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이 죄인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바리사이와 세리의 기도-
1. 말씀읽기: 루카 18,9-14
바리사이와 세리의 비유
9 예수님께서는 또 스스로 의롭다고 자신하며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자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다. 한 사람은 바리사이였고 다른 사람은 세리였다.
11 바리사이는 꼿꼿이 서서 혼잣말로 이렇게 기도하였다. ‘오, 하느님! 제가 다른 사람들, 강도짓을 하는 자나 불의를 저지르는 자나 간음을 하는 자와 같지 않고 저 세리와도 같지 않으니,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12 저는 일주일에 두 번 단식하고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바칩니다.’
13 그러나 세리는 멀찍이 서서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 엄두도 내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 말하였다.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1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바리사이가 아니라 이 세리가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 말씀연구
의로운 사람은 누구이고, 죄인은 누구일까? 나 스스로 나를 의롭다고 말한다면 그 자체로 의로운 것은 아닐 것이다. 내가 스스로 죄인이라면 비록 내가 중죄인이라 할지라도 나는 적어도 나의 모습을 아는 사람이니 용서를 청하는 사람이 아닐까? 오늘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의롭다고 목에 힘주고 다니는 사람들에게 두 사람의 모습을 비유로 말씀해 주신다. 하나는 의롭다고 생각하는 바리사이였고, 다른 하는 다른 사람들뿐만 아니라 스스로 죄인임을 인정하는 세리였다.
9 예수님께서는 또 스스로 의롭다고 자신하며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자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의롭다고 자신하며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사람들을 가르치시기 위해서 이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내가 아무리 의로운 사람이라 할지라도 내 스스로 나팔을 불어서는 안 됩니다. 신앙인은 겸손해야 합니다. 겸손이 빠지면 참으로 볼품없는 사람이 되어 버립니다.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자신들이 스스로 의롭다고 자부하면서 살아온 사람들이었습니다. 자신을 돌아볼 줄 모르면 나 또한 그런 사람이 된다는 것을 꼭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다. 한 사람은 바리사이였고 다른 사람은 세리였다.
기도는 하느님과의 대화입니다. 하느님께 자신의 마음을 드리는 것이고, 하느님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는데, 하나는 바리사이였고 또 하나는 세리였습니다. 바리사이는 율법을 철저히 지키는 사람들로서 예수님 시대에 그 수효가 육천 명 가량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세리는 세금을 거두어들이는 사람인데 세리들은 으레 부정축재를 한다는 사회적 통념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역을 담당하며 세금을 징수하는 세관원들은 외국인들과 자주 접촉하기 때문에 직업상 죄인 취급을 받았습니다.
좌우지간 누가 보더라도 한 사람은 의로운 사람처럼 보이고, 다른 한 사람은 죄인처럼 보입니다.
기도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기도란 무엇인가? 기도는 내가 하느님께 마음을 드리는 것이고, 그분의 마음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를 하느님과의 대화요 영혼의 호흡이라고 말합니다. 물 속에서 잠수를 하다가도 숨이 차면 위로 올라와야 합니다. 신선한 공기를 마셔야 만이 다시 물 아래로 내려갈 수 있습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쁜 일상생활이 물 속이라면 나는 숨을 쉬기 위해서 수면 위로 올라와야 합니다. 그렇게 숨을 쉬지 않으면 나는 결국 죽어버릴 것입니다. 즉 하느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라도 기도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신앙인은 하느님과 대화를 해야 합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말씀하고자 하시지만 내가 듣지를 않으면 나는 하느님의 뜻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참된 신앙인은 하느님과 대화를 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즉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1. 왜 기도해야 하는가?
만일 기도하지 않으면 갑자기 숨이 막히고, 배가 고프고….그러면 기도 안하고 못 배길 것입니다. 하지만 기도하지 않아도 표시가 안나니..사실 표시가 안 나는 것은 아닙니다. 제자들이 마귀를 쫓아내지 못하자 조용한 시간에 예수님께 물었지요. 왜 저희들은 마귀를 쫓아내지 못했습니까? 예수님의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밤을 새워서 기도를 하셨습니다. 예수님도 그렇게 기도를 하셨습니다. 즉 하느님 아버지와 밤을 새워서 대화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뜻을 이루신 것입니다.
① 좋으니까 해야 합니다..
좋은 사람과 함께 있으면 좋은 것처럼, 기쁨이 밀려오고, 축복이 밀려오니까 기도해야 합니다.
② 나 자신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즉 나 자신이 유혹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기도해야 합니다.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하여라.”(루가22,40).
⇒ 기도 안하면 대번 표시가 납니다. 강론준비 안하면 대번 표시나지 않습니까? 대충 한 음식 대번 표시 나는 것처럼 말입니다. 힘이 없으면 힘을 쓸 수가 없습니다. 매 순간 선택의 순간에 신앙의 힘이 없으면 유혹에 넘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③ 하느님을 사랑하기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얘기 하는 것이 얼마나 행복입니까?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사랑하는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사랑하는 사람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아내려고 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 하느님께서 무엇을 좋아하시는지를 알아내려고 노력하는 것. 그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늘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찾기 위해서,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서. 나 또한 그렇게 해야 합니다.
④ 형제를 사랑하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나만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세상을 위한 기도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침상에 누워있는 중풍병자를 고쳐 주실 때 예수님께서는 중풍병자의 믿음을 보시고 치유해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를 침상에 뉘어서 데리고 온 사람들의 믿음을 보고서 치유해 주셨습니다.
죽은 라자로를 살리실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라자로는 죽음에서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라자로의 동생들이 예수님께 믿음을 보였습니다.
나를 위해서 기도해야합니다만 더더욱 중요한 것은 내가 형제를 사랑하기 위해서 나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앙의 힘이 없으면 결코 중풍병자를 예수님께로 데려가지 못합니다. 신앙의 힘이 없으면 결코 냉담자를 방문하거나 병자를 방문하여 기도를 해 줄 수 없습니다.
2. 기도의 효과
예수님의 게세마니에서의 기도. 피땀을 흘리시면서 기도하셨습니다. 그래서 상황이 바뀌었나요? 아니지요. 당당히 맞서 싸울 수 있는 힘을 얻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승리하셨지요.
노벨 생리학상 수상자인 알렉시스 카렐은 다음과 같이 발표했습니다.
“기도가 인간의 영혼과 육체에 미치는 영향은 인체 내부의 선을 통해 호르몬과 같은 물질(내분비물)의 분비 작용이 증진되는 것에서 볼 수 있다. 의사인 나는 심한 우울증 환자나 어떠한 의학으로도 도저히 치료 불가능한 환자들이 고요히 기도를 함으로써 자신의 병마와 투쟁하여 승리하는 모습들을 종종 보았다…”
그런데 효과를 보려면 스스로 노력을 기울이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약을 먹어야 만이 약 효과를 보지 않겠습니까?
바리사이의 기도와 같은 엉뚱한 소리가 아니라, 세리의 기도처럼 참된 기도를 바칠 수 있는 내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기도해야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11 바리사이는 꼿꼿이 서서 혼잣말로 이렇게 기도하였다. ‘오, 하느님! 제가 다른 사람들, 강도짓을 하는 자나 불의를 저지르는 자나 간음을 하는 자와 같지 않고 저 세리와도 같지 않으니,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바리사이는 서서 저 혼자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느님, 당신께 감사드립니다. 사실 나는 강탈하는 자나 불의한 자나 간음하는 자 따위의 다른 인간들과는 같지 않을 뿐더러 이 세리와도 같지 않습니다. 나는 한 주간에 두 번이나 단식하고 내 모든 수입의 십분의 일을 바칩니다. 이 사람은 스스로 올바른 사람임을 자처합니다. “꼿꼿이 서서”라는 표현은 그가 얼마나 교만에 차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뒤에서 기도하고 있는 세리를 돌아다보면서 자신은 세리와 같은 죄인이 아님을 강조하는 그의 얼굴에는 교만과 멸시가 가득 차 있습니다.
이것은 기도가 아닙니다. 이것은 하느님께 시위하는 것이고, 하느님께 무례를 범하는 것이고, 자기 자신을 망가뜨리는 것입니다.
12 저는 일주일에 두 번 단식하고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바칩니다.’
그는 자신이 하고 있는 선행들을 나팔 불기 시작했습니다. 매주 두 번 단식, 율법에 따라 가축과 땅의 수확에서 거둔 이익의 십 분지 일을 바치면 되었으나 그는 모든 수입의 십분의 일을 바쳤습니다. 하지만 그가 자랑하는 것은 외적인 것에 불과합니다. 그는 내적 의무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13 그러나 세리는 멀찍이 서서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 엄두도 내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 말하였다.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멸시를 받고 있던 세리. 그는 멀리 서서 감히 얼굴도 쳐들지 못하고 통회의 표시로 가슴을 칩니다. 이는 그의 마음속에 얼마나 값진 겸손을 가지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며, 하느님의 자비가 얼마나 필요한 가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의 입에서는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라는 탄식이 흘러나옵니다. 하느님 앞에서 이 탄식 외에 또 어떤 말이 나올 수 있을까요? 내가 나를 알면 알수록, 내가 내 자신을 돌아보면 돌아볼수록 자신의 가슴을 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나는 어떻게 기도하고 있습니까? 혹시 기도한다면서 죄를 짓고 있지는 않습니까?
1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바리사이가 아니라 이 세리가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하느님의 판단은 사람의 판단과는 다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스스로 올바른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겸손한 기도, 자신을 낮추는 이를 하느님께서는 기쁘게 받아들이십니다. 죄를 뉘우치는 이에게는 용서를 베풀어 주십니다. 아무리 큰 죄의 늪에 빠졌다 하더라도 깊이 뉘우친다면 하느님의 자비와 용서를 체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3. 나눔 및 묵상
1. 바리사이의 기도와 세리의 기도를 생각해 보면서 내가 하느님께 기도드릴 때의 모습을 함께 이야기해 봅시다.
2. 세리는 하느님께 어떤 특별한 것을 청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가슴을 치면서 죄 많은 자신에게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내가 가슴을 칠 일은 무엇이며, 하느님의 자비를 바라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하느님, 이 죄인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바리사이와 세리의 기도-
1. 말씀읽기: 루카 18,9-14
바리사이와 세리의 비유
9 예수님께서는 또 스스로 의롭다고 자신하며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자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다. 한 사람은 바리사이였고 다른 사람은 세리였다.
11 바리사이는 꼿꼿이 서서 혼잣말로 이렇게 기도하였다. ‘오, 하느님! 제가 다른 사람들, 강도짓을 하는 자나 불의를 저지르는 자나 간음을 하는 자와 같지 않고 저 세리와도 같지 않으니,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12 저는 일주일에 두 번 단식하고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바칩니다.’
13 그러나 세리는 멀찍이 서서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 엄두도 내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 말하였다.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1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바리사이가 아니라 이 세리가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 말씀연구
의로운 사람은 누구이고, 죄인은 누구일까? 나 스스로 나를 의롭다고 말한다면 그 자체로 의로운 것은 아닐 것이다. 내가 스스로 죄인이라면 비록 내가 중죄인이라 할지라도 나는 적어도 나의 모습을 아는 사람이니 용서를 청하는 사람이 아닐까? 오늘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의롭다고 목에 힘주고 다니는 사람들에게 두 사람의 모습을 비유로 말씀해 주신다. 하나는 의롭다고 생각하는 바리사이였고, 다른 하는 다른 사람들뿐만 아니라 스스로 죄인임을 인정하는 세리였다.
9 예수님께서는 또 스스로 의롭다고 자신하며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자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의롭다고 자신하며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사람들을 가르치시기 위해서 이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내가 아무리 의로운 사람이라 할지라도 내 스스로 나팔을 불어서는 안 됩니다. 신앙인은 겸손해야 합니다. 겸손이 빠지면 참으로 볼품없는 사람이 되어 버립니다.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자신들이 스스로 의롭다고 자부하면서 살아온 사람들이었습니다. 자신을 돌아볼 줄 모르면 나 또한 그런 사람이 된다는 것을 꼭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다. 한 사람은 바리사이였고 다른 사람은 세리였다.
기도는 하느님과의 대화입니다. 하느님께 자신의 마음을 드리는 것이고, 하느님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는데, 하나는 바리사이였고 또 하나는 세리였습니다. 바리사이는 율법을 철저히 지키는 사람들로서 예수님 시대에 그 수효가 육천 명 가량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세리는 세금을 거두어들이는 사람인데 세리들은 으레 부정축재를 한다는 사회적 통념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역을 담당하며 세금을 징수하는 세관원들은 외국인들과 자주 접촉하기 때문에 직업상 죄인 취급을 받았습니다.
좌우지간 누가 보더라도 한 사람은 의로운 사람처럼 보이고, 다른 한 사람은 죄인처럼 보입니다.
기도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기도란 무엇인가? 기도는 내가 하느님께 마음을 드리는 것이고, 그분의 마음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를 하느님과의 대화요 영혼의 호흡이라고 말합니다. 물 속에서 잠수를 하다가도 숨이 차면 위로 올라와야 합니다. 신선한 공기를 마셔야 만이 다시 물 아래로 내려갈 수 있습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쁜 일상생활이 물 속이라면 나는 숨을 쉬기 위해서 수면 위로 올라와야 합니다. 그렇게 숨을 쉬지 않으면 나는 결국 죽어버릴 것입니다. 즉 하느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라도 기도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신앙인은 하느님과 대화를 해야 합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말씀하고자 하시지만 내가 듣지를 않으면 나는 하느님의 뜻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참된 신앙인은 하느님과 대화를 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즉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1. 왜 기도해야 하는가?
만일 기도하지 않으면 갑자기 숨이 막히고, 배가 고프고….그러면 기도 안하고 못 배길 것입니다. 하지만 기도하지 않아도 표시가 안나니..사실 표시가 안 나는 것은 아닙니다. 제자들이 마귀를 쫓아내지 못하자 조용한 시간에 예수님께 물었지요. 왜 저희들은 마귀를 쫓아내지 못했습니까? 예수님의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밤을 새워서 기도를 하셨습니다. 예수님도 그렇게 기도를 하셨습니다. 즉 하느님 아버지와 밤을 새워서 대화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뜻을 이루신 것입니다.
① 좋으니까 해야 합니다..
좋은 사람과 함께 있으면 좋은 것처럼, 기쁨이 밀려오고, 축복이 밀려오니까 기도해야 합니다.
② 나 자신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즉 나 자신이 유혹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기도해야 합니다.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하여라.”(루가22,40).
⇒ 기도 안하면 대번 표시가 납니다. 강론준비 안하면 대번 표시나지 않습니까? 대충 한 음식 대번 표시 나는 것처럼 말입니다. 힘이 없으면 힘을 쓸 수가 없습니다. 매 순간 선택의 순간에 신앙의 힘이 없으면 유혹에 넘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③ 하느님을 사랑하기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얘기 하는 것이 얼마나 행복입니까?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사랑하는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사랑하는 사람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아내려고 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 하느님께서 무엇을 좋아하시는지를 알아내려고 노력하는 것. 그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늘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찾기 위해서,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서. 나 또한 그렇게 해야 합니다.
④ 형제를 사랑하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나만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세상을 위한 기도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침상에 누워있는 중풍병자를 고쳐 주실 때 예수님께서는 중풍병자의 믿음을 보시고 치유해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를 침상에 뉘어서 데리고 온 사람들의 믿음을 보고서 치유해 주셨습니다.
죽은 라자로를 살리실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라자로는 죽음에서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라자로의 동생들이 예수님께 믿음을 보였습니다.
나를 위해서 기도해야합니다만 더더욱 중요한 것은 내가 형제를 사랑하기 위해서 나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앙의 힘이 없으면 결코 중풍병자를 예수님께로 데려가지 못합니다. 신앙의 힘이 없으면 결코 냉담자를 방문하거나 병자를 방문하여 기도를 해 줄 수 없습니다.
2. 기도의 효과
예수님의 게세마니에서의 기도. 피땀을 흘리시면서 기도하셨습니다. 그래서 상황이 바뀌었나요? 아니지요. 당당히 맞서 싸울 수 있는 힘을 얻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승리하셨지요.
노벨 생리학상 수상자인 알렉시스 카렐은 다음과 같이 발표했습니다.
“기도가 인간의 영혼과 육체에 미치는 영향은 인체 내부의 선을 통해 호르몬과 같은 물질(내분비물)의 분비 작용이 증진되는 것에서 볼 수 있다. 의사인 나는 심한 우울증 환자나 어떠한 의학으로도 도저히 치료 불가능한 환자들이 고요히 기도를 함으로써 자신의 병마와 투쟁하여 승리하는 모습들을 종종 보았다…”
그런데 효과를 보려면 스스로 노력을 기울이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약을 먹어야 만이 약 효과를 보지 않겠습니까?
바리사이의 기도와 같은 엉뚱한 소리가 아니라, 세리의 기도처럼 참된 기도를 바칠 수 있는 내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기도해야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11 바리사이는 꼿꼿이 서서 혼잣말로 이렇게 기도하였다. ‘오, 하느님! 제가 다른 사람들, 강도짓을 하는 자나 불의를 저지르는 자나 간음을 하는 자와 같지 않고 저 세리와도 같지 않으니,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바리사이는 서서 저 혼자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느님, 당신께 감사드립니다. 사실 나는 강탈하는 자나 불의한 자나 간음하는 자 따위의 다른 인간들과는 같지 않을 뿐더러 이 세리와도 같지 않습니다. 나는 한 주간에 두 번이나 단식하고 내 모든 수입의 십분의 일을 바칩니다. 이 사람은 스스로 올바른 사람임을 자처합니다. “꼿꼿이 서서”라는 표현은 그가 얼마나 교만에 차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뒤에서 기도하고 있는 세리를 돌아다보면서 자신은 세리와 같은 죄인이 아님을 강조하는 그의 얼굴에는 교만과 멸시가 가득 차 있습니다.
이것은 기도가 아닙니다. 이것은 하느님께 시위하는 것이고, 하느님께 무례를 범하는 것이고, 자기 자신을 망가뜨리는 것입니다.
12 저는 일주일에 두 번 단식하고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바칩니다.’
그는 자신이 하고 있는 선행들을 나팔 불기 시작했습니다. 매주 두 번 단식, 율법에 따라 가축과 땅의 수확에서 거둔 이익의 십 분지 일을 바치면 되었으나 그는 모든 수입의 십분의 일을 바쳤습니다. 하지만 그가 자랑하는 것은 외적인 것에 불과합니다. 그는 내적 의무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13 그러나 세리는 멀찍이 서서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 엄두도 내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 말하였다.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멸시를 받고 있던 세리. 그는 멀리 서서 감히 얼굴도 쳐들지 못하고 통회의 표시로 가슴을 칩니다. 이는 그의 마음속에 얼마나 값진 겸손을 가지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며, 하느님의 자비가 얼마나 필요한 가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의 입에서는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라는 탄식이 흘러나옵니다. 하느님 앞에서 이 탄식 외에 또 어떤 말이 나올 수 있을까요? 내가 나를 알면 알수록, 내가 내 자신을 돌아보면 돌아볼수록 자신의 가슴을 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나는 어떻게 기도하고 있습니까? 혹시 기도한다면서 죄를 짓고 있지는 않습니까?
1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바리사이가 아니라 이 세리가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하느님의 판단은 사람의 판단과는 다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스스로 올바른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겸손한 기도, 자신을 낮추는 이를 하느님께서는 기쁘게 받아들이십니다. 죄를 뉘우치는 이에게는 용서를 베풀어 주십니다. 아무리 큰 죄의 늪에 빠졌다 하더라도 깊이 뉘우친다면 하느님의 자비와 용서를 체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3. 나눔 및 묵상
1. 바리사이의 기도와 세리의 기도를 생각해 보면서 내가 하느님께 기도드릴 때의 모습을 함께 이야기해 봅시다.
2. 세리는 하느님께 어떤 특별한 것을 청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가슴을 치면서 죄 많은 자신에게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내가 가슴을 칠 일은 무엇이며, 하느님의 자비를 바라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