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신학의 정립기(4-7C):본격적 교부시대

제2장 신학의 정립기(4-7C):
본격적 교부시대

이 시대에는 3C동안 단속적으로 가해지는 박해가 끝나고 교회가 드러나게 활동을 전개할수 있게 되어 찬란한 그리스도교 문화를 개척할 시기이다.

제1절 시대배경

AD313에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그리스도교의 자유를 선언하였고 (밀라노 칙령),380년에 Theodotius(테오로시우스)황제가 그리스도교를 로마의 국교로 선언하였고 391년에는 모든 비 그리스도교 종교를 금지하였다.
이 시대의 교회가 오랫동안 칙거하던 상태에서 벗어나 로마 제국안에서 성행하는 희랍문화와의 접촉이다. 희랍문화의 골자는 매사에 있어서 합리주의를 주구하는데 있었기 때문에 희랍철학은 그리스도교를 설명하는데 큰 도움이 되지만 그것이 도를 넘을때는 신앙을 이론화하고 종교를 철학화하는 위험이 커다. 이 시대의 교부들의 과제는 이 철학적 도구를 사용하면서도 그 위험에 빠지지 말아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었다.
둘째 문제는 교회는 숨어서 각자의 신앙을 보존하기에 급급하던 상태에서 공식예배와 공적활동이 가능해지면서 로마제국안에서 하나의 사회단체로서 성장하고 있었다. 여기에는 법률의 천재인 로마의 여러가지 사회제도를 모방하여 교회를 조직하고 운영하게 됨으로서 질서있는 사회를 이룩할 수 있었지만 그 조직화내지 사회화가 지나치게 될때 교회의 신앙생활이 신학에 의해서 보다 교회법에 듸해 지배되고 교회와 국가가 병립하거나 이해관계에 따라서는 대립학 수도 있었다.
교회 자체가 로마 제국의 사회 조직을 본딴 사회조직이 되고 또 국가의 보호를 받음으로써 여러가지 혜택을 받고 특권을 누리게 되었으며 그것 때문에 교회와 국가가 더욱 밀접히 결합되어 국가의 간섭이 늘어나게 되고 로마제국이 동. 서로 분리됨에 따라서 교회도 차차 동. 서로 양분되는 길을 걷게 되었다. 동. 서방교회의 분리는 중세기에 완결되었지만 4C부터 시작되었다.
4C말 부터는 로마의 공용어는 라틴어가 되고 동방은 희랍어를 계속사용하여 사고방식이나 전례자 율법이나 관습의 차이가 생기면서 신앙의 분리 이전에 민족 감정의 분니가 먼저 왔다.
결국 신학의 세계도 이러한 문화적 배경의 차이로써 동방 교부들과 서방교부들의 구별이 생겨남.
동방 교부라면 희랍어 지역 학자들을 통치하는 것인데 학분의 중심지들은 알렉산드리아,안티오키아,그리고 동로마 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폴 이다. 이 세학파들은 서로 학문적 논쟁뿐 아니라 주교좌들의 권력다툼도 겸하고 있다.
서방 교부들은 라틴어 지역 학자들인데 학문의 중심지는 물론 첫째는 로마요,둘째는 아프리카의 카르타고 였다. 서방 교회에서는 로마의 권위가 너무 컸기 때문에 사소한 시비를 제외하고는 주교좌들의 권력다툼은 별로 없었고 항상 로마의 권위에 도전하는 동방 주교좌들을 견제하는 일에 바쁘다. 그러나,아직까지 동서방 교부들의 신앙의 일치는 완전하였고 두 신학은 상호 보완적 관계에 있다.
이러한 환경하에서 교부들은 신앙의 이론적 탐구와 아울러 신학과 교회의 실생활의 연결에 주력하였고 그들은 학자로서의 활약과 동시에 목자로서 직무를 이행하면서도 그 시대의 사고방식인 Neoplatonism을 떠날 수 없었기 때문에 체계적으로 신학을 전개할 때에는 희랍 철학의 개념과 용어와 논리를 원용하고 있다. 아우구스티누스에 이르러서는 희랍철학을 완전히 신학연구의 도구로 이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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