그분은 하느님과 인간에 대한 사랑 때문에 단호하게 행동하셨으며, 죽음까지도 피하지 않고 굳건히 서서 맞이하셨다. 구 유형들은 예수님이 보여 주신 관계에 대한 적극성이나 주위에 대한 관심을 배워야 할 것이다. 또한 삼년의 짧은 공생활 시간이었지만 잠시도 게으름에 빠지지 않고 부지런히 당신 사명을 완수하신 예수님의 모습도 나태하기 쉬운 구 유형들에게 교훈이 될 것이다. “구 유형들은 공동체를 사랑하며, 동기를 부여받고 영감을 얻기 위해 공동체를 필요로 한다. 그리스도는 공동체의 삶을 사셨고 제자들이 활동적이기를 기대하셨다. 그분에게는 모든 사람이 귀중했다. 그분은 심지어 그렇게 쉽게 눈에 띄지 않는 구 유형들에게도 주목을 하셨던 것이다.”13)




예수님은 모든 유형의 완성이시다. “어떤 사람들은 에니어그램을 하느님의 얼굴이라고 부르는데, 왜냐하면 아홉 가지 인성유형으로 나타난 아홉 가지 에너지를 하느님의 아홉 가지 屬性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인간, 계시자, 그리고 하느님의 사랑의 계시가 되신 하느님의 얼굴을 본다.”14)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성숙은 앞에서 살핀바와 같이 예수님의 완전성 안에서 이루어지는 영적 성숙을 의미한다. 한 가지 유형만을 가진 우리 개개인은 예수님이라는 모델 안에서 자기의 한계점과 그것의 극복을 추구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러한 작업의 근본 바탕은 완전한 사람이시오, 완전한 하느님이신 분, 그분 안에서 이루어지는 구원에 대한 믿음에 있다.



이 글은 카테고리: catholiccounsel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