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계명 준수
1. 말씀읽기: 1요한2,1-11
1 나의 자녀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이 글을 쓰는 까닭은 여러분이 죄를 짓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누가 죄를 짓더라도 하느님 앞에서 우리를 변호해 주시는 분이 계십니다.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2 그분은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이십니다. 우리 죄만이 아니라 온 세상의 죄를 위한 속죄 제물이십니다.
3 우리가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면, 그것으로 우리가 그분을 알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4 “나는 그분을 안다.” 하면서 그분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자는 거짓말쟁이고, 그에게는 진리가 없습니다.
5 그러나 누구든지 그분의 말씀을 지키면, 그 사람 안에서는 참으로 하느님 사랑이 완성됩니다. 그것으로 우리가 그분 안에 있음을 알게 됩니다.
6 그분 안에 머무른다고 말하는 사람은 자기도 그리스도께서 살아가신 것처럼 그렇게 살아가야 합니다.
7 사랑하는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써 보내는 것은 새 계명이 아니라, 여러분이 처음부터 지녀 온 옛 계명입니다. 이 옛 계명은 여러분이 들은 그 말씀입니다.
8 그러면서도 내가 여러분에게 써 보내는 것은 새 계명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도 또 여러분에게도 참된 사실입니다. 어둠이 지나가고 이미 참빛이 비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9 빛 속에 있다고 말하면서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아직도 어둠 속에 있는 자입니다.
10 자기 형제를 사랑하는 사람은 빛 속에 머무르고, 그에게는 걸림돌이 없습니다.
11 그러나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둠 속에 있습니다. 그는 어둠 속에서 살아가면서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 모릅니다. 어둠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2. 말씀연구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주님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주님의 계명을 지키고,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며, 삶으로 주님의 사랑 안에 머물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사랑은 말이 아니라 삶이라는 것을 삶으로 보여줍니다. 나는 주님의 사랑 안에 머물고 있습니까?
1 나의 자녀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이 글을 쓰는 까닭은 여러분이 죄를 짓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누가 죄를 짓더라도 하느님 앞에서 우리를 변호해 주시는 분이 계십니다.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신자들은 사제를 “신부님”이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영신의 아버지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신자들은 사제들의 영적인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자녀 여러분”이라고 하는 것은 신자들에 대한 각별한 사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내가 여러분을 사랑합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 때문에 이 편지를 쓰는 것이기도 합니다.
사도 요한은 이 글을 쓰는 까닭이 “여러분이 죄를 짓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라고 밝힙니다. 죄는 하느님께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것이고, 죄를 통하여 구원에서 멀어지려고 하기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드리신 희생제사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죄를 짓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구원을 위해서 변호해 주시는 분이 계시는데,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누가 죄를 지으면 일곱 번씩 일흔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신 예수님께서 나에게 기회를 주고 계십니다. 사랑이 넘치는 훈계를 하시어 나를 구원에로 이끄시는 분. 그분이 바로 나의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2 그분은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이십니다. 우리 죄만이 아니라 온 세상의 죄를 위한 속죄 제물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온 세상의 죄를 씻어 주시기 위해 몸소 속죄 제물이 되셨습니다. 그렇게 죄의 사슬에서 우리를 풀어 주셨고, 닫혔던 하늘나라의 문을 활짝 열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가지고 주님께로 나아오는 모든 이들에게 구원을 주십니다.
그런데 내가 다시 죄를 지으면 주님께서 베푸신 사랑(희생제사)에 배신으로 보답하는 것이며, 주님께 등을 돌리는 것이며,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제자들은 주님의 백성들이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도록 권고하고, 돌보며, 구원에로 인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백성들은 주님의 말씀을 전하는 이들의 가르침에 온전히 따라야 합니다.
3 우리가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면, 그것으로 우리가 그분을 알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4 “나는 그분을 안다.” 하면서 그분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자는 거짓말쟁이고, 그에게는 진리가 없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하느님의 계명을 지킵니다.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계명을 지킵니다. 주님께 대한 사랑 때문에 죄에서 멀리 떨어지려 하고, 주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것이고, 믿는 이들이 당연히 해야 할 것임을 알기에 주님의 계명 안에서 참된 자유를 누리며 기쁘게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삶은 다른 이들에게 “아하! 저들은 주님을 알고 있구나!”라는 메시지를 주며, 주님을 따르는 삶을 살아가기로 결심하게 만들어 줍니다.
그러나 주님을 모르는 이들은 계명을 지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계명을 지키지 않는 이들은 주님의 사랑을 모르는 이들이고,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이들입니다. 만일 주님을 사랑한다면 주님의 사랑 안에서 살아갈 것이고, 계명을 기쁘게 지켰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며, 그리스도이심을 알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면서 계명을 지키지 않는 이가 있다면 그는 거짓말쟁이이고, 그 사람 안에는 성령께서 머무실 자리가 없습니다.
“주님을 안다.”고 말한다면 당연히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물고 있는 것이며, 마땅히 주님의 계명을 지키고, 주님께서 원하시는 사랑을 실천합니다.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말씀대로 이웃을 참되게 사랑합니다. 그러나 이웃을 사랑하지 않고, 주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다면 그는 주님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5 그러나 누구든지 그분의 말씀을 지키면, 그 사람 안에서는 참으로 하느님 사랑이 완성됩니다. 그것으로 우리가 그분 안에 있음을 알게 됩니다. 6 그분 안에 머무른다고 말하는 사람은 자기도 그리스도께서 살아가신 것처럼 그렇게 살아가야 합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완성된다.”는 것은 하느님의 사랑에 온전히 응답하며, 그 사랑을 실천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의 말씀을 지키면”이라는 말이 앞에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크신 사랑을 베푸셨습니다. 그 사랑을 받은 인간은 하느님의 크신 사랑에 응답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응답은 계명을 지키고,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며, 말씀으로 이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 뵙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갈 때 하느님께서는 나를 보고 기뻐하시고, 나도 하느님 안에서 기뻐합니다. 그렇게 살아갈 때,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사시는 것입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것이며, 그렇게 살아갈 때, 주님 안에서 살아간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 안에서 살아감을 느끼게 되고, 보게 되고, 알게 됩니다.
주님의 사랑 안에 머무는 이들은 사랑하면서 살아갑니다. 자비를 청하는 이들을 외면하지 않고, 용서를 청하는 이들을 기쁘게 용서하며, 모욕을 모욕으로 갚지 않고, 폭력을 폭력으로 갚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그렇게 사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사랑하기에 주님의 삶을 따르려 하고, 주님을 사랑하기에 주님을 위해서 겪게 되는 모든 어려움을 기쁘게 이겨내며, 더 나아가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1)
나 또한 그런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주님께서 가신 길을 알고 있고, 주님의 사랑을 알고 있다면 그 사랑에 보답해야 하며, 주님께서 가신 길,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길을 걸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알고 있는 것을 삶으로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고, 입으로만 주님의 길을 걸어서는 안 되고, 입으로만 주님을 사랑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2)
7 사랑하는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써 보내는 것은 새 계명이 아니라, 여러분이 처음부터 지녀 온 옛 계명입니다. 이 옛 계명은 여러분이 들은 그 말씀입니다. 8 그러면서도 내가 여러분에게 써 보내는 것은 새 계명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도 또 여러분에게도 참된 사실입니다. 어둠이 지나가고 이미 참빛이 비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 요한은 “내가 여러분에게 써 보내는 것은 새 계명이 아니라, 여러분이 처음부터 지녀 온 옛 계명입니다.”라고 말하면서 “그러면서도 내가 여러분에게 써 보내는 것은 새 계명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최후의 만찬 때 새로운 계명을 주셨습니다. 그 계명은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3) 이 계명은 사도들이 신자들에게 복음을 선포할 때부터, 즉 처음부터 선포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공동체가 형성된 이 상황에서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옛 계명”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사랑의 계명을 지킬 것을 명령하셨을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 놓으시면서 그 사랑의 계명을 몸소 보여주셨기에, 그리고 지금도 그 사랑을 주시고 계시기에 “새 계명”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언제나 나를 비추고 계십니다. 주님의 사랑은 나의 온 생애를 비추어 주셨고, 오늘도 비추어 주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그 사랑은 늘 새롭게 나에게 쏟아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사랑의 빛 속에서 나 또한 사랑의 빛을 내 옆에 있는 형제자매들에게 비추어야 합니다.
9 빛 속에 있다고 말하면서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아직도 어둠 속에 있는 자입니다. 10 자기 형제를 사랑하는 사람은 빛 속에 머무르고, 그에게는 걸림돌이 없습니다. 11 그러나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둠 속에 있습니다. 그는 어둠 속에서 살아가면서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 모릅니다. 어둠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두 자매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리아 자매는 데레사 자매를 무척 싫어했습니다. 그렇다보니 데레사 자매도 마리아 자매를 무척 싫어했습니다. 서로 주는 것 없이 미웠고, 싸워보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늘 서로 등을 돌렸습니다. 어떤 이들은 둘 사이를 오가며 서로의 감정을 부추겨 점점 더 멀어지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두 자매는 자신들 사이를 오가며 상대방의 단점을 이야기 해주는 사람을 마치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처럼 대했습니다. 그렇게 둘은 화해하지 않고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고해성사를 수없이 보았지만 결국 마음을 열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미사에 참례하고 성체를 모셨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미움이 자신을 죽이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커다란 항아리에 아무리 시원한 물이 가득 들어 있어도, 작은 구멍이 하나 있으면 그 구멍으로 모든 물이 빠져 나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자신이 메말라가는 것을 느끼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깨달은 마리아 자매는 “빛 속에 있다고 말하면서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아직도 어둠 속에 있는 자입니다.”(1요한2,9)는 말씀을 노트 한권에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이 말씀을 쓴 다음에 데레사 자매에게 “사과”를 했습니다. 용서를 청했습니다. 그리고 데레사 자매에게 공손하게 인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데레사 자매는 마리아 자매가 자신에게 사과한 일을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마리아 자매가 자신에게 인사를 해도 그저 건성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데레사 자매는 기뻤습니다. 자신이 이 싸움에서 이겼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데레사 자매는 두 사람과의 관계를 알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자신의 승리를 전했습니다. 그렇게 데레사 자매는 기쁨에 넘치는 생활을 했습니다. 데레사 자매는 하느님께 감사했습니다. 그동안 불편하게 성당에 다녔는데, 마리아 자매의 사과로 이제 더욱 당당하게 성당에 다닐 수 있었기 때문이고, 자신에게 공손하게 인사하는 마리아 자매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리아 자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만나는 사람마다 기쁘게 웃으며 인사할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마리아 자매는 행복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녀에게는 더 이상 걸림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데레사 자매의 무뚝뚝한 반응이나 계속되는 뒷담화도 마리아 자매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마리아 자매는 주님의 사랑 안에서 머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빛 속에서 거닐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두 사람이 기쁘게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둠 속에 있는 사람은 자신의 어둠을 보지 못하기에 기쁘고, 어둠 속에서 살아가면서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며 기뻐했습니다. 그는 참된 기쁨이 무엇인지를 몰랐고, 어둠이 빛인 줄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참된 빛을 발견한 마리아 자매는 주님의 빛 속에서 자신을 보았고, 자신의 어둠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어둠을 버리고 주님의 빛 속으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잘못도 없지만 자존심을 버리고 용서를 청했고, 뒤에서 사람들이 수군거려도 모욕으로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주님의 사랑 안에서 모든 것을 사랑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참된 빛 속에서 오로지 주님만을 바라본 것입니다. 주님만을 바라보니, 주님만 보였기에 누가 “오른 뺨을 때려도 왼 뺨마저 돌려 댈 수 있는 힘”이 생겼고, 누가 억지로 오리를 가자고 해도, 십리까지 거뜬히 가 줄 수 있는 힘이 생긴 것입니다. 그래서 웃으면서 인사를 하고, 그 자매를 위해서 진실한 마음으로 기도를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마리아 자매는 가슴에서는 행복이 피어남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내 안에서 사시기에 가능한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3. 나눔 및 묵상
① 내 형제자매들이 죄를 짓지 않고, 주님의 크신 사랑에 온전히 응답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내가 도와주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② 사랑의 계명을 나는 어떻게 실천하고 있으며, 내 삶을 통해 형제자매들은 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습니까? 주님의 사랑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으로 바라보고 있습니까?
③ 마리아 자매와 데레사 자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것은 무엇입니까? 어떻게 하면 데레사 자매도 바뀔 수 있을까요?
4. 말씀으로 기도하기

사랑의 계명 준수
1. 말씀읽기: 1요한2,1-11
1 나의 자녀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이 글을 쓰는 까닭은 여러분이 죄를 짓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누가 죄를 짓더라도 하느님 앞에서 우리를 변호해 주시는 분이 계십니다.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2 그분은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이십니다. 우리 죄만이 아니라 온 세상의 죄를 위한 속죄 제물이십니다.
3 우리가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면, 그것으로 우리가 그분을 알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4 “나는 그분을 안다.” 하면서 그분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자는 거짓말쟁이고, 그에게는 진리가 없습니다.
5 그러나 누구든지 그분의 말씀을 지키면, 그 사람 안에서는 참으로 하느님 사랑이 완성됩니다. 그것으로 우리가 그분 안에 있음을 알게 됩니다.
6 그분 안에 머무른다고 말하는 사람은 자기도 그리스도께서 살아가신 것처럼 그렇게 살아가야 합니다.
7 사랑하는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써 보내는 것은 새 계명이 아니라, 여러분이 처음부터 지녀 온 옛 계명입니다. 이 옛 계명은 여러분이 들은 그 말씀입니다.
8 그러면서도 내가 여러분에게 써 보내는 것은 새 계명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도 또 여러분에게도 참된 사실입니다. 어둠이 지나가고 이미 참빛이 비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9 빛 속에 있다고 말하면서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아직도 어둠 속에 있는 자입니다.
10 자기 형제를 사랑하는 사람은 빛 속에 머무르고, 그에게는 걸림돌이 없습니다.
11 그러나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둠 속에 있습니다. 그는 어둠 속에서 살아가면서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 모릅니다. 어둠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2. 말씀연구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주님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주님의 계명을 지키고,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며, 삶으로 주님의 사랑 안에 머물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사랑은 말이 아니라 삶이라는 것을 삶으로 보여줍니다. 나는 주님의 사랑 안에 머물고 있습니까?
1 나의 자녀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이 글을 쓰는 까닭은 여러분이 죄를 짓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누가 죄를 짓더라도 하느님 앞에서 우리를 변호해 주시는 분이 계십니다.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신자들은 사제를 “신부님”이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영신의 아버지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신자들은 사제들의 영적인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자녀 여러분”이라고 하는 것은 신자들에 대한 각별한 사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내가 여러분을 사랑합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 때문에 이 편지를 쓰는 것이기도 합니다.
사도 요한은 이 글을 쓰는 까닭이 “여러분이 죄를 짓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라고 밝힙니다. 죄는 하느님께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것이고, 죄를 통하여 구원에서 멀어지려고 하기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드리신 희생제사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죄를 짓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구원을 위해서 변호해 주시는 분이 계시는데,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누가 죄를 지으면 일곱 번씩 일흔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신 예수님께서 나에게 기회를 주고 계십니다. 사랑이 넘치는 훈계를 하시어 나를 구원에로 이끄시는 분. 그분이 바로 나의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2 그분은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이십니다. 우리 죄만이 아니라 온 세상의 죄를 위한 속죄 제물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온 세상의 죄를 씻어 주시기 위해 몸소 속죄 제물이 되셨습니다. 그렇게 죄의 사슬에서 우리를 풀어 주셨고, 닫혔던 하늘나라의 문을 활짝 열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가지고 주님께로 나아오는 모든 이들에게 구원을 주십니다.
그런데 내가 다시 죄를 지으면 주님께서 베푸신 사랑(희생제사)에 배신으로 보답하는 것이며, 주님께 등을 돌리는 것이며,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제자들은 주님의 백성들이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도록 권고하고, 돌보며, 구원에로 인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백성들은 주님의 말씀을 전하는 이들의 가르침에 온전히 따라야 합니다.
3 우리가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면, 그것으로 우리가 그분을 알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4 “나는 그분을 안다.” 하면서 그분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자는 거짓말쟁이고, 그에게는 진리가 없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하느님의 계명을 지킵니다.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계명을 지킵니다. 주님께 대한 사랑 때문에 죄에서 멀리 떨어지려 하고, 주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것이고, 믿는 이들이 당연히 해야 할 것임을 알기에 주님의 계명 안에서 참된 자유를 누리며 기쁘게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삶은 다른 이들에게 “아하! 저들은 주님을 알고 있구나!”라는 메시지를 주며, 주님을 따르는 삶을 살아가기로 결심하게 만들어 줍니다.
그러나 주님을 모르는 이들은 계명을 지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계명을 지키지 않는 이들은 주님의 사랑을 모르는 이들이고,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이들입니다. 만일 주님을 사랑한다면 주님의 사랑 안에서 살아갈 것이고, 계명을 기쁘게 지켰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며, 그리스도이심을 알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면서 계명을 지키지 않는 이가 있다면 그는 거짓말쟁이이고, 그 사람 안에는 성령께서 머무실 자리가 없습니다.
“주님을 안다.”고 말한다면 당연히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물고 있는 것이며, 마땅히 주님의 계명을 지키고, 주님께서 원하시는 사랑을 실천합니다.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말씀대로 이웃을 참되게 사랑합니다. 그러나 이웃을 사랑하지 않고, 주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다면 그는 주님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5 그러나 누구든지 그분의 말씀을 지키면, 그 사람 안에서는 참으로 하느님 사랑이 완성됩니다. 그것으로 우리가 그분 안에 있음을 알게 됩니다. 6 그분 안에 머무른다고 말하는 사람은 자기도 그리스도께서 살아가신 것처럼 그렇게 살아가야 합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완성된다.”는 것은 하느님의 사랑에 온전히 응답하며, 그 사랑을 실천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의 말씀을 지키면”이라는 말이 앞에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크신 사랑을 베푸셨습니다. 그 사랑을 받은 인간은 하느님의 크신 사랑에 응답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응답은 계명을 지키고,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며, 말씀으로 이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 뵙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갈 때 하느님께서는 나를 보고 기뻐하시고, 나도 하느님 안에서 기뻐합니다. 그렇게 살아갈 때,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사시는 것입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것이며, 그렇게 살아갈 때, 주님 안에서 살아간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 안에서 살아감을 느끼게 되고, 보게 되고, 알게 됩니다.
주님의 사랑 안에 머무는 이들은 사랑하면서 살아갑니다. 자비를 청하는 이들을 외면하지 않고, 용서를 청하는 이들을 기쁘게 용서하며, 모욕을 모욕으로 갚지 않고, 폭력을 폭력으로 갚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그렇게 사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사랑하기에 주님의 삶을 따르려 하고, 주님을 사랑하기에 주님을 위해서 겪게 되는 모든 어려움을 기쁘게 이겨내며, 더 나아가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1)
나 또한 그런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주님께서 가신 길을 알고 있고, 주님의 사랑을 알고 있다면 그 사랑에 보답해야 하며, 주님께서 가신 길,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길을 걸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알고 있는 것을 삶으로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고, 입으로만 주님의 길을 걸어서는 안 되고, 입으로만 주님을 사랑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2)
7 사랑하는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써 보내는 것은 새 계명이 아니라, 여러분이 처음부터 지녀 온 옛 계명입니다. 이 옛 계명은 여러분이 들은 그 말씀입니다. 8 그러면서도 내가 여러분에게 써 보내는 것은 새 계명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도 또 여러분에게도 참된 사실입니다. 어둠이 지나가고 이미 참빛이 비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 요한은 “내가 여러분에게 써 보내는 것은 새 계명이 아니라, 여러분이 처음부터 지녀 온 옛 계명입니다.”라고 말하면서 “그러면서도 내가 여러분에게 써 보내는 것은 새 계명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최후의 만찬 때 새로운 계명을 주셨습니다. 그 계명은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3) 이 계명은 사도들이 신자들에게 복음을 선포할 때부터, 즉 처음부터 선포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공동체가 형성된 이 상황에서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옛 계명”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사랑의 계명을 지킬 것을 명령하셨을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 놓으시면서 그 사랑의 계명을 몸소 보여주셨기에, 그리고 지금도 그 사랑을 주시고 계시기에 “새 계명”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언제나 나를 비추고 계십니다. 주님의 사랑은 나의 온 생애를 비추어 주셨고, 오늘도 비추어 주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그 사랑은 늘 새롭게 나에게 쏟아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사랑의 빛 속에서 나 또한 사랑의 빛을 내 옆에 있는 형제자매들에게 비추어야 합니다.
9 빛 속에 있다고 말하면서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아직도 어둠 속에 있는 자입니다. 10 자기 형제를 사랑하는 사람은 빛 속에 머무르고, 그에게는 걸림돌이 없습니다. 11 그러나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둠 속에 있습니다. 그는 어둠 속에서 살아가면서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 모릅니다. 어둠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두 자매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리아 자매는 데레사 자매를 무척 싫어했습니다. 그렇다보니 데레사 자매도 마리아 자매를 무척 싫어했습니다. 서로 주는 것 없이 미웠고, 싸워보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늘 서로 등을 돌렸습니다. 어떤 이들은 둘 사이를 오가며 서로의 감정을 부추겨 점점 더 멀어지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두 자매는 자신들 사이를 오가며 상대방의 단점을 이야기 해주는 사람을 마치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처럼 대했습니다. 그렇게 둘은 화해하지 않고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고해성사를 수없이 보았지만 결국 마음을 열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미사에 참례하고 성체를 모셨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미움이 자신을 죽이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커다란 항아리에 아무리 시원한 물이 가득 들어 있어도, 작은 구멍이 하나 있으면 그 구멍으로 모든 물이 빠져 나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자신이 메말라가는 것을 느끼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깨달은 마리아 자매는 “빛 속에 있다고 말하면서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아직도 어둠 속에 있는 자입니다.”(1요한2,9)는 말씀을 노트 한권에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이 말씀을 쓴 다음에 데레사 자매에게 “사과”를 했습니다. 용서를 청했습니다. 그리고 데레사 자매에게 공손하게 인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데레사 자매는 마리아 자매가 자신에게 사과한 일을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마리아 자매가 자신에게 인사를 해도 그저 건성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데레사 자매는 기뻤습니다. 자신이 이 싸움에서 이겼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데레사 자매는 두 사람과의 관계를 알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자신의 승리를 전했습니다. 그렇게 데레사 자매는 기쁨에 넘치는 생활을 했습니다. 데레사 자매는 하느님께 감사했습니다. 그동안 불편하게 성당에 다녔는데, 마리아 자매의 사과로 이제 더욱 당당하게 성당에 다닐 수 있었기 때문이고, 자신에게 공손하게 인사하는 마리아 자매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리아 자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만나는 사람마다 기쁘게 웃으며 인사할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마리아 자매는 행복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녀에게는 더 이상 걸림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데레사 자매의 무뚝뚝한 반응이나 계속되는 뒷담화도 마리아 자매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마리아 자매는 주님의 사랑 안에서 머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빛 속에서 거닐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두 사람이 기쁘게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둠 속에 있는 사람은 자신의 어둠을 보지 못하기에 기쁘고, 어둠 속에서 살아가면서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며 기뻐했습니다. 그는 참된 기쁨이 무엇인지를 몰랐고, 어둠이 빛인 줄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참된 빛을 발견한 마리아 자매는 주님의 빛 속에서 자신을 보았고, 자신의 어둠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어둠을 버리고 주님의 빛 속으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잘못도 없지만 자존심을 버리고 용서를 청했고, 뒤에서 사람들이 수군거려도 모욕으로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주님의 사랑 안에서 모든 것을 사랑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참된 빛 속에서 오로지 주님만을 바라본 것입니다. 주님만을 바라보니, 주님만 보였기에 누가 “오른 뺨을 때려도 왼 뺨마저 돌려 댈 수 있는 힘”이 생겼고, 누가 억지로 오리를 가자고 해도, 십리까지 거뜬히 가 줄 수 있는 힘이 생긴 것입니다. 그래서 웃으면서 인사를 하고, 그 자매를 위해서 진실한 마음으로 기도를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마리아 자매는 가슴에서는 행복이 피어남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내 안에서 사시기에 가능한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3. 나눔 및 묵상
① 내 형제자매들이 죄를 짓지 않고, 주님의 크신 사랑에 온전히 응답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내가 도와주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② 사랑의 계명을 나는 어떻게 실천하고 있으며, 내 삶을 통해 형제자매들은 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습니까? 주님의 사랑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으로 바라보고 있습니까?
③ 마리아 자매와 데레사 자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것은 무엇입니까? 어떻게 하면 데레사 자매도 바뀔 수 있을까요?
4. 말씀으로 기도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