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절 근세신학(16C에서 19C)
인본주의의 보급으로 시작된 이 시대의 새로운 인간은 신앙을 받아들이고 연구함에 있어서 역사정신,비판정신 뿐아니라 세계를 정복하는 기술을 배우고 바야흐로 과학의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이 시대의 평배한 비판 정신은 종교계에서 마침내 종교 개혁이라는 일종의 정신혁명으로 발전,종교개혁은 전통적인 모든 교리 체계에 의문을 던졌고 교회생활의 모든 부분에 개혁을 주장.
루터는 성서만에 의지해서 Sola Scriptura 은총으로서만 Sola Gratia 구원이 가능하고 그것을 Sola Fide 신앙만으로서 얻으려 하였다.
그는 자기의 논거를 사도 바울로와 아우구스티노를 두고 은총의 외적 표지들을 경시한다. 개종론자들은 율법과 은총,덕행과 신앙,육체와 정신,죄악과 사죄,죽음과 구원,등의 테마를 중심으로 비관론적인 신학을 주장하여 세례를 제외한 모든 성사를 부인하고 교도권과 성직을 부정하고 성서외에 모든 성전을 포기하였다. 이런 상황은 대중에게도 호응을 불러 일으켜 정치문제,사회 문제화하여 결국 서방 교회를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로 양분하고 말았다. 이러한 분열은 단순한 이단의 발호가 아니라 두개의 구원관,교회관의 충동이라 말할수있고 당시의 교회당국이나 학자들이나,신자대중의 시대김각이 무딘데에 종교개혁 운동의 성공의 원인이 있다. 루터가 교회를 떠난후 25년이 지난후에야 트리엔트 공의회Trent(1545-1563)가 열렸다. 트리엔트 공의회는 개신 교도들의 주장에 대항하여 성경뿐만아니라 성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교도권의 권위를 재확인하고 덕행과 공로,칠성사의 확정,교계제도와 그 사제직을 옹호하고 신앙생활의 규율을 정돈하고 일사 불란한 지도체제를 구축하였다.
신학계에서는 교부들과 과거의 공의회에 의거하여 가톨릭의 전통적 가르침을 옹호하는 호교론이 활발히 전개되었다. 그 중에서더 S. Robertus Bellarminus(+1621)의 호교론은 후대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쳐서 오늘의 교회의 법률적 구성의 바탕이 되었다.
스콜라 신학자들도 호교론을 전개하면서 토마스의 전통을 계속하였다. 그중에서도 뛰어난 몇 사람은 Franciscus Suarez(+1611)는 예수회의 대표적 신학자로 인정되고 교의 신학과 윤리 신학에도 큰 역할을 하였다.
16C말부터 영성신학이 교의 신학에서 분립하여 발생하고 (Avilla)아빌라의 성녀 데레사(+1582),십자가의 S요한(Joannes de cruce)같은 대가가 스페인에서 출현하였고,프랑스에는 영성신학의 프랑스 학파가 생길정도였다.
ex)S. Franciscus Salesius(+1622)
16-17C에는 거의 모든 신학자들이 영성신학과 윤리신학을 발전시켰고 18C에는 윤리신학의 대가 S. Alphonsus de Ligouri(+1787)가 출현하였다.
19C초에는 스콜라 신학은 호된 비판을 받고 대치할 철학은 없어서 삽다한 철학체계가 신학에 혼입되는 지경이었고 프랑스 대혁명이후로는 국가나 교회의 권위가 실추되고 전통이 경시되면서 종래의 이론적 추리적 신학의 내용자체가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이러한 불신앙의 보편화를 눈앞에 두고 교회당국은 신자들의 진로를 명시하고자 제1차 바티칸 공의회(1869)를 열어서 신앙과 이성의 가치를 재구성하고 모든 합리주의적 무신론적 사고방식을 배격하고 교황의 정신적 권위 즉 수위권(首位권)과 무류권(無謬권)을 선언하였다. 1차 바티칸 공의회에도 불구하고 사회는 점점더 교회가 가르치는 방향과는 반대로 전하면서 역사상 가장 비참한 격돌의 세기인 20C로 들어선다. 이러한 세상의 돌변앞에 종래의 신학은 무력하기 짝이 없고 대중은 점점 더 교회에서 멀어져간다.
제3절 현대 신학의 준비와 그 과제
제1항 새로운 신학 시조
인류 문화의 유산을 대량으로 재발견하고 재평가한 시대는 르네상스 보다 오히려 19C에 과학 발전시기라 본다. 독일에서 L. Ven Ranke(+1886)를 정점으로 하여 역사학이 과학으로 정립되면서 본격적인 고전 연구의 붐이 일어났고 교회학문의 방법론의 변혁을 가져왔으니 이 방법론은 어떤 사물의 역사와 사변을 종합해야 그 사물을 정확하게 인식할수 있다는 주장이다.
a)Tubingen학파
이 새로운 신학 방법론을 확립하고 신학의 쇄신을 시작한 것이 Tubingen대학의 신학부였다. Tubigen학파는 사물의 정적 개념의 분석과 철학적 구조에만 치우치던 신학에다 역사적 성격의 탐구를 통해 생명적 이고 동적인 현상을 탐구하는 기풍을 불어넣었다. 그중에서도 Johannes Adam Mohler(+1838)는 동료들과 함깨 합리주의자들 앞에서 역사적 탐구와 사변적 전개를 종합하는 신학의 부흥기틀을 잡았고 신학안에 진보의 개념을 도입하여 살아있는 전통안에서 하느님의 계시를 찾고자 하였다. 이 방법을 신학에 전개하면 교회가 살아온 역사를 깊이 인식하지 않고서는 당대의 교회모습을 알수 없고 따라서 참된 신학이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면 신학이 교회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교회 생활안에서 신학이 생기고 자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b)교부학
역사학의 자극으로 교부학의 비상한 발전의 초래되었다. 그때까지 알려져 있던 서방교부뿐아니라 초대 교회의 교부들과 동방교부들에 대한 연구가 성행하여 유실된 원문의 발견,원문의 비판,각국어로의 번역이 속출되었다. 그래서 많은 전집들이 발간되었고,따라서 옥스포드,Wien(빈), ,Berlin,Tubingen등이 교부학 연구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렇게 교회의 발전사를 알게되어 동방교회와 서방교회 전체에 교회상과 신학사를 알게 되어서 총체적인 그리스도교의 전통을 알게되었다.
c)교부학의 발전은 성서학의 발전을 촉진하였다. 루터이후로 개신교도들은 성서를 신앙의 유일한 근거로 삼고 개인주의적 해석을 서슴치 않을 뿐 아니라 성서를 역사적 문헌의 하나로 취급하여 성서의 일부의 정전성(正典性-Camonicitas)을 의심하기까지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갸톨릭의 성서연구는 처음에는 호교적 입장에서 연구하였으나 차츰 인류학,고고학,민속학,언어학등의 발달에 힘입어 성서를 과학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하여 원문 재구성과 비판뿐 아니라 소위 성서 입문학등이 발전하고 성서주석 방법른이 혁신되었다.
가톨릭의 현대적 성서 연구방법을 인정하고 권장한 것이 교황 비오12세의 회칙“Divino afflante Spiritu”(1943)였다. 학계의 동향은 교회당국의 장려와 합하여 대중사이에 성서 운동을 일으켰다. 연구협회,성서번역,성서 보급판등이 속출했다.
d)고전 연구의 붐은 사도 시대와 교부시대의 교회의 생활상을 말려 주었고 특히 전례적 현상에 대한 놀라운 발견들을 갸져왔다. 고대의 전례서의 발견과 비교 연구와 아울러 전례쇄신 운동이 일어났다.
이러한 전례 연구와 전례쇄신 운동의 지침을 제시한 것이 교황비오 12세의 회칙”Mediatos Dei(1947)”이었다.
e)교부학,성서학,전례학의 발달은 자연스럽게 교의신학과 윤리신학등에 새로운 과제,방향,방법을 제공하였다. 새로 발견된 풍부한 소재와 더 오래되고 권위있는 전통의 재발견으로 신학의 체계를 개편케하여 사변신학외에 실증신학을 일으켰다.
교의신학에 있어서는 계시의 역사와 개념을 깊이하여 성삼론,강생구속론,성령론에 있어서 그리스도 중심주의가 성해지고 서방교회의 신학전 논단을 동방교회의 신학으로 보충,수정케하였다. 교의신학에서 두드러진 변화는 교회론과 성사론이다. 교회론은 교회 구주론 내지 기능론 위주에서 교회의 본질론으로 심화 되어서 그리스도의 신비체요 하느님의 백성으로 나타나는 Misterium(신비탐구주의)로 옮겨졌다.
성사론에 있어서는 성사의 재료와 형식위주에서 그 상징성에 주목하고 대사으로서의 성사보다 행동으로서의 성사에 중점을 두고 있다. 다시 말해서 성사란 우리가 하느님의 은총을 얻는것방법만이 아니라 그 이전에 하느님의 은총이 어떻게 우리에게 작용하는지를 탐구하는 것이다.
윤리신학에 있어서는 권선징악적인 거룩한 윤리학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모범하는 애덕을 기초로 하는 그리스챤 실존의 성화라는 것을 다루는 학문이 되어가고 있다.
제2항 현대 사회의 변천과 신학의 과제
20C에 들어오면서 매스컴의 급진적인 발달과 사회의 민주화와 더불어 도시화 산업화로 인하여 20C사회는 전반적으로 탈교회화 할뿐아니라 비 그리스도교화 하고 있다. 흘러들어온 노동자의급증과 그들의 냉담이 끼친 영향때문에 J. O. C, J. A. C (가톨릭 노동 단체)기타 사제직 운동이 일어났고 이러한 운동이 사목의 쇄신을 자극하였다.
과제
(a)설교 신학(Th. Kerygmatica)
사목의 쇄신중에 절실한 것은 신자의 재교육이었고 문답식 교리교부법을 탈피하여 성서를 바탕으로 하는 교리 교수법의 현대화를 시도하게 되었다.
(b)선교 신학(Missiologia)
다른 한편 막대한 연구와 고유한 문화 전통과 종교 전통을 가진 비 유럽지역에 선교를 위하여 유럽적 문화배경을 가진 소수의 선교사들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애로가 많았다. 여기에 포교방법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가 요청되었고 새로운 포교신학이 발전하였다. 이 선교상의 문제는 단순한 언어의 문제가 아니라 그리스티아니즘의 본질적 진리가 이 시대 이지역 사람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느냐가 문제다.
(c)평신도 신학
평신도들의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많은 사도직 단체들이 조직되고 평신자들의 신원에 관한 연구가 깊이있게 진행되어 갔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면 평신도들은 그 몸의 가장 큰 부분이며 교회가 하느님의 백성이라면 평신도가 이 백성들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므로 성직이나 수도생활이 특수한 생활인 것처럼 평신도 직분도 엄연한 성소이다.
(d)교회직무론(Th. Ministerii)
평신도의 위치와 사명의 재검토는 필연적으로 교계적 사제직의 위치와 임무에 대한 재검토를 유발하고 더욱 일선 사목의 쇄신의 필요성을 지금까지 전체교회의 한 부분이라고만 생각되던 지방 교회의 존재 의미와 지방 교회의 초석인 주교직의 의미를 재검토하게 되었다.
(e)교회일치문제(Oecumenism)
가톨릭 내부의 변화와 신학의 쇄신은 비가톨릭 그리스도교파의 존재와 활동에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늦게나마 그리스도 일치운동과의 접촉을 시작하게 되었다. 가톨릭 교회밖에서 시작된 일치운동에 대하여 교회의 최고 당국의 태도는 처음에는 회의적이고 부정적이었다. 그러나 일치운동이 가톨릭과 무관하게 발전하고 있는 동안 가톨릭의 일부신학자나 사목자들만에 이 문제에 관한 연구가 진행되었고 1935년에는 일치를 위한 기도 주간이 Lyon(리용)의 Couturier에 의해 제창되고 보급되었다.
제3항 제2차 Vatican 공의회(1962-1965)
교황 요한 23세께서 1959년에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소집했다. 공의회는 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을 비롯한 4개의 헌장(Constitutio)과 9개의 교령(Decretum)과 3개의 선언(Declaratio)을 공포하고 폐막하면서 온 세상에 메세지를 발표하였다. 우리는 이러한 문헌의 정신을 교의사적 관점에서 종합하여 본다. 이번 공의회의 특색은 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교회가 자기 모습 전체를 복음이라는 거울에 투사하여 명백한 자아 의식을 표명하였다는데 있다. (*그 전까지 있었던 수차례의 공의회는 어떤 문제에 대한 교회 자신의 태도를 밝히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이었으나 이번 공의회는 전자의 내용보다는 교회 자체의 존재 존립근거를 반성하고 있는 것이 특색)
a)교회는 먼저 자신을 하느님과 관련에서 내성(內省)한다. 즉 교회의 신적 국면을 고려하고 신비적 의식(Consientia mysterica)을 가지게 된다. 교회의 기원과 성장 과정과 그 완성을 하느님의 영원한 구원의 경륜안에서 고찰하고 있다.
*경륜이란? 구원의 경륜(=계획,Economia salutis)
b)교회는 자신을 인간과의 관련에서 내성한다. 즉 인간적 국면을 고려하면서 성사적 의식(Conscientia sacramentalis)을 가지게 된다. 교회는 원성사.
*성사:인간의 눈에 보이지않는 은총을 우리에게 수여히. . .
그래서 교회는 인류역사안에서 구원의 경륜을 떠시는 구체적 방법인 하느님의 백성으로 나타난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신비체라는 영성적 교회관과 구원의 기관이요 도구라는 사회적 교회관을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성서적 개념으로 통합하고 신적이요 인간적 구조를 가진 교회의 실재를 설명하고 스스로를 은총의 표지인 큰 성사로 간주한다.
c)교회는 자신을 우주의 역사안에서 내성한다. 하느님의 백성이 영원의 완성을 향하여 현세에서 계속 순례하는 역사적 국면을 고찰하면서 종말지향적 자기 의식(Conscientia eschatologia)을 가지게 된다. 교회는 현세의 어느순간에도 완성된것이 아니고 미래의 완성을 향하여 순례하면서 끊임없이 자기를 정화할 필요를 느낀다.
역사안에서의 자신의 실존을 인식하는 교회는 자신의 존재 상황인 현세 사물에 대하여 적극적 평가를 내리고 세상과의 대화와 협력을 통하여 세상 만사를 복음화하고자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이들과 모든 선의의 인간들의 노력을 치하하고 교회가 줄수있는 모든 원조와 협력을 약속하고 있다.
제3장 신학의 발전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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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절 근세신학(16C에서 19C)
인본주의의 보급으로 시작된 이 시대의 새로운 인간은 신앙을 받아들이고 연구함에 있어서 역사정신,비판정신 뿐아니라 세계를 정복하는 기술을 배우고 바야흐로 과학의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이 시대의 평배한 비판 정신은 종교계에서 마침내 종교 개혁이라는 일종의 정신혁명으로 발전,종교개혁은 전통적인 모든 교리 체계에 의문을 던졌고 교회생활의 모든 부분에 개혁을 주장.
루터는 성서만에 의지해서 Sola Scriptura 은총으로서만 Sola Gratia 구원이 가능하고 그것을 Sola Fide 신앙만으로서 얻으려 하였다.
그는 자기의 논거를 사도 바울로와 아우구스티노를 두고 은총의 외적 표지들을 경시한다. 개종론자들은 율법과 은총,덕행과 신앙,육체와 정신,죄악과 사죄,죽음과 구원,등의 테마를 중심으로 비관론적인 신학을 주장하여 세례를 제외한 모든 성사를 부인하고 교도권과 성직을 부정하고 성서외에 모든 성전을 포기하였다. 이런 상황은 대중에게도 호응을 불러 일으켜 정치문제,사회 문제화하여 결국 서방 교회를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로 양분하고 말았다. 이러한 분열은 단순한 이단의 발호가 아니라 두개의 구원관,교회관의 충동이라 말할수있고 당시의 교회당국이나 학자들이나,신자대중의 시대김각이 무딘데에 종교개혁 운동의 성공의 원인이 있다. 루터가 교회를 떠난후 25년이 지난후에야 트리엔트 공의회Trent(1545-1563)가 열렸다. 트리엔트 공의회는 개신 교도들의 주장에 대항하여 성경뿐만아니라 성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교도권의 권위를 재확인하고 덕행과 공로,칠성사의 확정,교계제도와 그 사제직을 옹호하고 신앙생활의 규율을 정돈하고 일사 불란한 지도체제를 구축하였다.
신학계에서는 교부들과 과거의 공의회에 의거하여 가톨릭의 전통적 가르침을 옹호하는 호교론이 활발히 전개되었다. 그 중에서더 S. Robertus Bellarminus(+1621)의 호교론은 후대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쳐서 오늘의 교회의 법률적 구성의 바탕이 되었다.
스콜라 신학자들도 호교론을 전개하면서 토마스의 전통을 계속하였다. 그중에서도 뛰어난 몇 사람은 Franciscus Suarez(+1611)는 예수회의 대표적 신학자로 인정되고 교의 신학과 윤리 신학에도 큰 역할을 하였다.
16C말부터 영성신학이 교의 신학에서 분립하여 발생하고 (Avilla)아빌라의 성녀 데레사(+1582),십자가의 S요한(Joannes de cruce)같은 대가가 스페인에서 출현하였고,프랑스에는 영성신학의 프랑스 학파가 생길정도였다.
ex)S. Franciscus Salesius(+1622)
16-17C에는 거의 모든 신학자들이 영성신학과 윤리신학을 발전시켰고 18C에는 윤리신학의 대가 S. Alphonsus de Ligouri(+1787)가 출현하였다.
19C초에는 스콜라 신학은 호된 비판을 받고 대치할 철학은 없어서 삽다한 철학체계가 신학에 혼입되는 지경이었고 프랑스 대혁명이후로는 국가나 교회의 권위가 실추되고 전통이 경시되면서 종래의 이론적 추리적 신학의 내용자체가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이러한 불신앙의 보편화를 눈앞에 두고 교회당국은 신자들의 진로를 명시하고자 제1차 바티칸 공의회(1869)를 열어서 신앙과 이성의 가치를 재구성하고 모든 합리주의적 무신론적 사고방식을 배격하고 교황의 정신적 권위 즉 수위권(首位권)과 무류권(無謬권)을 선언하였다. 1차 바티칸 공의회에도 불구하고 사회는 점점더 교회가 가르치는 방향과는 반대로 전하면서 역사상 가장 비참한 격돌의 세기인 20C로 들어선다. 이러한 세상의 돌변앞에 종래의 신학은 무력하기 짝이 없고 대중은 점점 더 교회에서 멀어져간다.
제3절 현대 신학의 준비와 그 과제
제1항 새로운 신학 시조
인류 문화의 유산을 대량으로 재발견하고 재평가한 시대는 르네상스 보다 오히려 19C에 과학 발전시기라 본다. 독일에서 L. Ven Ranke(+1886)를 정점으로 하여 역사학이 과학으로 정립되면서 본격적인 고전 연구의 붐이 일어났고 교회학문의 방법론의 변혁을 가져왔으니 이 방법론은 어떤 사물의 역사와 사변을 종합해야 그 사물을 정확하게 인식할수 있다는 주장이다.
a)Tubingen학파
이 새로운 신학 방법론을 확립하고 신학의 쇄신을 시작한 것이 Tubingen대학의 신학부였다. Tubigen학파는 사물의 정적 개념의 분석과 철학적 구조에만 치우치던 신학에다 역사적 성격의 탐구를 통해 생명적 이고 동적인 현상을 탐구하는 기풍을 불어넣었다. 그중에서도 Johannes Adam Mohler(+1838)는 동료들과 함깨 합리주의자들 앞에서 역사적 탐구와 사변적 전개를 종합하는 신학의 부흥기틀을 잡았고 신학안에 진보의 개념을 도입하여 살아있는 전통안에서 하느님의 계시를 찾고자 하였다. 이 방법을 신학에 전개하면 교회가 살아온 역사를 깊이 인식하지 않고서는 당대의 교회모습을 알수 없고 따라서 참된 신학이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면 신학이 교회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교회 생활안에서 신학이 생기고 자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b)교부학
역사학의 자극으로 교부학의 비상한 발전의 초래되었다. 그때까지 알려져 있던 서방교부뿐아니라 초대 교회의 교부들과 동방교부들에 대한 연구가 성행하여 유실된 원문의 발견,원문의 비판,각국어로의 번역이 속출되었다. 그래서 많은 전집들이 발간되었고,따라서 옥스포드,Wien(빈), ,Berlin,Tubingen등이 교부학 연구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렇게 교회의 발전사를 알게되어 동방교회와 서방교회 전체에 교회상과 신학사를 알게 되어서 총체적인 그리스도교의 전통을 알게되었다.
c)교부학의 발전은 성서학의 발전을 촉진하였다. 루터이후로 개신교도들은 성서를 신앙의 유일한 근거로 삼고 개인주의적 해석을 서슴치 않을 뿐 아니라 성서를 역사적 문헌의 하나로 취급하여 성서의 일부의 정전성(正典性-Camonicitas)을 의심하기까지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갸톨릭의 성서연구는 처음에는 호교적 입장에서 연구하였으나 차츰 인류학,고고학,민속학,언어학등의 발달에 힘입어 성서를 과학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하여 원문 재구성과 비판뿐 아니라 소위 성서 입문학등이 발전하고 성서주석 방법른이 혁신되었다.
가톨릭의 현대적 성서 연구방법을 인정하고 권장한 것이 교황 비오12세의 회칙“Divino afflante Spiritu”(1943)였다. 학계의 동향은 교회당국의 장려와 합하여 대중사이에 성서 운동을 일으켰다. 연구협회,성서번역,성서 보급판등이 속출했다.
d)고전 연구의 붐은 사도 시대와 교부시대의 교회의 생활상을 말려 주었고 특히 전례적 현상에 대한 놀라운 발견들을 갸져왔다. 고대의 전례서의 발견과 비교 연구와 아울러 전례쇄신 운동이 일어났다.
이러한 전례 연구와 전례쇄신 운동의 지침을 제시한 것이 교황비오 12세의 회칙”Mediatos Dei(1947)”이었다.
e)교부학,성서학,전례학의 발달은 자연스럽게 교의신학과 윤리신학등에 새로운 과제,방향,방법을 제공하였다. 새로 발견된 풍부한 소재와 더 오래되고 권위있는 전통의 재발견으로 신학의 체계를 개편케하여 사변신학외에 실증신학을 일으켰다.
교의신학에 있어서는 계시의 역사와 개념을 깊이하여 성삼론,강생구속론,성령론에 있어서 그리스도 중심주의가 성해지고 서방교회의 신학전 논단을 동방교회의 신학으로 보충,수정케하였다. 교의신학에서 두드러진 변화는 교회론과 성사론이다. 교회론은 교회 구주론 내지 기능론 위주에서 교회의 본질론으로 심화 되어서 그리스도의 신비체요 하느님의 백성으로 나타나는 Misterium(신비탐구주의)로 옮겨졌다.
성사론에 있어서는 성사의 재료와 형식위주에서 그 상징성에 주목하고 대사으로서의 성사보다 행동으로서의 성사에 중점을 두고 있다. 다시 말해서 성사란 우리가 하느님의 은총을 얻는것방법만이 아니라 그 이전에 하느님의 은총이 어떻게 우리에게 작용하는지를 탐구하는 것이다.
윤리신학에 있어서는 권선징악적인 거룩한 윤리학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모범하는 애덕을 기초로 하는 그리스챤 실존의 성화라는 것을 다루는 학문이 되어가고 있다.
제2항 현대 사회의 변천과 신학의 과제
20C에 들어오면서 매스컴의 급진적인 발달과 사회의 민주화와 더불어 도시화 산업화로 인하여 20C사회는 전반적으로 탈교회화 할뿐아니라 비 그리스도교화 하고 있다. 흘러들어온 노동자의급증과 그들의 냉담이 끼친 영향때문에 J. O. C, J. A. C (가톨릭 노동 단체)기타 사제직 운동이 일어났고 이러한 운동이 사목의 쇄신을 자극하였다.
과제
(a)설교 신학(Th. Kerygmatica)
사목의 쇄신중에 절실한 것은 신자의 재교육이었고 문답식 교리교부법을 탈피하여 성서를 바탕으로 하는 교리 교수법의 현대화를 시도하게 되었다.
(b)선교 신학(Missiologia)
다른 한편 막대한 연구와 고유한 문화 전통과 종교 전통을 가진 비 유럽지역에 선교를 위하여 유럽적 문화배경을 가진 소수의 선교사들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애로가 많았다. 여기에 포교방법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가 요청되었고 새로운 포교신학이 발전하였다. 이 선교상의 문제는 단순한 언어의 문제가 아니라 그리스티아니즘의 본질적 진리가 이 시대 이지역 사람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느냐가 문제다.
(c)평신도 신학
평신도들의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많은 사도직 단체들이 조직되고 평신자들의 신원에 관한 연구가 깊이있게 진행되어 갔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면 평신도들은 그 몸의 가장 큰 부분이며 교회가 하느님의 백성이라면 평신도가 이 백성들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므로 성직이나 수도생활이 특수한 생활인 것처럼 평신도 직분도 엄연한 성소이다.
(d)교회직무론(Th. Ministerii)
평신도의 위치와 사명의 재검토는 필연적으로 교계적 사제직의 위치와 임무에 대한 재검토를 유발하고 더욱 일선 사목의 쇄신의 필요성을 지금까지 전체교회의 한 부분이라고만 생각되던 지방 교회의 존재 의미와 지방 교회의 초석인 주교직의 의미를 재검토하게 되었다.
(e)교회일치문제(Oecumenism)
가톨릭 내부의 변화와 신학의 쇄신은 비가톨릭 그리스도교파의 존재와 활동에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늦게나마 그리스도 일치운동과의 접촉을 시작하게 되었다. 가톨릭 교회밖에서 시작된 일치운동에 대하여 교회의 최고 당국의 태도는 처음에는 회의적이고 부정적이었다. 그러나 일치운동이 가톨릭과 무관하게 발전하고 있는 동안 가톨릭의 일부신학자나 사목자들만에 이 문제에 관한 연구가 진행되었고 1935년에는 일치를 위한 기도 주간이 Lyon(리용)의 Couturier에 의해 제창되고 보급되었다.
제3항 제2차 Vatican 공의회(1962-1965)
교황 요한 23세께서 1959년에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소집했다. 공의회는 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을 비롯한 4개의 헌장(Constitutio)과 9개의 교령(Decretum)과 3개의 선언(Declaratio)을 공포하고 폐막하면서 온 세상에 메세지를 발표하였다. 우리는 이러한 문헌의 정신을 교의사적 관점에서 종합하여 본다. 이번 공의회의 특색은 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교회가 자기 모습 전체를 복음이라는 거울에 투사하여 명백한 자아 의식을 표명하였다는데 있다. (*그 전까지 있었던 수차례의 공의회는 어떤 문제에 대한 교회 자신의 태도를 밝히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이었으나 이번 공의회는 전자의 내용보다는 교회 자체의 존재 존립근거를 반성하고 있는 것이 특색)
a)교회는 먼저 자신을 하느님과 관련에서 내성(內省)한다. 즉 교회의 신적 국면을 고려하고 신비적 의식(Consientia mysterica)을 가지게 된다. 교회의 기원과 성장 과정과 그 완성을 하느님의 영원한 구원의 경륜안에서 고찰하고 있다.
*경륜이란? 구원의 경륜(=계획,Economia salutis)
b)교회는 자신을 인간과의 관련에서 내성한다. 즉 인간적 국면을 고려하면서 성사적 의식(Conscientia sacramentalis)을 가지게 된다. 교회는 원성사.
*성사:인간의 눈에 보이지않는 은총을 우리에게 수여히. . .
그래서 교회는 인류역사안에서 구원의 경륜을 떠시는 구체적 방법인 하느님의 백성으로 나타난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신비체라는 영성적 교회관과 구원의 기관이요 도구라는 사회적 교회관을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성서적 개념으로 통합하고 신적이요 인간적 구조를 가진 교회의 실재를 설명하고 스스로를 은총의 표지인 큰 성사로 간주한다.
c)교회는 자신을 우주의 역사안에서 내성한다. 하느님의 백성이 영원의 완성을 향하여 현세에서 계속 순례하는 역사적 국면을 고찰하면서 종말지향적 자기 의식(Conscientia eschatologia)을 가지게 된다. 교회는 현세의 어느순간에도 완성된것이 아니고 미래의 완성을 향하여 순례하면서 끊임없이 자기를 정화할 필요를 느낀다.
역사안에서의 자신의 실존을 인식하는 교회는 자신의 존재 상황인 현세 사물에 대하여 적극적 평가를 내리고 세상과의 대화와 협력을 통하여 세상 만사를 복음화하고자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이들과 모든 선의의 인간들의 노력을 치하하고 교회가 줄수있는 모든 원조와 협력을 약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