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원죄 교의에 대한 성서적 근거
(창세기 3장, 로마서 5장)
1. 창세기 2, 8 – 3, 24
창세기는 출애급에 대한 소급이다. 하느님은 당신의 모상으로 인간을 창조했고, 지력, 초성은혜, 과성은혜를 부여했으나 인간 스스로 상실당했다. 이를 근거로 교회는 이런 상태(특권의 박탈, 낙원의 상실, 죽음, 노동등)가 후손에게 계속 이어진다고 가르친다. 따라서 출생시부터 원죄를 가지고 태어난다.
교회는 이를 사실로 인정한 상태에서 발전시켰다. 그러나 이는 역사적 사건이 아니고, 그 목적도 역사 규명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은총과 축복속에 나타나는 하느님의 구원과 자비를 드러내는 것이다. 야훼스트계는 이 문헌을 통해 인간의 비참한 상황의 원인이 죄이고, 첫 조상의 죄 때문에 그렇게 됨을 가르치려는 것은 아니다. 또한 직접 계시된 것도 아니다. 이는 인간 실존의 여건, 문제들을 원인론적으로 규명하려는 설화이다. 이는 역사속에서 이스라엘이 하느님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왔는가에 대한 설명이지 역사적 사실은 아니다.
작가가 아담과 하와를 통해 인류 전체를 의미하는가? 현대 학자들은 과거의 개별 인간으로서의 ‘아담’을 ‘사람’으로 단순히 번역하고 있다. 현대에 ‘집단인격’이란 말이 있다. 즉 집단 공동체가 인류를 대표한다. 그러나 아담은 성서상에 개별 인간으로 나타난다-카인과 아벨과 셋의 아버지로서. 비록 아담이 단체를 대표한다 하더라도 그는 언제나 한 개인으로 남는다.
창세기 3장 자체는 아담의 죄만을 언급한다. 즉 후손에 영향을 미치는 죄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
고, 저자도 모르고 있었다. 도비아서 8장등에 원조에 대해서는 언급하지만 원죄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집회 25,24; 죄는 여자에서 시작되었다.
지혜 2,23-24; 죄 유전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죽음이 세상에 들어온 것은 악마의 시기에 의해서이다.
2. 로마서 5,12 – 19(21)
로마 5,12; ①삶과 죽음의 관점 ②죄와 의화의 관점에서 서술한다.
①아담과 그리스도는 죽음에서 정반대의 입장에 놓여 있다.
②죽음에 있어 그리스도의 영향력은 아담보다 강력하다.
③죄의 관점에 있어서도 서로 반대 입장에 있다.
④죄의 영향력에 있어 그리스도는 아담을 능가한다.
바오로 사도에 있어 죄가 세상에 들어온 것은 아담 개인에 의해서이다. 즉 아담은 죄가 세상에 들어오게된 통로였다. 창세기에서 죄와 더불어 온 죽음은 하느님과의 친교의 단절이다.
바오로는 죽음은 최종적 업보이고, 또한 그리스도가 재림하여 물리칠 최후의 적이다. 즉 이 죽음은 육체적 죽음만 의미하지는 않는다.
로마서 5,12;Δθα τξυτξ σοερ δθ ενξζ αν ρ οξν η αμτθα εθσ τξν κξσμξν εθσηλ εν
καθ δθα τηζ αμαρταθζ ξ ανατξζ, καθ ξυτ σ εθζ οανταζ αν ρ οξυζ
ξ ανατξζ δθηλ εν, εφ ι οαντεζ ημαρτξν.
Vulgata역; Propterea sicut per unum hominem in hunc mundum peccatum intravit
et ita in ommes homines mors pertransiit in quo ommes peccaverunt.
εφ ι = εοθ τξυτ ξτθ의 약자; 「-때문에」, 「-한 까닭으로」로 번역해야 함.
그러므로 이 문장은 ꡔ한 사람이 죄를 죄었기 때문에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죄는 또한 죽음을 불러들인 것 같이 모든 사람이 범죄하였기 때문에 모든 사람안에 죽음이 들어왔다ꡕ라고 번역해야 한다.
로마서 3,23의 ꡔ모든 사람이 범죄하였고 그래서 하느님의 영광을 잃어버렸습니다ꡕ와 상통한다. 바오로는 유아들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아니다. 바오로는 개인적인 죄들을 이야기하고 있고,모든이의 죄가 아담의 죄와 연결되어 있음을 말한다. ꡔ아담에서 모세에 이르기까지 죽음이 모두를 지배하였다. 그런데 아담과 같은 죄를 짓지 않은 이들도 모두 죽음을 당하였다.ꡕ 이는 율법 이전의 원죄의 실존상태를 지적한 것이다.그렇다면 이보다 유아의 죽음이 더 타당한 예가 아닌가? 또한 모세의 율법을 어겼다고 모두 죽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또한 죄와 더불어 세상에 들어온 죽음은 신체적 죽음 이상의 것이다.
바오로가 말한 죽음은 단순한 육체적 죽음이 아니다.
로마서 2,12-14; ꡔ율법이 없는 채 죄지은 자는 누구나 율법이 없는 채로 멸망할 것입니다. 그리고 율법을 가진 채 죄지은 자는 율법대로 심판받을 것입니다.ꡕ 율법이 없기에 죄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은 여기서 부정되고 있다. 바오로는 아담과 다른 종류의 죄를 지은 이들도 모두 죽음을 겪는다. 즉 노아의 홍수, 소돔과 고모라등 대사건을 상기하면서 그는 아담에서 모세
까지의 시대를 이야기한다. 그러나 여기서도 단순한 육체적 죽음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유다서 1,7; ꡔ소돔과 고모라 또한 이들과 같은 식으로 음란한 짓을 하며 색다른 육을 좇았던 그 주변의 도시들은 영원한 불의 벌을 받아 본보기로 남아 있습니다.ꡕ 따라서 바오로가 이야기한 죽음은 신체적 죽음을 포함해서 하느님과의 소외된 상태(관계)를 이야기한다. 이것이 바로 죽음 자체가 원죄의 상황이 되는 것이다.
로마서 5,12; ꡔ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죄로 말미암아 죽음이 들어왔듯이, 또한 이렇게 모두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죽음이 모든 사람에게 뚫고 들어왔습니다.ꡕ 모든이가 죄를 범했기에 죽음을 당했다는 입장에서 공통점을 말하는 것이다.
로마서 5,19; ꡔ한사람의 불순종으로 많은 사람들이 죄인이 되었다.ꡕ 여기서 죄는 한사람의 불순종으로 일어나지만, 각 개인의 죄없이는 불가능하다. ꡔ많은 사람들ꡕ, 12절에서는 ꡔ모든 사람들ꡕ이란 표현은 서로 상통하는 표현이다.
로마서 5,20이하; 그리스도의 은총이 이스라엘의 자손들의 죄와 대비하여 나타난다.
바오로는 로마서 5장, 1고린 15장에서만 아담의 죄를 언급하고 있을 뿐, 다른 곳에서는 아담의 죄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즉 인간의 죄는 아담의 죄와 관련이 없음을 나타낸다. 즉 바오로에 있어서는 본죄가 드러나는 한에 있어서 원죄가 언급되고 있을 뿐이고, 유아등 본죄가 드러나지 않는 상태에서의 원죄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인간은 모두가 범죄하고 있고, 이는 첫번째의 죄와 연결되어 있다. 여기서는 모든 인간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된다는 것이 핵심주제이다.
요한 8장; 바오로와 비교하면 모든 죄인은 아비와, 두목과 함께 존재한다. 요한은 그 두목을 사탄으로 보고, 바오로는 두목을 아담으로 보는 것이 다른 점이다.
바오로에 있어서 죄의 입구는 아담이었지만 죽음으로 이끄는데는 각 개인의 죄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원죄에 대한 교의는 성서 어디에도 ꡔ명시ꡕ되어 있지는 않다. 그러나 성서는 교의의 근거가 되고 있다. 인간의 비참한 상태는 하느님의 원의가 아니라 인간 자신들의 죄에 의해서이다. 따라서 인간은 죽을 상태에 처해있고 모든 재앙은 인간의 악에로의 경향 때문이라고 성서는 지적한다. 그러나 성서는 인간의 타고난 사욕 그 자체가 죄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유아들의 죄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는다. 또한 아담의 죄가 원죄라는 것도 성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 더우기 원죄의 전달방법에 대해서 성서는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있다.
2장 원죄 교의에 대한 성서적 근거
이 글은 카테고리: catholicdictionary3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2장 원죄 교의에 대한 성서적 근거
(창세기 3장, 로마서 5장)
1. 창세기 2, 8 – 3, 24
창세기는 출애급에 대한 소급이다. 하느님은 당신의 모상으로 인간을 창조했고, 지력, 초성은혜, 과성은혜를 부여했으나 인간 스스로 상실당했다. 이를 근거로 교회는 이런 상태(특권의 박탈, 낙원의 상실, 죽음, 노동등)가 후손에게 계속 이어진다고 가르친다. 따라서 출생시부터 원죄를 가지고 태어난다.
교회는 이를 사실로 인정한 상태에서 발전시켰다. 그러나 이는 역사적 사건이 아니고, 그 목적도 역사 규명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은총과 축복속에 나타나는 하느님의 구원과 자비를 드러내는 것이다. 야훼스트계는 이 문헌을 통해 인간의 비참한 상황의 원인이 죄이고, 첫 조상의 죄 때문에 그렇게 됨을 가르치려는 것은 아니다. 또한 직접 계시된 것도 아니다. 이는 인간 실존의 여건, 문제들을 원인론적으로 규명하려는 설화이다. 이는 역사속에서 이스라엘이 하느님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왔는가에 대한 설명이지 역사적 사실은 아니다.
작가가 아담과 하와를 통해 인류 전체를 의미하는가? 현대 학자들은 과거의 개별 인간으로서의 ‘아담’을 ‘사람’으로 단순히 번역하고 있다. 현대에 ‘집단인격’이란 말이 있다. 즉 집단 공동체가 인류를 대표한다. 그러나 아담은 성서상에 개별 인간으로 나타난다-카인과 아벨과 셋의 아버지로서. 비록 아담이 단체를 대표한다 하더라도 그는 언제나 한 개인으로 남는다.
창세기 3장 자체는 아담의 죄만을 언급한다. 즉 후손에 영향을 미치는 죄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
고, 저자도 모르고 있었다. 도비아서 8장등에 원조에 대해서는 언급하지만 원죄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집회 25,24; 죄는 여자에서 시작되었다.
지혜 2,23-24; 죄 유전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죽음이 세상에 들어온 것은 악마의 시기에 의해서이다.
2. 로마서 5,12 – 19(21)
로마 5,12; ①삶과 죽음의 관점 ②죄와 의화의 관점에서 서술한다.
①아담과 그리스도는 죽음에서 정반대의 입장에 놓여 있다.
②죽음에 있어 그리스도의 영향력은 아담보다 강력하다.
③죄의 관점에 있어서도 서로 반대 입장에 있다.
④죄의 영향력에 있어 그리스도는 아담을 능가한다.
바오로 사도에 있어 죄가 세상에 들어온 것은 아담 개인에 의해서이다. 즉 아담은 죄가 세상에 들어오게된 통로였다. 창세기에서 죄와 더불어 온 죽음은 하느님과의 친교의 단절이다.
바오로는 죽음은 최종적 업보이고, 또한 그리스도가 재림하여 물리칠 최후의 적이다. 즉 이 죽음은 육체적 죽음만 의미하지는 않는다.
로마서 5,12;Δθα τξυτξ σοερ δθ ενξζ αν ρ οξν η αμτθα εθσ τξν κξσμξν εθσηλ εν
καθ δθα τηζ αμαρταθζ ξ ανατξζ, καθ ξυτ σ εθζ οανταζ αν ρ οξυζ
ξ ανατξζ δθηλ εν, εφ ι οαντεζ ημαρτξν.
Vulgata역; Propterea sicut per unum hominem in hunc mundum peccatum intravit
et ita in ommes homines mors pertransiit in quo ommes peccaverunt.
εφ ι = εοθ τξυτ ξτθ의 약자; 「-때문에」, 「-한 까닭으로」로 번역해야 함.
그러므로 이 문장은 ꡔ한 사람이 죄를 죄었기 때문에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죄는 또한 죽음을 불러들인 것 같이 모든 사람이 범죄하였기 때문에 모든 사람안에 죽음이 들어왔다ꡕ라고 번역해야 한다.
로마서 3,23의 ꡔ모든 사람이 범죄하였고 그래서 하느님의 영광을 잃어버렸습니다ꡕ와 상통한다. 바오로는 유아들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아니다. 바오로는 개인적인 죄들을 이야기하고 있고,모든이의 죄가 아담의 죄와 연결되어 있음을 말한다. ꡔ아담에서 모세에 이르기까지 죽음이 모두를 지배하였다. 그런데 아담과 같은 죄를 짓지 않은 이들도 모두 죽음을 당하였다.ꡕ 이는 율법 이전의 원죄의 실존상태를 지적한 것이다.그렇다면 이보다 유아의 죽음이 더 타당한 예가 아닌가? 또한 모세의 율법을 어겼다고 모두 죽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또한 죄와 더불어 세상에 들어온 죽음은 신체적 죽음 이상의 것이다.
바오로가 말한 죽음은 단순한 육체적 죽음이 아니다.
로마서 2,12-14; ꡔ율법이 없는 채 죄지은 자는 누구나 율법이 없는 채로 멸망할 것입니다. 그리고 율법을 가진 채 죄지은 자는 율법대로 심판받을 것입니다.ꡕ 율법이 없기에 죄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은 여기서 부정되고 있다. 바오로는 아담과 다른 종류의 죄를 지은 이들도 모두 죽음을 겪는다. 즉 노아의 홍수, 소돔과 고모라등 대사건을 상기하면서 그는 아담에서 모세
까지의 시대를 이야기한다. 그러나 여기서도 단순한 육체적 죽음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유다서 1,7; ꡔ소돔과 고모라 또한 이들과 같은 식으로 음란한 짓을 하며 색다른 육을 좇았던 그 주변의 도시들은 영원한 불의 벌을 받아 본보기로 남아 있습니다.ꡕ 따라서 바오로가 이야기한 죽음은 신체적 죽음을 포함해서 하느님과의 소외된 상태(관계)를 이야기한다. 이것이 바로 죽음 자체가 원죄의 상황이 되는 것이다.
로마서 5,12; ꡔ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죄로 말미암아 죽음이 들어왔듯이, 또한 이렇게 모두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죽음이 모든 사람에게 뚫고 들어왔습니다.ꡕ 모든이가 죄를 범했기에 죽음을 당했다는 입장에서 공통점을 말하는 것이다.
로마서 5,19; ꡔ한사람의 불순종으로 많은 사람들이 죄인이 되었다.ꡕ 여기서 죄는 한사람의 불순종으로 일어나지만, 각 개인의 죄없이는 불가능하다. ꡔ많은 사람들ꡕ, 12절에서는 ꡔ모든 사람들ꡕ이란 표현은 서로 상통하는 표현이다.
로마서 5,20이하; 그리스도의 은총이 이스라엘의 자손들의 죄와 대비하여 나타난다.
바오로는 로마서 5장, 1고린 15장에서만 아담의 죄를 언급하고 있을 뿐, 다른 곳에서는 아담의 죄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즉 인간의 죄는 아담의 죄와 관련이 없음을 나타낸다. 즉 바오로에 있어서는 본죄가 드러나는 한에 있어서 원죄가 언급되고 있을 뿐이고, 유아등 본죄가 드러나지 않는 상태에서의 원죄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인간은 모두가 범죄하고 있고, 이는 첫번째의 죄와 연결되어 있다. 여기서는 모든 인간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된다는 것이 핵심주제이다.
요한 8장; 바오로와 비교하면 모든 죄인은 아비와, 두목과 함께 존재한다. 요한은 그 두목을 사탄으로 보고, 바오로는 두목을 아담으로 보는 것이 다른 점이다.
바오로에 있어서 죄의 입구는 아담이었지만 죽음으로 이끄는데는 각 개인의 죄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원죄에 대한 교의는 성서 어디에도 ꡔ명시ꡕ되어 있지는 않다. 그러나 성서는 교의의 근거가 되고 있다. 인간의 비참한 상태는 하느님의 원의가 아니라 인간 자신들의 죄에 의해서이다. 따라서 인간은 죽을 상태에 처해있고 모든 재앙은 인간의 악에로의 경향 때문이라고 성서는 지적한다. 그러나 성서는 인간의 타고난 사욕 그 자체가 죄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유아들의 죄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는다. 또한 아담의 죄가 원죄라는 것도 성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 더우기 원죄의 전달방법에 대해서 성서는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