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9년 개항(開港) 당시의 군산은 호남평야의 세납(稅納)미곡을 받아들이는 창고 소재지로서 20~30호의 어업, 선박업, 노동 등에 종사하는 주민들이 모여 사는 한적한 곳이었다. 전북 옥구군(沃溝郡) 군산이 항구로서 차차 발전되어감에 따라 서울 왕래하는 전라도 각지의 신부들이 이곳에 교회설립의 뜻을 두었으나 실현을 못 보다가 1925년 김용진(金瑢鎭, 후에 군산본당회장)의 매씨인 김(金) 마리아 주선으로 전북 군산시 영동(榮洞) 22번지 자기 사택에 공소를 열고, 나바위본당(현 화산본당) 신부를 청하여 판공성사를 보게 된 것이 군산공소의 시작이다. 1929년 교우들의 물심양면의 협력으로 신영동(新榮洞)에 큰 집을 매입하였고, 1930년에는 전북 군산시 둔율동(屯栗洞) 156번지에 있는 대성원(大成院)을 매수하여 임시성당으로 개수함과 동시에 부속건물을 사제관 등으로 사용하기로 하고, 1931년 1월 18일 군산본당이 설치되어 출발을 보았다. 이리하여 초대(1931~1934년) 김영구(金榮九, 베드로)신부를 주임신부로 하여 전교사업을 전개해 나갔다. 2대(1934~1940년) 임인교(任仁敎, 바오로) 신부 때인 1938년에는 목조건물 54평을 신축하여, 무염시태성모를 주보로 하게 되었다. 3대(1940~1944년) 조상익(趙相益, 베드로) 신부, 4대(1744~1947년) 김후생(金後生, 바오로) 신부, 5대(1947~ 1952년) 박성운(朴聖雲, 분도) 신부로 이어지면서 군산본당은 자본당(子本堂) 등이 많이 생김으로써 발전적으로 그 호칭이 없어지게 되어 1950년을 구획점으로 하여 그 후신인 전주교구 관하의 둔율동본당(屯栗洞本堂)으로 지칭하게 되었다.
엄격히 말해서, 1931년 1월 18일 군산본당이 설치되어 전북 군산시 둔율동 156번지 옛 대성원 터에서 출범을 본 이래 5대 주임신부인 박성운 신부 이후 군산시내에 1952년 월명동본당(月明洞本堂)이 설립됨으로써 군산본당 명칭은 발전적으로 폐지되고, 이를 승계한 본당명이 새로 지정되어 둔율동본당으로 불려지게 된 것이다. 이리하여 6대(1952~1954년) 주임신부 강윤식(姜允植, 분도) 신부 때부터 새 발진(發進)을 본 둔율동본당은 7대(1954~1956년) 서정수(徐廷壽, 아릭스) 신부 때인 1955년 8월 17일 전주교구 관하의 현 둔율동본당의 신축공사를 마무리 지었는데, 건평은 126평 규모이다. 8대(1956~1960년) 이상호(李祥浩, 아오스딩) 신부, 9대(1960~1962년) 김재덕(金在德, 아오스딩) 신부, 10대 박영규(朴永圭, 발라바) 신부, 11대 김영일(金永鎰, 아오스딩) 신부, 12대 범석규(范錫圭, 마티아) 신부, 13대 서석기(徐錫基, 베드로) 신부, 14대 권영균(權寧均, 안토니오) 신부, 15대 김진소(金眞召, 안드레아) 신부, 16대 안복진(安福珍, 요셉) 신부, 17대 김환철(金丸喆, 스테파노) 신부로 역대 주임신부가 이어지면서 계속 전교사업의 발전을 거듭해 오고 있다.
1983년 7월 19일 현재 둔율동본당의 신자수는 남자 795명, 여자 1,121명, 도합 1,916명이며 공소는 개정(開井), 고봉(高峰), 하정리(河亭里), 수산리(壽山里). 어은리(魚隱里) 등이다. 그리고 둔율동본당 시대의 역대 보좌신부 명단을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6대 엄기봉(베드로), 7대 한기호(요한), 8대 김준호(십자가의 바오로), 9대 김순태(요셉), 10대 권이복(분도), 11대 권종복(요한), 12대 이상섭(모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