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7 권 14년 동안의 사건을 다룸
알렉산더와 아리스토불루스의 죽음부터 아켈라오의 추방까지
제 1 장
안티파테르가 자기 형제들을 죽였다는 것 때문에 유대 모든 백성이 그를 미워하게 되었으며 그 이유 때문에 로마에 있는 부친의 친구들에게 많은 선물을 보내 특별한 호의를 얻게 된 것, 수리아 총독 사투르니누스와그 수하에 있는 방백들에게도 선물을 준 것, 그리고 헤롯의 아내와 자녀들에 대하여
1. 안티파테르의 음모
[㈜ 1장=전쟁. 1권. 28 ; 1-6(552-556). 요세푸스의 주 자료는 다메섹의 니콜라스로 이어진다. 그러나 이 작자는 요세푸스보다 앞선 유대전쟁사의 기사를 알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1권.(552)-2권.(116)>. 본문에서 19권까지 요세푸스의 조수는 택커래이가 말하듯이 \’투키디데스의 조수\’라고 할 수 있다. 어떤 특정한 문체가 나타나며 투키디에스의 병행구가 수 없이 많다. 이에 대해 자세한 것은 택커래이(Thackaray)나 드뤼너(Druner)와 다른 학자들의 기록을 보라.]
안티파테르는 헤롯으로 하여금 극악무도한 죄를 저지르도록유인하여 두 형제를 제거하는 데는 성공하였으나 왕권을 획득하려는 그의 계획은 자기 의도대로 쉽게 되지 않았다. 이제 안티파테르는 왕권을 다른 형제들에게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는 벗어났지만[㈜ 헬라어 사본에 관해서는 Schmidt, p.362를 보라.] 백성들이 그를 점점 더 미워하고 있었으므로 왕권 획득은 더욱 어렵고 가능성이 희박해져 갔다. 이러한 어려움 이외에도 백성들이 반란을 일으킬 때마다 진압을 해주던 로마군들과의 관계가 적대적으로 변해 안티파테르는 한층 괴로웠다. 상황이 이처럼 어렵게 된 모든 직접적 원인은 그가 동생 알렉산더와 아리스토불루스를 처형하도록 헤롯을 뒤에서 조종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왕이 된 것이나 다름없이 부친 헤롯과 함께 나라를 통치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는 또한헤롯으로부터 상당한 신임을 받고 있었는데 이는 그가 어떻게하면 헤롯의 비위를 잘 맞춰 그의 총애를 받을 수 있는지를 확실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즉 그는 헤롯의 신변안전을 위하는것처럼 하면서 동생들을 비난했고 헤롯 앞에서 동생들에 대한 자신의 적개심을 절대로 노골적으로는 표현하지 않는 등 교활하게 행동하여[㈜ 참). 라틴어 사본(과 추정되는 사본) : \”그런 중상을 함으로써\”. ] 헤롯의 두터운 신임를 받게 된 것이다. 물론 이러한 모든 일들도 헤롯을 공격하는 일환으로 행하여졌다. 안티파테르는 자신이 계획하고 있는 왕위 획득을 비난할 소지가 있는자들은 미리 제거해 버렸고, 만일의 경우 자기가 헤롯의 적으로 드러나게 될 때 헤롯에게 도움을 줄 만한 인물들도 제거해 버렸다. 사실 안티파테르가 동생들에게 음모를 꾸며 그들을 죽게 한것도 부친에 대한 증오에서 기인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무엇보다도 안티파테르가 이렇게 헤롯을 없애려는 일에 열중하게 된 동기는 헤롯이 죽으면 왕권이 확실하게 자기 차지가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리고 만약 헤롯이 죽지 않고 오래 살아있으면 자기가 음모한 일들이 발각되어 부친과 적대관계를 형성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안티파테르는 부친의 친구들, 특히 로마에 있는 헤롯의 친구들에게 많은 선물을 보냈고 그들로 하여금 헤롯에 대한 증오심을 갖게 하도록 갖은 애를 썼다.그리고 누구보다도 수리아의 총독인[㈜ 참). 고대. 16권. 9: 1(277) 각주 144와 전쟁. 1권. 28 : 1(554). ejpimelhthv\”의 의미에 관해서는 고대. 14권. 8 : 1(127) 각주 197을 보라.] 사투르니누스의 형제에게도 상당한 가치의 선물을 보냈고 앞에서 말한[㈜ 즉 요세푸스가 고대. 17권. 1 ; 1(10)에 나오는 이야기를 앞질러 한 Alexas, 참). 전쟁. 1권. 28 : 1(553).] 대신과 결혼한 헤롯의 여동생 살로메에게도 많은 선물을 보냈다. 또한 안티파테르는 사람을 사귀는데 매우 탁월한 재주가 있어서 자기가싫어하는 사람 앞에서도 증오심을 드러내지 않고 상대방을 속여자기를 신임하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이러한 안티파테르도 그의 악한 의도를 훤히 알고 있는 고모 살로메만은 속일 수가 없었다. 살로메는 그의 악한 계획들에 대해 항시 경계를 게을리 하지않았기 때문이었다. 안티파테르는 아리스토불루스의 아내였던 살로메의 딸이[㈜ 베레니케(Berenice) ; 참). 고대. 16권. 1 : 2(11).대. 17권. 73).] 자기의 외삼촌과[㈜ 듀디온(Theudion). 참). 전쟁. 1권. 30 : 5(592)와 다음의 고대. 17권. 4 : 2(70, 73)] 결혼하도록 일을 계획하여 성사시켰다. 살로메의 다른 딸은 살로메의 남편인 칼레아스(Calleas)의 아들[㈜ Alexas ; 참). 전쟁. 1권. 28 : 6(566). 살로메 딸의 이름은 알려져 있지 않음.]과 결혼시켰다. 그러나 살로메는 이전에 그녀가 증오했던[㈜ 아리스토불루스(Aristobulus)에 관한(증오).] 관계와 마찬가지로 이런 정략 결혼들로 안티파테르의 악한 심보를 알아차렸다. 전에 살로메는 자기가 사랑의 감정에 빠졌던 아랍의 실라이우스(Syllaeus)와 결혼하기를 열망했었으나, 헤롯이 강제로 알렉사스(Alexas)와 결혼시키는 바람에 실라이우스와는 헤어지게 되었다. 이때 율리아(Julia)가[㈜ 즉 아구스도의 아내 리비아(livia) ; 참). 고대. 16권. 5 : 1(139)와 다음의 고대. 17권. 5 : 7(141), 6: 1(146), 8 : 1(190).] 헤롯에 동조하여 만약 살로메가 알렉사스와 결혼하지 않으면 그들과 적대관계가 될 것이라고 말하여 살로메를 설득했고 헤롯도 만약 살로메가 알렉사스와의 결혼을 거부한다면 더 이상 상종하지도 않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이에 살로메는 율리아가 로마황제 가이사의 아내이고, 나중에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자기를 도와줄 수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되어서 율리아의 충고를 받아들여 알렉사스와 결혼하였다. 한편 헤롯은 알렉산더의 부인이었던 아켈라오의 딸을[㈜ 글라피라(Glaphyra). 참). 고대. 16권. 1 : 2(11) ; 전쟁. 1권. 28 : 1(552)이하.] 그녀의 부친에게 돌려보내고 그녀가 결혼할때 가지고 온 지참금도 아켈라오와 다투기 싫어 모두 돌려보냈다.
2. 헤롯의 손자들
[㈜ 고대. 1 : 2911) 1권. 28 : 1-3(552, 556-560)에서는 여기에 언급된 사람들의 이름이 나온다.]
헤롯은 죽은 아들들의 자녀들을 매우 신중히 보살펴 주었다.알렉산더는 그라피라를 통해서 두 아들을[㈜ 티그라테스(Tigranes)와 알렉산더(Alexander). 티그라네스는 티그라네스Ⅳ 세로 짧은 기간 동안 아르메니아의 왕이 되었다.(고대. 18권. 5 : 4(139)).] 두었고 아리스토불루스는 살로메의 딸 베레니케(Berenice)에게서 세 아들과[㈜ 아들은(칼키스의)헤롯, 아그립바, 그리고 아리스토불루스였다. 딸들은 헤로디아스(Herodias)와 마리암메(Mariamme)였다. 여기서는 신약성경에서 언급된 헤로디아를 가리킨다(막6 :17, 19, 22 ; 마 14 : 3, 6 ; 눅 3 : 19).] 두딸을 낳았다. 한번은 헤롯이 자기 친구들이 모인 자리에서 손자손녀들을 소개시키고 자기 아들들의 불운한 운명을 애통해 하면서 그런 비운이 손자 손녀들에게만은 임하지 않고 덕스럽고 바르게 잘 자라주기를 기도했다. 그들이 장성하여 결혼하기에 적당한 나이가 되자 알렉산더의 큰 아들은[㈜ 또 다른 알렉산더(Alexander).] 페로라스의 딸과 약혼시켰고 안티파테르의 딸은 아리스토불루스의 큰 아들과[㈜ (칼키스의)헤롯.] 약혼시켰으며, 아리스토불루스의 딸 한 명은 안티파테르의 아들과[㈜ 그 이름은 알려져 있지 않다.] 약혼시키고 아리스토불루스의 다른 딸은 헤롯이 대제사장과의 딸을 통해 얻은 아들과[㈜ 보에투스(Boethus)의 아들인 시몬(Simon)의 둘째 딸인 마리암메(Mariamme) : 참). 고대. 15권.9 : 3(319-322), 17권.4.2(78)] 약혼시켰다. 이렇듯 한 남자가 동시에여러 아내를 두는 것은 고대풍습 중의 하나였다. 헤롯이 죽은 아들의 후손들을 불쌍히 여겨 이같이 짝을 지어주었으나 한편으로는 새로운 결혼관계를 통해 안티파테르와 알렉산더, 그리고 아리스토불루스 가정 사이의 오랜 미움을 없애려는 의도에서 그렇게 동생들의 자녀들까지도 미워했다. 그리고 헤롯이 동생들 자녀의행동에 대해 열정적 관심을 보일 때면 그들이 알렉산더나 아리스토불루스보다 더 뛰어난 인물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 더욱 그들에게 화를 내곤 했다. 또한 아켈라오왕이 왕족인[㈜ 고대. 16권.7 : 4(206).] 그들의 외손자들을 후원하고 있었고 분봉왕인 페로라스도 자기 딸을알렉산더의 아들과 결혼시키기를 원하고 있는 데다가 백성들 또한 부모를 잃은 동생들의 자녀를 불쌍히 여기며 그들을 고아로 만든 장본인이 자기라고 생각하는 것을 볼 때 안티파테르는 그야말로 분통이 터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또한 동생들의 자녀들이 헤롯이 결정한 대로 인척관계를 형성하게 된다면 그들의 권력이 막강하게 되어 자기가 위험하다고 생각한 끝에 헤롯을 찾아가 결혼 상대자를 바꾸어 주도록 간절히 요청하였다. 이에결국 헤롯은 계획을 바꾸어 그의 요청대로 결혼 상대자를 바꾸어 주었다. 그리하여 안티파테르가 아리스토불루스의 딸과 결혼하게 되었고 안타파데르의 아들은 페로라스의 딸과 결혼하게 되었다. 이런 식으로 결국 결혼 대상자가 바뀌었으나 이는 헤롯왕이 진심으로 원하는 바는 아니었다.[㈜ 안티파테르(Antipater)는 페로라스(Pheroras)와 하스모네안(Hasmonaean) 왕국과의 국면을 개선시켰을 것이다.]
3. 헤롯의 아홉 명의 아내
헤롯의 아내는 모두 아흡명이었다. 먼저 안티파테르의 어머니였던 아내가 있었고[㈜ (예루살렘의) 도리스(Doris). 헤롯의 가계에 관해서는 전쟁. 1권. 28 : 4(562) 이하를 참조하라.] 헤롯이라는 이름의 두 아들을 낳은 대제사장의 딸[㈜ 마리암메 2세(Mariamme Ⅱ) (앞부분 참조).], 그리고 형의 딸과 사촌이었던 여인이[㈜ 이름들은 알려져 있지 않음 :사촌이란 그의 부친의 동생인 요셉(Joseph)의딸이 었다. ] 있었는데두 여인은 소생이 없었다. 또한 안디바와 아켈라오와 딸 올림피아스를 낳은 사마리아 출신의 부인이[㈜ 헤롯의 동생 요셉의 아들 : 참). 고대. 17권. 10 : 9(294).] 있었다. 그녀의 딸 올림피아스는 헤롯의 조카[㈜ Malthace.] 요셉과 결혼하였고 그녀의 아들 안디바와 아켈라오는 로마에서 어떤 유대인이 길렀다. 그리고 예루살렘 출신의 여인 클레오파트라는 부인은 헤롯과 빌립이라는 두아들을 낳았는데 그들도 로마에서 양육되었다. 또 파사엘이라는 아들을 남은 팔라스라는 부인이 있었고 록사네라는 딸을 낳은 파이드라와 살로메라는 딸을 낳은 엘피스라는 부인이 있었다.[㈜ 헤롯 계보를 참조] 헤롯은 알렉산더와 아리스토불루스의 어머니. 마리암메(1)가 낳은 딸들중[㈜ 딸들은 키프로스(Cypros)와 살람프시오(Salampsio)였다 : 주전 29년에 처형되 었던 그들의 모친은 마리암메 I세(Mariamme I)이다. ] 한명은 페로라스와 결혼시키려 했으나 페로라스가거절하자 자기 여동생의 아들 안티파테르에게 시집을 보내고 다른 한명은 자기 형의 아들에게[㈜ 즉 파사엘(Phasael).] 출가시켰다. 이상이 헤롯의 가계에 대한 설명이다.

제 17 권 14년 동안의 사건을 다룸
알렉산더와 아리스토불루스의 죽음부터 아켈라오의 추방까지
제 1 장
안티파테르가 자기 형제들을 죽였다는 것 때문에 유대 모든 백성이 그를 미워하게 되었으며 그 이유 때문에 로마에 있는 부친의 친구들에게 많은 선물을 보내 특별한 호의를 얻게 된 것, 수리아 총독 사투르니누스와그 수하에 있는 방백들에게도 선물을 준 것, 그리고 헤롯의 아내와 자녀들에 대하여
1. 안티파테르의 음모
[㈜ 1장=전쟁. 1권. 28 ; 1-6(552-556). 요세푸스의 주 자료는 다메섹의 니콜라스로 이어진다. 그러나 이 작자는 요세푸스보다 앞선 유대전쟁사의 기사를 알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1권.(552)-2권.(116)>. 본문에서 19권까지 요세푸스의 조수는 택커래이가 말하듯이 ‘투키디데스의 조수’라고 할 수 있다. 어떤 특정한 문체가 나타나며 투키디에스의 병행구가 수 없이 많다. 이에 대해 자세한 것은 택커래이(Thackaray)나 드뤼너(Druner)와 다른 학자들의 기록을 보라.]
안티파테르는 헤롯으로 하여금 극악무도한 죄를 저지르도록유인하여 두 형제를 제거하는 데는 성공하였으나 왕권을 획득하려는 그의 계획은 자기 의도대로 쉽게 되지 않았다. 이제 안티파테르는 왕권을 다른 형제들에게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는 벗어났지만[㈜ 헬라어 사본에 관해서는 Schmidt, p.362를 보라.] 백성들이 그를 점점 더 미워하고 있었으므로 왕권 획득은 더욱 어렵고 가능성이 희박해져 갔다. 이러한 어려움 이외에도 백성들이 반란을 일으킬 때마다 진압을 해주던 로마군들과의 관계가 적대적으로 변해 안티파테르는 한층 괴로웠다. 상황이 이처럼 어렵게 된 모든 직접적 원인은 그가 동생 알렉산더와 아리스토불루스를 처형하도록 헤롯을 뒤에서 조종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왕이 된 것이나 다름없이 부친 헤롯과 함께 나라를 통치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는 또한헤롯으로부터 상당한 신임을 받고 있었는데 이는 그가 어떻게하면 헤롯의 비위를 잘 맞춰 그의 총애를 받을 수 있는지를 확실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즉 그는 헤롯의 신변안전을 위하는것처럼 하면서 동생들을 비난했고 헤롯 앞에서 동생들에 대한 자신의 적개심을 절대로 노골적으로는 표현하지 않는 등 교활하게 행동하여[㈜ 참). 라틴어 사본(과 추정되는 사본) : “그런 중상을 함으로써”. ] 헤롯의 두터운 신임를 받게 된 것이다. 물론 이러한 모든 일들도 헤롯을 공격하는 일환으로 행하여졌다. 안티파테르는 자신이 계획하고 있는 왕위 획득을 비난할 소지가 있는자들은 미리 제거해 버렸고, 만일의 경우 자기가 헤롯의 적으로 드러나게 될 때 헤롯에게 도움을 줄 만한 인물들도 제거해 버렸다. 사실 안티파테르가 동생들에게 음모를 꾸며 그들을 죽게 한것도 부친에 대한 증오에서 기인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무엇보다도 안티파테르가 이렇게 헤롯을 없애려는 일에 열중하게 된 동기는 헤롯이 죽으면 왕권이 확실하게 자기 차지가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리고 만약 헤롯이 죽지 않고 오래 살아있으면 자기가 음모한 일들이 발각되어 부친과 적대관계를 형성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안티파테르는 부친의 친구들, 특히 로마에 있는 헤롯의 친구들에게 많은 선물을 보냈고 그들로 하여금 헤롯에 대한 증오심을 갖게 하도록 갖은 애를 썼다.그리고 누구보다도 수리아의 총독인[㈜ 참). 고대. 16권. 9: 1(277) 각주 144와 전쟁. 1권. 28 : 1(554). ejpimelhthv”의 의미에 관해서는 고대. 14권. 8 : 1(127) 각주 197을 보라.] 사투르니누스의 형제에게도 상당한 가치의 선물을 보냈고 앞에서 말한[㈜ 즉 요세푸스가 고대. 17권. 1 ; 1(10)에 나오는 이야기를 앞질러 한 Alexas, 참). 전쟁. 1권. 28 : 1(553).] 대신과 결혼한 헤롯의 여동생 살로메에게도 많은 선물을 보냈다. 또한 안티파테르는 사람을 사귀는데 매우 탁월한 재주가 있어서 자기가싫어하는 사람 앞에서도 증오심을 드러내지 않고 상대방을 속여자기를 신임하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이러한 안티파테르도 그의 악한 의도를 훤히 알고 있는 고모 살로메만은 속일 수가 없었다. 살로메는 그의 악한 계획들에 대해 항시 경계를 게을리 하지않았기 때문이었다. 안티파테르는 아리스토불루스의 아내였던 살로메의 딸이[㈜ 베레니케(Berenice) ; 참). 고대. 16권. 1 : 2(11).대. 17권. 73).] 자기의 외삼촌과[㈜ 듀디온(Theudion). 참). 전쟁. 1권. 30 : 5(592)와 다음의 고대. 17권. 4 : 2(70, 73)] 결혼하도록 일을 계획하여 성사시켰다. 살로메의 다른 딸은 살로메의 남편인 칼레아스(Calleas)의 아들[㈜ Alexas ; 참). 전쟁. 1권. 28 : 6(566). 살로메 딸의 이름은 알려져 있지 않음.]과 결혼시켰다. 그러나 살로메는 이전에 그녀가 증오했던[㈜ 아리스토불루스(Aristobulus)에 관한(증오).] 관계와 마찬가지로 이런 정략 결혼들로 안티파테르의 악한 심보를 알아차렸다. 전에 살로메는 자기가 사랑의 감정에 빠졌던 아랍의 실라이우스(Syllaeus)와 결혼하기를 열망했었으나, 헤롯이 강제로 알렉사스(Alexas)와 결혼시키는 바람에 실라이우스와는 헤어지게 되었다. 이때 율리아(Julia)가[㈜ 즉 아구스도의 아내 리비아(livia) ; 참). 고대. 16권. 5 : 1(139)와 다음의 고대. 17권. 5 : 7(141), 6: 1(146), 8 : 1(190).] 헤롯에 동조하여 만약 살로메가 알렉사스와 결혼하지 않으면 그들과 적대관계가 될 것이라고 말하여 살로메를 설득했고 헤롯도 만약 살로메가 알렉사스와의 결혼을 거부한다면 더 이상 상종하지도 않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이에 살로메는 율리아가 로마황제 가이사의 아내이고, 나중에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자기를 도와줄 수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되어서 율리아의 충고를 받아들여 알렉사스와 결혼하였다. 한편 헤롯은 알렉산더의 부인이었던 아켈라오의 딸을[㈜ 글라피라(Glaphyra). 참). 고대. 16권. 1 : 2(11) ; 전쟁. 1권. 28 : 1(552)이하.] 그녀의 부친에게 돌려보내고 그녀가 결혼할때 가지고 온 지참금도 아켈라오와 다투기 싫어 모두 돌려보냈다.
2. 헤롯의 손자들
[㈜ 고대. 1 : 2911) 1권. 28 : 1-3(552, 556-560)에서는 여기에 언급된 사람들의 이름이 나온다.]
헤롯은 죽은 아들들의 자녀들을 매우 신중히 보살펴 주었다.알렉산더는 그라피라를 통해서 두 아들을[㈜ 티그라테스(Tigranes)와 알렉산더(Alexander). 티그라네스는 티그라네스Ⅳ 세로 짧은 기간 동안 아르메니아의 왕이 되었다.(고대. 18권. 5 : 4(139)).] 두었고 아리스토불루스는 살로메의 딸 베레니케(Berenice)에게서 세 아들과[㈜ 아들은(칼키스의)헤롯, 아그립바, 그리고 아리스토불루스였다. 딸들은 헤로디아스(Herodias)와 마리암메(Mariamme)였다. 여기서는 신약성경에서 언급된 헤로디아를 가리킨다(막6 :17, 19, 22 ; 마 14 : 3, 6 ; 눅 3 : 19).] 두딸을 낳았다. 한번은 헤롯이 자기 친구들이 모인 자리에서 손자손녀들을 소개시키고 자기 아들들의 불운한 운명을 애통해 하면서 그런 비운이 손자 손녀들에게만은 임하지 않고 덕스럽고 바르게 잘 자라주기를 기도했다. 그들이 장성하여 결혼하기에 적당한 나이가 되자 알렉산더의 큰 아들은[㈜ 또 다른 알렉산더(Alexander).] 페로라스의 딸과 약혼시켰고 안티파테르의 딸은 아리스토불루스의 큰 아들과[㈜ (칼키스의)헤롯.] 약혼시켰으며, 아리스토불루스의 딸 한 명은 안티파테르의 아들과[㈜ 그 이름은 알려져 있지 않다.] 약혼시키고 아리스토불루스의 다른 딸은 헤롯이 대제사장과의 딸을 통해 얻은 아들과[㈜ 보에투스(Boethus)의 아들인 시몬(Simon)의 둘째 딸인 마리암메(Mariamme) : 참). 고대. 15권.9 : 3(319-322), 17권.4.2(78)] 약혼시켰다. 이렇듯 한 남자가 동시에여러 아내를 두는 것은 고대풍습 중의 하나였다. 헤롯이 죽은 아들의 후손들을 불쌍히 여겨 이같이 짝을 지어주었으나 한편으로는 새로운 결혼관계를 통해 안티파테르와 알렉산더, 그리고 아리스토불루스 가정 사이의 오랜 미움을 없애려는 의도에서 그렇게 동생들의 자녀들까지도 미워했다. 그리고 헤롯이 동생들 자녀의행동에 대해 열정적 관심을 보일 때면 그들이 알렉산더나 아리스토불루스보다 더 뛰어난 인물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 더욱 그들에게 화를 내곤 했다. 또한 아켈라오왕이 왕족인[㈜ 고대. 16권.7 : 4(206).] 그들의 외손자들을 후원하고 있었고 분봉왕인 페로라스도 자기 딸을알렉산더의 아들과 결혼시키기를 원하고 있는 데다가 백성들 또한 부모를 잃은 동생들의 자녀를 불쌍히 여기며 그들을 고아로 만든 장본인이 자기라고 생각하는 것을 볼 때 안티파테르는 그야말로 분통이 터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또한 동생들의 자녀들이 헤롯이 결정한 대로 인척관계를 형성하게 된다면 그들의 권력이 막강하게 되어 자기가 위험하다고 생각한 끝에 헤롯을 찾아가 결혼 상대자를 바꾸어 주도록 간절히 요청하였다. 이에결국 헤롯은 계획을 바꾸어 그의 요청대로 결혼 상대자를 바꾸어 주었다. 그리하여 안티파테르가 아리스토불루스의 딸과 결혼하게 되었고 안타파데르의 아들은 페로라스의 딸과 결혼하게 되었다. 이런 식으로 결국 결혼 대상자가 바뀌었으나 이는 헤롯왕이 진심으로 원하는 바는 아니었다.[㈜ 안티파테르(Antipater)는 페로라스(Pheroras)와 하스모네안(Hasmonaean) 왕국과의 국면을 개선시켰을 것이다.]
3. 헤롯의 아홉 명의 아내
헤롯의 아내는 모두 아흡명이었다. 먼저 안티파테르의 어머니였던 아내가 있었고[㈜ (예루살렘의) 도리스(Doris). 헤롯의 가계에 관해서는 전쟁. 1권. 28 : 4(562) 이하를 참조하라.] 헤롯이라는 이름의 두 아들을 낳은 대제사장의 딸[㈜ 마리암메 2세(Mariamme Ⅱ) (앞부분 참조).], 그리고 형의 딸과 사촌이었던 여인이[㈜ 이름들은 알려져 있지 않음 :사촌이란 그의 부친의 동생인 요셉(Joseph)의딸이 었다. ] 있었는데두 여인은 소생이 없었다. 또한 안디바와 아켈라오와 딸 올림피아스를 낳은 사마리아 출신의 부인이[㈜ 헤롯의 동생 요셉의 아들 : 참). 고대. 17권. 10 : 9(294).] 있었다. 그녀의 딸 올림피아스는 헤롯의 조카[㈜ Malthace.] 요셉과 결혼하였고 그녀의 아들 안디바와 아켈라오는 로마에서 어떤 유대인이 길렀다. 그리고 예루살렘 출신의 여인 클레오파트라는 부인은 헤롯과 빌립이라는 두아들을 낳았는데 그들도 로마에서 양육되었다. 또 파사엘이라는 아들을 남은 팔라스라는 부인이 있었고 록사네라는 딸을 낳은 파이드라와 살로메라는 딸을 낳은 엘피스라는 부인이 있었다.[㈜ 헤롯 계보를 참조] 헤롯은 알렉산더와 아리스토불루스의 어머니. 마리암메(1)가 낳은 딸들중[㈜ 딸들은 키프로스(Cypros)와 살람프시오(Salampsio)였다 : 주전 29년에 처형되 었던 그들의 모친은 마리암메 I세(Mariamme I)이다. ] 한명은 페로라스와 결혼시키려 했으나 페로라스가거절하자 자기 여동생의 아들 안티파테르에게 시집을 보내고 다른 한명은 자기 형의 아들에게[㈜ 즉 파사엘(Phasael).] 출가시켰다. 이상이 헤롯의 가계에 대한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