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관의 여러 모델-성사로서의 교회(Sacrament)

2. 성사로서의 교회(Sacrament)

제도주의적 교회관은 비구성원인 비신자들의 구원문제에 있어서 회의적이고, 공동체적 교회관은 제도적인 측면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이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20 세기에 들어 신학자들은 교부학과 아우구스띠노와 토마스의 성사론에 기반을 두고 성사로서의 교회관에 호소했다( Lubac, Rahner, Schillebeeckx). 아우구스띠노에 의해 신학적으로 밝혀진 성사개념은 이미 11세기에 교회의 여러 의식행위들이 7성사로 확정되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는 그리스도와 교회 그리고 7성사들과의 관계에 대해서 충분한 설명이 없이 ‘교회는 성사’라고 강조하고 있다(교회 9,48; 전례26; 선교5; 사목42 등).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사와 비슷하다. 즉 교회는 하느님과의 깊은 일치와 전인류의 깊은 일치를 표시하고 이루어 주는 표지요 도구인 것이다.’(교회1)
성사는 보이지 않지만 실재로 있는 어떤 것의 표지 즉 보이지 않는 은총의 보이는 표지이다. 성사는 그것이 표시하는 실재를 생산해 내는 효과 있는 표지이다. 성사들은 그들이 표시하는 은총을 간직하고 있으며, 그들이 간직하고 있는 은총을 준다. 그리스도론 적으로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성사고, 교회론적으로 교회는 그리스도의 성사며, 7성사는 교회의 성사다. 모든 성사의 은총의 힘은 교회로부터 나오기에 교회는 성사다. 그리스도는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보이는 현존이요 표지이며, 개인이나 하느님 백성을 위한 유효한 구원의 힘이시다. 여기서 제도로서의 교회관(institution; 사회-성직 계급적 차원의 가시적 실재를 강조)과 공동체적 교회관(Communion; 믿음, 사랑, 희망과의 내적인 일치에 기반을 둔 사회-교회론적 차원 강조, 공의회의 교회관) 의 연결이 가능하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보이는 현존이요 표지로서, 신앙에 의해 주어지며 같은 신앙의 일치하에 있는 교회공동체에 의해서 실제적이고 신비적으로 살고 있다. 실제로 교회는 표지라기보다는 성사다. 교회는 보이는 행위들을 통하여 교회가 드러내고 선포하는 구원을 보게 하고 생산해 내며 효과 있게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교회는 단지 성사를 집행하고 드러내는 것만이 아니라 은총의 발생(Grace-happening)이라 할 수 있다. 실재로 교회인 하느님의 백성의 신앙생활 안에서 신, 망, 애, 자유, 평화, 화해 등이 사람들 상호간에 또 사람과 하느님간에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은총은 실재하나 우리가 의식할 수 없으며 경험할 수 없다고 보았다. 그러나 라너(K. Rahner)는 의식할 수 없다면 어떻게 의식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되묻는다. 은총은 하느님의 자기 증여요 하느님의 초월적 현존으로 항구히 그리고 보편적으로 존재하며 우리자신을 조건짓는 우리자신(초월적 인간학) 자체이다. 인간은 영육의 합일체로서 두 가지가 동시에 작용한다. 그러나 정신적 존재인 인간은 그 육체성 때문에 세계와의 만남을 통해서 경험하게 되고 그 경험한 것을 어떤 형식을 통해서 현실화하고 표현한다. 그래서 인간은 본래 상징적이며, 천주성에 참여하는 인간은 신적인 양식으로가 아니라 인간적인 양식으로 참여한다. 인간은 가정, 민족, 인종의 구성원으로 세상에 태어나 공동체 안에서 성숙하기에, 성사도 고립 속에서 이룰 수 없는 영신적 발전을 상호간의 공동행위 속에서 성취한다. 성사는 사회성을 띄고 있으며 공적으로 충만에 이르는 은총현존의 상징이다. (성사론에서 아직까지 지배적인 학설이 없다).
교회는 시공 안의 예수 그리스도의 지속적 현존이며, 하느님이 사회적 역사적 차원에서 당신 구원을 계속 제공하기 위하여 필요한 구원의 도구로서 성사이다. 이 교회관은 전통적 그리스도론과 교회론 및 성사론이 긴밀한 유대를 갖도록 해준다. 그리스도의 은총이 작용하는 한에서 교회이고, 역사 안에서 사회적이고 공동체적인 제도를 배제할 수 없기에 제도는 교회의 본질이다. 이 교회관은 교회로 하여금 항상 보다 낳은 표지가 되도록 스스로를 독려해 준다. 그러나 성사적 교회관을 극단적으로 이끌면 자아도취에 빠질 수 있다. 교회가 자신의 모든 행위들을 그리스도 은총의 외적 표지로 절대화 할 때 문제가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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