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교회 생활에서의 그리스도인
그리스도교적인 신앙과 실존의 이해에 있어서도 교회는 없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결코 개개인의 종교적 정열이나 종교적 경험이 낳은 이념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의 신앙고백, 예배, 그리스도의 공동체 생활은 교회에서 받은 것들이다. 교회는 어느 교파에 속하는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도 완전히 자명한 존재이고, 그리스도적 실존에 없어서는 안될 존재인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극히 냉정하게 이 교회를 자기 그리스도교적 일상 생활의 교회라고 간주해도 좋다. 그리스도인은 교회의 있는 그대로의 일상현실을 부정하거나 간과해서는 안된다. 교회는 항상 생활한 교회로 존속한다. 왜냐하면 교회에는 다만 신.망.애가 행해지고, 다만 주의 만찬식이 거행되며, 다만 주의 죽음이 전파될 뿐 아니라, 바로 교회를 형성하는 본래의 존재가 열린 마음과 신앙의 눈을 가지고 교회를 쳐다보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항상 충분히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는 공동체로서,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신앙인의 모임으로서 그리고 그리스도의 그 말씀과 은총의 대표자로서 필연적으로 위계 구조를 가지고 있다. 교회에는 거룩한 질서, 거룩한 법, 그리고 또한 법에 따라서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 대해 행사하는 권능이 존재해야 한다. 개개의 그리스도인은 교회의 권능과 권위에 대해서 그리고 교회의 필연적이고 사실의 본질 자체에서 생겨나는 권리 요구에 대해서 자기 신앙의 양심이 정말로 의무를 지고 있다는 것을 항상 확신하고 있다. 당연한 것이지만 개인의 양심에 대한 신적인 법, 하느님과 그리스도의 요구와 교회가 그 지도권에 기초하여 가톨릭 그리스도인의 양심에 대해서 부과하는 요구 사이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신적인 법과 교회법은 같은 것이 아니다. 후자는 설령 하느님의 의지에 의해서 합법화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인간의 권위이다. 그래서 설령 개인의 양심에 대해서 요구를 부과하는 것이라도 원칙적으로 신적인 법과 달리 변할 수 있는 것이다.
교회에 의해서 규정된 사항의 영역과 개개의 그리스도인의 본래 양심의 영역간에는 모순이 생기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교회의 교도권이 아니라 실제적인 법률적인 규정이다. 교회에서는 그 법에 관해서 진정한 상대성이 존재한다. 법의 상대성이란 법으로서의 법에 관해서 말하는 것이다. 법은 진정한 권위이면서 또 상대적인 권위라는 것, 그리고 이 권위가 상대성을 인식하면서 더욱이 복종을 잘 나타낸다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교회에서의 법에 관해서 말할 수 있는 사항인 것이다. 사실 교회법과 교회에의 순종에 관한 생각이나 판단은 가톨릭 그리스도인의 순종에 있어서 하나의 위험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 교회법을 부정하거나 절대화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그리스도인은 교회가 당신자신을 양여하시는 하느님의 현존을 역사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모습으로 이해한다. 그때 그는 교회를 사랑의 자리로,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인간에 대한 사랑의 자리로서 체험한다. 인간간의 사랑의 신적인 자리가 이 사랑의 승리의 가능성과 약속으로서 교회안에서, 특히 성찬식에서 나타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그것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사랑이 모두 외관상으로 좌절하고, 실망에 이르는 때에도 편안하게 용기와 희망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힘을 얻을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사랑에서 이 인간간의 사랑의 궁극적인 승리도 약속되어 있고, 희망에서 이미 주어져 있고, 그리고 교회에서 현존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세속적인 세계안에 살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교회의 신적생명, 신적은총, 그 본래의 현실을 올바로 이해한다면 교회는 궁극적으로 이 다원적인생활과 서로 경합하는 집단들을 훨씬 넘어가는 것이다. 또한 그것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관점에서 말할 수 있다.
첫째로, 교회가 가지고 있는 본래의 것은 인간과 인간실존을 해방하고 신비인 하느님 자신의 절대적인 지배에로 인도한는 데 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은 정말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즉, 자기는 죽음을 통해서 결국 궁극적으로 고독하게 되고, 모든 인간간의 경합하는 차원들에서 떠나감을 통해서 거룩한 하느님의 파악하기 어려운 무한한 충만함 속에 죽음으로 동시에 산다는 것, 그리고 이 하느님에게서만 모든 것은 정말로 하나가 되고, 이미 서로 경합하는 것은 없어지게 된다.
둘째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교 밖의 사람들을 그 실존 수행에서 자기와 반대되는 것을 말하고 살아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 사람의 정신적 생명의 진정한 것은 무한하고 말로 표현할 수 없고, 정의할 수 없는 하느님이 이 인격의 자유에 대해서 당신 자신을 구원으로서 제공하신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은 그 희망에서 신뢰를 가지고 실존의 신비의 심연에 자신을 맡길 때 인간은 하느님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 때문에 이 혼미한 세상에서도 그리스도인은 교회를 신앙인의 모범으로 보는 것이다. 신앙인은 정말로 공적인 교회의 명확한 반성의 차원에서도 궁극적으로는 신.망.애 가운데 하나의 것을 고백한다. 즉, 절대적으로 생활한 하느님이 그 피조물의 모든 다원성을 통해서 당신 자신을 주시는 사랑 가운데 승리를 가지고 군림하고 계신 것이다.
