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지도와 심리학
영적 지도의 역사와 본성에 대한 고찰을 통해서, 우리는 자아에 대한 앎이 영적 성숙을 위해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가를 알았다. 또한 영적 지도의 역사 안에서도 암시되어 있듯이 오늘날 그리스도교 신학과 영성은 인간에 관한 학문들과의 개방적 대화를 통하여 많은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되었다. 즉 하느님의 신비가 무진장 담겨 있는 창조물인 인간 존재와 그 삶의 양식 그리고 인간 상호 관계성에 대해 훨씬 풍요로운 인식을 갖게 된 것이다. 인간 실존은 신학과 심리학, 사회학 그리고 생물학 등이 만나는 자리라 할 수 있으며 자신과 이웃 그리고 하느님이 상봉하는 육화한 영성의 장(場)이라 할 수 있다. 실로 하느님이 인간 안에 심어 주신 심리적 법칙과 생물학적 질서를 더 많이 찾아낼수록 우리는 하느님의 창조물인 인간에 관해 더 많이 알게 되는 것이며, 따라서 하느님의 신비를 더 깊이 깨닫게 되는 것이다. 또한 인간에 대한 이해와 인간 상호간의 통교의 법칙은 하느님께 대한 이해와 그분과의 인격적 만남의 신비에 좀더 쉽게 접근하도록 돕는다. 인간은 하느님의 은총 안에서 비로소 이웃과 참다운 인간관계를 맺고 발전시켜 나갈 수 있지만, 한편 이웃 관계의 성숙을 통해 하느님과의 인격적 만남의 요령과 방법을 체득해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1)
이런 의미에서 영적 지도도 당연히 쇄신되어야 한다. 전통적인 영적 지도는 개념과 역할, 기능 그리고 방법론에 있어서 시대와 상황의 요청에 부응하여 탈바꿈하고 보완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장(章)에서는 영적 지도가 새로워지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영적 지도의 역사를 통해 암시된 심리학적 접근을 위한 가능성을 제시하고자 한다.
1) 심리학과 신학의 어려운 조화
“19세기 후반에 Wilhelm Wundt(1832-1920)2)에 의해 하나의 자립 학문으로 첫발을 내디딘 심리학은 철학과 신학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기 위하여 ‘영혼 없는 심리학’3)이라 자칭하면서, 항거의 깃발을 치켜들었다.”4) 그러나 종교경험을 분석하고자 하는 심리학자는 측량이 불가능한 초자연적 요소로 인해 난관에 부딪히게 되었고, 여기에서 심리학자와 신학자 사이에 의견 대립과 갈등이 생기게 된다.
“심리학자들은 종교행위에 대한 연구 결과를 평가함에 있어 때로는 지나친 해석을 내리기도 했고 때로는 그것을 일반화시켜 버리는 잘못을 저질렀다. 그리고 신학자들은 인문과학이 연구한 종교적 이론에 대해 불신의 태도를 취하거나 단죄를 했으며, 심지어 종교적 행위에 대해 과학적 연구의 가능성과 합법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정도였다. 이러한 상황에 비오 12세 교황이 1953년 심리치료와 의학심리 세미나에서 한 연설은 종교성에 대한 심리학적 연구를 보는 교회의 입장을 개방과 혁신으로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5)
비오 12세 교황의 연설에 호응이라도 하듯이 어떤 연구 조사자들은 다행스럽게도 인간에 대한 연구에 있어서 경험적 학문과 철학, 신학의 각 학문 영역의 독자성과 상호 보완성을 인정하고 인간의 생리적·심리적·도덕적·초자연적(종교적) 구성 요소를 모두 함께 고려한다. 그러므로 철학과 신학은 도덕적·종교적 행위에 대한 과학적인 자료들을 무시할 수 없고, 도덕적·종교적 행동에 대한 철학과 신학의 연구 경향을 무시하거나 소홀히 하는 심리학은 인간의 비인간화를 초래할 위험이 매우 크다고 볼 수 있다.6)
이러한 맥락에서 종교와 심층심리학(depth psychology)7)은 서로 다른 영역을 서로 다른 방법으로 설명하고 상호 보충해준다. 어느 경우에도 서로를 대치하지 낳는다. 각 분야가 다루는 경험은 다른 분야의 빛에서 볼 때 더 온전히 이해된다. 그러나 두 종류의 경험이 아무리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고 상호 보완적이라 할지라도 각각의 경험의 범주는 그 자체의 특수한 면을 보유하고 특수한 난제를 제공하며 자체의 가치를 제시한다. 종교는 심층심리학의 대치물이 아니다. 고해성사로부터 영적 지도에 이르기까지 종교 실천에 대한 심리분석적 절차들은 나름대로의 풍부함과 심오함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이것이 심층심리학의 특수한 가치나 기술은 아니다. 그것은 정신분석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그렇게 기대해서도 안된다. 심리학 역시 어떤 형태로도 종교의 대치물이 되지 못한다. 그것은 종교경험의 깊이와 전 영역에 대해 책임있게 말할 수 없고, 그 경험을 재생할 수 없으며 그것을 기대해서도 안된다.8)
그러므로 신학과 심리학의 갈등과 대립은 신앙의 대상을 보는 방법이 다르고, 또한 신앙적 행위에 대한 이해의 착안점이 다르다는 것을 상호 인정하지 않을 때 빚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에 도달한 심리학도 대체로 오늘날에는 신학적 본성의 문제에 대해 논하겠다고 더 이상 주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하느님의 말씀이 인간들 안에서 어떻게 반응하는지 분석하는데 유익한 요소와 방법들을 심리학이 제공하고 있다.9) 이에 신학과 심리학의 대화가 가져다준 오늘날의 풍부한 결실들은 피차가 상대를 묵살할 수 없게끔 되었다.10)
이러한 추세에 발맞추어 학문적 분야에서 신학과 심리학 사이에 점차 성숙해 가는 새로운 형태의 관계가 이루어지고 있다. 심리학자들은 특히 종교행위에 대한 연구에서 수집된 자료들을 평가하고 그것들에 특성을 부여하는 데 매우 주의를 기울인다. 또한 신학자들은 하느님의 말씀이 육화하는 인간의 실재를 고려하면서, 심리학에 대한 무조건적인 방어나 논쟁적 자세를 버렸다. 오히려 오늘날 사목현장에서 인간에 관한 학문들이 제공하는 여러 가지 유익한 도움을 종교 생활의 향상을 위해 받아들이고 있다. 영적 지도, 사목상담에 대한 심리적 카운슬링 방법의 적용, 교회의 신앙교육, 영성수련 및 영성운동들 안에 현대 인간에 관한 학문들의 기여의 활용, 사제직과 수도생활의 지원자들에 대한 적합성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참고로서 여러 심리·적성 테스트의 도입 등이 그 실례이다.11)
신학과 심리학의 이러한 관계를 바탕으로해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그리스도인의 성숙을 위하여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인간 성숙의 중요성을 여러 문헌에서 언급하며 신학과 영성 그리고 사목이 현대 인간에 관한 학문들, 특히 심리학과 대화하도록 권장하였다.12)
2) 영적 지도에 있어서 심리학이 가진 가능성과 한계
심리학적 방법과 개념들을 신앙인의 영성생활에, 특히 영적 지도에 도입함에 있어서 여러 문제들이 일어날 수 있고, 또한 반대에 직면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인문과학의 척도들만을 이용하여 인간의 영성생활을 설명하고 분석하려는 이가 있는가 하면, 신앙적 표현이 심리·육체를 가진 인간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닌 순수 정신적인 것인 양 분리해서 보고자 하는 이들도 있는 것이다.13)
이러한 여러 문제들 앞에서 강조해야 할 것은 피지도자의 심리역학구조를 아는 것, 그리고 영적 지도자가 자신의 지도 양식을 다른 어떤 지도양식과 비교해 보는 것은 영적 지도자에게 결코 해로울 것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영적 지도자로서의 카리스마가 없다고 여겨지는 사람은 인간 영혼에 대한 여러 가지 내용들을 잘 알 수 있도록 적절한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을 양심의 명령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14) 사제서품이 영적 지도자로서 필요한 재능을 자동적으로 부여하지는 않기 때문이다.15)
오늘날 영성생활의 여러 분야(종교적인 표현들, 성소문제들, 사목적인 상황들, 종교적 색채를 띤 심리적 장애들)를 다루는 학문적 서적들이 풍부하게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런 연구들은 영성생활에 방해요소로 작용할 수 있는 심리적인 요인들을 명확하게 가려내게 해 줄 뿐만 아니라, 개인의 책임과 자유의 정도를 깊이 연구하여 인간행위에 개입하는 심리적 역학구조를 이해하도록 도와준다. 또한 그것들은 개인생활에 영향을 주는 사건들에 주의를 기울이게 하며, 인간관계를 조절하는 원리들과 그 인간관계를 효과있게 하며, 쉽게하는 방법들을 습득하도록 해 준다. 따라서 인간이 체험하고 있는 종교심을 깊이 이해하도록 해 줄 뿐만 아니라, 영적 지도와 심리학적 방법론간의 상호관계까지도 밝혀 주는 인문과학을 활용함은 현대의 영적 지도자에게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16)
대표적인 심리학자를 예로 들면 융은 미신의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인간 삶에 있어서 필연적인 어떤 것으로 이해했고, 프로이드에게 있어서 종교는 그 자체로, 본질적으로 병적인 강박 신경증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적인 지도자에게 프로이드나 융은 종교적 삶의 위험하고 미성숙하며 유아기적인 형태를 이해하기 위한 필수적인 부분으로 남아있다.17)
한편, 영적 지도와 관련한 인문과학의 여러 가지 공헌에도 불구하고, ‘심리 만능주의’는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는 사실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심리학의 어떤 요소들은 인간을 위해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분류하는 데 사용되며, 인간을 해방시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인간 안에 가두어 버리는 데 사용되며, 인간을 성화시키기보다 인간으로 그냥 머물러 있도록 하는 데 사용될 수 있는 것이다.18) 즉, 영성적인 현상의 모든 차원을, 한계가 있는 인간의 어떤 특정한 척도 안에 맞추어 들이려 하는 시도는 편협하고 부분적인 시각이라 하겠다.19)
그리고 “우리는 심리학으로부터 성급하게 초자연적 존재에 대한 인간 의무의 기초나 관계의 정당화를 기대할 수는 없다. 올포트(Allport, 1897-1967)의 말대로 ‘종교와 그 진리에 대해 논쟁하거나 그것들을 증명할 수 없는 것이다. 초월적 요소란 경험적 학문과 관찰의 가능성을 벗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심리학은 인간에 대한 개방적 개념과 그에 대해 폭넓게 이해할 수 있는 자료들을 제공할 수 있고, 전개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할 수 있을 뿐이다. 도달해야 할 마지막 목표를 밝힌다든지, 자연을 초월하는 가치에 대해 추리하고 관상하며 이름을 붙인다든지, 또는 신앙 관계를 정립하는 것은 신학의 과제이며 개인 신앙의 결실이다.”20)
그러므로 영적 지도에 있어서도 신학과 심리학의 연구는 각자의 영역을 인정하는 동시에 상호보완적인 것이어야 한다. 육화되지 않은 영적 지도 또는 정신분석이나 심리적 요소로 지나치게 한계 지어진 영적 지도는 이상적인 것이 못된다. 이상적인 영적 지도자는 심리적인 영감에 깊은 내면 생활을 조화시킬 수 있는 자일 것이다.21) “진정한 영적 지도를 하기 위해서는 영성적으로 또 신학적으로 잘 준비되어 있어야 할뿐만 아니라, 인문과학만이 제공할 수 있는 실천적이고 이론적인 지식도 아울러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22)
이렇게 심리학의 영역과 신학의 영역을 서로 존중하면서도 심리학이 제공할 수 있는 유익함을 받아들이고, 또 이것이 신학과의 관계에서 상호보완의 입장에 있음을 인정한다면, 이제 영적 지도의 본 의미를 손상시키지 않으면서도 개인의 영성생활을 성숙에로 이끌 수 있는 하나의 방법으로 교류분석이론을 활용하고자 한다. TA는 자기이해, 타인이해, 그리고 자기와 타인의 관계를 이해함으로써 인간관계의 역동성을 해명하고, 구체적으로 적용시켜 실효를 거두고 있기 때문이다23). 아울러 이러한 TA의 목적은 하느님과의 관계를 올바르게 그리고 발전적으로 형성하고자 하는 신앙인들의 바램을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