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권 제 14장 블레셋과의 전쟁에 대해 하느님의 응답이 없자 사울이 사무엘의 영을 불러내도록 신접한 여자를 찾은 것과 전투에서 히브리인들이 패배하자 사울이 그의 아들들과 같이 죽은 것에 대하여

 


제 14 장



  블레셋과의 전쟁에 대해 하느님의 응답이 없자 사울이 사무엘의 영을 불러내도록 신접한 여자를 찾은 것과 전투에서 히브리인들이 패배하자 사울이 그의 아들들과 같이 죽은 것에 대하여



1. 아기스가 다윗의 병사들을 블레셋 군에 영입함 [삼상28:1]



  블레셋인들이 이스라엘 사람들과 전쟁하기로 결정함과 동시에 모든 동맹국들에게 사신을 보내어 수넴(Shunem)성 근처의레가(Rega)[㈜ 이러한 장소에 관하여 성경에는 언급이 없다.] 전투에 군대를 파견해 주어 그곳에서 운집해 히브리 족속을 급습하자고 했다. 그때 가드왕인 아기스는 다윗에게 그를 도와 그의 무사들과 함께 히브리인들과의 전쟁에 참전하여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다윗은 흔쾌히 약속하며 이제야 그가 베풀어 준 친절과 우호에 보답할 기회가 왔다고 대답하였다.그러자 왕은 전쟁에서 승리할 것을 장담하여 승리 후에 다윗을경호원으로[㈜ 성경에는 \”내 머리 지키는 자\”로 되어 있다. 70인역에는 \”경호실장\”으로 되어 있다.] 삼겠다고 약속했다.[㈜ 성경에 보면 아기스는 전투의 승리 여하에 따른 칭호의 수여에 대해 나오지 않는다.] 이 좋은 자리에 대한 아기스의 확약은 다윗으로 하여금 히브리 원정에서 보다 열성적으로참전토록 독려하기 위한 의도에서 한 것이었다.



 2. 사울과 엔돌의 신접한 여인 [삼상28:7-9]



  한편 히브리인들의 왕인 사울은 선지자만을 제외하고[㈜ 성경에는 선지자들을 제외시키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박수와 신접한 자와[㈜ 70인역의 내용과 같음. 정확한 의미는 알 수 없으나 이 단어가 성경에 쓰인 것을 볼 때, 혹은 유대의 전통을 볼 때 점술의 도구로 사용되었던 부적을 의미하는 것 같다.] 마술을 행하는 자들을 그 나라로부터 모두 쫓아냈다. 그러나 그가 블레셋인들이 이미 출정하여 들판에 위치한 수넴(Sune)성 근처에 진을 설치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는 서둘러 군대를 모아 길보아산(Gelboue)에서[㈜ 70인역의 내용과 같음. 성경에 나오는 길보아는 오늘날의 에벨 푸크아(Jebel Fukua)를 가리킴.] 적과 마주보고 진을 쳤으나 적의 군대를 보고 심히 동요하였다. 적의 수가 엄청났고 그의 군대보다 월등해 보였기 때문이다. 이에 그는 예언자들을 통해 그 전쟁에 대해 하느님께 여쭈었다. 그는 전쟁에 앞서 그 결과를 알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으로부터 아무런 응답이 없자, 사울은 심한 공포에 사로잡히게 되었고, 하느님께서 더 이상 자기를 도와주시기 않을뿐더러 자기에게 어떤 대 재앙이 임할 것만 같은 예감이 (이것은 능히 상상할 수 있는일이었다) 그를 크게 낙담시켰다.

  이에 사울은 신하들을 명하여 그에게 장차 일어날 사건들을미리 알 수 있도록 사자(死者)의 영을 불러 올리는 신접한 여인을 찾아 내라고 했다. 왜냐하면 이런 부류의 신접한 여인들은 사자의 영을 불러 내어 그들을 통해 미래의 사건들을 알기 원하는자들에게 예언해 주는 일을 하였던 것이다. 사울의 신하 중 한사람이 사울에게 그러한 여인이 엔돌(Eor)[㈜ 성경의 \”엔돌\”. 70인역에는 !Aeldwrv로 나와 있다 : \’수넴\'(Shunem)에서 북동쪽으로 약 3마일 되는 곳에 위치한 오늘날의 \’엔돌\’.] 성에 있는데 이것은 자기 밖에 모르는 일이라고 하였다. 이에 사울은 왕복을 벗고 그의 신하 중 가장 충성스러운 둘만을 데리고 엔돌에 있는 그 여인에게로 가서 예언자가 되어 자기가 부탁하는 자의 영을 불러달라고 간청했다.

  그러나 그 여인은 사울의 요청을 거절하고 이 나라에 점장이를 추방한 왕의 명령을 어길 수 없으며, 자기가 아무런 해도 끼친 적이 없는데, 그녀에게 올무를 놓아 금지된 마술을 행케 하여벌을 받게 하려 하느냐고 말했다. 이에 사울은 그녀가 행한 일을절대 누설치 않겠다고 맹세하고 그녀가 예언한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을 것이며 그녀는 아무런 위험에도 빠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울은 이 맹세로써 그녀를 안심시킨 후, 그녀에게사무엘의 영을 불러 달라고 했다. 그녀는 사무엘이 누구인지도 모른채 음부(Hades)로부터 그를 불러 내었다. 사무엘이 나타나자, 그녀는 그가 존경받는 사람인데다 신적 형상을 하고 있었으므로 그 광경에 놀란 나머지 심한 혼란에 빠졌다. 그리고는 \”당신은 사울 왕이 아니십니까?\”하고 물었는데 이는 사무엘이 이미 그녀에게 사울이 누구인지를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성경에는 어떻게 이 여자 마법사가 사울을 알아봤는지 설명해 주고 있지 않다 ; 삼상28:12에는 \”당신이 어찌하여 나를 속이셨나이까? 당신이 사울이시나이다.\”] 사울은 그제서야 자신이 왕인 것을 고백하고 그녀가 왜 당황하는지를 물었다. 그녀는 올라오는 어떤 사람을 보았는데 그 형상이 신과 같다고 말했다. 이에 사울은 그가 어떻게 생겼으며, 어떤 의복을 입었고, 나이가 어느 정도인지를 물었다. 그녀는 그가 나이든 노인이며 영광스런 형체를 가졌으며 제사장 의복을[㈜ 히브리어로는 \’메일\'(Meil), 즉 \’상의(上依). 요세푸스는 여기에다 \’제사장의\’라는 말을 덧붙인 것이다.] 입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사울은 그가 사무엘인 것을 알아보고 그의 앞에 엎드려 문안하고 경배하였다. 사무엘의 영이 사울에게 왜 그를 괴롭히며 올라오게 하였느냐고 묻자, 사울은 슬피 한탄하며 그가 아주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는데 곧 적들이 포위하여 압박하는 이 상황엣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는 절망가운데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자신은 하느님으로부터 버림받았고 선지자로나 검으로나장차 될 일을 전혀 말씀해 주시기 않기에, 항상 자기를 돌보아준 사무엘을 찾지 않을 수 없었노라고 말했다. 그러나 사울의 생명에 닥칠 종말을[㈜ 문자적으로는 \’변화의 끝에 도달했다\’는 뜻이다.] 본 사무엘은 \”나에게 무엇을 더 알아내려고 하는 것은 헛된 일일 뿐이오. 하느님께서는 이미 그대를 버리셨오. 하지만 내가 말하는 것을 잘 들으시오. 다윗은 왕이 되어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 것이나 당신은 권세와 생명을 잃게 될 것이오. 이는 당신이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하느님께 순종치 아니하였고, 그 분의 명령대로 행하지 않았으므로 내가 생전에 당신에게 예언한 대로 이루어질 것이오. 그러므로 이 백성들은 적들에게 굴복하게 될 것이며 당신은 당신의 아들들과 함께 내일의 전쟁에서 거꾸러져, 그때에 당신은 나와 함께 음부(Hades)에 있게 될 것이오.\”



3. 엔돌의 신접한 여인이 기진한 사울을 돌봄 [삼상28:20]



  이 말을 들은 사울은 비통하여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땅바닥에 쓰러져 마치 시체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본문이 불확실하다.] 이것은 이러한 계시로 인한 충격 때문인지 아니면 그 전날 내내 음식을 먹지 못했기 때문에 그것으로 인한 무력증인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정신을잃었다. 사울이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자, 신접한 여인은 그녀가사울을 알아 보지 못하고 불법적인 일을 행한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으면서도[㈜ 요세푸스의 이 말은 애매 모호하다. 이는 곧 이 여마법사가 사울의 인격을 알지도 못하면서 그에게 반항하기를 두려워 했거나 혹은 그녀가 사울의 정체에 대해서 모르면서 그의 분부를 수행하기를 두려워 했다는 뜻일 것이다.] 이 위험천만한 모험(금지된 마술(점)을 행한 것)을 한 자신을 봐서라도 음식을 좀 들라고 간청했다.[㈜ 혹은 \”(그 신하들을)강권하는데에 합세했다\” : 참). 삼상28:23에는 \”그 신하들과 여인이 강원하매\”로 되어 있다.] 그 여인은 그를 위해 음식을 차릴테니 먹고 원기를 차린 후 본 진영으로 돌아가시라고 간청했다. 사울은 심한 낙담 속에 이 제의를 단호히 거절했다. 그러나 그녀는 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고 사울을끝내 설득하였다. 그녀는 송아지 한 마리가 소유의 전부였는데,이것은 그녀가 그녀의 지붕 아래서 기르고[㈜ 문자적으로는 \’친숙한\’ 혹은 \’길들여진\’의 뜻.] 돌보는데 수고를아끼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녀는 송아지 외에 다른 재산이 없었기에 이 송아지에 만족하고 하루를 노동하며 근근히 살아가는여인이었다. 그녀는 그런 송아지를 잡아 요리를 만들어 사울 및그 신하들을 대접했다. 사울은 그날밤 그의 진영으로 돌아갔다.



 4. 엔돌의 신접한 여인에 대한 찬사



  [㈜ 계속해서 나오는 엔돌의 이 여 마법사의 찬미는 물론 성경에 부가된 내용이다.]

  우리는 여기서 이 여인의 관대함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녀는 생활을 윤택하게 해 줄 본업(점치는 일)을 금지시켰을 뿐더러, 전에 만나 본 적이 전혀 없는 사울을 그녀의 직업을 금지시킨 것에 대해 분개하지 않고 생면부지의 나그네처럼 박대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그에게 동정과 위로를 아끼지 아니하였고, 먹기를 꺼려하는 음식을 강청하여 먹였고[㈜ 다시 말해서, 음식을 같이 나누어 먹다.] 가난한 재산중 유일한 송아지를 기꺼이 왕께 드렸다. 그녀의 이러한 행위는그녀가 받은 은혜에 대한 보답이 아니며 또한 그녀는 사울이 곧 죽을 것을 미리 알고 있었으므로 차후의 어떤 보상이나 혜택을 바래서도 아니었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그들에게 친절을 베풀어 준 사람들에게보답하건 차후에 은혜를 베풀어 줄 가능성이 있는 사람에게아첨의 차원에서 미리 선을 행하는 반면 여기서 이 여인을 실례로 택해 설명하려는 것은 궁핍에 처한 자에게 친절을 행하는 것보다도 더 고귀한 일은 없으며, 인간이 마땅히 해야할 일일뿐 아니라 이보다 하느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 분으로 하여금 우리에게 그 분의 은총을 기꺼이 베풀어 주시도록 할만한 일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위의 고대. 6권.12:7(262)이하에 기록된 성경의 부분에 연이어 나오는 사울에 대한 찬미와 비교해 보라. 그러므로 랍비 전승에 보면 사울의 교만에 대한 책망과 그의 영웅성에 대한 찬사가 양분된다.]

  나는 이제 백성들과 국가들에게 유익이 되고 모든 사람에게이익이 되는 한 문제를 다루려고 하는데 이는 모든 사람이 추구해야 할 덕목이며, 영광과 영원한 명성을 받게 되는 것들이다. 더우기 이것은 국가의 왕들과 도시의 통치자들이 마음 깊이  새겨두어야 할 고귀한 행위이며, 국가를 위하여 온갖 위험과 죽음에맞설 수 있도록 고무시키며, 모든 공포를 무시하도록 가르치는덕목인 것이다. 나는 히브리인들의 왕인 사울의 성품 속에서 이덕목을 찾았는데, 그는 선지자의 예언을 통해 그에게 닥칠 재앙과 임박한 죽음을 알고도, 그것을 회피하지 않고 목숨에 연연하여 자기 백성들을 배반하여 적들에게 넘기거나, 왕의 권위를 먹칠하는 행위를 하지 않겠다고 결심하였던 것이다. 이에 사울 왕은 이 위험을 무릎쓰고 자신과 자신의 집과 자녀들과 신하들과함께 싸우다가 전사하는 것이 더 고귀하다고 생각했다.[㈜ 랍비들은 또한 사울이 자신을 포함하여 그의 아들들을 과감히 전투에 출전시켰던 영웅적인 점을 강조한다.] 그는 그의 아들들을 뒤로 빼돌리기 보다는 용감한 자로서 죽음을 맞이하기를 원했다. 이리하여 그는 왕위 계승 및 후손을 택하기 보다는 명예와 영원한 명성을 택했다.[㈜ 즉, 영광 등이 육체적 후손의 위치를 대신한다는 뜻이다. 이 마지막 구절은 투키디데스 2:43의 페리클레스의 장례사에서 나오는  aigevrwn e[painon을 의도적으로 재인용한 것이다.] 나의 소견으로는 이러한 사람만이 공정하며, 용감하고, 현명한 사람이며, 과거나 현재, 미래를 막론하고 이러한 경지에 다다른 사람이라면 마땅히 그의 덕목에 대해 칭송을 받을 만하다.

  왜냐하면 전쟁에 나가 승리하고 무사히 귀환할 것을 생각하면서 높은 희망을 가지고 전쟁을 참가한 사람들과 혁혁한 전과를 올린 사람들이 역사가들 및 그러한 사람들을 용감한 자로 평가하는 이들에 의해 용사로 잘못 기술되곤 한다. 이들이 칭찬을 받아야 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용감한\”, \”매우 용맹 무쌍한\”, \”위험을 경멸하는\” 등의 표현은 단지 사울과 같은 사람에게 적용시키는 것이 더 적합할 것 같다. 전쟁에서 자신들에게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모르는 자들은 겁먹지 않고 불확실한 미래와 광풍이 이는 불확실의 미래에 자신을 맡겨야 한다. 이들이크게 장엄하지는 못하더라도[㈜ 다른 본문에는 \”그다지 풍부하지 못하더라도\”로 나와 있다.] 많은 업적을 성취할 수 있는 것이다. 한편 승리에의 소망이 없음을 알지만 회피하지 않고 오히려 맞서 싸우며 전사할 것을 미리 알면서도 두려워 하거나 이 끔찍한 운명에 절망해 하지 않고 닥칠 모든 운명을 다 알면서도 정면으로 맞부딪치는 것이, 진정한 용기라 생각된다. 그런데 사울이 이렇게 행했다. 곧 사후의 명성을 남기기를 열망하는 사람은그렇게 되도록 행동을 해야만 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특별히후대의 왕들에게 귀감이 되었는데, 이는 권력의 위대함이 왕들로 하여금 신하들에게 행악하는 것을 금할 뿐 아니라 선정을 대충대충 베푸는 것도 금하기 때문이다. 나는 사울과 그의 용기에대해 아직 얘기할 것이 많고 풍부한 소재가 많으나 사울에 대한 칭찬이 지나치다는 인상을 줄까 두려워 이제 본론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5. 블레셋인들이 아기스의 군대로부터 다윗을 분리시킴 [삼상29:1]



  내가 전에 말한대로 블레셋인들은 진영을 설치한 후에 국가별, 왕국별, 통치 관할별로 병력을 계수하였다.[㈜ 참). 삼상29:2의 \”블레셋 사람들의 장관들은 수백씩 수천씩 영솔하여 나아가고\”.] 이때 아기스왕이 자신의 군대와 함께 나타났으며 다윗이 600명의 병사를 이끌고 그 뒤를 따랐다. 그를 보자마자 블레셋 장군들은 아기스 왕에게 이 히브리인들이[㈜ 히브리어 \’하와림\'(Ibrim)과 같은 의미. \’통행인들\’이라는 뜻이다.] 언제 왔으며 누가 그들을 동원했는지를 물었다. 왕은 이 사람은 그의 주인인 사울에게서 도망하여 그에게로 온 다윗이며, 그가 다윗을 받아들였으며, 다윗은 은혜도갚고, 사울에 대한 복수를 하고자, 그들의 편에서 싸우게 될 것이라고 대답했다.[㈜ 다윗의 동기에 대한 이러한 설명은 요세푸스에 의하여 첨가한 것이다.] 그러나 장군들은 한때 적이었던 자를 동맹자로 삼은 그를 비난하고 다윗으로 인해 그의 친구들에게 탐탁치 않은 악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돌려 보내라고 충고 했다. 왜냐하면 그가 다윗으로 하여금 블레셋군을 쳐서 그의 주인인 사울하과 화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지도 모를 일이었기 때문이다.이에 따라 그들은 아기스에게 다윗을 600명의 부하와 함께 자기거처로 돌려보낼 것을 종용했다. 왜냐하면 다윗이 바로 히브리처녀들이 블레셋인 수만명을 죽였다고 칭송하던 그 장본인이었기 때문이다. 가다왕은 이 말을 듣고 수긍한 후 다윗을 불러 말했다.

  \”나로서는 그대가 나에게 보여 온 열정과 우호를 증명할 수있고, 그것이 바로 자네를 나의 우방으로 데려온 이유네만, 다른블레셋 장군들은 그렇게 생각지 않고 있다네. 그러나 의심받지않도록 오늘 안에 내가 하사한 땅으로 돌아가 다른 어느 대적이침입하지 못하도록 내 나라를 지켜 주게. 그것 또한 나를 돕는한가지 일일세\”.[㈜ 블레셋의 영토를 지키라는 이 마지막 지시는 삼상29:11에다 70인역을 덧붙인 것이다 : 히브리 사본에는 단지 \”다윗과 그를 따르는 자들은 일찍이 아침에 일어나서 블레셋 사람들의 땅으로 돌아 가고\”로 되어 있다.] 이에 다윗은 가드왕이 부탁한 대로 시글락으로 갔다. 그런데 다윗이 블레셋인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더났던 바로 그 시기에 아말렉인들이 시글락을 침공하여, 그 성과 여타의 블레셋 성으로부터 많은 전리품을 취한 후 물러갔다.



 6. 이스라엘 사람들이 잡혀간 아내와 아이들로 인해 슬퍼함 [삼상30:4]



  다윗이 시글락 성으로 노략을 당하고, 모든 것이 약탈되었으며,그의 아내와 그의 부하들의 처자식들도 함께 포로로 잡혀간 사실을 알게 되자, 그 즉시로 옷을 찢고,[㈜ 옷을 찢은 사실은 성경에 나오지 않는다.] 그의 부하들과 슬피 울부짖으며, 망연자실한 채 눈물을 뚝뚝 흘렸다. 더욱이 이 모든일의 책임을 다윗에게 돌리고 그들의 처자식들이 잡혀간데 대한 극심한 슬픔 속에 잠긴 부하들에 의해 다윗은 거의 돌에 맞아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 그는 이 슬픔을 딛고 일어나 하느님께로 생각을 돌린 후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제사장 의복을 입고,[㈜ 삼상30:7 \”에봇을 내게로 가져 오라\”고 되어 있다.] 그가 아말렉인들을 추격하면 그들을 따라잡고 여인과 아이들을 되찾고, 대적들에게 원수를 갚을 수 있는지 여부를 하느님께 여쭈어 달라고 했다. 대제사장이 그에게 추격하라고 하자 그는 600명의 병사와 함께 서둘러 그들을 뒤쫓았다. 브솔(Baselos)[㈜ 성경에는 \’브솔\’로 되어 있으나 그 지점이 어디인지 불확실하다. 70인역에는 Bosovr로 되어 있다.] 시내에 다다랐을 때 그는 3일 동안을 아무 음식도 없이 광야에서 연명하여 갈증과 허기로 기진한 애굽인 낙오자를 만났다. 먼저 음식과 음료를 주어 기운을 차리게 한 다윗은 그에게 그가 어디서 왔으며 누구인가를 물었다.[㈜ (성경과 같은) 다른 본문에는 \”그가 누구에게로 속하였는지로\”로 되어 있다.] 그가 말하기를 자기는 애굽 사람인데 주인이 병으로 더 이상 따라갈 수 없는 자기를 버리고 갔다고 했다. 다윗은 그가 시글락과 유다의 일부 지역을 습격하고 불태운 무리 중의 한 사람임을 알아내고 아말렉인 추적을 위한 안내자로 삼았다.



[다윗의 병사들이 아말렉인들을 급습하여 진멸함 [삼상30:15]



  다윗이 도착해 보니 아말렉인들은 땅바닥에 드러누워 더러는 아침 식사 중이었고, 더러는 노략물을 보고 즐거워 하며 이미 만취되어 축 늘어진 상태에 있었다. 이에 다윗은 그들을 불시에 덮쳐 많은 사람들을 살해하였는데, 아말렉인들은 전혀 역습을 예상치 않고 무장을 해제한 채로 흥청망청하고 있었기에 그들은잡기 쉬운 사냥감이었다. 길다란 식탁에서 놀라고 있던 자들은그 곁에서 살해되었고 흐르는 피가 음식과 식기에 퍼져 나갔다.어떤 자들은 술잔을 기울이다가 죽음을 맞이하였고, 어떤 자들은 독주에 취해 잠든 채 죽어갔다. 재빨리 갑옷을 입고 저항하려했던 자들도 무방비 상태로 땅바닥에 엎드러져 죽은 자들과 다름없이 칼날의 희생자가 되었다.[㈜ 이러한 대학살에 관한 묘사는 성경 내용에 대한 부연 설명이다.] 다윗의 부하들은 아침부터밤까지 계속 살해하여 아말렉인들은 겨우 400명만 살아 남게 되었다. 이들은 재빨리 약대에 올라 타 달아난 자들이었다. 이에다윗은 그들이 노략해 간 모든 물품들 뿐 아니라 그와 그의 부하들의 아내들을 모두 되찾았다. 다윗은 출정시에 따를 수 없었던200명을 남은 재산을 지키도록 남겨 놓았었는데, 참전하고 돌아온 400명이, 남아있던 200명은 추격에 부적합하여 참전치 않았으므로 아내들을 되찾은 것에만 만족해야 하며 노획한 전리품을함께 분배하는 것을 꺼려하였다. 그러나 다윗은 이들의 사악하고 부당한 견해를 지적하여 말하기를 하느님께서 그들로 하여금대적들에게 복수케 해주시고 그들의 모든 소유를 되찾게 해주신분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들이 마땅히 남아서 재산을 지킨 자나원정에 참여한 자나 똑같이 소득물을 분배해야 하다고 했다. 이리하여 이러한 법이 제정도어 참전한 자나 남아 산을 지킨자나 동일한 몫을 얻었다. 더욱이 다윗은 시글락에 돌아왔을 때유다 지파의 친지와 친구들에게[㈜ 성경에는 \”유대의 장로들에게, 그의 친구들에게\”(70인역에는 그의 \”친척들에게\”로 되어 있다). 요세푸스는 삼상20:27-30에 나오는 성읍들으 이름을 생략하고 있다.]] 전리품 중 일부를 보내었다.이것이 시글락 약탈 사건과 아말렉인에 대한 보곡 학살 사건의 진상이다.



 7. 블레셋인들이 이스라엘을 길보아 산에서 패배시키고 사울의 아들들은 전사함 [삼상31:1]



  [㈜ 고대.6권.14:2(327) 이하에 나오는 길보아산 근처에서의 전투에 관한 설명을 계속하고 있다.]

  한편 블레셋과 이스라엘 사이에 전쟁이 발발하였는데 치열한접전 끝에 블레셋이 승리하고 수 많은 대적을 살해하였다. 이스라엘의 왕인 사울과 그의 아들들은 그들에겐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고 적들과 전심전력하여 싸우는 것만이 유일한 영예인 양 혼신의 힘을 다해 용감히 싸웠다. 그리하여 그들은 최전선에 나가 많은 블레셋인들을 죽였으나 포위된 후 전사했다. 사울의 아들들은 요나단(Jonathan), 아비나답(Aminadab)[㈜ 70인역의 대부분의 사본들과 같음 ; 성경에는 \”아비나답\”으로 나옴.] 말기수아(Melchis)였다.[㈜ 성경에는 \’말기수아\’로 나옴. 70인역에는 Melceisav로 나옴.] 이들이 쓰러지자 히브리인들은 혼비백산하여 달아나기 시작했고 블레셋인들은 무수한 히브리인들을 살해하였다.



[사울의 죽음]



  사울은 유능한 전사들과 함께 달아났으나 블레셋인들이 창 던지는 자와 궁사들로 사울을 뒤따르게 하여, 사울은 몇 명 만을 남기고 다 잃고 말았다. 사울은 용감하게 싸웠으나 역시 많은 상처를 입었으며[㈜ 삼상31:3에 나오는 내용, ejtraumativsqh를 탈굼과 유대의 번역가들은 \’두려워 했다\’로 번역하였다. 길에 관한 상세한 설명은 성경에 나와 있지 않다.  부상으로 더 견딜 수 없게 되자 자살하려 해도힘이 없어 자신의 병기 잡은 자에게 적들이 생포하기 전에 자기를 찌르라고 명령했으나 병기 잡은 자가 감히 주인인 사울을 찌르려 하지 않자 사울은 자신의 칼 끝을  자시을 향하게 하고 몸을던졌으나 칼을 몸 깊이 넣을 수 없자, 칼을 깊이 밀어 넣기 위해칼쪽으로 비스듬히 기대었다. 그 후에 곁에 서있는 젊은이를 돌아다 보고[㈜ 요세푸스는 삼상31장과 삼하1장에 나오는 사울의 죽음에 관한 상반된 설명을 결합하였다. 먼저 나온 설명에서는 사울은 그의 활쏘는 자가 자기를 죽이려 하자 자살했다고 나와 있는데 반하여 나중에 나오는 설명에는 자청하여 아말렉 사람에 의해 살해당한 것으로 나와 있다. 요세푸스는 고대.7권.1:1(1)이하에서 두 번째 나오는 설명을 반복하고 있다.] 그가 아말렉인인 것을 알고 그에게 박힌 칼을 좀힘있게 밀어 넣어 달라고 부탁하였다. 사울 자신의 손으로는 이일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사울이 바라는 대로하였고 사울은 마침내 숨을 거두었다. 사울을 숨지게 한 젊은이는 사울의 금팔찌와 왕관을 벗겨 자기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사울의 병기든 자도 왕의 죽은 모습을 보고 자살하였으며 왕의 경호원 중 어느 누구도 생존자가 없었으며, 모두 길보아(Gilboa)산 위엣 숨졌다. 요단강 건너의 골짜기와 평지의[㈜ \’에스드라일론\’의.] 성들에 거하던 히브리인들이 왕과 그의 아들들 및 그 따르던 모든 무리들이 전사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을 등지고 요새화된 곳으로[㈜ 수정된 본문 ; 다른 여러 사본들에는 \”가장 강한 성읍들\”. 성경에는 단순히 \”그들이 도망했다\”고만 나와 있다.] 도망을 쳤다. 블레셋인들은 이 성들이 버려진 것을 보고 들어가 거주하였다.



8. 야베스 사람들이 사울과 그 아들들의 토막난 시체를 장사함 [삼상31:11]



  다음날 블레셋인들은 그들의 대적들이 시체를 수색하면서 사울과 그의 아들들에게로 와서 옷을 벗기고 그들의 목을 베어 그들의 승전 소식을 전국 각지에 알렸다. 그리고 그들의 갑옷을 제물로써 아스다롯(Astarte)신전에[㈜ 삼상31:10에서는 신전이 어디에 있었는지에 관해서는 자세히 설명해 주지 않고 있다. 대상 10:10에는 \”사울의 갑옷을 그 신의 묘지에 두고 그 머리를 다곤의 묘에 단지라\”라고 나와 있다. 즉, 블레셋 지역임을 말해 준다. 최근에 주전 15세기 경의 가나안 신전고 벧산에 있느 아스다롯 신상이 발굴되었다.] 봉헌하고, 지금은 스구도볼리(Scythopolis)라고 불리는 벧산(Bethsan)[㈜ 성경의 \’벧산\’ ; 오늘날의 \’베이산\'(Beisan).] 성읍의 성벽에다가 시체를 나무에 꿰어 매달았다. 길르앗 야베스(Jabis)[㈜ 성경의 \’야베스-길르앗\'(Jabeth Gileas) 각주 65)를 보라.] 주민들은 블레셋인들이 사울과 그 아들들의 시신을 토막내어 장사도 치르지도 않고 버려두었다는 소식을 듣고 경악하여 그들중 가장 용감하고 강건한 자들(이 성에는 심신이 강건한 자가 많았다)을 뽑아 밤새 벧산으로 진행하여 적들의 요새에 접근하여, 사울과 그 아들들의 시체를 내린 후 취하여 야베스로 가져오게 하였는데, 적들은 이들의 용기와 담력에 놀라 감히 막을 수도 방해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성경에는 나와 있지 않다.]] 야베스 주민들은 그들의 지역에서 가장 좋은 땅인 아루라(Aroura)라는[㈜ 다른 여러 사본들과 같음 ; 니이제(Niese)는 \’불태우다\’는 뜻의 단어 @KauvsanteS! 때문에 요세푸스가 삼상31:12의 내용과 일치하게끔 하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곳에 그들의 사체를 안장하고 일주일간을 공적인 애도기간으로[㈜ 70인역과 같은 내용.] 정하고 금식한 채 가슴을 치면서 왕과 그 아들들을 위해 애곡하였다.



9. 사울의 통치에 대한 개략 [참고. 대상10:13]



  사울의 이러한 종말은 사무엘이 이미 예언했던 바이다. 이러한 죽음의 이유는 첫째, 사울이 아말렉인들을 칠 때 하느님의 명령에 불순종한 때문이었고,[㈜ 고대.6권. 14:2(336).] 둘째는 대제사장 아히멜렉과 그의 가족 및 성읍에 거하는 모든 대제사장들을 진멸한 때문이었다.[㈜ 요세푸스는 사울이 놉의 제사장들을 살해했던 사건이 그의 불행한 운명을 자초했던 요인들 중의 한가지라고 본 점에 있어서 랍비 전통을 따르고 있지만 여자 마법사를 만난 죄는 생략하고 있다. 참). 대상10:13.] 사울은 사무엘 생전에 18년을 통치하였고, 사무엘 사후에 22년을[㈜ 혹은 \’2\’, 즉 40년이 아니라 총 20년. 이는 고대.10권.8:4(143)과 이 귀절을  인용한 후기 유대 전승에 나오는 숫자와 일치한다. 성경상엔느 아무 숫자도 나와 있지 않다.]] 더 통치하였다. 이렇게 하여 사울은 그의 삶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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