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권 제 8장 유다가 주변국을 정복한 것과 시몬이 두로의 톨레마이스 백성을 친 것에 대하여, 유다가 티모데우스를 물리쳐 그를 도망가게 하고, 요셉과 아사리아스가 패한 후유다가 했던 다른 많은 일들에 대하여

 


제 8 장



유다가 주변국을 정복한 것과 시몬이 두로의 톨레마이스 백성을 친 것에 대하여, 유다가 티모데우스를 물리쳐 그를 도망가게 하고, 요셉과 아사리아스가 패한 후유다가 했던 다른 많은 일들에 대하여



 1. 유다가 주변 국가들을 정복하다[마카비1서 5 : 1]



  이와 같은 상황이 벌어지자 유대인들의 힘이 강성해지는 것을 우려한 주변 국가들은 서로 연합하여 갖가지 음모와 기습공격으로[㈜ \’음모와 기습공격\’이라는 구는 마카비 1서 5 : 2을 확대 해석한 것이다. 그곳에는 \’그들은 야곱 족속을 멸망시킬 계획을 도모했다\’라고 되어 있다.] 그들의 세력권 안에 있는[㈜ 다른 본문에는  \’그들은 그들의 장중으로 몰아넣을 생각을 했다\’라고 나와 있다.] 유대인들의 시설을 파괴하였다. 이러한 주변 국가들의 공격을 받자 유다는 이들의 침입을 저지하고 유대인들에게 더 이상 위해를 가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끊임없이 전쟁을 수행하였다. 그는 아크라바테네(Akrabatene)에서[㈜ 다른 본문들에게는 아크라바티네(Akrabatine), 아크라베테네(Akrabettene)등으로 나와 있다. 대부분의 사본들과 마카비 1서에서는 아크라바티네로 마온다. 이곳은 세겜 근처 아크라바테네일 것이라고<고대. 2권. (235), 3권. (55)> 생각되어 왔지만 성경에 나오는 아그랍빔(Akrabbim, 민 34 : 4, 수 15 : 3), 즉 현재 낙 베스 사파(Naqb e\’-\’afa)로 사해 남단의 남서쪽이라는 것이 더욱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Holscher을 따르는 Bevenot은 다음 본문에서 바아니테스(Baanites)가 언급되었기 때문에 전자를 선호한다. 다음 각주를 보라.] 에서(Esau)의 후손들인 이두매인들(Idumaeans)을 공격하여[㈜ 마카비 1서에는 \’이두매에 있는 에서의 후손들에 대항하여.\’ 다음 주를 보라.] 많은 적들을 살해하고 전리품들을 약탈하였다. 그는또한 유대인들을 기습공격하였던 바안인들(Baanites)을[㈜ 직역하면, \’바아네스(Baanes)의 아들들\’이다. 마카비 1서에는 \’바이안(Baian)의 아들들\’이다. 뻬르아벨(Pere Abel)은 이 이름을 쥬빌리서 29 : 10과 민 32 : 3에 나오는 브온(Beon)과 관련시킨다. 민 32 : 3에 나오는 브온은 많은 학자들이 바알 므온(Baal Meon)의 이중음을 생략한 것으로 설명하는데 이곳은 현 마인(Main)으로 모압에 있는 메데바(Medeba) 남서 5마일 가량되는 곳이다.] 포위공격하여 그들의 망대를 불태우고 많은 사람들을 살해하였다. 그리고 그 곳을 떠나 막강한 힘을 보유하고 있으며 티모데우스(Timotheus)가 다스리고 있던 암만인들(Ammanites)을 공격하였다. 유다는 이들 역시 정복하고 마조라(Mazora)[㈜ 마카비 1서에는 야셀(Jazer)로 나와 있다. 뻬르 아벨은 이곳과 현 키르벳살(Khirbet \’ar)과 같다고 하는데 아락 엘 에미르(Araq el- Emir) 북서 7마일 암만(Amman)의 정서 10마일쯤 된다. 이 이론은 투비아스(Tubias)의 지역에 사는 유대인들을 언급한 데서(마카비 1서 5 : 13) 지지를 받는데 이곳이 아락 엘 에미르<4 : 11(230)> 주 253>에 있는 토비아드 요새이면 맞고 성경에 나오는 갈릴리해 남서에 있는 토비아드 요새이면 맞지 않다.] 시를 함락하여 많은 부녀자들과 어린이들을 포로로 잡은 후[㈜ 마카비 1서에는 야셀(Jazer)과 처자는 관련된 것으로 나오지 않는다. 라이나흐는 Th;n !Iaxh;r kai; qugatevra\”라는 구절, 즉 \’요아잘과 이 딸들\'(딸들은 성읍들을 언급한 것임)이라는 구절을 오해한 데서 기인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요세푸스가 평범한 성경 숙어를 오해해 왔다는 것은 오히려 이상하다. 그 구절은 티모데우스(Timotheus, 요세푸스 기록에 나오지 않음)가 포로로 잡아간 처자식들을 언급한 다음 절<마카비 1서 5 : 13,(330)>에 맞추기 위해 첨가되어 왔을 것이다.] 도시를불태운 다음[㈜ 야셀이 불탄 것에 대해 마카비 1서에는 나오지 않는다. 이것은 요세푸스가 바아니테스(Baanites)에 관해 앞 절<마카비 1서 5 : 5, (328)>의 설명을 반복해 오는 것으로 추측된다.] 유대로 돌아왔다. 유다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은 인접 국가들은 갈라디티스(Galaaditis)에[㈜ 성경에는 길르앗(Gilead)으,로 나와 있다. 이 지역은 트랜스요르단(Transjordan)에 있는 야르묵(Jarmuk)과 얍복(Jabbok)강 사이에 위치해 있다. 마카비 1서에 이렇게 사용되며 넓은 의미로는 더 먼 동쪽까지 포함한다<쉬러(Xcurer)와 뻬르아벨(Pere Abel)과 같음>.] 모여 국경지역에 있는 유대인들을 공격하였다. 그러자 유대인들은 디아데마(Diathema)[㈜ 마카비 1서에는 다데마(Dathema), 아벨(Abel)과 같이 페페 판 카스테렌(Pere van Kasteren)은 이곳을 현재의넬 호슨(el-\’o\’n)과 동일시하는 데 벳-스안(Beth-Shean, 스구도볼리, Scythopllis) 지방의 요르단 서쪽 20마일, 보즈라(Bozrah), 즉 현 보스라 에스키 삼(Bosra eski-\’am)이라고 생각되는 지역의정서 35마일쯤 되는 곳이다. 휠셔(Hoscher)를 따르는 베베놋(Bevenot)은 다데마와 에르 람데(er-Ramtheh)와 동일시한다. 이곳은 엘 호슨의 북서 10마일 가량 되는 곳이다.] 요새로 피신하여 유다에게 사람을 보내 티모데우스가 디아데마 요새를 포위하여 공격하려고 있음을 알렸다. 유다가 이 편지를 읽고 있는 동안에 갈릴리(Galilee)지방에서 사신이 와 갈릴리 지방의 톨레마이스(Ptolemais)와[㈜ 성경에는 악코(Accho)로 나와 있는데, 이 지역은 갈멜산 맞은편의 하이파(Haifa)만의 북단에 있는 헬라 시대의 유명한 도시였던(\’Akka)이다. 이곳은 요세푸스가 전쟁. 2권. 10 ; 2(188) 이하에서 기술한 곳이기도 하다.] 두로(Tyre), 시돈(Sidon)과 그 인접국가들이[㈜ 다른 본문들에는 \’그리고 이방인들\'(ajllogenwn)이라고 나와 있다.참). 마카비 1서에는 \’이방인들의 갈릴리\’라고 되어 있음.] 공격해오고 있다는소식을 전했다.



 2. 시몬, 갈릴리 지방을 공격하다[마카비1서 5 : 16]



  이에 유다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두 지역에 어떤 조치를 취할것인가를 생각한 후에 그의 형 시몬에게 엄선된 3,000여명의 군사를 주어 갈릴리 지방의 유대인들을 돕도록 하였으며, 자신과다른 형 요나단은 8,000여명의 군사를 이끌고 갈라디티스로 출발하였다. 유다는 남은 군사들을 자카리아스(Zacharias)의 아들인 요셉과 아자리아스(Azarias)로 하여금 지휘하도록 하고돌아올 때까지 누구와도 전쟁을 하지 말고 유대를 잘 지켜달라고 부탁하였다. 시몬은 갈릴리 지방으로 가서 적과 전투를 벌여 그들을 쫓아냈으며 톨레마이스의 성문까지 추격하여 약 3,000명의 적군을 살해하였다. 전투에서 승리한 후 시몬은 많은 전리품과 전에 포로로 끌려왔던 유대인들과[㈜ 마카비 1서는 유대인 포로들이라고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갈릴리로부터 온 사람들과 아바타(Arbatta)에 거하는 사람들과 그들의 아내들과 자녀들, 그리고 그들에게 속한 모든 것들\’은 아마 갈릴리의 이방인들 사이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을 말할 것이다.] 그들의 재산을 가지고 유대로 돌아왔다



3. 길리아드에서의 유다와 요나단의 승리[마카비 1서 5: 24]



  유다 마카비와 그의 형 요나단은 요단강을 건너 3일간을 행군 한 후에[㈜ 마카비 1서에는 \’광야에서의 3일간의여행\’으로 나와 있다.] 나바타이아인들(Nabataeans)을[㈜ 원래는 시나이 반도 북동쪽에 거하는 아랍 종족)참). 고대. 1권. (220)이하)를 말한다. 주전 6세기경에 그들은 이전에 에돔사람들이 거하던 페트라(Petra)를 점령하였다. 헬라와 로마시대에 그들은(아람어로 된) 많은 비문이 발견되었던 팔미라(Palmyra)에서 멀리 떨어진 트랜스요르단(Transmordan)을 지나 북쪽과 동쪽으로 뻗어 나갔다. 이 종족의 간단한 현대 역사에 대해서는 G. Robinson의 \’고대 문명의 석관(石棺)\'(The Sarcophagus of an Ancient Civilization), 1930, 28장을 보라.] 만났는데 이들은반갑게 인사하면서 갈라디티스의[㈜ 이 도시들의 이름은 마카비 1서 26절에서 보소라(Bosora), 보솔(Bosor), 알레마(Alema), 카스볼(Chasphor), 마케드(aked)와 칼나임(Karnaim)으로 기록되었다. 참). 아래의 (340).] 유대인들이 당한 일과 요새가 포위되어 극심한 고통을 당하고 있다고 알려주었다. 그리고유다에게 빨리 가서 이방인들과 싸워 동족을[㈜ 현대의 지명과는 구분되므로 이곳과 다른 곳에 기록된 oJmoeqnei\’\”를 \’동향인\’보다는 \’같은 (종교의) 신자\’로 변역할 필요는 없다. 마카비 1서는 \’형제들\’로 기록됨.] 구하라고 하였다. 유다는 이들의 조언에 따라 광야로 되돌아가 우선 보소라(Bosora)의[㈜ 다른 본문에는 보솔라(Bosorra), 봇소라(Bossora)로 표현됨. 마카비 1서는 보솔(Bosor)로, 성경에는 모압의 보스라(Bozrah)로, 현지명은 Bo\’raeski-\’am으로 각각 표현됨. 참). (330) 주 415.] 주민들을 공격하여 그 곳을 함락시키고[㈜ 수정된 본문 : 여러 사본들은 \’그 성을 점령하다\’혹은 \’그 성을 무너뜨리다\’를 첨가함.] 성안의 모든 남자들과 전쟁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을 죽이고[㈜ 이 마지막 묘사는 마카비 1서 5 : 28, \’그는 칼 끝으로 모든 남자를 살해하였다\’를 부주의하게 읽은데서 기인하는 것 같다.] 성을 불태웠다. 그리고 난 뒤 티모데우스의 군대에 포위되어 갇혀있는 유대인들의 요새를[㈜ 즉 다테마(Cathema), 참). 주 415.] 향해 밤에도 쉬지 않고 행군하여 새벽녘에 그 곳에 도착하였다. 그 때는 이미 적의 공격이 시작되고있었는데 일부는 성벽을 기어오르기 위해 사다리를 걸쳐놓았고또 일부는 공격용 무기(siege-engines)로 성을 공격하고 있었다. 이에 유다는 나팔수에게 공격신호를 보내라고 명령하였다.그는 병사들에게 형제와 혈육을 위해 어떠한 위험도 무릅쓰자고말한 다음 궂대를 셋으로 나누어 적의 후방을 공격하였다. 티모데우스의 군대는 마카바이우스의 군대가 매우 용맹스럽고 이전의 전쟁에서 많은 승리를 거두었음을 익히 알고 있던 터라[㈜ 이 마지막 구절은 마카비 1서에 첨가된 것이다.] 모두 달아났다. 유다는 이들을 끝까지 추적하여 약 8000명의 적을 살해하였다. 또한 멜라(Mella)라는[㈜ 참). 각주 422, 마카비 1서는 여기에 있는 도시에 대해 그렇게 기술하지 않았다.]429)[㈜ 이 지명은 예라쉬(Jera\’)의 남서쪽 약 5마일 떨어진 숩(\’uf) 가까이 있는 텔 마스파(Tell Ma\’pa)와 동일시된다.] 이방인들의 도시를 공격하여 점령한 다음 모든 남자들을 살해하고 도시를 불태웠다.그는 멜라를 떠나 카스포마케(Chasphomake)와[㈜ 다른 본문들에는 카스토마키(Chasthomaki), 카스포마케이(Chasphomakei)로 나와 있다. 대다수의 사본들과 요세푸스는 마카비 1서에서 분리된 이름 카스포(Chasphor)와 마케드(Maked)가 결합된 이름이라고 생각한다.] 보소르(Bosor),[㈜ 분명히 엘-메제이립(el-Mezeirib)의 북동쪽 약 20마일 떨어진 곳에 위치한 현대의 부슬 엘-하리리(Busr el-Hariri)를 말하는 것일 것이다.] 그리고 갈라디티스지역의 여러 도시를 정복하였다..



 4. 유다가 티모데우스를 패배시키고 카르나임을 정복하다[마카비1서 5 :37]



  이 일이 있고 난 후 얼마 있지 않아 티모데우스는 대군을 준비하고 다른 동맹국들과 일부 아랍국가들에게 같이 싸워주면 보상을 해주겠노라고 설득하여 이들과 함께 강을 건너 롬폰(Rom-phon)[㈜ 다른 사본에는 람폰(Ramphon), 라폰(Raphon), 로폰(Rophon)이라고 되어 있다. 뻬르아벨(Pere Abel)은 이곳이, 아마 윗 본문에서 이\’시내\’로 언급된 얄묵(Uarmuk)강의지류 중 하나에 가까운 엘-메제이립(el-Mezeirib)의 남서쪽 4마일 떨어진 텔 에스-쉬하브(Tell es- \’ihab)라고 생각한다.] 시를 공격하였다. 그는 병사들에게 유대인들과 용감히 싸울 것과 강을 건너 올 수 없도록 하자고 다그쳤다. 그는 유대인들이 강을 건넌다는 것은 곧 자신들의 패배를 의미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유다는 티모데우스가 대군을 이끌고 공격을 하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병력을 총동원하여 적과 싸우기 위해 서둘러 나아갔다. 그는 강을 건너 적을 공격하여 많은 적병들을 살해하였으며 이에 살아남은 적들은 유다의 공격을 두려워하여 무기를 버리고 도망갔다. 일부는 도망하는데 성공하였으나 나머지 적들은 엔크라나이(Enkranai)라는[㈜ 다른 본문들에는 엔카르나인(Enkarnain)으로 나와 있다. 대부분의 사본들과 요세푸스는 마카비 1서의 (               ) 즉 \’칼나임(Carnaim)에 있는\’을 잘못 읽고 있다.] 사원에 숨어 도망갈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그러나 유다는 이 도시를 함락시키고 거주민들을 살해한 다음 신전을 불태웠으며 신전 도처에 숨어있는 적들을 모두 살해하였다.[㈜ poikvlh… ijdeva kh\’\” ajpwleiva\”는 투키디데스를 생각나게 한다. 참). 투키디데스 iii 81 : 5과 vii 29 : 5.]



 5. 길리아드 지방에서 유다의 계속된 승리[마카비 1서 5 : 45]



  이와 같이 승리를 거둔 후에 유다는 갈라디티스에 있는 모든 유대인들과 그들의 처지를 모아 유대로 되돌아 갈 준비를 하였다. 이들은 돌아가는 길에 엠프론(Emphron)[㈜ 마카비 1서에는 에프론(Ephron)으로 나와 있다.] 시를 통과하지 않을 수 없었으므로[㈜ 까다로운 지형 때문에.] 그 성의 주민들에게 사절을 보내 통과할수 있도록 문을 열어달라고 부탁하였다. 이 도시의 주민들이 문앞에 커다란 돌을 쌓아 지나갈 수 없도록 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엠프론의 주민들은 유다의 요구를 거절하였다. 이에 유다는 도시를 포위하여 하루 밤낮을 공격하여 도시를 함락시키고성안의 모든 남자들을 죽이고 불을 질렀다.[㈜ 마카비 1서에는 \’뿌리를 뽑았다\’로 나와 있다.] 죽은 자들이 너무많아 유대인들은 그들의 시체를 밟고 지나가야 할 정도였다. 유대인들은 요단강을 건너 벧사네(Bethsane)의[㈜ 성경에는 벧-스안(Beth-shean)으로 나와 있다. 요즘의 베이산(Besan)이다. 참). 고대. 5권. (83) 각주 58.] 맞은 편에 있는 대평원(Great Plain)에 도달하였다. 벧사네는 헬라인들이 스구도볼리(Scythopolis)라고 부르는 곳이다. 이들은 이곳을떠나 감사의 찬양을 부르며 숭리를 자축하면서 유대지방으로 돌아왔다.[㈜ 마카비 1서에 의하면 그들은 예루살렘에 도착했을 때 기뻐 뛰노는 일들이 시작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나서 유대인들은 그들의 승리를 감사하고 전쟁을 하는 동안 단 한명의 전사자도 없이 모두 무사히 돌아올 수있도록 도와주신 하느님께 감사의 제사를 올렸다.



 6. 고르기아스가 얌네이아에서 유대인 수비대를 패배시키다[마카비1서 5 : 55]



  시몬이 톨레마이스와 갈릴리 지방에서 전쟁을 하고 유다와 그의 형제 요나단이 갈라디티스지방에 있을 때 본국에 남아있던 자카리아스의 아들 요셉과 아자리아스(Azarias)는 용감한 장군이라는 명성을 얻기 위해 군대를 동원하여 얌네이아(Jamneia)를 공격하였다.[㈜ 참). 각주 381.] 얌네이아의 사령관인 고르기아스(Gorgias)는[㈜ 참). 고대. 12권. (298).] 이들과 맞서 싸워 유대인 2,000명을 살해하고 유대 변방까지[㈜ 마카비 1서에도 같은 표현을 썻지만, 다른 본문들에는 \’산맥\’으로 되어 있다.] 추격하였다.[㈜ 다른 본문들에는 \’추격 하였다\’가 생략되었다.] 자신이 돌아올 때까지는 어느 누구와도 싸우지 말라고 한 유다의 명령을 어겼기 때문에 요셉과 아자리아스는 패배하였던 것이다. 유다가 이와 같은 선견지명을 갖고 있었으므로 그의 명령을 어길 경우 요셉과 아자리아스는 패배할것이라는 고의 예언에 우리는 경탄을 금할 수 없다.[㈜ 유다의 영민함에 대한 설명 대신에, 마카비 1서는 요셉과 아사리야(Azariah)가 \’그들은 이스라엘에게 구원을 가져다준 그 사람들<즉, 하스몬 사람들(The Hasmonaeans>의 자손이 아니었기 때문에\’패배하였다고 설명하고 있다.] 한편 유다와 그의 형제들은 이두매인들(Idumaeans)을[㈜ 마카비 1서에는 이두매 사람들을 의미하는 \’에서(Esau)의 아들들\’이라고 나와 있다.] 쉬지 않고 공격하여 사방에서 그들의 숨통을 조여 헤브론(Hebron)시를 함락시킨 후 모든 요새를 파괴하고 망대를 불태웠다.[㈜ 마카비 1서는 그들이 헤브론 근처의 마을들을 점령했다고 덧붙이고 있다.] 그들은 마리사(Marisa)를[㈜ 헬라 사본과 다른 많은 사본들과 마카비 1서에서 \’사마리아\'(Samaria)로 나오는데 \’마리사\'(Marisa)로 전와(轉渦)된 것이다. 성경에는 팔레스틴 국경 근처의 마레사(Mareshah)로 표기되어 있다. 참). 고대. 8권. (246) 각주 346.] 포함한 이방국가들을 정복, 파괴하고 아소도(Azotus)로[㈜ 성경에는 아스돗(Ashdod)으로 나와 있다. 참). (308)의 각주 376.] 가 그곳을 정복하여 약탈하였다.[㈜ 마카비 1서는 그들이 그곳에서 발견한  우상들을 불태웠다는 말들을 첨가하고 있다.] 그 후 그들은 많은 전리품들을 갖고 유대로 돌아왔다.



이 글은 카테고리: catholicdictionary3, TN-catholicdictionary3-C1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제 12권 제 8장 유다가 주변국을 정복한 것과 시몬이 두로의 톨레마이스 백성을 친 것에 대하여, 유다가 티모데우스를 물리쳐 그를 도망가게 하고, 요셉과 아사리아스가 패한 후유다가 했던 다른 많은 일들에 대하여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제 8 장


    유다가 주변국을 정복한 것과 시몬이 두로의 톨레마이스 백성을 친 것에 대하여, 유다가 티모데우스를 물리쳐 그를 도망가게 하고, 요셉과 아사리아스가 패한 후유다가 했던 다른 많은 일들에 대하여


     1. 유다가 주변 국가들을 정복하다[마카비1서 5 : 1]


      이와 같은 상황이 벌어지자 유대인들의 힘이 강성해지는 것을 우려한 주변 국가들은 서로 연합하여 갖가지 음모와 기습공격으로[㈜ ‘음모와 기습공격’이라는 구는 마카비 1서 5 : 2을 확대 해석한 것이다. 그곳에는 ‘그들은 야곱 족속을 멸망시킬 계획을 도모했다’라고 되어 있다.] 그들의 세력권 안에 있는[㈜ 다른 본문에는  ‘그들은 그들의 장중으로 몰아넣을 생각을 했다’라고 나와 있다.] 유대인들의 시설을 파괴하였다. 이러한 주변 국가들의 공격을 받자 유다는 이들의 침입을 저지하고 유대인들에게 더 이상 위해를 가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끊임없이 전쟁을 수행하였다. 그는 아크라바테네(Akrabatene)에서[㈜ 다른 본문들에게는 아크라바티네(Akrabatine), 아크라베테네(Akrabettene)등으로 나와 있다. 대부분의 사본들과 마카비 1서에서는 아크라바티네로 마온다. 이곳은 세겜 근처 아크라바테네일 것이라고<고대. 2권. (235), 3권. (55)> 생각되어 왔지만 성경에 나오는 아그랍빔(Akrabbim, 민 34 : 4, 수 15 : 3), 즉 현재 낙 베스 사파(Naqb e’-‘afa)로 사해 남단의 남서쪽이라는 것이 더욱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Holscher을 따르는 Bevenot은 다음 본문에서 바아니테스(Baanites)가 언급되었기 때문에 전자를 선호한다. 다음 각주를 보라.] 에서(Esau)의 후손들인 이두매인들(Idumaeans)을 공격하여[㈜ 마카비 1서에는 ‘이두매에 있는 에서의 후손들에 대항하여.’ 다음 주를 보라.] 많은 적들을 살해하고 전리품들을 약탈하였다. 그는또한 유대인들을 기습공격하였던 바안인들(Baanites)을[㈜ 직역하면, ‘바아네스(Baanes)의 아들들’이다. 마카비 1서에는 ‘바이안(Baian)의 아들들’이다. 뻬르아벨(Pere Abel)은 이 이름을 쥬빌리서 29 : 10과 민 32 : 3에 나오는 브온(Beon)과 관련시킨다. 민 32 : 3에 나오는 브온은 많은 학자들이 바알 므온(Baal Meon)의 이중음을 생략한 것으로 설명하는데 이곳은 현 마인(Main)으로 모압에 있는 메데바(Medeba) 남서 5마일 가량되는 곳이다.] 포위공격하여 그들의 망대를 불태우고 많은 사람들을 살해하였다. 그리고 그 곳을 떠나 막강한 힘을 보유하고 있으며 티모데우스(Timotheus)가 다스리고 있던 암만인들(Ammanites)을 공격하였다. 유다는 이들 역시 정복하고 마조라(Mazora)[㈜ 마카비 1서에는 야셀(Jazer)로 나와 있다. 뻬르 아벨은 이곳과 현 키르벳살(Khirbet ‘ar)과 같다고 하는데 아락 엘 에미르(Araq el- Emir) 북서 7마일 암만(Amman)의 정서 10마일쯤 된다. 이 이론은 투비아스(Tubias)의 지역에 사는 유대인들을 언급한 데서(마카비 1서 5 : 13) 지지를 받는데 이곳이 아락 엘 에미르<4 : 11(230)> 주 253>에 있는 토비아드 요새이면 맞고 성경에 나오는 갈릴리해 남서에 있는 토비아드 요새이면 맞지 않다.] 시를 함락하여 많은 부녀자들과 어린이들을 포로로 잡은 후[㈜ 마카비 1서에는 야셀(Jazer)과 처자는 관련된 것으로 나오지 않는다. 라이나흐는 Th;n !Iaxh;r kai; qugatevra”라는 구절, 즉 ‘요아잘과 이 딸들'(딸들은 성읍들을 언급한 것임)이라는 구절을 오해한 데서 기인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요세푸스가 평범한 성경 숙어를 오해해 왔다는 것은 오히려 이상하다. 그 구절은 티모데우스(Timotheus, 요세푸스 기록에 나오지 않음)가 포로로 잡아간 처자식들을 언급한 다음 절<마카비 1서 5 : 13,(330)>에 맞추기 위해 첨가되어 왔을 것이다.] 도시를불태운 다음[㈜ 야셀이 불탄 것에 대해 마카비 1서에는 나오지 않는다. 이것은 요세푸스가 바아니테스(Baanites)에 관해 앞 절<마카비 1서 5 : 5, (328)>의 설명을 반복해 오는 것으로 추측된다.] 유대로 돌아왔다. 유다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은 인접 국가들은 갈라디티스(Galaaditis)에[㈜ 성경에는 길르앗(Gilead)으,로 나와 있다. 이 지역은 트랜스요르단(Transjordan)에 있는 야르묵(Jarmuk)과 얍복(Jabbok)강 사이에 위치해 있다. 마카비 1서에 이렇게 사용되며 넓은 의미로는 더 먼 동쪽까지 포함한다<쉬러(Xcurer)와 뻬르아벨(Pere Abel)과 같음>.] 모여 국경지역에 있는 유대인들을 공격하였다. 그러자 유대인들은 디아데마(Diathema)[㈜ 마카비 1서에는 다데마(Dathema), 아벨(Abel)과 같이 페페 판 카스테렌(Pere van Kasteren)은 이곳을 현재의넬 호슨(el-‘o’n)과 동일시하는 데 벳-스안(Beth-Shean, 스구도볼리, Scythopllis) 지방의 요르단 서쪽 20마일, 보즈라(Bozrah), 즉 현 보스라 에스키 삼(Bosra eski-‘am)이라고 생각되는 지역의정서 35마일쯤 되는 곳이다. 휠셔(Hoscher)를 따르는 베베놋(Bevenot)은 다데마와 에르 람데(er-Ramtheh)와 동일시한다. 이곳은 엘 호슨의 북서 10마일 가량 되는 곳이다.] 요새로 피신하여 유다에게 사람을 보내 티모데우스가 디아데마 요새를 포위하여 공격하려고 있음을 알렸다. 유다가 이 편지를 읽고 있는 동안에 갈릴리(Galilee)지방에서 사신이 와 갈릴리 지방의 톨레마이스(Ptolemais)와[㈜ 성경에는 악코(Accho)로 나와 있는데, 이 지역은 갈멜산 맞은편의 하이파(Haifa)만의 북단에 있는 헬라 시대의 유명한 도시였던(‘Akka)이다. 이곳은 요세푸스가 전쟁. 2권. 10 ; 2(188) 이하에서 기술한 곳이기도 하다.] 두로(Tyre), 시돈(Sidon)과 그 인접국가들이[㈜ 다른 본문들에는 ‘그리고 이방인들'(ajllogenwn)이라고 나와 있다.참). 마카비 1서에는 ‘이방인들의 갈릴리’라고 되어 있음.] 공격해오고 있다는소식을 전했다.


     2. 시몬, 갈릴리 지방을 공격하다[마카비1서 5 : 16]


      이에 유다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두 지역에 어떤 조치를 취할것인가를 생각한 후에 그의 형 시몬에게 엄선된 3,000여명의 군사를 주어 갈릴리 지방의 유대인들을 돕도록 하였으며, 자신과다른 형 요나단은 8,000여명의 군사를 이끌고 갈라디티스로 출발하였다. 유다는 남은 군사들을 자카리아스(Zacharias)의 아들인 요셉과 아자리아스(Azarias)로 하여금 지휘하도록 하고돌아올 때까지 누구와도 전쟁을 하지 말고 유대를 잘 지켜달라고 부탁하였다. 시몬은 갈릴리 지방으로 가서 적과 전투를 벌여 그들을 쫓아냈으며 톨레마이스의 성문까지 추격하여 약 3,000명의 적군을 살해하였다. 전투에서 승리한 후 시몬은 많은 전리품과 전에 포로로 끌려왔던 유대인들과[㈜ 마카비 1서는 유대인 포로들이라고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갈릴리로부터 온 사람들과 아바타(Arbatta)에 거하는 사람들과 그들의 아내들과 자녀들, 그리고 그들에게 속한 모든 것들’은 아마 갈릴리의 이방인들 사이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을 말할 것이다.] 그들의 재산을 가지고 유대로 돌아왔다


    3. 길리아드에서의 유다와 요나단의 승리[마카비 1서 5: 24]


      유다 마카비와 그의 형 요나단은 요단강을 건너 3일간을 행군 한 후에[㈜ 마카비 1서에는 ‘광야에서의 3일간의여행’으로 나와 있다.] 나바타이아인들(Nabataeans)을[㈜ 원래는 시나이 반도 북동쪽에 거하는 아랍 종족)참). 고대. 1권. (220)이하)를 말한다. 주전 6세기경에 그들은 이전에 에돔사람들이 거하던 페트라(Petra)를 점령하였다. 헬라와 로마시대에 그들은(아람어로 된) 많은 비문이 발견되었던 팔미라(Palmyra)에서 멀리 떨어진 트랜스요르단(Transmordan)을 지나 북쪽과 동쪽으로 뻗어 나갔다. 이 종족의 간단한 현대 역사에 대해서는 G. Robinson의 ‘고대 문명의 석관(石棺)'(The Sarcophagus of an Ancient Civilization), 1930, 28장을 보라.] 만났는데 이들은반갑게 인사하면서 갈라디티스의[㈜ 이 도시들의 이름은 마카비 1서 26절에서 보소라(Bosora), 보솔(Bosor), 알레마(Alema), 카스볼(Chasphor), 마케드(aked)와 칼나임(Karnaim)으로 기록되었다. 참). 아래의 (340).] 유대인들이 당한 일과 요새가 포위되어 극심한 고통을 당하고 있다고 알려주었다. 그리고유다에게 빨리 가서 이방인들과 싸워 동족을[㈜ 현대의 지명과는 구분되므로 이곳과 다른 곳에 기록된 oJmoeqnei'”를 ‘동향인’보다는 ‘같은 (종교의) 신자’로 변역할 필요는 없다. 마카비 1서는 ‘형제들’로 기록됨.] 구하라고 하였다. 유다는 이들의 조언에 따라 광야로 되돌아가 우선 보소라(Bosora)의[㈜ 다른 본문에는 보솔라(Bosorra), 봇소라(Bossora)로 표현됨. 마카비 1서는 보솔(Bosor)로, 성경에는 모압의 보스라(Bozrah)로, 현지명은 Bo’raeski-‘am으로 각각 표현됨. 참). (330) 주 415.] 주민들을 공격하여 그 곳을 함락시키고[㈜ 수정된 본문 : 여러 사본들은 ‘그 성을 점령하다’혹은 ‘그 성을 무너뜨리다’를 첨가함.] 성안의 모든 남자들과 전쟁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을 죽이고[㈜ 이 마지막 묘사는 마카비 1서 5 : 28, ‘그는 칼 끝으로 모든 남자를 살해하였다’를 부주의하게 읽은데서 기인하는 것 같다.] 성을 불태웠다. 그리고 난 뒤 티모데우스의 군대에 포위되어 갇혀있는 유대인들의 요새를[㈜ 즉 다테마(Cathema), 참). 주 415.] 향해 밤에도 쉬지 않고 행군하여 새벽녘에 그 곳에 도착하였다. 그 때는 이미 적의 공격이 시작되고있었는데 일부는 성벽을 기어오르기 위해 사다리를 걸쳐놓았고또 일부는 공격용 무기(siege-engines)로 성을 공격하고 있었다. 이에 유다는 나팔수에게 공격신호를 보내라고 명령하였다.그는 병사들에게 형제와 혈육을 위해 어떠한 위험도 무릅쓰자고말한 다음 궂대를 셋으로 나누어 적의 후방을 공격하였다. 티모데우스의 군대는 마카바이우스의 군대가 매우 용맹스럽고 이전의 전쟁에서 많은 승리를 거두었음을 익히 알고 있던 터라[㈜ 이 마지막 구절은 마카비 1서에 첨가된 것이다.] 모두 달아났다. 유다는 이들을 끝까지 추적하여 약 8000명의 적을 살해하였다. 또한 멜라(Mella)라는[㈜ 참). 각주 422, 마카비 1서는 여기에 있는 도시에 대해 그렇게 기술하지 않았다.]429)[㈜ 이 지명은 예라쉬(Jera’)의 남서쪽 약 5마일 떨어진 숩(‘uf) 가까이 있는 텔 마스파(Tell Ma’pa)와 동일시된다.] 이방인들의 도시를 공격하여 점령한 다음 모든 남자들을 살해하고 도시를 불태웠다.그는 멜라를 떠나 카스포마케(Chasphomake)와[㈜ 다른 본문들에는 카스토마키(Chasthomaki), 카스포마케이(Chasphomakei)로 나와 있다. 대다수의 사본들과 요세푸스는 마카비 1서에서 분리된 이름 카스포(Chasphor)와 마케드(Maked)가 결합된 이름이라고 생각한다.] 보소르(Bosor),[㈜ 분명히 엘-메제이립(el-Mezeirib)의 북동쪽 약 20마일 떨어진 곳에 위치한 현대의 부슬 엘-하리리(Busr el-Hariri)를 말하는 것일 것이다.] 그리고 갈라디티스지역의 여러 도시를 정복하였다..


     4. 유다가 티모데우스를 패배시키고 카르나임을 정복하다[마카비1서 5 :37]


      이 일이 있고 난 후 얼마 있지 않아 티모데우스는 대군을 준비하고 다른 동맹국들과 일부 아랍국가들에게 같이 싸워주면 보상을 해주겠노라고 설득하여 이들과 함께 강을 건너 롬폰(Rom-phon)[㈜ 다른 사본에는 람폰(Ramphon), 라폰(Raphon), 로폰(Rophon)이라고 되어 있다. 뻬르아벨(Pere Abel)은 이곳이, 아마 윗 본문에서 이’시내’로 언급된 얄묵(Uarmuk)강의지류 중 하나에 가까운 엘-메제이립(el-Mezeirib)의 남서쪽 4마일 떨어진 텔 에스-쉬하브(Tell es- ‘ihab)라고 생각한다.] 시를 공격하였다. 그는 병사들에게 유대인들과 용감히 싸울 것과 강을 건너 올 수 없도록 하자고 다그쳤다. 그는 유대인들이 강을 건넌다는 것은 곧 자신들의 패배를 의미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유다는 티모데우스가 대군을 이끌고 공격을 하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병력을 총동원하여 적과 싸우기 위해 서둘러 나아갔다. 그는 강을 건너 적을 공격하여 많은 적병들을 살해하였으며 이에 살아남은 적들은 유다의 공격을 두려워하여 무기를 버리고 도망갔다. 일부는 도망하는데 성공하였으나 나머지 적들은 엔크라나이(Enkranai)라는[㈜ 다른 본문들에는 엔카르나인(Enkarnain)으로 나와 있다. 대부분의 사본들과 요세푸스는 마카비 1서의 (               ) 즉 ‘칼나임(Carnaim)에 있는’을 잘못 읽고 있다.] 사원에 숨어 도망갈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그러나 유다는 이 도시를 함락시키고 거주민들을 살해한 다음 신전을 불태웠으며 신전 도처에 숨어있는 적들을 모두 살해하였다.[㈜ poikvlh… ijdeva kh'” ajpwleiva”는 투키디데스를 생각나게 한다. 참). 투키디데스 iii 81 : 5과 vii 29 : 5.]


     5. 길리아드 지방에서 유다의 계속된 승리[마카비 1서 5 : 45]


      이와 같이 승리를 거둔 후에 유다는 갈라디티스에 있는 모든 유대인들과 그들의 처지를 모아 유대로 되돌아 갈 준비를 하였다. 이들은 돌아가는 길에 엠프론(Emphron)[㈜ 마카비 1서에는 에프론(Ephron)으로 나와 있다.] 시를 통과하지 않을 수 없었으므로[㈜ 까다로운 지형 때문에.] 그 성의 주민들에게 사절을 보내 통과할수 있도록 문을 열어달라고 부탁하였다. 이 도시의 주민들이 문앞에 커다란 돌을 쌓아 지나갈 수 없도록 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엠프론의 주민들은 유다의 요구를 거절하였다. 이에 유다는 도시를 포위하여 하루 밤낮을 공격하여 도시를 함락시키고성안의 모든 남자들을 죽이고 불을 질렀다.[㈜ 마카비 1서에는 ‘뿌리를 뽑았다’로 나와 있다.] 죽은 자들이 너무많아 유대인들은 그들의 시체를 밟고 지나가야 할 정도였다. 유대인들은 요단강을 건너 벧사네(Bethsane)의[㈜ 성경에는 벧-스안(Beth-shean)으로 나와 있다. 요즘의 베이산(Besan)이다. 참). 고대. 5권. (83) 각주 58.] 맞은 편에 있는 대평원(Great Plain)에 도달하였다. 벧사네는 헬라인들이 스구도볼리(Scythopolis)라고 부르는 곳이다. 이들은 이곳을떠나 감사의 찬양을 부르며 숭리를 자축하면서 유대지방으로 돌아왔다.[㈜ 마카비 1서에 의하면 그들은 예루살렘에 도착했을 때 기뻐 뛰노는 일들이 시작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나서 유대인들은 그들의 승리를 감사하고 전쟁을 하는 동안 단 한명의 전사자도 없이 모두 무사히 돌아올 수있도록 도와주신 하느님께 감사의 제사를 올렸다.


     6. 고르기아스가 얌네이아에서 유대인 수비대를 패배시키다[마카비1서 5 : 55]


      시몬이 톨레마이스와 갈릴리 지방에서 전쟁을 하고 유다와 그의 형제 요나단이 갈라디티스지방에 있을 때 본국에 남아있던 자카리아스의 아들 요셉과 아자리아스(Azarias)는 용감한 장군이라는 명성을 얻기 위해 군대를 동원하여 얌네이아(Jamneia)를 공격하였다.[㈜ 참). 각주 381.] 얌네이아의 사령관인 고르기아스(Gorgias)는[㈜ 참). 고대. 12권. (298).] 이들과 맞서 싸워 유대인 2,000명을 살해하고 유대 변방까지[㈜ 마카비 1서에도 같은 표현을 썻지만, 다른 본문들에는 ‘산맥’으로 되어 있다.] 추격하였다.[㈜ 다른 본문들에는 ‘추격 하였다’가 생략되었다.] 자신이 돌아올 때까지는 어느 누구와도 싸우지 말라고 한 유다의 명령을 어겼기 때문에 요셉과 아자리아스는 패배하였던 것이다. 유다가 이와 같은 선견지명을 갖고 있었으므로 그의 명령을 어길 경우 요셉과 아자리아스는 패배할것이라는 고의 예언에 우리는 경탄을 금할 수 없다.[㈜ 유다의 영민함에 대한 설명 대신에, 마카비 1서는 요셉과 아사리야(Azariah)가 ‘그들은 이스라엘에게 구원을 가져다준 그 사람들<즉, 하스몬 사람들(The Hasmonaeans>의 자손이 아니었기 때문에’패배하였다고 설명하고 있다.] 한편 유다와 그의 형제들은 이두매인들(Idumaeans)을[㈜ 마카비 1서에는 이두매 사람들을 의미하는 ‘에서(Esau)의 아들들’이라고 나와 있다.] 쉬지 않고 공격하여 사방에서 그들의 숨통을 조여 헤브론(Hebron)시를 함락시킨 후 모든 요새를 파괴하고 망대를 불태웠다.[㈜ 마카비 1서는 그들이 헤브론 근처의 마을들을 점령했다고 덧붙이고 있다.] 그들은 마리사(Marisa)를[㈜ 헬라 사본과 다른 많은 사본들과 마카비 1서에서 ‘사마리아'(Samaria)로 나오는데 ‘마리사'(Marisa)로 전와(轉渦)된 것이다. 성경에는 팔레스틴 국경 근처의 마레사(Mareshah)로 표기되어 있다. 참). 고대. 8권. (246) 각주 346.] 포함한 이방국가들을 정복, 파괴하고 아소도(Azotus)로[㈜ 성경에는 아스돗(Ashdod)으로 나와 있다. 참). (308)의 각주 376.] 가 그곳을 정복하여 약탈하였다.[㈜ 마카비 1서는 그들이 그곳에서 발견한  우상들을 불태웠다는 말들을 첨가하고 있다.] 그 후 그들은 많은 전리품들을 갖고 유대로 돌아왔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