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뿌리인 믿음
1. 말씀읽기: 1요한5,1-12
1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사람은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를 사랑하는 사람은 모두 그 자녀도 사랑합니다. 2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계명을 실천하면, 그로써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들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3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바로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계명은 힘겹지 않습니다. 4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모두 세상을 이기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이긴 그 승리는 바로 우리 믿음의 승리입니다.
5 세상을 이기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까? 6 그분께서 바로 물과 피를 통하여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물만이 아니라 물과 피로써 오신 것입니다. 이것을 증언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곧 진리이십니다. 7 그래서 증언하는 것이 셋입니다.
8 성령과 물과 피인데, 이 셋은 하나로 모아집니다. 9 우리가 사람들의 증언을 받아들인다면, 하느님의 증언은 더욱 중대하지 않습니까? 그것이 하느님의 증언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에 관하여 친히 증언해 주셨습니다.
10 하느님의 아드님을 믿는 사람은 이 증언을 자신 안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을 믿지 않는 자는 하느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에 관하여 하신 증언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11 그 증언은 이렇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고 그 생명이 당신 아드님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12 아드님을 모시고 있는 사람은 그 생명을 지니고 있고, 하느님의 아드님을 모시고 있지 않는 사람은 그 생명을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2. 말씀연구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며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사랑의 계명을 실천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예수님을 굳게 믿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을 굳게 믿고 사랑의 계명을 실천할 때, 예수님께서는 나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십니다. 예수님 안에서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믿음 안에서 사랑을 실천하며, 주님 안에서 참된 생명을 누리는 내가 되어야 합니다.
1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사람은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를 사랑하는 사람은 모두 그 자녀도 사랑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이들은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것을 굳게 믿으며(천주존재), 하느님께서는 한 분이시지만 세 위로 계시며(삼위일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몸소 인간이 되셔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인간을 구원하셨으며(강생구속), 하느님께서는 착한 일을 하는 이들에게는 상을 주시고, 악한 일을 하는 이들에게는 벌을 주신다는 것(상선벌악)을 굳게 믿고 세례를 받아 하느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납니다.
세례성사를 통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된 이들은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풍요로운 은총을 받습니다. 그렇게 사랑받는 하느님의 자녀들은 서로를 사랑합니다. 왜냐하면 내 옆에 있는 모든 이들이 하느님의 자녀이기 때문이고, 하느님께서는 서로 사랑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를 사랑하는 것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며,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므로 신앙인들은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2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계명을 실천하면, 그로써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들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3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바로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계명은 힘겹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최후의 만찬 때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면서 사랑의 계명을 주셨습니다. “34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요한13,34-35)
그리고 하느님 백성이 지켜야 할 가장 큰 계명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둘째 계명은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계명을 실천하는 삶이고, 하느님의 자녀로서 살아가는 삶입니다.
또한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은 계명을 지키는 것을 힘들어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힘든 것 이상으로 주님께서 기쁨을 주시고, 계명을 지키는 것이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랑하기에 더 큰 힘을 얻고, 그 큰 힘을 얻기에 더 많이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4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모두 세상을 이기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이긴 그 승리는 바로 우리 믿음의 승리입니다. 5 세상을 이기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까?
세례성사로 하느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난 이들은 거짓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습니다. 유혹은 그저 유혹일 뿐임을 아담과 하와의 범죄에서 분명하게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광야에서 40일간 단식하시며 유혹을 당하신 예수님께서 유혹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알려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헛된 유혹이나 그릇된 신앙에 넘어가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참된 그리스도이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고백하며 거짓 목자를 따라가지 않습니다. 그렇게 굳건하게 믿음을 지키며 하느님을 사랑하고 형제자매들을 사랑합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자녀들은 예수님 안에서 올바른 믿음을 가지고 사랑의 계명을 실천해 나아가며, 유혹과 맞서 싸워 승리합니다.
6 그분께서 바로 물과 피를 통하여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물만이 아니라 물과 피로써 오신 것입니다. 이것을 증언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곧 진리이십니다.
예수님께서 “물과 피를 통하여 세상에 오셨다.”는 말씀은 알아듣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5절의 “세상을 이긴 사람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는 사람이다.”라는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누구이신지를 밝히고자 한다는 점에서 접근을 해야 합니다.
먼저 당시 이단자들은 “예수님께서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받으실 때 영광스러운 천상 그리스도께서 내려오시어 인간 예수님과 합쳐졌고,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음을 당하실 때, 그리스도께서 인간 예수님을 떠났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며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몸소 인간이 되셨습니다. 인간의 죄를 씻어 주시고, 구원을 주시기 위해서 몸소 인간이 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생활을 준비하시면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이유는 물과 성령으로 새롭게 태어나지 않으면 결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물을 축성하시고, 약속하신 대로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피는 몸소 희생제물이 되시어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흘리신 피 입니다. 그러므로 물과 피를 통하여 세상에 오셨다는 것은 죄를 씻어 주는 세례의 물과 구원을 주시는 희생제사의 피로서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7 그래서 증언하는 것이 셋입니다. 8 성령과 물과 피인데, 이 셋은 하나로 모아집니다. 1)
“증언”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며 그리스도이심에 대한 증언입니다. 다. “세상을 이긴 사람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는 사람이다.”라는 말씀은 성령의 인도를 받은 사람을 가리킵니다. 즉, “그래서 여러분에게 일러둡니다마는 하느님의 성령을 받아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예수는 저주받아라.\” 하고 욕할 수 없고 또 성령의 인도를 받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는 주님이시다.\” 하고 고백할 수 없습니다.”(1코린토12,3) 라는 말씀처럼, 성령의 인도를 받지 않고서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그리스도로 고백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예수님께서는 누구이신지는 성령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명확하게 고백하므로, “성령과 물과 피”가 하나로 모아진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요한 사도가 “성령과 물과 피의 증언”을 이야기 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증언하기 위해서입니다. 당시 유다교 법정에서는 적어도 증인 2명을 불러서 그들의 증언이 일치하는지에 따라서 재판을 하였는데, 이렇게 “성령과 물과 피의 증언”이 일치하므로, 예수님께서는 분명하게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으라는 것입니다.
9 우리가 사람들의 증언을 받아들인다면, 하느님의 증언은 더욱 중대하지 않습니까? 그것이 하느님의 증언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에 관하여 친히 증언해 주셨습니다.
재판에서 사람들이 증언한 것을 바탕으로 재판을 한다면, 그래서 증언한 사람들의 말을 믿는다면 당연히 하느님의 증언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수님께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말씀을 세례 때와 다볼산에서의 거룩한 변모 때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10 하느님의 아드님을 믿는 사람은 이 증언을 자신 안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을 믿지 않는 자는 하느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에 관하여 하신 증언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이심을 알고 있습니다. 요한사도가 이렇게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며 그리스도이심을 증명하려고 하는 이유는 당시 신앙인들을 현혹하여 그릇된 믿음으로 이끄는 무리들2) 때문입니다.
당시 영지주의자들은 하느님을 안다고(1요한2,4) 자처하였고, 하느님을 뵙는다고(1요한3,6;3요한11),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며 산다고(1요한2,3) 자처하였습니다. 또 빛 속에 있다고 자처(1요한2,9)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정하고(1요한2,22),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부정하였습니다(1요한4,15;2요한7). 또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의 신비를 부정하면서(1요한4,2; 2요한7) 예수님께서 물과 피를 통하여 이 세상에 오셨음을 부인하였습니다. 또한 자기들은 죄가 없다고 주장하면서(1요한1,8.10), 사랑의 계명을 실천하는 일에 전혀 마음을 쓰지 않았습니다(1요한2,9).3)
그런데 요한사도의 목적은 이 이단 자체와 논쟁을 벌이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신자들에게 영지주의자들을 조심하라고 가르치면서, 믿음을 통하여 하느님과 참된 친교를 이루는 이들이 바로 신앙인들임을 알려주고자 하는 것입니다.4)
11 그 증언은 이렇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고 그 생명이 당신 아드님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12 아드님을 모시고 있는 사람은 그 생명을 지니고 있고, 하느님의 아드님을 모시고 있지 않는 사람은 그 생명을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예수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는 이들은 주님께서 주시는 그 생명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믿음은 결코 헛된 믿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믿음을 통하여 하느님 안에서 새롭게 태어났기에, 사랑의 계명을 실천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로부터 받은 생명을 지니고 있다는 증거는 사랑의 실천을 통해서 드러나는 것입니다.
믿음을 가진 이들은 사랑을 실천하고, 생명의 양식인 성체를 받아 모시며, 이미 시작된 영원한 생명을 살아갑니다. 믿음 안에서 성령께 온전히 자신을 맡기며,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삶은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풍성하게 드러납니다. 만일 사랑의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다면 온전한 믿음을 고백하는 것이 아니며, 온전한 믿음을 고백하지 않는다면 예수님을 주님으로 오롯하게 고백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오롯하게 고백하지 못한다면 영원한 생명을 차지하기는 힘들어 집니다. 그러므로 믿음 안에서 사랑의 열매를 풍성하게 맺어야 합니다.
3. 나눔 및 묵상
① 사랑하는 사람은 하느님을 압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사랑하고 있습니까? 어떤 사랑의 열매를 맺고 있습니까?
② 예수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삶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내 주변의 형제자매들은 어떻게 예수님을 모시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③ 내가 실천하려 하지만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사랑은 어떤 것입니까? 무엇이 그 사랑을 막고 있습니까?
4. 말씀으로 기도하기

사랑의 뿌리인 믿음
1. 말씀읽기: 1요한5,1-12
1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사람은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를 사랑하는 사람은 모두 그 자녀도 사랑합니다. 2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계명을 실천하면, 그로써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들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3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바로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계명은 힘겹지 않습니다. 4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모두 세상을 이기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이긴 그 승리는 바로 우리 믿음의 승리입니다.
5 세상을 이기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까? 6 그분께서 바로 물과 피를 통하여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물만이 아니라 물과 피로써 오신 것입니다. 이것을 증언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곧 진리이십니다. 7 그래서 증언하는 것이 셋입니다.
8 성령과 물과 피인데, 이 셋은 하나로 모아집니다. 9 우리가 사람들의 증언을 받아들인다면, 하느님의 증언은 더욱 중대하지 않습니까? 그것이 하느님의 증언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에 관하여 친히 증언해 주셨습니다.
10 하느님의 아드님을 믿는 사람은 이 증언을 자신 안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을 믿지 않는 자는 하느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에 관하여 하신 증언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11 그 증언은 이렇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고 그 생명이 당신 아드님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12 아드님을 모시고 있는 사람은 그 생명을 지니고 있고, 하느님의 아드님을 모시고 있지 않는 사람은 그 생명을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2. 말씀연구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며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사랑의 계명을 실천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예수님을 굳게 믿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을 굳게 믿고 사랑의 계명을 실천할 때, 예수님께서는 나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십니다. 예수님 안에서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믿음 안에서 사랑을 실천하며, 주님 안에서 참된 생명을 누리는 내가 되어야 합니다.
1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사람은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를 사랑하는 사람은 모두 그 자녀도 사랑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이들은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것을 굳게 믿으며(천주존재), 하느님께서는 한 분이시지만 세 위로 계시며(삼위일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몸소 인간이 되셔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인간을 구원하셨으며(강생구속), 하느님께서는 착한 일을 하는 이들에게는 상을 주시고, 악한 일을 하는 이들에게는 벌을 주신다는 것(상선벌악)을 굳게 믿고 세례를 받아 하느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납니다.
세례성사를 통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된 이들은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풍요로운 은총을 받습니다. 그렇게 사랑받는 하느님의 자녀들은 서로를 사랑합니다. 왜냐하면 내 옆에 있는 모든 이들이 하느님의 자녀이기 때문이고, 하느님께서는 서로 사랑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를 사랑하는 것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며,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므로 신앙인들은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2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계명을 실천하면, 그로써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들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3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바로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계명은 힘겹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최후의 만찬 때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면서 사랑의 계명을 주셨습니다. “34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요한13,34-35)
그리고 하느님 백성이 지켜야 할 가장 큰 계명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둘째 계명은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계명을 실천하는 삶이고, 하느님의 자녀로서 살아가는 삶입니다.
또한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은 계명을 지키는 것을 힘들어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힘든 것 이상으로 주님께서 기쁨을 주시고, 계명을 지키는 것이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랑하기에 더 큰 힘을 얻고, 그 큰 힘을 얻기에 더 많이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4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모두 세상을 이기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이긴 그 승리는 바로 우리 믿음의 승리입니다. 5 세상을 이기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까?
세례성사로 하느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난 이들은 거짓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습니다. 유혹은 그저 유혹일 뿐임을 아담과 하와의 범죄에서 분명하게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광야에서 40일간 단식하시며 유혹을 당하신 예수님께서 유혹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알려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헛된 유혹이나 그릇된 신앙에 넘어가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참된 그리스도이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고백하며 거짓 목자를 따라가지 않습니다. 그렇게 굳건하게 믿음을 지키며 하느님을 사랑하고 형제자매들을 사랑합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자녀들은 예수님 안에서 올바른 믿음을 가지고 사랑의 계명을 실천해 나아가며, 유혹과 맞서 싸워 승리합니다.
6 그분께서 바로 물과 피를 통하여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물만이 아니라 물과 피로써 오신 것입니다. 이것을 증언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곧 진리이십니다.
예수님께서 “물과 피를 통하여 세상에 오셨다.”는 말씀은 알아듣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5절의 “세상을 이긴 사람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는 사람이다.”라는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누구이신지를 밝히고자 한다는 점에서 접근을 해야 합니다.
먼저 당시 이단자들은 “예수님께서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받으실 때 영광스러운 천상 그리스도께서 내려오시어 인간 예수님과 합쳐졌고,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음을 당하실 때, 그리스도께서 인간 예수님을 떠났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며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몸소 인간이 되셨습니다. 인간의 죄를 씻어 주시고, 구원을 주시기 위해서 몸소 인간이 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생활을 준비하시면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이유는 물과 성령으로 새롭게 태어나지 않으면 결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물을 축성하시고, 약속하신 대로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피는 몸소 희생제물이 되시어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흘리신 피 입니다. 그러므로 물과 피를 통하여 세상에 오셨다는 것은 죄를 씻어 주는 세례의 물과 구원을 주시는 희생제사의 피로서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7 그래서 증언하는 것이 셋입니다. 8 성령과 물과 피인데, 이 셋은 하나로 모아집니다. 1)
“증언”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며 그리스도이심에 대한 증언입니다. 다. “세상을 이긴 사람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는 사람이다.”라는 말씀은 성령의 인도를 받은 사람을 가리킵니다. 즉, “그래서 여러분에게 일러둡니다마는 하느님의 성령을 받아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예수는 저주받아라.” 하고 욕할 수 없고 또 성령의 인도를 받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는 주님이시다.” 하고 고백할 수 없습니다.”(1코린토12,3) 라는 말씀처럼, 성령의 인도를 받지 않고서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그리스도로 고백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예수님께서는 누구이신지는 성령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명확하게 고백하므로, “성령과 물과 피”가 하나로 모아진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요한 사도가 “성령과 물과 피의 증언”을 이야기 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증언하기 위해서입니다. 당시 유다교 법정에서는 적어도 증인 2명을 불러서 그들의 증언이 일치하는지에 따라서 재판을 하였는데, 이렇게 “성령과 물과 피의 증언”이 일치하므로, 예수님께서는 분명하게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으라는 것입니다.
9 우리가 사람들의 증언을 받아들인다면, 하느님의 증언은 더욱 중대하지 않습니까? 그것이 하느님의 증언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에 관하여 친히 증언해 주셨습니다.
재판에서 사람들이 증언한 것을 바탕으로 재판을 한다면, 그래서 증언한 사람들의 말을 믿는다면 당연히 하느님의 증언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수님께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말씀을 세례 때와 다볼산에서의 거룩한 변모 때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10 하느님의 아드님을 믿는 사람은 이 증언을 자신 안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을 믿지 않는 자는 하느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에 관하여 하신 증언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이심을 알고 있습니다. 요한사도가 이렇게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며 그리스도이심을 증명하려고 하는 이유는 당시 신앙인들을 현혹하여 그릇된 믿음으로 이끄는 무리들2) 때문입니다.
당시 영지주의자들은 하느님을 안다고(1요한2,4) 자처하였고, 하느님을 뵙는다고(1요한3,6;3요한11),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며 산다고(1요한2,3) 자처하였습니다. 또 빛 속에 있다고 자처(1요한2,9)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정하고(1요한2,22),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부정하였습니다(1요한4,15;2요한7). 또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의 신비를 부정하면서(1요한4,2; 2요한7) 예수님께서 물과 피를 통하여 이 세상에 오셨음을 부인하였습니다. 또한 자기들은 죄가 없다고 주장하면서(1요한1,8.10), 사랑의 계명을 실천하는 일에 전혀 마음을 쓰지 않았습니다(1요한2,9).3)
그런데 요한사도의 목적은 이 이단 자체와 논쟁을 벌이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신자들에게 영지주의자들을 조심하라고 가르치면서, 믿음을 통하여 하느님과 참된 친교를 이루는 이들이 바로 신앙인들임을 알려주고자 하는 것입니다.4)
11 그 증언은 이렇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고 그 생명이 당신 아드님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12 아드님을 모시고 있는 사람은 그 생명을 지니고 있고, 하느님의 아드님을 모시고 있지 않는 사람은 그 생명을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예수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는 이들은 주님께서 주시는 그 생명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믿음은 결코 헛된 믿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믿음을 통하여 하느님 안에서 새롭게 태어났기에, 사랑의 계명을 실천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로부터 받은 생명을 지니고 있다는 증거는 사랑의 실천을 통해서 드러나는 것입니다.
믿음을 가진 이들은 사랑을 실천하고, 생명의 양식인 성체를 받아 모시며, 이미 시작된 영원한 생명을 살아갑니다. 믿음 안에서 성령께 온전히 자신을 맡기며,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삶은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풍성하게 드러납니다. 만일 사랑의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다면 온전한 믿음을 고백하는 것이 아니며, 온전한 믿음을 고백하지 않는다면 예수님을 주님으로 오롯하게 고백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오롯하게 고백하지 못한다면 영원한 생명을 차지하기는 힘들어 집니다. 그러므로 믿음 안에서 사랑의 열매를 풍성하게 맺어야 합니다.
3. 나눔 및 묵상
① 사랑하는 사람은 하느님을 압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사랑하고 있습니까? 어떤 사랑의 열매를 맺고 있습니까?
② 예수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삶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내 주변의 형제자매들은 어떻게 예수님을 모시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③ 내가 실천하려 하지만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사랑은 어떤 것입니까? 무엇이 그 사랑을 막고 있습니까?
4. 말씀으로 기도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