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오그네투스에게 보낸 호교서

 

「디오그네투스에게 보낸 호교서」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디오그네투스에게 보낸 작품은 헨리쿠스 스테파누스가 1592년에 첫 간행본을 낸 다음 「디오그네투스에게 보낸 편지」라고 불린다. 편지는 전통적으로 “사도 교부” 시대의 작품에 속한다. 그렇지만 호교서로 분류되는 이 작품은 디오그네투스가 대화의 상대자인 점을 제외하고는 고대의 편지 형식을 갖추고 있지 않다. 고대와 중세의 어느 문헌도 이 작품이 6/7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13/14세기의 유일한 사본을 싣고 있다고 증언하지 않는다. 15세기 중엽에 우연히 콘스탄티노플의 생선가게에서 포장지로 발견된 사본은 18세기 말에 스타라스부르그의 시립 도서관으로 옯겨졌으나 독불전쟁 동안인 1870년 8월 24일 프러시아군이 도시를 공격할 때 불타버렸다. 다행히도 이 호교서는 이전의 필사본, 교정본, 비평본을 바탕으로 매우 믿을만하게 복원되었지만 본문에 많은 결함이 있다.


호교서의 서론에서는 디오그네투스가 더 상세히 알고 싶어하는 세 가지 질문을 제시한다. ① 그리스도인의 신은 누구인가? 그리스도인들은 그를 어떻게 흠숭하나? 그들은 왜 죽음을 경시하나? 그들은 왜 그리스와 유다교의 제의를 따르지 않는가? ② 이웃 사랑은 왜 중요한가? ③ 왜 그들의 신앙은 이전이 아니라 지금에 와서야 알려졌는가? 2-4장에서는 첫번째 질문에 답변하기 위하여 디오그네투스가 곧바로 동의할 수 있는 철학적 신 개념을 화제의 실마리로 삼는다. 이교인의 신들은 단지 인간의 물질적 작품이기 때문에 그들을 공경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유다인들은 한 분이신 참된 하느님을 공경하지만, 그들은 하느님께 산 제물을 바치고 불합리한 율법 규정을 지나칠 정도로 엄격히 지키면서 그분을 잘못 공경한다. 5-6장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의 고유한 행동방식을 묘사한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처럼 세상에 살고 있지만 그리스도에게 속해 있으므로 이미 하늘의 시민이다. 영혼이 육체를 능가하듯이 그들은 존재와 행위에서 세상을 능가한다. 7-8장에서는 철학적 여러 신에 관한 관념들을 비판하며, 전능하시고 만물을 창조하시며 눈에 보이지 않는 선하신 하느님께 대한 그리스도교적 표상을 설명한다. 이 설명으로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생활을 논증하고 세번째 질문에 대한 답변의 기초를 마련한다. 하느님과 성자의 구원계획은 처음부터 예정되었으며, 아들을 보내어 인간을 죄와 죽음에서 구원하는 것은 인간이 자신의 불의를 인정하고 스스로 구원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깨달을 때에야 비로소 이루어진다. 10장에서는 디오그네투스에게 하느님을 인식하고 그분을 본받아 그리스도인이 될 것을 권유하면서 작품을 끝맺는다. 「디오그네투스에게 보낸 호교서」는 순수한 호교서라기보다는 그리스도교를 권유하는 작품에 더 가깝다.


그렇지만 디오그네투스의 질문과 호교서의 논증은 여러 관점에서 초대 그리스도교 호교서의 전형으로 볼 수 있다. 질문 가운데일부는 새로운 종교의 근본적인 문제와 이 종교에서 가장 이목을 끄는 현상에 관한 가르침을 요구하며, 더러는 신앙의 정당화를 기대하는 비판적 요청이다. 곧, 그리스도인들은 왜 로마제국에서 허용된 다른 모든 종교처럼 국가의 제의에 참여하지 않느냐? 그들은 국가의 제의에서 자유로운 유다교에 머무르지 않고 왜 새로운 제3의 길을 가느냐? 유사한 질문이 새로운 종교가 주장하는 진리에 대한 질문에도 적용된다. 진리는 영원하기 때문에 예부터 내려온 것이어야 하지 않는가? 새로운 것이 조상으로부터 확증된 전통과 더 좋은 관습을 능가할 수 있는가?


디오그네투스의 질문에 대한 답변도 마찬가지로 전형적인 특징을 나타낸다. 답변은 처음에 일반적인 확신을 화제의 실마리로 삼는다. 그러고 나서 이 작품은, 예를 들어 육체와 영혼의 비교와 같은 철학적 용어 안에서 그리스도교를 긍정적이고 탁월하게 묘사하고, 그리스도교가 시대적으로 늦었지만 유일하고 참된 종교임을 논증하면서 마침내 수신인에게 개종을 권고한다.


대다수의 학자는 11장과 12장을 후대에 다른 사람이 첨가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안드리센, 마루, 최근에 리지는 이 두 장을 진본으로 여겼다. 이와 달리 바나르는 11장과 12장이 동일한 저자의 두번째 작품으로서 전승사를 통해 첨가된 단락이라고 주장하였다. 작품의 저자가 누구인지는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다. 「디오그네투스에게 보낸 호교서」가 소실된 콰드라투스의 호교서와 같은 작품이라는 안드리센의 주장은 거의 받아들이기 어려운 가설이다. 저술 연도와 장소에 관해서는 확실하게 알려진 것이 없다. 200년경에 씌었다는 견해가 압도적으로 많으며, 마루는 추정적인 저술 장소로 알렉산드리아를 제안하였다. 그러나 바나르는 저술 연도를 마르치온 논쟁 이전인 140년경으로 주장한다. 여하튼 이 작품이 콘스탄티누스 시대 이후에 저술되었다는 견해는 받아들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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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오그네투스에게 보낸 호교서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디오그네투스에게 보낸 호교서」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디오그네투스에게 보낸 작품은 헨리쿠스 스테파누스가 1592년에 첫 간행본을 낸 다음 「디오그네투스에게 보낸 편지」라고 불린다. 편지는 전통적으로 “사도 교부” 시대의 작품에 속한다. 그렇지만 호교서로 분류되는 이 작품은 디오그네투스가 대화의 상대자인 점을 제외하고는 고대의 편지 형식을 갖추고 있지 않다. 고대와 중세의 어느 문헌도 이 작품이 6/7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13/14세기의 유일한 사본을 싣고 있다고 증언하지 않는다. 15세기 중엽에 우연히 콘스탄티노플의 생선가게에서 포장지로 발견된 사본은 18세기 말에 스타라스부르그의 시립 도서관으로 옯겨졌으나 독불전쟁 동안인 1870년 8월 24일 프러시아군이 도시를 공격할 때 불타버렸다. 다행히도 이 호교서는 이전의 필사본, 교정본, 비평본을 바탕으로 매우 믿을만하게 복원되었지만 본문에 많은 결함이 있다.

    호교서의 서론에서는 디오그네투스가 더 상세히 알고 싶어하는 세 가지 질문을 제시한다. ① 그리스도인의 신은 누구인가? 그리스도인들은 그를 어떻게 흠숭하나? 그들은 왜 죽음을 경시하나? 그들은 왜 그리스와 유다교의 제의를 따르지 않는가? ② 이웃 사랑은 왜 중요한가? ③ 왜 그들의 신앙은 이전이 아니라 지금에 와서야 알려졌는가? 2-4장에서는 첫번째 질문에 답변하기 위하여 디오그네투스가 곧바로 동의할 수 있는 철학적 신 개념을 화제의 실마리로 삼는다. 이교인의 신들은 단지 인간의 물질적 작품이기 때문에 그들을 공경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유다인들은 한 분이신 참된 하느님을 공경하지만, 그들은 하느님께 산 제물을 바치고 불합리한 율법 규정을 지나칠 정도로 엄격히 지키면서 그분을 잘못 공경한다. 5-6장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의 고유한 행동방식을 묘사한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처럼 세상에 살고 있지만 그리스도에게 속해 있으므로 이미 하늘의 시민이다. 영혼이 육체를 능가하듯이 그들은 존재와 행위에서 세상을 능가한다. 7-8장에서는 철학적 여러 신에 관한 관념들을 비판하며, 전능하시고 만물을 창조하시며 눈에 보이지 않는 선하신 하느님께 대한 그리스도교적 표상을 설명한다. 이 설명으로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생활을 논증하고 세번째 질문에 대한 답변의 기초를 마련한다. 하느님과 성자의 구원계획은 처음부터 예정되었으며, 아들을 보내어 인간을 죄와 죽음에서 구원하는 것은 인간이 자신의 불의를 인정하고 스스로 구원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깨달을 때에야 비로소 이루어진다. 10장에서는 디오그네투스에게 하느님을 인식하고 그분을 본받아 그리스도인이 될 것을 권유하면서 작품을 끝맺는다. 「디오그네투스에게 보낸 호교서」는 순수한 호교서라기보다는 그리스도교를 권유하는 작품에 더 가깝다.

    그렇지만 디오그네투스의 질문과 호교서의 논증은 여러 관점에서 초대 그리스도교 호교서의 전형으로 볼 수 있다. 질문 가운데일부는 새로운 종교의 근본적인 문제와 이 종교에서 가장 이목을 끄는 현상에 관한 가르침을 요구하며, 더러는 신앙의 정당화를 기대하는 비판적 요청이다. 곧, 그리스도인들은 왜 로마제국에서 허용된 다른 모든 종교처럼 국가의 제의에 참여하지 않느냐? 그들은 국가의 제의에서 자유로운 유다교에 머무르지 않고 왜 새로운 제3의 길을 가느냐? 유사한 질문이 새로운 종교가 주장하는 진리에 대한 질문에도 적용된다. 진리는 영원하기 때문에 예부터 내려온 것이어야 하지 않는가? 새로운 것이 조상으로부터 확증된 전통과 더 좋은 관습을 능가할 수 있는가?

    디오그네투스의 질문에 대한 답변도 마찬가지로 전형적인 특징을 나타낸다. 답변은 처음에 일반적인 확신을 화제의 실마리로 삼는다. 그러고 나서 이 작품은, 예를 들어 육체와 영혼의 비교와 같은 철학적 용어 안에서 그리스도교를 긍정적이고 탁월하게 묘사하고, 그리스도교가 시대적으로 늦었지만 유일하고 참된 종교임을 논증하면서 마침내 수신인에게 개종을 권고한다.

    대다수의 학자는 11장과 12장을 후대에 다른 사람이 첨가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안드리센, 마루, 최근에 리지는 이 두 장을 진본으로 여겼다. 이와 달리 바나르는 11장과 12장이 동일한 저자의 두번째 작품으로서 전승사를 통해 첨가된 단락이라고 주장하였다. 작품의 저자가 누구인지는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다. 「디오그네투스에게 보낸 호교서」가 소실된 콰드라투스의 호교서와 같은 작품이라는 안드리센의 주장은 거의 받아들이기 어려운 가설이다. 저술 연도와 장소에 관해서는 확실하게 알려진 것이 없다. 200년경에 씌었다는 견해가 압도적으로 많으며, 마루는 추정적인 저술 장소로 알렉산드리아를 제안하였다. 그러나 바나르는 저술 연도를 마르치온 논쟁 이전인 140년경으로 주장한다. 여하튼 이 작품이 콘스탄티누스 시대 이후에 저술되었다는 견해는 받아들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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